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야(雍也) 19장
사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산다는 것에도 '진리'라는 것이 있을까요? 세 살 때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삶이 무엇인지 여전히 정답을 찾아 헤매는 지금의 나의 모습은, 어릴 때 갈길을 몰라 헤매던 어린 시절의 그 모습과 여전히 닮아 있습니다.
세 살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세월의 간격이 큰데도, 그 하 많은 세월 동안 뭐 하고, 여전히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합니다. 그 어린 시절, 나는 엄마와 항상 같이 있었지만 엄마가 항상 그리웠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바빴습니다. 그 시절의 엄마는 항상 내게 등을 돌린 채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내게 등을 돌린 채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합니다. 등을 돌리고 쭈그려 앉아 산더미처럼 쌓인 대가족의 옷을 맨손으로 비벼가며 빨고, 커다란 고무 대야 속에 들어가 이불을 발로 밟고 헹구었습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조카들까지 먹이고 재우는 일상, 엄마가 해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때의 엄마는 꽃다운 나이,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어린 20대였습니다. 대학을 다니며 혼자의 삶조차 감당하지 못했던 나의 20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엄마의 20대는 해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생(生)은 직(直)이니, 속이면서(罔) 사는 것(生)은 요행히 (죽음을) 면한 것이다.
子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 幸而免
인지생야직, 망지생야, 행이면
<옹야(雍也) 19장>
위의 구절에서 생(生)은 '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삶, 혹은 삶의 원리, 삶의 법칙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삶의 원리이자 법칙이 되는 직(直)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직(直)은 '곧다'는 의미입니다. 해설서를 보면 '정직'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정직이 곧 삶의 원칙 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의미의 '속일 망(罔)'이라는 글자는 그래서 죽음과 연결됩니다. 삶의 원칙을 배반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불러오는 것이지요. 속이는 일은,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소멸만을 향해가는 삶을 초래합니다.
문장의 '망(罔)'이라는 글자는, 저에게 엄마의 굽의 모습과 같아 보입니다. 어릴 때 보았던 엄마의 굽은 등은 가족의 뒤치다꺼리를 하던 등이었습니다. 20대에 꿈꿀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스스로 외면하고, 스스로 자신의 욕심을 제거하는 등이었습니다.
엄마는 일찍부터 그림으로 이름을 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틈만 나면 그림을 연습하느라 애쓰셨습니다. 그러나 매일의 삶에서 엄마의 꿈은 항상 뒷전이었습니다. 설거지만 하고, 빨래만 하고, 저녁밥만 차리고, 이렇게 가족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다 한 뒤에야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더욱더 움츠린 채 살아간 엄마의 등은 슬픔을 머금은 채 감정을 뱉어내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엄마가 엄마 스스로를 속인 삶이었습니다. 진실로 삶의 원칙인 '직(直)'과는 반대되는 것이었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자와 거지>라는 책을 읽고 친구들과 역할 놀이를 할 때, 저는 왕자가 되고 싶었지만 거지를 선택했습니다. 내 분수에 왕자는 맞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소망하는 것이 있어도 내 '분수'에 맞지 않다고 스스로 판단하고는 금방 포기해 버렸던 나의 삶은, 그대로 '망(罔)'의 삶이었습니다.
엄마의 삶과 나의 삶은 결이 다르고 모습이 전혀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잡초라고 생각하며 허리를 굽히고 등을 굽히며 좁은 틈 사이로 숨어 살아가려고만 했습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엔 이렇게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왕자가 되고 싶은 마음, 그러나 거지를 선택하는 마음.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 그러나 현실과 타협하며 과연 이룰 수 있을까 의심하는 마음. 전자(前者)는 '직(直)'이고, 후자(後者)는 '망(罔)'입니다.
그러나, 왜 인간만이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것일까요? 잡초는 스스로를 잡초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여러 예쁜 꽃들 사이에서도 햇빛을 향해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당당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잡초입니다. 잡초가 햇빛을 바라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무엇이 그리 욕심일까요? 그게 뭐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굴었을까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우선하지 못하는 삶, 나 자신을 작게 보고 주변에 나를 맞추기만 하려 했던 삶은 내가 나를 속이는 삶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속이는 삶은 결국 나를 죽이는 삶입니다.
지금까지는 갈팡질팡 했지만 이제는 헷갈리지 않을 것입니다. 두 갈래의 길에서 내가 잡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주고 있는 공자의 가르침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나 자신을 속이는 '망(罔)'의 길이 아닌, 어깨 펴고 당당히 살아가는 '직(直)'의 길을 걸으렵니다.
'직(直)'이라는 한자를 바라보며,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나를 돌아보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똑바로 서서 걸어가는 나의 엄마를 상상합니다.
굽은 어깨를 펴고(直) 살아가라고, 당당히(直) 살아가라고, 네가 바라는 것, 네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드러내며(直) 살아가라고, 누구에게나 떳떳한 삶(直)을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공자가 전해준 말을 오늘도 떡볶이 한 그릇과 함께 나누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