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웰컴 투 아메리카
-Federal Way ①

모든 곳의 어떤 것들

by Total Eclipse







"Welcome to America!"


뻔하고 형식적이어서 별 것 아닌 인사말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확 꽂혀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1년 이상 준비기간의 피로감을 풀어주는, 쉽고도 고마운 한 현지인의 초급 인사표현이었던 것입니다.


2년간의 미국 생활을 하고 돌아온 지 벌써 11년이 넘었습니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 여러 일들을 겪었고 아이들도 훌쩍 커 버렸습니다. 하긴 10년이 어딥니까. 예전보다 빨리 변해가는 세상임을 감안하면 강산이 두 번쯤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니까요.

제주에 살다 보니, 그리고 여행에 워낙 관심이 많다 보니 '관광'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땅이 넓어 관광자원이 무궁무진한 나라에서 말이죠. 한국의 생활을 일시 정지 상태로 두고 가족을 동반해 타지에서 살아본다는 게 그리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비용과 집 문제에 아이들 학교 문제, 회사 휴직 과정과 유학 절차에... 무엇보다 한 사람 빠져나가는 통에 고스란히 업무를 나눠가져야 할 사무실 선후배들에 대한 미안함도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어찌어찌 준비가 되었다 싶었는데 출국 2주 전쯤 차량 추돌사고가 나 왼쪽 손이 골절되는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항공화물로 큰 짐들은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자잘한 것들도 왜 그리 많이 필요한지요. 손이 불편하다 보니 그 거대하다는 '이민가방'을 혼자 건사하기가 여간 버거운 게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이 정리를 마치고 오기 전에 혼자 돌아다니며 집을 렌트하고 학교 입학절차도 마쳐야 했습니다. 타국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긴장감으로, 등에 멘 배낭과 바퀴가 무색한 이민가방은 사서 고생하는 가장의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의 시택공항(Seattle-Tacoma International Airport)에 내려 짐을 찾은 뒤 지인 찬스로 공항에 나와주신 두 분의 도움으로, 2년간 동네가 되어줄 페더럴웨이(Federal Way)의 시내 임시숙소에 짐을 풀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몸을 의탁할 곳에 당장 필요한 세면도구와 옷가지들을 대충 정리하고 나니 피로가 몰려오더군요. 어느새 해는 져서 어둑했고 동시에 문득 잊고 있었던 낯선 곳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해외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받으며 느끼는 그 나라 특유의 공기와도 같은 두근거림이었죠. 잊고 있었던 또 하나는 배고픔이었습니다. 근방의 지리라도 알아둘 겸 천천히 숙소를 나서 큰길 쪽으로 걸었습니다. 나름 혼자 낯선 곳에 떨어져 방황하는 건 이력이 났고 어색하지도 않았지만, 꽤 오래 '살아야'한다는 비장함 때문인지 그저 가볍게 둘러보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30분쯤 걸었을까요. 허기가 더 밀려왔고 이런 순간 이방인으로서 가장 만만한 밥집인 한 패스트푸드점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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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갓 도착해 예상외로 메뉴를 주문하기 까다로운 음식점이 패스트푸드점이라고 합니다. 지금이야 그저 세트메뉴 번호를 보고 "넘버 2!" 식으로 간단히 주문하면 되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지에서 처음 들어간 햄버거집에서 보는 메뉴의 조합은 왜 그리 많고 크기는 또 왜 그리 다양한지요. 그나마 익숙한 맥도널드나 버거킹 정도였다면 덜 헷갈렸을 텐데 '잭 인 더 박스'라는 곳은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상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깜짝 선물상자가 햄버거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첫 주문부터 어리바리하니 점원 눈치가 이상합니다. 제 발 저리듯 오늘 미국에 온 첫날이다 말을 건넸더니 진심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듯 눈을 마주치면서 'Welcome to America!" 하고 답해줍니다. 이 짧은 인사말 하나가 쌓였던 긴장과 피로를 그렇게나 듬뿍 덜어낼 줄은 몰랐습니다. 1993년 미국에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햄버거 패티를 먹고 무려 73명이 HUS, 즉 용혈성 요독 증후군에 걸려 4명이 사망해 '햄버거병'이란 새로운 병명의 진원지가 되었던 곳이 바로 잭 인 더 박스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섬찟했습니다만, 웰컴 투 아메리카를 건넨 핸섬한 점원만큼은 좋은 인상으로 계속 남아있습니다. 그나저나 본의 아니게 한 프랜차이즈 업체의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군요.


살면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크게 위안을 받거나 용기를 냈던 기억이 얼마나 있으신지요. 따뜻한 진심의 표현으로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반전을 준 적은 몇 번이나 있으십니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제 기억엔 말 한마디로 도움을 줬던 경우보다 받았던 경험이 더 많았던 것 같군요. 별다른 수고도 필요 없고 비용도 들지 않는 말 한마디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 한마디는 결국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공감하며 살아온 누군가의 깊이 있는 덕에서 배어 나오는 향기에 다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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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럴웨이, Fantherlake Elementary School 부근


시애틀 남쪽으로 삼, 사십여분 달리면 한인들이 밀집해 사는 도시, 페더럴웨이가 나옵니다. 도시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던 100여 년쯤 전 이곳에 띄엄띄엄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해 학군을 따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지구의 명칭이 떠오르지 않자 누군가 이곳을 지나는 연방 도로, 즉 'Federal Way'를 그대로 학군명으로 써넣었고 이것이 공식적인 마을 이름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하긴 많은 지구상의 마을 중 사연 없이 이름 지어진 마을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도로명이 곧 마을명이 된 사례 역시 제대로 찾아보면 꽤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이민이나 오랜 기간 유학을 떠나는 경우 한인들이 밀집한 지역을 기피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지만, 살아가다 보면 생각보다 더 동포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LA의 한인타운처럼 한국 도시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정도는 아니니, 아예 영어를 쓸 필요가 없는 곳이 아닌가 하는 걱정은 절대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습니다.


한 달여 지났을까요, 적당한 조건의 아담한 월세집도 구하고 교민이 운영하는 정비소에서, A/S가 가능한 승합차도 직접 구입했습니다. 인건비가 워낙 비쌌던 터라 배달은 언감생심이었고 생활에 필요한 중고물품이나 가구는 직접 실어 날라야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차는 그렇듯 크고 배기량이 어마어마했던 것입니다.

슬슬 정착의 자신감도 붙고 한국에서 가족들이 오기만을 기다릴 때, 첫 번째 위기가 닥쳤습니다. 갓 넘어온 이방인에게는 상당한 트라우마를 받을 법한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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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시내 중심 동맥인 320번 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길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데다 편도로 4차선이 이어지는 넓은 도로라 별생각 없이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그 별생각 없었던 것이 화근이었죠. 제 앞에는 미국 특유의 노란 스쿨버스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느린 것 같아 우리나라에서처럼 버스의 왼쪽 차선으로 이동해 버스를 추월했지요. 국내에서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었지만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차 한 대가 뒤에 따라붙었습니다. 경찰관은 영화에서 범죄차량을 유도하듯 저를 공터로 이끈 뒤 차에서 내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요?"


" (도로교통법) 위반입니다."


"왜요?"


"스쿨버스 추월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출국 전 인터넷 서핑을 통해, 미국의 '움직이는 신성불가침 구역'인 스쿨버스에 대해 사전에 숙지하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터였습니다. 앞서 달리는 스쿨버스가 버스 측면의 'STOP'사인을 펼치면 같은 차선은 물론이고 반대차선의 차들도 즉시 그 자리에 멈춰야 한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고, 대통령 전용차도 예외 없이 세운다는 위엄을 가지고 있는 절대우선의 차량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 당연히 추월이 불가함은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편도 1차선에서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멍청한 예상만 하고, 다차선의 넓은 도로에서는 스쿨버스라 해도 추월이 자유로울 거라 생각했던 탓입니다. 딱지를 받고 벌금만 내는 선이었다면 미국의 교통법규를 배울 수 있었던 수업료라고 치부할만했겠습니다만,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면허증 줘 봐요."


"......... 헉!"


아뿔싸! 국제 운전면허증을 집에서 갖고 나오지 않았던 겁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현지 면허증도 취득했지만 당시는 이름을 조회해도 신분이 밝혀지지 않았던 데다가, 그래서 더욱 지참하고 있어야 했던 국제 운전면허증조차 갖고 있지 않았으니... 경찰은 마치 아시아 갱단의 일원을 쳐다보듯 눈을 내리깔더니


" Ooh-Oh, You're in trouble."


라고 협박조로 선언을 했더랬습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문장입니다. 뭐 당연한 제 잘못이었습니다만, 분한 것은 이어지는 그의 말이었습니다.


"너희 동양인들은 꼭 이런 식이더라, 정신 좀 차려!"


미국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는 저의 말은 변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 억울하고 후회되는 것은, 인종을 기준으로 인격을 판단하는 그의 녹슨 바늘 같은 멘트에 별다른 항의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스스럼없이 피부색으로 차별을 하다니요. 위반 딱지와 더불어 모욕까지 덥석 받아버린 제 자신이 너무도 바보같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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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ation Park에서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페더럴웨이 시민들


2주쯤 뒤 페더럴웨이 법정에 섰습니다. 물론 범법자로서 말이죠. 벌금만 내고 끝날 정도의 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위안이 되는 것은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각종 법규를 위반한 미국인들과 저처럼 미국의 교통법규에 익숙지 못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자리한 한인들, 그리고 이런 일만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한인 변호사가 제 옆에 있었습니다. 변호사들도 각자 본인이 자신 있는 분야가 있다고 합니다만, 한인이 밀집한 미국 도시에서의 '교통위반 건(件) 전문 변호사'라... 썩 괜찮은 직업인 것 같았습니다. 절대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타국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모국어로 일처리를 도와주고 외국의 사법제도를 안내해주며 최대한 선처를 끌어내 준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있어야 할 분이 맞는 것이죠. 결국 운전면허증이 없는 게 아닌 '미(未) 소지' 일 뿐이고 미국에 온 지 불과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참작사유로 적당한 벌금만 부과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했을 미국 법정에 선 피고인의 신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제대로 신고식을 치른 셈이었죠.


수많은 사람과 만나며 인연을 만들어가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살아갑니다만 단편적인 인상으로 기억되는 사람들과 대화들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미국에서의 첫날 "Welcome to America!"라는 간단한 인사말을 선사하며 쌓였던 긴장과 피로를 덜어주었던 햄버거 가게의 점원이 큰 위로였다면 "You're in trouble."이라는 말과 함께 인종차별적 멘트를 서슴없이 날리던 그 경찰은, 언제까지고 기억에 남을 두렵고 강압적인 존재로 새겨져 버렸습니다. 비록 아찔한 경험이 타지에서의 적응을 한층 빠르게 해 줬을 수도 있었겠지만 오랜만에 피부색으로 인해 편견의 대상이 되었던, 관자놀이를 자극하는 불쾌함으로 남은 사건이 되었습니다.

확실한 학습효과였습니다. 이후 스쿨버스의 검은 가로줄이 있는 노란색은 저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 접근이나 추월금지'라는 표지판 그 자체나 다름 아니었습니다. 하긴 어릴 적 누구나 경험했을 교통안전 포스터 그리기 시간에도, 노란색과 검은색은 보색 대비 효과를 의도하기 위해서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조합이 아니었던가요.


문득 잊곤 합니다만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나 누군가의 질문에 응대하는 나의 순간적인 인상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평생의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기도 합니다. 살아가며 때로는 냉정한 대답도 필요하고 잘못된 자세를 일갈하는 경고를 던질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삶에 향기롭게 남을 따뜻한 진심의 말 한마디는 좌절에 빠지고 외로움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특유의 메아리가 되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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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오거나 여행을 온 새로운 공간에서는 혼란스러움이 자연스러움입니다. 심지어 그 혼란함은 긍정적인 긴장감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합니다.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거치는 과정이겠으나, 낯선 곳에서 잠시라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을의 지형지물을 파악해야 하고 숙소나 집까지의 동선을 곳곳의 장소에서 그려보아야 합니다. 적응을 하는 시기에 마주치는 모든 것들은 나름의 인상을 획득하고, 아직 이방인을 벗어나지 못한 자는 오감을 동원해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모든 장소와 사물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씩 마음속에 자리 잡을 때 낯설었던 공간은 나의 일부가 되어갑니다. 시간이 지나 그 일체감이 오롯이 자화(自化)되어 분리가 불가능하게 되면, 쌓인 만큼의 기억과 함께 익숙함이 독이 되어 다시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욕망이 샘솟습니다.

낯선 공간에서 익숙한 나만의 장소로 적응하는 과정 자체가 기쁨이고 삶입니다. 우리가 여행에 중독되는 까닭은,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낯선 공간이 며칠의 시간을 거쳐 적당할 만큼의 익숙한 장소로 변신하면서 기쁨이 정점이 될 때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요. 어느 한 공간에 완벽히 적응해서 타성이 자리잡기 전, 좋은 기억만 가지고 얼른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여행자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법정에 섰던 악몽조차도 낯선 곳에 대한 적응일 테니 분명 여행자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과정이었겠지요. 낯선 곳에서 마주칠 낯선 인연들과 함께 익숙함으로 향하는 여행을 떠나야겠습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이방인이 서서히 현지인으로 변해갈 때쯤 수많은 기억들을 가지고 다시 돌아와야겠다는 결심을 해 봅니다.


그렇다 해도 낯선 나라의 경찰을 다시 마주치긴 싫습니다.

각국의 교통법규를 다시 한번 샅샅이 훑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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