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자한 18
1848년, 미국에서 금 캐기 열풍이 불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가 이 행렬에 참여했습니다. 곡괭이와 삽을 들고 금맥을 찾아다녔습니다. 고되고 오랜 시간을 보낸 끝에 금맥을 발견했고, 채굴 장비를 구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막대한 돈을 빌렸습니다.
이렇게 마련한 채굴 장비로 발견한 금맥에서 약간의 금을 채굴했습니다. 금을 제련해 보니 순도 높은 금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금맥이 추가 발견된다면 빌린 돈을 갚고도 막대한 이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남자는 희망에 부풀어 열심히 파내려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아무리 파고 또 파도 금맥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결국 금 캐는 일을 단념한 남자는 채굴 기계를 고물상에 팔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채굴 장비를 얻게 된 고물상이 남자의 사연을 듣고 호기심이 일어 채굴 장비를 가지고 남자가 금을 캐던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또 이게 무슨 일일까요? 고물상은 남자가 금을 캐기 위해 파내려 갔던 그 자리에서 금맥을 발견했습니다. 고물상은 그렇게 하여 큰 부자가 되었지요. 도대체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성공의 비결은 단 1미터였습니다. 남자가 금을 파다가 포기했던 그 자리에서, 방향을 살짝 바꾸어 1미터만 파 내려가니 금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일은 나폴레옹 힐의 <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어라>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만약 남자가 포기하지 않고 조금 더 끈기 있게 노력했다면 어땠을까요? 한 번만 더 시도해서 1미터만 더 파내려 갔다면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공의 문턱에서 포기하고 말았던 남자의 일화가 너무나 안타깝지만, 사실은 두렵기도 합니다. 저 또한 그동안 포기 했던 일들이 조금만 더 하면 성공할 수 있었던 일은 아니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아 지난날 포기했던 무수한 일들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렇게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단 1미터뿐이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처음 금맥을 캐던 남자 입장에서는 놀랍도록 억울한 일이고, 고물상에게는 놀랍도록 운이 좋은 일이 되겠지요. 하지만 공자 선생님은 이러한 일에 대해 억울할 것도, 운이 좋다고 할 일도 아니라고 합니다. 모두가 다, 바로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흙을 쌓아 산을 만드는데 비유해 보자.
흙 한 바구니를 덜 쌓아 산이 미완성되었다고 한다면,
그렇게 해서 그만둔 것도 내가 그만둔 것이다.
평지를 만드는 데 비유해 보자.
비록 흙 한 바구니를 엎어 평지를 아주 조금 메웠다고 한다면,
이 조그마한 진척도 나의 성장이다."
子曰 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
<논어 자한 18>
그침과 나아감에 대한 공자의 통찰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공자는 두 가지의 비유를 듭니다. 첫 번째로는 산을 만드는 경우를 통해 인간의 정지, 즉 포기 상황을 설명합니다. 두 번째로는 구덩이를 메워 평지를 만드는 경우를 통해 인간의 진전을 보여줍니다. 이는 모두 간발의 차이로 실패하느냐 나아가느냐 하는 문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흙을 쌓아 산을 만드는 경우입니다. 부지런히 흙을 날라 쌓아서 산이 완성 직전에 있습니다. 그런데 산을 만들던 이가 지쳐서 흙 쌓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흙을 한 바구니만 더 쌓으면 머릿속에 계획했던 완성된 산을 볼 수 있었는데 말이에요. 결국 흙 한 바구니가 모자라 산 만들기는 실패합니다. 금맥을 찾다 포기한 남자의 일과 아주 흡사합니다.
그다음 평지를 메우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이가 구덩이를 흙으로 메워 평지를 만드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야 흙 한 바구니를 날아와 한 번 부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 완성을 보기 위해서는 한참을 일해야겠지요. 그러나 공자는 이것도 나아감이라고 단호히 이야기합니다. 단 한 번의 진전일지라도, 그 진전을 하찮게 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 문장에서 포인트가 되는 한자는 '하나 일(一)'과 '나 오(吾)'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단 한 끗 차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은 모두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대학 수업 중에 이 문장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을 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혼자 얼굴을 붉혔거든요. 흙 한 바구니 때문에 산을 완성하지 못하는 자, 이것은 마치 대놓고 저를 지적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끈기가 없는 편입니다.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이 되지 않을 때에는 노력조차 하지 않습니다. 막상 실행해 보고 조금이라도 힘들면 금방 포기합니다. 좋아 보이는 것은 내 능력과 분수에 맞지 않다고도 생각합니다. 이솝 우화에서 포도를 올려다보며 '저 포도는 실 거야.'라고 생각하는 여우처럼 말이지요.
"포기하고 싶다면 성공이 코앞이라는 뜻이다."
이는 밥 프록터의 말입니다. 언젠가 달리기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동료 직원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달리기를 할 때, 포기하고 싶어지면, '단 1분만이라도 더 뛰고 멈추자.'라고 생각했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달리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되어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조금씩 늘어났고 살도 점점 더 빠졌다고 합니다.
커널 샌더스가 1008번째 치킨 조리법을 판매하려다 실패했다고 좌절했다면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은 지금처럼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티븐 킹이 첫 소설 <캐리>를 출판사에서 29번째 거절당한 뒤 그만두었다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못했겠지요.
저는 이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힘든 것은 도망치고 도전은 망설이고 기회는 잡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전력을 다해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삶. 그래서일까요? 그 안에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내 안에는 이루지 못한 것들만 가득합니다.
요즘 저는 매일 다이어리를 정리합니다. 이루고 싶은 것이 많아서, 다이어리에는 독서, 운동, 글쓰기, 한문 공부 등등 오늘 해야 할 루틴만 일곱 가지나 적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대로 한 것은 두 가지도 되지 않습니다. 자괴감이 듭니다. 이대로 오늘 하루를 흘려보내도 내게 곧바로 큰 손해는 없습니다. 이대로 다이어리를 덮고 모르는 척할까 싶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다이어리에 크게 '일 미터만 더!'라고 적어봅니다. 단 일 미터, 단 일 분, 그렇게 단 한 번만 더 시도해 보자 다짐하면서요. 그리하면 성공을 향해 한 발짝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어제보다는 오늘, 루틴을 하나라도 더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공자 선생님을 통해 얻은 지혜, 실패의 가능성이 성공으로 돌아서게 하는 마법의 법칙은 바로 '플러스 1'입니다. 이 단 한 번의 노력과 단 한 번의 시도를 하찮게 여기지 않아야겠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진전도, 성공 직전의 포기도 모두 나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