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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Aug 01. 2022

Chapter1 오멍가멍
-벵듸엔 미궁이 없다

구좌읍 평대리







  장마철에 흔치 않은 반짝이는 날씨가 섬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는 하루, 여행의 콘셉트를 바꿔보기에 적당한 날이다. 중구난방의 탐색이 아니라, 한 마을만 둘러보면서 제대로 파헤쳐보는 ‘집중 탐구’에 돌입하기로 했다. 그곳은 특정한 동(洞)이 될 수도 있고 하나의 리(里)가 될 수도 있겠다. 코스 요리보다 오직 하나의 메뉴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찾는 것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산해진미가 놓여 있진 않겠으나 ‘전복죽’ 하나만은 기가 막히게 차려내는 소문난 맛집을 찾는 셈이니, 되레 심에 박힌 제주의 진짜 모습을 체득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하나의 마을 안에서만 움직인다면 동선의 효율 따위는 고려할 필요도 없다. 걷기의 평화로움을 느끼며 특정한 지역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겠고, 길거리 인터뷰를 통해 꼭꼭 숨어 있던 로컬 맛집을 알아낼 수 있는 건 보너스나 다름없다.     

구좌읍 평대리     


집중 탐구의 목적지는 제주 동북쪽 ‘구좌읍 평대리’. 수없이 스쳐 지나간 공간이었을 테지만 그곳이 평대리였는지 신경 썼을 턱이 없다. 이젠 마을 곳곳이 간직하고 있는 영광을 찾아주어야겠다는 사명감이 명치에서부터 치고 올라온다. 제주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스러울 뿐이다.

제주 동쪽 구좌읍에 있는 평대리(坪岱里). 제주어로 ‘평평한 들판’을 뜻하는 ‘벵듸’라는 말에서 비롯된 지명이니, 마을의 경사가 비교적 완만할 것임을 직감할 수 있다. 벵듸라는 말은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숨은 물벵듸(물이 고인 넓은 평지)’에도, 심지어 동네의 식당 이름에도 붙어 있으니 속 깊은 제주 여행을 위해선 반드시 메모해둬야 할 가치가 있는 단어가 아닐까. 이왕 벵듸를 알게 되었으니 한 걸음만 더 나아가보자. 제주의 지명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말로 ‘드르’가 있다. ‘너른 들판’을 가리키는 제주어로, 벵듸와는 큰 어감의 차이가 있다. ‘난드르’, ‘알뜨르’ 등으로 익숙한 드르는 그나마 쓸모 있는 경작지를 뜻하는 데 반해, 벵듸는 척박하고 거친 땅을 표현할 때 쓰였다고 한다. 따라서 구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이 벵듸 널찍하고 좋네요.”라고 아는 체했다가는 ‘드르’ 주인에게 눈총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겠다. 겉보기엔 똑같이 평평하다 해도, 화산재로 덮여 서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척박한 제주 동쪽 땅엔 ‘드르’보다 ‘벵듸’란 지명이 많을 수밖에. 척박한 벵듸라도 물 빠짐만 좋다면 고맙게도 잘 자라주는 당근을 재배 작목으로 결정했던 것은 평대리 주민들의 지혜였다. 지금도 평대리를 포함한 구좌읍이 전국 당근 생산량의 3분의 2를 차지한다니, 이 근처에 당근케이크 맛집이 많다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할 뿐이다.

한라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지형이니, 평탄하다고는 하지만 바다를 향해서는 분명한 내리막길이다. 중산간에서 시작해 바닷가까지 길게 내달리는 평대리. 먼저 마을 깊숙한 곳부터 시작해보자. 평대리의 중산간에서는 미로로 유명한 관광지를 찾았다. 측백나무와 동백나무, 그리고 돌담으로 만들어놓은 미로가 각각 도전자들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곳이다.       

메이즈랜드의 측백나무 미로와 돌담 미로     


비교적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측백나무 미로를 지나니 만만찮은 난이도 중상급의 돌담 미로가 등장하고, 예정된 헤맴이 시작된다. 누군가 미로의 벽에 손을 짚고 계속 이동하면 쉽게 출구로 향할 수 있다고 한 말이 기억났지만, 번번이 막다른 길에 가로막힐 뿐 부질없었다. 땀이 맺히기 시작하며 초조해진다. 빡빡한 여행 일정이라면 미로를 체험하는 코스는 빼는 게 나을 듯싶다. 길치가 포함된 일행이라면 남은 여정이 엉망이 될 테니 말이다. 죽으란 법은 없다. 인내심이 바닥날 무렵, 출구로 이어지는 통로를 찾아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정의 차질 여부를 떠나서 미로는 여름이나 겨울보다 마땅히 봄이나 가을에 가야 할 것임을 명심하자. 덥고 추울 때의 헤맴은 답답함과 고통이 몇 배는 될 공산이 크다.

미로의 출구와 이어지는 건물로 들어가려는 순간, 노출 콘크리트 벽에 시선이 모아진다. 미로를 헤매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그 괴물이 거짓말처럼 등장한 것이 아닌가.

테세우스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미노타우로스, 메이즈랜드 건물의 벽화

   

크레타의 미노스 왕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와 사랑에 빠져버린 그의 부인, 왕비에 대한 적개심으로 둘 사이에 낳은 자식인 미노타우로스를 최고의 발명가이자 건축가인 다이달로스가 설계한 미궁에 넣어 살게 한다. 왕은 적국인 아테네로 하여금 전사와 처녀 각각 일곱 명씩을 공물로 바칠 것을 요구해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삼게 하는데, 바람난 부인에 대한 복수와 동시에 적국에는 공포심을 심어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계속되는 공물 요구에 분노를 참지 못한 아테네 왕의 아들 테세우스가 미궁으로 자진해 들어가 결국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는 영웅담으로 이어지게 되지만, 사랑은 배신을 동반하는 법. 근육질의 테세우스에 홀딱 반한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그에게 실 뭉치를 건네줘 미궁 속에서 실을 풀면서 나아가도록 탈출에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아, 사랑의 힘이란. 이를 알아차린 크레타 왕은 분노로 가득차 미궁을 설계한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스스로 만든 작품 속에 가두어 버리지만, 다이달로스는 그의 특기를 살려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든 뒤 아들과 함께 아예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 뒤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다이달로스가 자신이 설계한 미궁에서 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굳이 날개를 만들었냐는 것이다. 미노타우로스도 없으니 충분히 탈출이 가능하지 않았을지. 나갈 수는 있지만 골치 아프게 길을 찾느니 그냥 날아버리자 했던 것인지, 그게 아니면 크레타 왕의 주문만 받고 설계는 다른 업자에게 하청을 주었던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미노타우로스가 갇혀 있던 미노스(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     


구좌읍 평대리에서 그리스까지 공간을 확장했지만 한 가지는 명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미궁(迷宮)이란 곧 미혹하는 공간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텐데, 이 ‘미궁(Labyrinth)’은 ‘미로(Maze)’와는—특히 거기에 갇힌 사람의 입장에선—천지 차이가 나는 개념이다. 누가 처음 정의를 내렸는지 모르지만 미로는 선택할 곳, 막힌 곳이 많아 극단적일 경우 평생 그 안에 갇힐 수도 있는 곳인 반면, 미궁은 다소 경로가 복잡할 뿐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하나로 연결돼 있어, 시간만 허락한다면 빠져나오는데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미로는 평대리의 메이즈랜드 같은 곳이겠고, 미궁은 두려움을 참고 쭉 나아가기만 하면 출구로 나올 수 있는 ‘귀신의 집’인 셈이다. 우리는 흔히 답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러울 때 ‘미궁에 빠졌다’라고 표현하지만, 나 있는 길만 따라 걸으면 되는 것이 미궁이니 적절하지 않은 비유인 것이다. 그러니 앞이 안 보여 정말 막막할 때는 미궁보다는 ‘미로’에 빠졌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리아드네는 미노스 궁전의 미궁에서 굳이 실 뭉치를 테세우스에게 줄 필요가 없었다. 그저 길만 따라가면 출구가 나왔을 테니.

한 번 더 생각하니 미궁이 미로보다 훨씬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도 있음직하다. 미노타우로스, 혹은 영화 <메이즈 러너>에 나오는 괴물들이 그 안에 숨어 있다면, ‘미로’에선 그것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미궁’에서는 길이 하나뿐이라 무조건 마주쳐서 싸워야 할 테니 말이다. 귀신의 집이 미궁이 아닌 미로 형태라면 도시락 싸들고 말려야겠다. 가면을 쓰고 고생하는 알바생들의 노력이 헛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    

미로(픽사베이 이미지)     

    

미궁(픽사베이 이미지)    

 

전통의 관광지이자 힐링의 장소인 비자림으로 향한다. 그렇다, 어릴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걸었던 비자림은 이곳, 평대리에 있었다. 숲의 청량함은 언제나 그리운 법. 비자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순환시킨다. 잎이 ‘아닐 비(非)’자처럼 생겼다 해서 비자나무라고 부른다는데, 정작 나무의 한자 이름은 非子가 아니라 ‘榧子’다. ‘아닐 비 모양의 잎이 붙어 있는 나무’를 뜻하는 새로운 한자로 ‘비자나무 비(榧)’를 만든 건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 비자나무는 최고의 바둑판 소재로 쓰이는 등 가공용으로 쓰임새가 많았을뿐더러 열매는 한약재로 살균과 노폐물 배출에 탁월한 효능이 있어 무차별 벌목이 이루어졌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젠 천연기념물로까지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뭐든지 쓸 때 귀한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하물며 그것이 나무라면 말해 무엇하랴.           

비자나무가 뒤덮인 숲길      


양치식물로 가득한 깊은 숲속을 보니 공룡이라도 나올 듯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그렇다고 해서 ‘브론토사우루스’ 같은 거대한 종은 어울리지 않는다. 비자림을 미궁으로 만든다면, 쥬라기 공원의 ‘밸로시랩터’에게 미노타우로스 역할을 맡기는 게 제격일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와, 소름이 돋는다.    

평대리 해수욕장

     

평대리의 바다 쪽 끝자락으로 향한다. 십여 명 되는 이른 피서객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매년 여름 피서의 절정기에도 사람이 많지 않아 쾌적한 곳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소규모 해수욕장들에도 인파가 꽤 몰린다고 한다. ‘대규모’ 피서지에 지친 사람들이 점점 더 작고 깨끗한 곳을 찾기 때문이겠다. 순박한 소녀와도 같은 평대리 해수욕장이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하기를 굳이 바라고 싶지는 않다.

미로에 갇힌 느낌은 곧 현실이 된다. 수수한 글을 쓰리라 다짐했는데 돌아보면 몇 달 묵은 기름이 활자마다 끼어 있는 듯하고, 부드럽게 이었다고 여겼던 지난 글에서는 문장의 기괴한 관절들이 듣기 싫은 마찰음을 내고 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만으론 용서가 되지 않는 일들이 세상엔 너무도 많다. 

세상을 위해 기여할 영혼의 작용이 글을 쓰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는 작가가 되어야 할 일이다. 세상을 비출 나만의 무엇은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지 않겠는가. 웅크리고만 있는 것은 철퇴를 맞아 마땅한 침잠인 것이다. 글을 쓰며 맞닥뜨리는 한계들은 미노타우로스와의 충돌 그 자체. 아리아드네의 도움은 받지 않으려 한다.     

평대리의 넓은 아량에서 위로를 받고

제주의 숲과 바다에서 기운을 받아야겠다.

그리고 한 글자씩, 한 문장씩 

미혹함 없이 자박자박 나아가야겠다.

바람이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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