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제대로 정의했을까?

논어 자로 13장

by whilelife

새해가 지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듯 한데, 벌써 한여름으로 다가섭니다.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며 아이들을 토닥이고, 아이들은 그 시간만큼 한뼘 더 자라겠지요.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나의 자녀들이 유년기의 아이들마냥 나를 따라주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카페가자!"

주말 어느 날, 호기롭게 딸에게 제안했습니다. 아빠와 아들이 나간 터라 딸과 둘만 남게 되니 아이와 함께 데이트를 하고 싶었습니다. 함께 예쁜 카페에 가서 시그니처 메뉴를 시킨 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즐겁게 수다를 떠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면, 또 웃으며 수다를 떨겠지요. 맛있는 음료와 간식에 서로의 마음은 더욱 달콤해지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후의 일은 내 상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나기기 싫어요."

딸의 첫마디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상상도 하지 못한 대답에 나는 당황했습니다. 딸이 사춘기 소녀라는 것을 여전히 나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내 로망을 여기서 단념할 수는 없었습니다.


첫번째는 회유책,

"얼른 대충 옷입고 나가자. 엄마가 예쁘고 맛있는 카페 검색해 놨어."

아이는 대답대신 소파에 벌러덩 누워버리고서는 두팔로 얼굴을 가립니다.


두번째는 다그침,

"엄마가 맛있는 것 사준다니까, 얼른 일어나."

십분을 기다렸지만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세번째는 선전포고,

"삼십분 후에 옷갈아입고 현관에서 보자. 그때도 준비가 안되어 있으면 화.낼.거.야."

나는 사뭇 목소리를 내리깔고 아이에게 통보한 뒤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름 최대한 화내지 않고 권.유. 중인 나 자신이 기특했습니다. 그리고 삼십 분 후, 거실로 나와보니 아이는 삼십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소파에 누워있습니다.


아, 두 눈에 불길이 치솟으며 일갈하는 한마디를 뱉고 싶었지만, 목구멍 너머로 꿀꺽 삼키며 인내했습니다. 내 기척에도 아이는 여전히 누워있습니다. 저는 조용히 가방을 챙겨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혼자서 카페에 앉아 명상이라도 해야 아이에게 화내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바람이 꽤 부는 날이었습니다. 아파트 화단에 심겨진 나무들이 가지를 뒤흔들며 바람에 맞서는 중이었습니다. 그 나무들 중에 유독 여리고 약해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소나무였습니다. 소나무를 바라보며 걸어가는데, 문득 소나무는 왜 소나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소나무는 소나무라는 이름이 싫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제멋대로 붙여준 이름이니까요. 소나무가 진정 바라고 원하는 이름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름!', '정의!'라는 말을 생각하다 보니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자로가 말했다.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기다려 정치를 하려 하시는데,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려하십니까?"

공자께서 말했다.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부터 시작하겠다!"


子路曰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자로왈 위군대자이위정, 자장혜선?

子曰 必也正名乎!

자왈 필야정명호!



'정명(正名)'이란 '이름을 바르게 하다'는 뜻입니다. 대화의 맥락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제한과 책임을 묻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제게 '정명(正名)'이란, 정체성에 대한 제대로 된 통찰을 요구하는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소나무가 원하는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람들에 의해 '소나무'라고 이름이 불리워질 때, 소나무는 만족할까요? 싫은 마음을 꾹 참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소나무 위로 딸의 얼굴이 겹쳐 떠오릅니다. 무엇이든지 내 말이면 '네!'를 외치던 나의 딸이 어느샌가 '아니오!'를 온몸으로 외칩니다. 이제는 엄마가 정의해준 자기 자신을 거부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나'가 되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돌이켜 보니, 나는 편협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제안을 거절한 딸이 나를 거부한 것이라고 여기며 혼자 화를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딸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일 뿐일 텐데요. 배달이 발달한 요즘같은 시대엔, 집에서도 얼마든지 카페 분위기를 내며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카페에 가서 홀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소나무와 딸아이를 번갈아 떠올렸습니다. 그러고보니, 딸과 나에 대한 '정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딸은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정의내려야하는 나이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딸의 성장에 맞추어 '엄마'라는 이름의 정의를 다시 한 번 내려야할 때였습니다.


시그니처 디저트를 하나 골라 포장했습니다. 딸아이에게 선물하며 편협한 엄마였음을 인정하고 물어보아야겠습니다. 딸아이가 진정 불리워지고 싶은 '이름'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해보고 딸 스스로 정의 내린 딸의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해주어야 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이것이 사춘기 소녀를 둔 '엄마'의 '정명(正名)'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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