위령공 15, 술이 11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직장 업무만 시작하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어 짜증이 일고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1분도 안되어 올라오는 짜증을 가라앉히려 애써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일하는 상황에 감사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왜 이러나 스스로에게 실망감도 느꼈지요.
이렇게 몇 달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신체적 증상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시작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거든요. 게다가 업무에 실수도 잦아져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힘듦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감도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도 홀로 마음속 짜증과 가슴 두근거림을 견디며 최대한 빨리 업무를 끝내려고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리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퓨즈가 나간 듯이 손가락을 정지했습니다. 무엇을 더 했다가는 더 이상 내가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멍하게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니, 작성 중인 보고서가 우주를 유영하는 고철덩어리처럼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문득 유체이탈을 한 내 영혼은 저 먼 우주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실수투성이 보고서를 만들며 생명을 깎아먹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이 그 곳에 있었습니다. 견딜수 없는 수치심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다시 논어를 펴 들었습니다. 어쩌면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무 곳이나 펼쳤습니다. 논어의 글자들을 빤히 바라보다 한자의 획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보았습니다. 마음이 안정되며 조금씩 생각이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짜증과 분노, 그 아래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다른 무언가가 감지되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일을 할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무엇인지 떠올려 보았습니다.
'직장 일이 늦어지면,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할 시간이 줄어들어.'
'최대한 빨리 끝내. 빨리, 빨리!'
마음속 외침을 언어로 형상화해 보니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짜증과 분노라는 나의 감정은 사실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직장 일에 매달려 있을수록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을 놓치는 하루를 보낼까 봐 두려웠고, 그래서 조급해졌던 것이었습니다.
자기 계발을 위한 것일지라도, 어느 순간 직장 일까지 기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보니 부끄러웠습니다. 월급을 받고 있으니,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은 당연한 나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그마저 거부하고 있다니요. 이것은 논어의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하지?'
궁리하며 이렇게 되뇌다가, 문득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이 말, 어디에 있었더라?'
논어의 책장을 서둘러 넘겨보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찾았습니다. 이와 꼭 같은 논어의 말을요.
공자가 말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라고 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子曰 不曰如之何如之何者, 吾末如之何也已矣.
-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15 -
'어떻게 할까'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요. 제가 이해한 바로는,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파악하고 더욱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을 형용한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를 궁리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과 태도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주변에 좋은 스승과 친구가 효과적인 조언을 해주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하지요.
논어에서 '어떻게 할까'라는 문장을 찾아 발견한 순간, 이 말이 곧 내 마음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일이 늦게 끝나면 어떡하지? 잘못하면 오늘도 하루를 날리겠는데?'
'오늘도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지 못하면, 내 꿈에서 멀어지는데, 어떻게 하지?'
나는 매 순간 내 꿈을 놓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업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될까 봐 두렵고, 또 업무를 성실히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두려움에 죄책감까지 더 해지니 그것이 모두 큰 스트레스가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짜증과 분노라는 막연한 감정을 걷어내고 두려움과 마주치자,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두려움은, 그 대상이 어느 정도 드러나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저는 다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기 힘들뿐더러, 방법을 찾기도 어려웠거든요.
두려움은 다양한 감정으로 그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게으름과 무기력함, 짜증과 분노 등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감정, 그 한 꺼풀을 직접 들추어보아야 그 안에 '두려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겨우 알아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과연 가치 있는 감정일까요? 두려움이 없다면 분노와 짜증과 가슴 두근거림을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다면 나는, 우리는 항상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계발서에 등장하는, 도전해서 성취한 멋진 이들처럼 말입니다.
두려움을 발견하자, 이번에는 내가 사소한 일에도 쉽게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지나치게 소심한 나 자신을 스스로 책망하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 두려움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대담한 마음을 지닌 다른 누군가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할지 어떻게 알았는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나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맨 몸으로 황하를 건너가다가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자와는 함께 일하지 않을 것이다.
일을 할 때에 두려워하면서, 계획하기를 좋아하여 그 일을 완성해 내는 자,
나는 반드시 그런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
子曰 :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자왈 : 포호빙하, 사이무회자, 오불여야. 필야임사이구, 호모이성자야.
- 논어(論語) 술이(述而) 11장 -
공자는 '자로'라는 자신의 제자를 향해 한 말입니다. 자로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매우 용맹한 캐릭터입니다. 공자는 자로가 용맹한 자신을 칭찬해 주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자로를 향한 애정 어린 충고였던 듯합니다.
'용기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장점입니다. 저 또한 용기 있고 대담한 사람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공자는 지나치게 용맹하면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으려고 하고, 넓디넓은 강을 맨몸으로 수영해서 건너간다고 나서면 목표를 이루기는커녕 죽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공자는 두려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면서도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감정, 그 원동력이 바로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공자는 '두려움'의 감정이 인간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임사이구(임사이구)', 즉 어떤 일들 앞에서 두려움을 갖는 것은 전혀 부끄럽고 창피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자가 가르쳐주었습니다. 공자의 말을 만난 뒤, 나는 자괴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공자와 일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마찬가지겠지요. 갑자기 어깨가 으쓱거립니다.
이런 이야기는 비단 논어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에서도 성공한 사람은 가장 두려움이 많은 사람, 그리하여 신중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이고 당신의 사업 구상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면, 당신이 추진하는 사업은 끝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앞뒤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덤비는 도박꾼 기질이라면, 당신의 창업은 사상누각일 가능성이 높다.
애덤 그랜트는 이렇게, 가장 성공한 사람은 위험을 무릅쓴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있습니다. 곧 두려움이 가장 많은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두려움이란 이렇게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두려움을 발견했고, 인정할 수 있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칠 수는 없었습니다. 이 발견을 통해서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을 할 때에 두려워하면서, 계획하기를 좋아하여 그 일을 완성해 내는 자,
나는 반드시 그런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
子曰 :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자왈 : 포호빙하, 사이무회자, 오불여야. 필야임사이구, 호모이성자야.
- 술이 11장 -
"그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잘못이 아니야. 그렇다면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홀로 되뇌며 위의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다 보니,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감이 왔습니다. 나는 '호모이성(好謀而成)의 면모가 없었습니다. 즉, 계획하기를 좋아해서 일을 완성해 내는 면모, 그 중요한 부분이 텅 비어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하루를 돌이켜보니 계획 따윈 전혀 없었습니다. 업무를 빠르게 처리해서 시간이 남으면 그 시간을 활용하서 책을 보거나 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날은 뿌듯하지요.
그러나 일의 진행이 더디거나, 오래 걸려서 끝내야 하는 일과 마주하면 독서며 공부는 전혀 하지 못한 채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이런 날은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이라는 것이 빠르게 끝내지 못한 때가 훨씬 많았기에, 우울한 날들이 지속되고는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가장 큰 문제점을 돌아보니, 업무 시간 안에 업무도 하고 독서와 공부도 하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이라면, 업무 시간 안에 배치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꾸준히 지속하기 위해서 퇴근 전, 퇴근 후에 독서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시간 배분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맡은 업무 또한 내가 사랑해야겠다 마음먹어 보았습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업무 시간에는 편안하게 업무에만 집중하는 태도로 전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더 이상 두려움과 죄책감을 안고 하루를 마감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하루의 계획표를 세워본 날,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배달앱을 켰습니다. 오늘은 로제 떡볶이를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원래 먹던 매콤한 쌀떡볶이를 배달시켰습니다. 시원한 콤부차와 함께 먹는 매콤한 떡볶이를 기대하며 나를 위로해 주었던 논어 문장을 다시금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너는 하루를 더 잘 살고 싶어 하는 것뿐이야. 두려워해도 괜찮아."
논어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요. 논어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두려워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욱 계획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힘이 있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에는 '루이스 퓨'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북극해 수영을 계획한 뒤 끔찍한 두려움에 시달렸지만, 그만큼 더욱 철저히 준비해서 목표를 이루었다고 하지요. 루이스 퓨는 성공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두려움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 비결이다.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더 철저히 준비하게 되고
잠재적인 문제들을 더 빨리 포착하게 된다."
공자가 자로에게 말했던 내용과 어쩌면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지요. 루이스 퓨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도전했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았을 것입니다. 그에게 찾아온 두려움은 그가 북극해 수영에 성공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렇듯 '두려움'이란 내게 좋은 조언을 해주는 '친구'일지도 모릅니다.
스티브 잡스는 '점'을 찍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찍는 점이 어떻게 선으로 연결될지 막연합니다. 이 막연함은 나의 매일을 더욱 두렵게 만듭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오늘 하루 아주 작게라도 '점'을 찍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을 이을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의 나는 몇 개 안 되는 '점' 몇 개를 찍어두고서는 '선'을 그어보느라 애만 태웠습니다. '선'이 잘 그려지지 않으니 두려워했고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작은 점이라도 찍어두는 것이겠지요. 촘촘하게 찍힌 점은 서로 연결되어 두려움이라는 파도를 넘어갈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그려낼 것입니다. 그 다리는 언젠가 내가 꿈꾸는 곳을 향해 나를 데려다주겠지요.
사실은, 여전히 두려움은 남아있습니다. 매일 새롭게 날 찾아올 두려움이 셀 수 없을만큼 많을 것이라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습니다. 언제든 손을 뻗을 수 있는 그 자리에 논어가 있다는 사실을요.
어느덧 떡볶이가 배달되었습니다. 한없는 감사함을 담아 쌀떡 하나를 포크로 쿡 찍어드리고 싶습니다. 공자 선생님은 진한 떡볶이 양념을 음미하며 미소를 짓겠지요. 수천 년 전에 남긴 당신의 말이 이렇게 까마득히 먼 인생 후배에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맛있게 느끼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