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가까이 이방인을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공간의 주소입니다. 콘도미니엄이라고 부르지만 월세를 내는 조그만 빌라 형태의 이층 집이었습니다. 매달 퍼스널 체크에 금액을 펜으로 적어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 지극히 원시적인 집세 납부 시스템 탓에 당시의 주소가 손끝에 고스란히 기억되어 있습니다.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쓸 수 없던 유학시절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피 같았던 돈을 적어 넣은 수표가 행여나 엉뚱한 곳으로 갈까 봐 또박또박 눌러썼던 주소이니만큼, 뇌 속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 깊숙이 각인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미국 생활 도중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막막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2008년 미국으로 들어갈 때 800원 후반 대였던 환율이 1년 후엔 무려 1700원대를 찍었으니, 모든 것들에 대해 두 배의 고통을 겪은 셈이었습니다. 이런 것도 운이라 한다면 정말 제대로 운이 비껴갔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환차손에 급히 한국에 도움을 요청해서 간신히 2년의 휴직기간을 채우긴 했습니다만 당시엔 공부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게 맞는 건가 하는 고민으로, 머릿속은 온통 먹구름뿐이었습니다.
후유증은 상당히 길었습니다. 아니 계속되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지금도 남들 하는 것 다 하려다 보면 빠듯하기 이를 데 없으니까 말이죠. 어쩌겠습니까. 어차피 경험해 본 객지의 삶이라면, 후회보다는 추억을 앞세우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중심잡기가 쉽지 않게 느껴지고 하루하루의 차별성이 희미해지는 날들이 이어지면, 간혹 몰입해서 살아가던 페더럴웨이에서의 날들을 떠올리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기억을 건져 올리고 다시 현실에서 힘을 얻어가곤 합니다. 그러니 날이 갈수록 유학비용은 상쇄되어 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암요, 두 배 오른 환율을 생각하면 그때의 기억은 무한의 배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2008년 페더럴웨이의 집에서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유학생활에서 가장 많은 것을 얻어가는 것은 어른이 아닙니다. 생소함에 어느새 적응하며 온 몸을 다해 새 생활을 받아들이는 아이들을 볼 때면, 진정한 유학의 당사자는 그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니까요. 놀라울 정도로 빨리 트이는 외국어로 언어의 장벽쯤은 가뿐히 뛰어넘습니다. 인종을 가리지 않고 글로벌한 인맥을 만들어내는 것은 또 어떻습니까. 색이 모여서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피부색과 언어를 초월해 하나가 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재고 또 재면서 만나고 유지되는 어른들의 흐릿한 관계들이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녀석들 역시 가장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던 건 많은 시간을 보냈던 학교와 유치원 생활이었을 겁니다. 어느 나라의 학교에 다니건 그 나이 때는 공부나 성적보다는 놀이와 친구가 우선이겠습니다만, 다인종으로 구성된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더 잊지 못할 기억을 안고 온 건 사실인 것 같더군요. 교육 시스템이 어떻고 하는 차원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국이란 나라를 추켜세울 이유도 없고 말이죠. 단지 초등학교 이하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아이들이 짊어지는 부담은 우리나라에 비해 확실히 적었고, 그래서 아이들이 그만큼 행복했던 건 부정할 수 없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아침에 두 꼬마 녀석들은 집 앞 스쿨버스 - 저에겐 공포의 상징이 되어 버린 - 가 오기만 줄 서서 기다리고, 학교가 끝나 집에 돌아오면 아쉬워 한숨을 쉬곤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 마냥 학부모까지 편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걸핏하면 부모를 오라고 해 봉사활동을 시키거나 힘든 점은 없는지 담임선생님과 만나게 합니다. 소통 문제로 그 모든 소환에는 제가 응했고, 덕분에 어머님들 사이 항상 뻔뻔한 청일점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느슨한 듯하나 촘촘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느낌이었죠. 하긴 아침에 TV를 켜면 워싱턴주 어떤 곳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들리는 총기 소지 합법 국가입니다. 아이들을 안전하고도 행복하게 키우기 위해서라면 학교와 부모의 집중 케어가 당연한 전제조건이 될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풀어줄 때엔 지나칠 정도로 학교와 부모가 하나가 됩니다. 핼러윈 같은 특별한 날엔 본업을 넘어 교장선생님까지 곰으로 변장을 하며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버리죠. 한바탕 떠들썩하게 놀 뿐입니다. 즐거움 뿐인 이런 행사에도 역시 학부모의 참석이 지극히 권장되는지라 자연스럽게 모든 아이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날의 기억이라면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것의 전형을 보여주시는 분이죠, 둘째의 유치원 졸업식에서 교장선생님이 무릎을 꿇고 꼬마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키가 크신 분이라 무릎을 굽혀도 시선이 맞진 않습니다만 아이들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또 다른 매력을 보았습니다. 실제건 영화에서건 상관없이 미국인들은 상사 앞에서나 친구의 아버지 앞에서나 건방지게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삐딱한 자세로 대화를 하는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유교의 영향력이 아직도 강력히 잔존하는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절대 권장되지 못할 태도겠지요. 장인 앞에서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미소를 짓고 있는 주인공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건 귓방망이 감이라는 판단과 함께 말입니다. 경험이 많아 당신을 존중은 하지만 우리는 똑같은 인격체일 뿐이고, 제스처나 자세의 자연스러움은 예의와는 별개라 주장하듯 그저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밴 그들의 습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두 손은 지극히 당연스러워 보입니다만 이 역시 금쪽같은 아이들을 모시고 있는 우리나라의 선생님들에게선 좀체 보기 힘든 자세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학부모들이 둘러싼 졸업식 아니겠습니까. 사진의 교장선생님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한다는 것일까요. 친히 잔디 위에 무릎을 꿇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꼬마 녀석들이니 눈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자세입니다. '나도 너희들의 소리를 이렇듯 가까이 들을 테니 너희들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내 말을 잘 듣고 이해했으면 한다. 나는 더없이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전으로 모실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물론 떠들면 혼도 낼 거다' 하는 시크함의 극치가, 무릎은 꿇었지만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두 손을 통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의 사회는 우리 소중한 아이들의 섬세한 감성이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선생님들로 하여금 '눈높이'를 맞추는 것을 넘어서 '올려다'볼 것을 강요하는 듯합니다. 연이어 이슈가 되고 있는 어린이집 원아 폭행사건들은 여기선 논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건 지극히 인륜에서 벗어난 범죄행위의 결과니까요. 교육현장과 가정의 기본적인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가정 하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끝없는 베풂의 대상으로 내 아이를 성장시키려는 왜곡된 본능이 모이고 더해져 누구도 의도치 않은 비뚤어진 교육현장을 만드는 게 문제라는 것이죠. 존중과 훈육이 적절히 조화된 교육이 더 당당하고 이타적인 우리의 싹들을 키우는 바른 길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각국의 절대 비교란 것이 무의미하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오해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떠올리는 미국 성인 남성의 이미지를 보면 허름한 개인 차고에서 능숙한 정비공 뺨치듯 자기의 차를 수리하는 모습, 혹은 집 마당에 작은 창고를 만들기 위해 기다란 목재를 이어 붙이고 페인트칠을 하는 모습 등이 있을 겁니다. 직장에서 에너지의 절대 비중을 소진하는 한국의 성인들에게는 그저 억울하면서도 부러운 이미지일 뿐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많은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심지어는 휴일의 대부분을 무언가를 뚝딱거리지 않으면 할 일이 없을 것처럼 즐깁니다.
이쯤에서 잠시 생각을 해 봅니다. '도대체 무슨 차이지?', 의외로 단순한 답은 미국에 온 지 몇 달 안되어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거긴 그렇게 살아야 돈이 덜 든다는 말을 듣고, 가구는 무조건 이케아(IKEA)에서 조립품을 구매했습니다. 대부분을 중고로 산 밴 뒷자리에 싣고 다녔으니 배달비용도 들어가지 않아 만족스러웠습니다만, 부가세가 면제되는 마트에서 산 소파가 문제였습니다. 밴의 공간에 들어가지도 않을뿐더러 혼자 들기엔 역부족이었던 거죠. 눈물을 머금고 불과 차로 5분 거리인 집까지 배달을 시켰습니다. 잠시 후 소파가 도착해 적당한 위치에 자리 잡힌 뒤 계산을 하는데... 이런, 120불의 배달비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10년도 더 전의 일이니 요즘은 얼마나 더 올랐을까요? '피꺼솟'이란 표현이 딱이었습니다. 아무리 무겁고 힘들어도 친구들을 동원하건 알아서 해결하라. 막막해도 차가 이상하면 너 스스로 고쳐라, 정비소 가서 고치면 중고차 한 대 가격이다, 그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나라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인건비를 당연히 여기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무엇이라도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 비해 유달리 부지런한 유전자를 가진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병원도 그렇습니다. 미국은 공적 의료보험제도가 한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열악하지요. 프라이빗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습니다. 딱 한번 지독한 감기몸살로 병원을 찾은 적이 있는데 의사 얼굴만 봐도 100달러였습니다. 진찰 후 결론은 "감기네요" 그 한마디였죠. 주변의 어떤 학생은 운동을 하다가 팔이 부러졌는데 완쾌할 때까지 4천만 원이 들었다고 하니, 한마디로 '다치면 안 되는' 나라였습니다. 이쯤 되면 태생적 능력으로 보였던 스스로 고치기, 알아서 잘하기의 습관도 사회의 열악한 부분에 대한 반작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요. 물론 무지막지한 병원비로 인해 평소에 알아서 건강을 챙기는 일이 생활화되었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겠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한겨울에도 반바지에 샌들 차림입니다. 그렇게 살았으니 춥다고 감기가 걸릴 턱이 있을 리 없습니다. 눈보라가 치는 날조차 후드 티에 반바지를 입는 사람들이니 어찌 신기하지 않을 수 있을는지요. 그들의 살 안에는 지방이 훨씬 많이 들어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무슨 옷감이라도 덧대어져 있는 건지요.
우리가 월등히 낫다고 여겨진 것은 의외로 일상생활에서의 환경과 관련된 이슈였습니다. 플라스틱의 해로움이 여기저기서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사용을 자제하자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만 적어도 10년 전 미국 마트에서는 아무도 실감하지 못하는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겠지요? 그래야만 합니다. 마트 계산대의 직원들은, 지금의 우리나라 손님이라면 10리터 쓰레기봉투 2장이면 담을 만한 양의 물품들을 계산하며 커다란 비닐봉지 15장은 족히 뜯어주곤 했습니다. 먹을거리 장을 한번 보고 오면 비닐봉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니 저 역시 아무 의식이 없었던 셈이죠. 이유는 단순합니다. 풍족했으니까요. 나중에 닥칠 해로움을 모르고 줄담배를 피워대고, 콜레스테롤이 가득한 패스트푸드만 줄곧 먹어대는 것과 뭐가 다를 게 있을까요. 지구의 성인병을 유발하는 행위를 누구 하나 막는 사람도 없이 아낌없이 주고받으며 모두가 동참하고 만 것입니다.
이상한 불균형입니다. 뭐든 스스로 알아서 고치고 만들어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고 철저한 건강관리로 열악한 사회 시스템을 보완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편으로 종국엔 해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지금 편하고 쓰기에 풍족하다는 이유로 별 비판의식 없이 지구의 오염에 동참하고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한 국가가 사회를 운영하는 시스템과 정책에 따라 국민성마저 결정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사회는 줄곧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문득 뛰어든 제삼자의 입장이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특징도 있겠지만 고국의 문화가 온몸 가득 체득된 상태에서의 판단이기도 하니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에서는 편견도 적지 않게 섞여있을 것도 같습니다. 냉철하고 분석적인 자세가 갖춰진 외부인이라면,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타인의 것들과 이제는 버려도 좋을 나 자신의 것들의 구분이 명확해집니다. 받아들일 것들과 버려야 할 것들이 정리가 되어 실제의 삶에 반영되는 순간, 낯선 공간에 떨어진 이방인의 장점은 극대화되는 것이겠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겪어 온 길을 돌아보면, 우리는 무엇을 내세울 수 있고 어떤 것들을 시급히 청산해야 할지 가려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백이면 백 개의 입들이 모여 정확하고 날카로운 분석을 해내곤 하지요. 동네 선술집에만 가더라도 한국사회가 바르게 나아갈 길에 대해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드높이는 무림의 고수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과 치부를 냉철하게 포착하는 일에는 늘 뛰어났지만 그 포착이 실제 사회의 개선으로 이어진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외부인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자랑스러운 것은 계속해서 고양해 나가는 동시에 지금 당장 자세를 바꿔 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이 불현듯 떠오를 수도 있는 일입니다. 외부로 나가 시야가 넓어지는 국민이 많아진다 해도 그 넓어진 시야가 국가의 경쟁력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저 자원의 유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한 국민의 습관을 만드는 것은 정책이고, 정책은 곧 국가의 형식입니다. 그 형식을 만들고 바꿀 수 있는 주체는 다시 한 사람의 국민입니다.
외국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별 생각을 다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자그마한 벽난로에 걸어둔 양말 속에 내일 아침 산타할아버지는 어떤 선물을 넣어두셨을지 싱긋 웃으며 잠자리에 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선합니다. 그때는 산타할아버지도 존재했고, 도깨비 할아버지도 엄연히 살아계셨더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