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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May 23. 2024

2 vs 2 vs 2

-동해안 석호






  이놈의 발이 이상한 건지, 탄력성이 떨어지는 것들만 골라 사는 기가 막힌 재주가 있는 건지. 

 여름이란 녀석의 낌새가 느껴지면 먼저 발목양말부터 꺼내 신는다. 발목의 휑함에서 약간의 서늘함과 청량감을 동시에 만끽하는 것도 잠시, 시위가 화살을 놓듯 발목 경계에 있는 밴드 부분이 툭 튕겨나가 뒤꿈치 아래 발바닥 중간쯤에서 돌돌 말린다. 짜증 난다, 그 느낌.  발 버전의 하의실종이자 발바닥을 뭉근히 압박하는 벌칙과도 같다. 매년 구멍이 나 버리는 양말이 두어 켤레가 생기는 바람에 그만큼의 여름용 발목양말을 사게 되는데, 그래서 양말쇼핑치고는 과하게 굳건한 각오를 가지고 마트에 가는 것이다. '절대 느슨한 밴드의 양말은 사지 않겠어!' 두 눈 부릅뜨고 이 양말 저 양말 뒤집었다 폈다 난리다. 점원이 봤으면 나를 성격파탄자, 혹은 정도가 지나친 깍쟁이로 여겼을 게 분명하다.    

 세 계절을 보내고 다시 서랍 속에서 탄력이 괜찮아 보이는 발목양말을 골랐다. 휴일이고 흐리다. 흐리지만 '맑게' 흐린 날이다. 스스로 맘에 들어하는 표현이다. '맑게 흐린 날'. 공기에 이물질이 섞인 듯 뿌옇게 시야가 흐린, 그런 탁하게 흐린 날이 아니다. 구름이 낮게 깔렸지만 시야가 또렷한 날. 맑은 날보다 더 상쾌한 하루. 집 앞 산의 초록은 태양 가득한 날보다 더 초록색이다. 차분하게 톤 다운된 배경 덕에 평소 포착하기 힘들었던 시내 쪽 건물들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맑게 흐린 날은 시력이 좋아지는 날이다. 그래서 북으로 간다. 가장 위쪽부터 훑고 내려올 작정이다. 오늘 고른 양말도 다행히 착붙이다.   


 강원도 동쪽은 고성군에서 삼척시까지 내림차순이다. 해안선의 길이가 무려 200km가 넘는다. 통일이 되어 잘린 강원도가 봉합된다면? 300km가 넘는다. 남북이 길쭉한 한반도의 매력을 시전할 초유의 바닷길. 철조망을 뚫고 나아가고픈 욕망 절실하지만 어쩔 것인가. 북한과 공유하고 있는 남쪽 강원도의 북극성, 고성군으로 철조망 대신 초여름 공기를 뚫고 달려간다. 

 강원도 내륙 쪽의 호수는 거의 인공호수라고 보면 된다. 소양댐으로 생긴 소양호, 횡성댐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진 횡성호, 1944년 화천댐이 건설되며 생긴 파로호가 다 그렇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호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동해안에 바짝 붙어 점점이 고여 있는 호수들은 짐짓 낯선 존재로 다가온다. 저 높이 하늘에서 바라보면 남북의 해안선을 따라 조그맣고 파란 보석이 띄엄띄엄 박혀있는 모습일 듯하다. 한때 바다였던 곳이 모래 퇴적 등으로 가로막혀 형성된 호수가 석호(潟湖)니까 바닷가에 있어야 정체성이 입증된다. 강원 최북단 고성에서 강원 동해안의 중부라 할 수 있는 강릉 해안까지의 가상의 선은 '석호 벨트'로 불러도 좋겠다. 

 고성의 화진포에 도착했다. 맑게 흐리지만, 와우! 바람이 도를 넘었다. 계절을 냉철하게 깍둑썰기한다면 아직은 봄의 영역이다. 양간지풍*의 기세를 얕봐선 안될 시기다. 왁스는 괜히 발랐고, 호수에는 파도가 일렁였다.

                                고성 화진포


최북단에 있는 석호, 화진포는 둘레가 무려 16km로 동해안 석호 중 가장 큰 규모다. 호수 주위를 도는 건 자동차와 간간이 보이는 자전거. 산책할 요량으로 차에서 내렸다가도 광활한 호수의 압박으로 이내 걷기를 포기하게 될 공산이 크다. 더구나 오늘같이 광풍이 몰아치는 날엔, 아서라! 정신을 고요하게 해 주어야 할 산책길이 심신이 피폐해지고 넋이 나갈 고행길이 되어버린다. 규모의 경제 대신 규모의 경치에 감탄하며 고행이 되기 직전에 산책을 마친다. 바람을 원망해 보지만, 어찌 보면 화진포급 덩치는 돼야 태풍급 강풍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겠다 싶어 이 호수가 든든해지기도 한다.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좌) 화진포의 성에 올라 바라본 화진포(호수)와 화진포 해수욕장 (우) 화진포 이승만 별장에서 바라본 화진포


 화진포 관광의 큰 매력은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38선에서 한참 북쪽인 화진포는 한국전쟁 이전 북한의 영토였다. 경관 점수가 있다면 거의 만점에 가까울 해안의 언덕에 김일성이 별장을 마련해 두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화진포의 성에서 내려다보면 호수의 정체가 숨김없이 드러난다. 중간에 놓인 해빈이 해수와 담수를 명확하게 가르고 있다. 화진포는 묻지도 따지지도 못할 석호, 그 자체다. 물론 석호의 물이 그렇듯 화진포의 물도 어느 정도 짤 것이다. 땅 속으로라도 바닷물이 들고 날 테니까. 맛보지는 못했다. 물가에 다가갔다가는 충분히 빠질 법한 바람이었으니까. 

 이상하리만치 화진포는 국가 원수급이 아니면 상대를 하지 않는 듯하다. 김일성 별장에서 내려가 오른쪽 송림으로 들어서면 이기붕 전 부통령 별장이, 차를 타고 나가 오른쪽 호수 다리를 건너면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이 있다. 이승만 별장에서 보는 화진포의 심상은 김일성 별장에서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내륙 쪽으로 꺾여 들어온 호수 표면의 윤슬은 헛헛하면서도 나이브하다. 비교 감상이 가능하니, 별장 투어로도 손색없는 화진포 코스다. 고성은 북으로 갈수록 고성만의 내재된 무엇이 드러난다. 더 이상은 전진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거침없는 경치에 배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이 아니어도, 수령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고성군에 오신다면 갈 수 있는 한계까지 올라오세요.  

고성 송지호


 둘레가 6.5km인 송지호는 화진포에서 남쪽으로 20여분 달려가면 도착한다. 호수의 위치가 호랑이 척추인 7번 국도변인 까닭에 주차를 하고 나면 바로 호수를 마주할 수 있다. 거대한 화진포에 비하면 아담하다고 해야겠지만 직접 마주하는 송지호의 탁트임은 속이 다 시원하다. 정말 아담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화진포가 너무 큰 탓이다. 송지호 역시 화진포와 마찬가지로 도로 건너편엔 해수욕장이 있어(물론 송지호 해수욕장이다.) 석호의 충실한 구조를 드러낸다. 송지호의 매력은 호젓하게 조성된 둘레길이다. 소나무가 좌우로 포진하고 있어 호위를 받는 기분이다. 호수 한 바퀴를 도는데 도보로 2시간이 걸린다. 진정 아담하지 않은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송지호 둘레길을 걷다 보면 초반에는 돋아있는 우측의 국도가 신경 쓰인다. 정확히 말하면 국도를 내달리는 차들의 소리가 거슬린다. 국도에서 몇 미터 아래로 움푹 꺼져 있는 산책길이라 차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초반 코스만 벗어나면 해결될 문제다. 둘레길 중반을 막 넘으면 양근 함 씨의 600년 집성촌, 고성 왕곡마을과도 길이 연결된다. 영화 <동주>의 촬영지인 이 평화로운 마을도 거닐어보자. 

속초 영랑호


 다시 남으로! 이번엔 속초다. 남에서 북과 북에서 남은 검증 불가능한 이동의 체감 격차가 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북반구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 북극은 위고 남극은 아래다. 남에서 북으로의 이동은 건물의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고, 그래서 무릎의 힘에 기대든, 엘리베이터라는 기계의 힘을 빌리든, 적지 않은 에너지가 필요한 역동적 과정이다. 괜스레 가속을 해야 할 것만 같다. 반대로 북에서 남으로 갈 때는 힘을 빼도 내리막길을 내려가듯 미끄러지는 느낌이다. 도로의 높이가 비슷하다면 연료 소모량에도 차이가 없을 텐데 이상하리만치 차가 잘 나간다.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는 거니까 미끄럼틀을 탄다고 해야 하나.    

 물론 헛소리다. 둥근 지구에서 위아래가 어디 있을까. 북반구 사람들의 자가해석일 뿐이다. 다른 변명을 해 보자. 열대의 느슨함이 가까워지며 긴장마저 풀어지는 방향이 우리에게는 남쪽이다. 휴양과 안식을 위해 나아가는 방향이 왜 편하지 않을까. 거꾸로 혹한과 불모의 땅으로 가는 북행은 충분히 불안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 국민에게 북은 허리가 동강 난 치명적인 상처를 목격하게 되는 한스러운 방위이다.   


 이름마저 영롱한 영랑호의 모습은 봄의 사진으로 대신한다. 속초시민들에게 영랑호수의 산책은 벚꽃길과 함께 하며 그림이 된다. 영랑호 주위의 자연환경은 다채롭다. 유럽의 공원과도 같은 주택가 쪽 산책길과 속초 8경 중 하나인 범바위의 자태, 부교에 깔린 데크로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는 영랑호수윗길까지. 신라시대에 영랑, 술랑, 안상, 나무랑 네 명의 화랑이 금강산에서 무술을 수련하고 경주의 무술대회장으로 향했는데, 감수성 갑이었던 영랑이 이곳의 풍취에 반해 대회참가를 포기하고 눌러앉았다고 한다. 하는 짓이 나랑 판박이였구만. 아! 죄송합니다, 화랑님. 전 무얼 꾸준히 수련한 적도 없네요. 아무튼, 그래서 이 석호의 이름이 '영랑호'가 되었다는 이야기.  

                                영랑호수윗길


 둘레 7.8km의 낭만적인 영랑호수를 가로지로는 부교인 '영랑호수윗길'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한다. 호수 위를 걸어가는 기분은 썩 괜찮긴 하다. 납작한 돌이 되어 물수제비 띄워지는 경쾌함. 2021년에 설치된 이 부교는 놀랍지도 않게 환경피해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그중 대표적이었던 사례가 바로 '반 반', '하프 앤 하프' 현상이다. 피자 이야기는 아니고. 윗길 조성 후 매년 겨울이 되면 다리를 기준으로 동쪽, 즉 바닷 쪽의 물은 전혀 얼지 않는데 반해, 산 쪽인 서쪽 호수는 꽁꽁 결빙이 되어 버린다. 심지어 서쪽 부교 하단에 얼음이 옮겨 붙어 다리가 기울어질 정도였으니, 누가 봐도 이런 이상현상의 주범으로 영랑호수윗길을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물체에 열을 가하면 그 안의 분자들은 미친 듯 춤을 추며 부딪히고 튕겨나간다. 격렬한 춤사위와 함께 손바닥으로 상대를 거칠게 밀어내곤 하는 하드코어 한 댄스배틀이다. Vice versa! 분자를 휘저어 운동을 촉진하면 열이 발생한다. 마이크로파로 음식물이나 물속 분자에 진동을 일으켜 열을 순간적으로 내게 하는 것이 전자레인지와 인덕션의 작동원리다. 겨울에 수면이 어는 것도 분자의 운동변화 때문이다. 다른 계절에는 격렬하게 충돌하며 서로 멀리 벗어났던 물 분자들이 온도가 내려가면서 성격이 차분해진다. 서로 밀어내는 대신에 모두가 손에 손 잡고 육각형 고리를 만든다. 육각형 고리들의 집합체는 우리가 얼음이라고 하는 것의 정체다. 영랑호가 좀체 얼지 않았던 까닭은 한겨울에도 활발했던 물 분자들의 흐름 때문이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수온이 내려가고, 수면의 분자들은 고리를 만들 정도는 아니더라도 움직임이 둔해진다. 사람도 물 분자도 둔해지면 무거워지는 법. 표면의 물 분자들은 아래로 가라앉게 되고, 그 힘으로 호수 바닥이 휘저어지고 뒤집어진다. 심층에서 소용돌이치는 물의 흐름으로 아래에 있던 물은 다시 수면 쪽으로 상승한다. 물리적인 순환에는 산소와 영양소의 교환이 동반되며, 호수는 건강해지고 물 분자는 육각형 고리를 형성할 틈이 생기기 않는다. 즉 호수는 얼지 않는다. 그런데도 특정 시기 이후 영랑호의 절반이 얼었다면, 그건 윗길의 서쪽 호수에서 물 분자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수면의 물 분자들이 가라앉으려 해도 그 아래의 분자들이 철벽을 쳤다는 것. 부교가 호수 동서의 흐름을 차단해 그중 한쪽을 지나치게 차분하게 만들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쉽지 않다. 호수를 날아가는 듯한 짜릿함도 소중하지만 호수를 하프 앤 하프 아이스 피자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속초시는 영랑호수윗길이 장기적으로 볼 때 호수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 결과를 받아들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든 영랑호수윗길은 다시 많은 철거비용을 들여 사라지게 될 운명에 놓였다.  

     

속초 청초호


 속초의 두 번째 석호, 청초호는 가볍게 붓터치만 한다. 동해안에 들어선 석호 중 주민들과의 사교성이 가장 뛰어난 녀석이다. 속초 도심과 가까워 청초호수공원 길 건너편은 바로 상업지역이다. 손님깨나 끈다는 고깃집들은 거의 청초호변과 평행으로 늘어서 있다. 주거 밀집지역과도 가깝기 때문에 가볍게 산책하는 사람들의 수로만 봐도 석호 중 1등이다. 일상과 찰떡인 청초호는 그래서 도시적인 새침함도 품고 있다. 한편 이 석호는 바다와 노골적으로 연결돼 있어 다른 석호에 비해 바닷물의 유입이 활발하고 선박도 두 영역을 넘나든다. 고층빌딩의 연속으로 속초가 현대화된 것에 탄식할 수밖에 없다면 청초호수공원을 걸으며 위로를 받아봅시다.  

       

                                  강릉 주문진 향호 


 고성과 속초를 지나 남으로 남으로... 양양은 지나치고 강릉으로 왔다. 양양엔 미안하지만 석호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자치단체를 자꾸 언급하다 보니 재미있는 말이 생각난다. 말이라기보다는 지역들의 통칭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강원 선거구 명칭들의 줄임말이다. 인구에 비해 면적이 광대한 곳이 강원도이다 보니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총선의 선거구 획정도 골칫거리 그 자체이다. 인구를 기준으로 하는 현 선거구 획정방식은 서너 군데의 기초자치단체를 눈사람 굴리듯 뭉쳐놓아야 겨우 하나의 지역구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삶의 방식도 다르고 문화도 이질적인 여러 자치단체의 주민들이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의 이끌림에 기대야 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실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토지가 광대하고 각 지자체의 성격이 천차만별인 지역에서는 절대적인 인구 기준을 보완할 특별한 판단이 나와야 할 것이다. 또 길어졌다. 각설하고!

  강원도 공식 선거구 일부의 명칭을 보자. '홍횡영평', '속인고양', '동태삼정'. 각각 홍천군 횡성군 영월군 평창군/ 속초시 인제군 고성군 양양군/ 동해시 태백시 삼척시 정선군으로 묶인 지역구를 나타낸다. 지자체 정식 명칭을 다 말하자니 요즘 같은 축약의 시대에 거슬리는 것도 같고 융통성이 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일정 기간 이상 강원도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그래서 이 네 음절의 발음에 익숙하다. 숙어와도 같고 표어와도 같다. 왜 하필 시, 군이 저 순서냐고? 홍횡영평 대신 평횡영홍... 하면 어떻냐고? 그럼 안 된다. 큰일 난다. 특히 선거 관련 방송에서 시, 군의 순서를 바꾸는 실수를 하면 예외없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통전화가 걸려올 것이다. 저 순서 그대로가 공식 선거구 명칭이다. 홍횡영평은 홍횡영평이어야만 한다. 어감은 어떨까. 먼저 홍횡영평은 'ㅇ'받침의 연속이다. 어쩜 그렇게 묶였을까. 뉴스에서 기자가 또렷하게 말하지 않으면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핀잔과 함께 숭구리당당 숭당당 식의 웃음까지도 유발할 공산이 크다. 그 웃음소리와도 닮을 수 있겠다, '홍헹헹헹'. 동태삼정은 지금은 자취를 감추어버린 동해의 명물이자 동태의 전신, 명태가 슬그머니 말풍선 속 단어가 되어 떠오른다. 동태찌개에 삼(蔘)을 넣은 고급요리를 파는 음식점은 어떤가. 동태삼 전문점... 압권은 속인고양이다. 이쯤 되면 귀여움을 한도초과해서, 거짓말로 날 속였다 해도 그냥 눈감아줄 수밖에 없겠다. "정말 나를, 속인고양?"... 

 송구합니다. 안 그럴게요.

 강릉시 주문진에 놓인 향호는 둘레 2.5km의 미니 석호다. 그만큼 가볍게 주위를 돌기 부담이 없다. 7번 국도변에서 소소하게 바라보이는 향호는 거대 석호들의 명성에 묻혀 고즈넉하게 살아가다가 최근 개발과 환경파괴 이슈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먼저 주변에 설치될지도 모른다는 폐기물 매립시설과 관련한 소문이다. 예정 부지가 바로 근접한 곳은 아니지만, 3km 거리에 지정폐기물 매립장이 실제로 들어선다면 향호의 수질과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우리의 집에서 버려지는 생활폐기물이 아닌 '지정'폐기물을 매립하겠다는 거다. 지정폐기물이 무엇인가. 폐유나 폐농약, 슬러지 등 산업현장에서 나오는 심각한 유해물질이다. 그래서 관리, 감독의 책임도 지자체가 아닌 국가에 있다. 전국 각지에서 배출되는 지정폐기물이 강릉 주문진의 땅으로 모여드는 상상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강릉시와 매립장 예정지 주위 기초지자체들과 주민들이 매립장 설치를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어 건설이 백지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언뜻 운영이 까다로워 보일 수 있는 매립장 사업은 순이익이 엄청난 분야라고 한다. 더 이상 만만한 시골의 환경을 돈으로 바꿔먹는 일들은 멈추었으면 좋겠다. 강릉시는 향호와 그 일원을 지방정원으로 조성해 나아가서 국가정원으로 지정받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갖고 있다. 향호 '매립장'보다는 향호 '국가정원'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좌)경포대 (우)강릉 경포호


 마지막 선수다. 오래 기다리셨다. 인지도의 끝판왕, 강릉의 경포호. 둘레가 4km를 조금 넘어 조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적인 코스를 선사한다. 적당한 거리에 적절한 운동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속초의 청초호처럼 주택가가 가깝지 않아도 많은 강릉시민들이 자랑스럽게 찾는 보석 같은 공간이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 경포대에 올라 호수를 내려다본다. 원래 경포호수는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 지역의 사료에는 둘레가 30리로 기록돼 있고,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20리로 경포호의 둘레를 밝혔으니 최소한 지금의 두 배다. 1920년대 지도에는 다시 경포호의 둘레가 12km라고 되어 있다. 강릉지역 사료와 엇비슷한 길이이자 지금의 세 배에 달한다. 농사를 위한 매립 등으로 면적이 점차 줄어들어 아담한(?) 호수가 되었지만 본질은 화진포에 버금가는 대장급 석호였다는 사실. 예전엔 경포대 바로 아래 주차장 자리까지도 호수였다고 한다. 하늘에 달 하나, 호수에 달 하나, 바다에 달 하나, 술잔에 달 하나, 님의 눈동자에 달 하나가 떴다며 기름진 플러팅을 일삼던 과거의 선비들도 경포대 절벽을 찰랑찰랑 어루만지는 호수를 보며 감성이 폭발하지 않았을까. 회심의 문구가 나왔던 데에는 다 걸맞은 무대가 있었던 것이다.

 경포호는 그 이름을 두고 핫한 논쟁도 벌어지는 중이다. '경포(鏡浦)'호가 아니라 '경(鏡)'호가 맞다는 주장이 일부 대학교수와 SNS를 통해 번지고 있다. 근거는 고문헌과 1990년대까지의 지도에서 이곳을 '경호'라고 표기했다는 사실이다. 사료상으로도 일관되게 경호라고 불리어왔던 호수의 명칭이 2000년대 들어서며 갑자기 '경포호'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포(浦)'는 바닷가의 포구를 일컫는데, '호(湖)'는 민물이 담긴 그야말로 호수를 뜻하니 '바닷가 포구'와 '호수'가 겹칠 수 없다는 것이다. 거울처럼 투명한 호수의 특징인 '경(鏡)'만 이름이 될 수 있고, 그래서 호수의 올바른 이름은 '경호'이니 이제라도 경포호라는 명칭 대신 경호라고 쓰고 말하자는 주장이다.      

 2000년 이전 모든 역사적 사료에 '경호'라 표기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란 걸 전제로 한다면 그렇게 바꿔 부르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1990년대 강릉에 살았던 시민들이 '경호'라는 명칭을 더 사용했을까? 그 시절 그곳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회상하자면 당시에 "경호에 산책하러 가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특정 공간의 명칭이나 호칭이란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제로 부르는가를 잣대로 삼는다면, 현대에 들어와 대부분의 시민들이 경포해수욕장 건너편의 석호를 '경포호'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응당 '경호'라 불러야 하는 또 다른 이유, 바닷가 포구와 호수의 뜻이 동시에 담길 수 없다는 것. 정확히 경포 바닷가 어디에 포구가 있었는지 알 수 없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의미로만 판단하자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포(浦)'가 꼭 해상이어야 하는가? 포(浦)는 '강이나 내에 조수가 드나드는 곳, 물가, 바닷가, 지류가 강이나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다. '포구(浦口)'는 '배가 드나드는 개(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의 어귀'이다. 바다에만 있어야 하는 포나 포구는 없다. 지류가 흐른다면 바닷가에도, 강가에도, 바다에서 석호로 물이 들어왔던 곳에도 포구는 존재할 수 있다. 더구나 경포의 남쪽 해안인 강문의 경포천으로 지금도 바닷물이 유입돼 경포호와 끊임없이 섞이고 있다. '천(川)'으로 조수가 드나들어 호수와 섞이고 있으니 바다가 아닌 이곳도 어찌 포구의 조건이 아닐 수 있을까. 석호라는 수체(水體)가 어차피 한때 '바다와의 연결'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경포호라고 부른다 해서 호수의 본질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바다와 비교적 거리가 있는 서울의 한강변 '마포(麻浦)'와 '영등포(永登浦)'도 여전히 떳떳한 '포'의 일원이다.    

 그래서 한낮 아마추어의 의견.

 '거울처럼 마음을 비추는 아름다운 호수'로 느끼고 싶을 땐 '경호'를 쓰자. 발음도 맑고 날아갈 듯하니까.

 뚜렷한 의미상의 맹점이 없으니 사람들이 주로 부르는 '경포호'도 굳이 버리지 말자. 오히려 그 속엔 과거 포구가 존재했다는 역사도 담겨 있으니까.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해서 안 될 것은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강릉 경포호의 저녁


 고성과 속초, 강릉의 석호들을 여행해 보았다. 육지를 만나 지면의 황홀함에 갇혀버린 바다의 얄궂은 운명이 강원도 동해안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대양을 떠돌던 거칠 것 없던 바다의 신은 이제 사람들의 곁에서 위안이 되고 감성이 되며 거울의 요정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강원도의 짙푸른 바다와 거침없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땅의 상승곡선 사이에는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한 호수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를.  


 여정이 만만치 않았음이 분명하다. 운동화를 벗으니 발목 양말은 발끝에 간신히 걸린 채. 

 분명 탄력성이 뛰어나 보였는데 실망이다.





 *양간지풍-강원도 양양과 간성 사이에서 부는 국지적 강풍, 강원도 대형산불의 원인으로 자주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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