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곳의 어떤 것들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해하다가도 이내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식으로 놓아 버립니다. 잠시 후 앞 친구로부터 넘어온 시험지를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와 숫자일 뿐입니다. 왜 진작 열심히 준비하지 못했나 탄식하는 순간, 눈 앞이 깜깜해집니다.
또 꿈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방송사고가 나는 꿈은 빈도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시험날 문제지를 받고 안절부절못하는 꿈은, 자주는 아니더라도 꾸준한 간격으로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교실의 배경만 다를 뿐 주제와 교훈은 똑같습니다. 진즉에 열심히 할 걸, 그겁니다. 기말고사 혹은 학력고사를 치르며 눈앞에 놓인 무지막지한 난이도의 시험문제에 좌절해 진땀을 흘리는 상황이 왜 이렇게 단골 꿈으로 등장하는지 저도 알 수 없을 노릇입니다. 일상에서 되짚어 생각하고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음에도 이런 절체절명의 꿈을 반복해 꾼다는 것은 지금까지 이뤄낸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해 후회되는 시간이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현재는 흔들리고 미래는 불안했던 재수생 신분의 무대로 갑니다. 대학입시의 좌절로 세상이 두려울 스무 살의 청춘, 국가시험 합격이나 자격증 취득을 위해 쑥과 마늘을 먹으며 웅크리고 있는 가슴 아픈 청년들을 거둬들이고 있는 공간, 노량진 학원가입니다.
노량진 학원가
홍수의 위력이 어떤 것인지 실감했던 1990년 9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늘이 담고 있는 스스로의 모든 수분을 작정하고 퍼붓듯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아니 빗 기둥을 뚫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합니다. 우산은 머리만 가려줄 뿐 차라리 비옷을 입었어야 했습니다. 버스에 올라타 학원으로 가면서도 "노량진까지는 못 갈 수도 있어요"라는 버스기사님의 말이 계속 신경 쓰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노량진에 한 참 못 미친 곳에서 버스는 물이 넘치는 도로로 더 이상 진입할 수 없었고, 저는 버스에서 내려 왼쪽의 비교적 멀쩡한 도로를 걸어 수산시장을 통해 학원으로 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지금은 있을지 모를 수산시장 남쪽의 어두운 굴다리를 건너면 학원으로 갈 수가 있었는데, 세상에나... 안 그래도 지대가 낮은 곳이라 깊은 곳은 물이 허리 높이까지 올라와 있었던 것입니다. 한강 바로 옆이다 보니 범람한 강물이 흘러든 모양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오후에는 아예 굴다리 전체가 싹 잠겼다더군요. 바로 전날 학원에서, 홍수가 예상되니 꼭 출석 안 해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음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학원으로 향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예상되는 뻔한 대답은, 학원 수업은 하루도 빠질 수 없다는 철두철미한 책임감 정도이겠으나 그러면 재미가 없겠지요. 사실은 며칠 전 학원 바로 옆 당구장 사장님과 한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하필 이날 사장님이 중요한 일이 있어 참새 방앗간을 찾듯 하던 저에게 당구장을 열어줄 것을 부탁했고, 저는 빈 테이블에서 원하는 만큼 당구 연습을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대가를 조건으로 그 부탁을 기꺼이 수락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목숨 걸고 노량진 굴다리 도하작전을 감행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었을 리 만무했습니다. 스노클링을 한 것 마냥 홀딱 젖은 상태로 당구장에 도착해, 오늘은 손님도 올 수가 없겠구나 직감하며 사장님에게서 받은 열쇠로 당구장 문을 열었습니다. 카운터 자리에 앉아 공을 닦으며 전세 낸 것이나 다름없는 당구장을 둘러봅니다. 오늘 하루 꿈의 구장이 될 이곳에서 지칠 때까지 연습이나 해야겠다는 작정으로 음흉한 미소를 흘리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군요. 웬 불청객이란 말입니까. 깜짝 놀라 쳐다보니 아는 얼굴이었습니다. 서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잠시 머뭇거린 뒤 날 선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홍수 났다고 난리들인데 너 여기서 혼자 뭐 하는 거냐?"
"그러는 넌 오늘 같은 날 당구장에 오고 싶냐?"
이 친구는 여러분이 아시는 개그맨 정준하입니다. 잠시 후 우리는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다는 묘한 동지의식을 공유하며 지긋지긋해질 때까지 공짜 당구를 즐겼습니다. 손님이요? 물론 한 팀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집 밖으로 나오기도 힘든 자연재해 상황에서 시시덕거리며 당구를 치는 인간들이 비정상일 테니, 세상은 참 이성적이고 정상적으로 돌아가긴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이 구역에서 비정상은 둘이면 충분하니까요.
준하는 아마도 이날의 상호비방에 이은 공짜 당구의 추억은 물론이고 제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탁월한 붙임성으로 많은 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며 웃음을 주던 친구라 지극히 평범했던 저를 떠올리긴 쉽지 않겠지요. 방송에서도 노량진에서 4수를 했다며 아픈 과거를 웃프게 이야기하지만 결국 확실한 인간적 장점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게 아닌가 합니다. TV에서 준하가 당구 치는 모습이 나오면 왜 그렇게 웃음이 나오는지요, 언제나처럼 앞으로도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방탕한 재수생활의 현장입니다.
많은 젊은이들과 취준생들의 꿈을 먹고 돌아가는 노량진 학원가. 수능으로 대입제도가 바뀐 이후 그 수가 줄어들었지 모르겠지만, 부모의 품 속에서 학창생활을 하다 인생의 첫 좌절을 겪은 이들이 아픔을 딛고 재기를 도모하는 신성한 공간입니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눈물을 삼키며 떠오른 달과 별을 쳐다보았을까요. 걱정과 불안은 영원히 계속될 것 같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매일 아침 시험대에 오르는 듯합니다. 전진을 위한 후퇴라기엔 움츠리고 있는 고통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결국 뚜벅뚜벅 걸음을 내딛는 방법뿐입니다. 불신과 불안이 회오리처럼 내 몸을 감싸도 하나씩 하나씩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고통과 침잠의 공간이었던 세상의 모든 노량진은 그렇게 해서 결실의 순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약속의 땅으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노량진 하면 학원가가 먼저 떠오를까요, 수산시장이 먼저 떠오를까요? 이곳 학원가를 거쳐간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을 테니 아무래도 '수산시장'이라는 답이 다수일 겁니다. 사실 노량진이라는 지명 자체가 수산시장을 열기에 꽤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요. 노량진은 예전 '노돌나루'로 불렸다고 합니다. 많은 국어학자와 지명학자에 따르면 '노돌'은 '넓은 들' 혹은 '넓은 모래사장'의 뜻이었고, '나루'는 말 그대로 나루나 도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즉 '넓은 모래사장이나 바위가 있던 도랑 혹은 나루'라는 의미를 담은 지명이 노돌나루였고, 이 노돌나루가 노'들'나루로 변형돼 불리게 된 것이죠. 올림픽대로에서 남쪽으로 인접한 근방의 도로인 '노들로'에 이 명칭이 그대로 쓰였음을 알 수 있겠고, 한자어로는 '노량진(鷺梁津)'이라 명명되었습니다. '넓은'의 한글 고어인 '노' 혹은 '노ㅎ'를 발음만 유지한 상태에서 그럴듯한 한자로 옮기려다 보니 '백로 로(鷺)'라는, 본 뜻과 상관없는 한자를 입력하게 되었고, '량(梁)'은 다리, 항로 또는 도랑인 것이고, '진(津)'은 나루의 뜻이니, 이 두 글자는 원뜻에 어긋나지 않겠습니다.
한강이 바다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지금의 옥수동처럼 드라마틱하게 물길이 꺾이는 곳이 있었다면, 노량진은 말 그대로 평평하고 넓은 모래사장을 이루며 어민과 상인들이 모이기 제격인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강과 바다에서 잡히는 각종 해산물, 수산물이 뒤섞여 거래되기에는 안성맞춤이었겠지요. 결국 '노량진'이란 지명의 유래를 생각한다면, 학원가보다는 수산시장이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타당한 근거가 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거리를 지나는 젊은이들의 표정이 밝습니다. 예전에는 심하다 싶을 만큼 심각한 얼굴들이 노량진을 가득 채웠다는 기억인데요, 이제는 딴판입니다. 손에는 책을 끼고 무거워보이는 가방을 메고 있지만 긍정적인 자신감이 후광처럼 빛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삼촌이 된 것 마냥 흐뭇합니다. 그들의 결실이 머지않았다는 확신이 드는군요. 한발 한발 나아가면 될 일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뜻한 바 있어 늦깎이 신분으로 이곳의 학원가를 찾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만으로 스무 살이 되지 않은 수능 수험생들도 상당수 있을 겁니다. 얼마나 많은 유혹이 있을까요. 세계 어디에도 없을 최강의 공부기계를 강요받으며 지내온 초중고 학창 시절, 일탈의 유혹은 삶의 어느 단계보다 짙게 다가옵니다. 사람의 뇌는 유아기 때 폭풍처럼 기능이 성장하지만, 각 신경세포를 이어주는 시냅스의 배선은 20대 후반이 돼서야 마무리된다고 하는데요. 배선 구성의 완료 전까지는 수많은 유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깊은 고려 없이 굴복하기가 쉽다고 하지요. 따라서 10대와 20대의 무모함을 그저 정신 못 차리는 그들의 습성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생물학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일정 시기의 특성이라고 여기는 것이 훨씬 객관적이고 타당한 분석이라는 생각입니다. 여차저차 숱한 이유를 다 떠나서 자신의 10대와 20대를 돌아보시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얼마나 위태롭고 좌충우돌했었는지요. 이제는 옛 기억을 소환할 때 동반되는 자책감을 덜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낯부끄러울 정도로 치기 어린 젊은 날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발달단계에 놓여 여물지 못하고 덜 굳어있던 '뇌의 작용' 때문이니, 우리는 어른이 되기 위한 당연한 관문을 거쳤을 뿐인 것입니다.
살면서 웃으면 안 되는데 도저히 참지 못하는 상황이 가끔 벌이지곤 합니다. 선생님에게 한창 혼나고 있는 중인데 옆자리에 서 있는 장난꾸러기 친구 녀석의 표정 때문에 꼭 웃음이 새어 나오죠. 그럴 때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버리면 사랑의 매의 강도는 높아지고 횟수는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런 경우는 아니었기에 크게 혼날 일도 아니었지만, 급한 볼 일을 필사적으로 참듯이 온 몸에 힘을 빡 주고 웃음을 참아야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평소 서글서글하면서도 장난기가 있어 동생들과도 사이가 좋았던 삼수생 형이 지난주 수업시간 중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경비 아저씨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월담을 해서 당구장으로 달려가는 경우야 하루에도 수십 차례 벌어지는 일이니 탈출 자체로는 아무런 뉴스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탈출의 과정이 문제였습니다. 상습 탈출러들의 주된 공략 포인트는 크지 않은 철문이 놓인 후문 쪽이었습니다. 경계가 느슨해진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그들 - 제가 포함되지 않는다고는 말씀드리기 어렵겠군요 - 은 낮은 문의 높이와 바깥 도로까지 최단거리라는, 도주에 최적화된 환경을 100% 활용해 높은 탈주 성공률을 기록하며 당구장으로, 호프집으로, 중국집으로 내달렸던 것입니다. 반면 우리의 적군인 학원 측에서는 더 이상의 도주행각을 좌시할 수 없었는지 해당 길목에 경비력을 증강시켜 검거율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문제의 형은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전혀 다른 루트인 건물 옆면의 2층에서 바로 뛰어내린 뒤 후문 반대편에 있는 높은 돌담장을 넘는 이색적인 탈주를 계획한 것이었습니다. 정문으로 나가며 몸이 노출되는 위험성과 후문의 강화된 감시망을 동시에 피할 수 있는 나름의 개혁적인 방법이긴 했었지요. 지금쯤이면 눈치를 채셨을 거라 믿습니다. 이 형은 과감히 난간을 넘어 건물 바깥으로 뛰어내렸고 발목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던 것입니다. 이런 류의 소문은 KTX급으로 퍼지기 마련이죠. 불과 일주일 만에 목발을 짚고 돌아온 상이용사의 모습에 수십 명의 친구들 입에선 웃음이 입술을 힘겹게 뚫고 새어 나왔고요, 사람 좋은 형은 불타오르는 듯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쑥스런 미소와 함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골절이라는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학원생들의 미소는 폭소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지금도 참지 못했던 웃음에 미안한 마음이 여전합니다만, 각별한 인연이 있었는지요. 대성학원 최고의 에피소드 메이커였던 이 형과는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들어가게 되면서 학원에서의 추억을 계속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아, 저에겐 추억, 형에겐 트라우마라고 해야 되겠습니다.
노량진 학원가의 먹자골목
인류는 과거보다 훨씬 똑똑해졌으나 개인은 점점 더 멍청해졌다고 합니다. 각자의 전문분야를 범접할 수 없이 깊게 파고들어간 이유로, 우린 서로를 완벽히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전 교과목의 성적과 활발한 활동, 다재다능함과 리더십 모두를 요구하는 염치없는 이 나라의 교육 현실에 지긋지긋함을 느끼게 되어서 오히려 이후의 삶에서는 한 가지에만 천착하게 되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만능의 슈퍼맨을 강요하던 학창 시절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직 먹고 살아갈 도구 한 가지만 알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하긴 다른 분야를 즐길 여유가 어디 있을까요, 한 곳을 깊숙이 파고들어 전문가가 되지 않는다면 먹고살기 힘든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요, 굳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정약용 선생님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전인적 사고와 예술 감각, 정치적 능력을 두루 갖추었던 몇 백 년 전 인물들의 신화적 다재다능함을 이 시대에서 마주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의 능력이 줄어든 걸까요? 아니요. 사회와 교육 시스템의 탓이 주범일 거라 믿습니다. 삶의 가치를 순수히 추구하며 용기를 가지고 뛰어가다 보면 부딪히는 것은 사정없는 철벽입니다. 너무도 육중하고 높다란 벽이 두려운 나머지, 발길은 다시 출발점을 향해 돌아가고 있습니다. 뛰어난 재능으로 세상의 사표(師表)가 될 만한 재목들로 하여금 우주와 삶의 신비로움을 밝혀낼 기회를 주기보다는, 소득의 고저를 떠나 평범한 세속의 삶을 추구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는 빅 브라더의 본성인 것입니다.
적당히 타협을 해 볼까요? 노량진이라는 무대에서 분투하고 계신 수많은 젊음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을 때보다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수십 배의 강도로 이겨내고 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각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로 우뚝 서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되, 삶과 세상의 신비를 찾아가는 제너럴리스트도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지극히 아름다워 탐구하고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분야들이 세상엔 너무도 많습니다. 형언할 수 없을 기쁨들은 오직 한 우물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우주의 팽창이 궁금해 미치겠는 국어 선생님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고, 퇴근길 달을 바라보며 시인의 감성이 폭발하는 물리학자는 너무도 인간적입니다. 존재의 신비는 세상 모든 것에서 드러나고 진리는 결국 모든 분야를 통섭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포섭해 팽창하고 솟아오릅니다. 두루 탐구하는 것의 아름다움은 의심할 필요 없는 열락입니다.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탈을 겪고 지금도 그때를 아쉬워하는 꿈을 꾸고 있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모두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후회의 양도 아쉬움의 정도도 그렇습니다. 크고 작은 터널을 지나 다시 돌아보는 과거는 푹신한 상념이 되어 버립니다. 어디 좌절과 막막함이 그때뿐일까요. 시냅스의 배선작업이 완료되고도 남은 장년의 시간에도 유혹과 굴복은 반복되고 쓰러짐도 여전합니다. 단지 쓰러져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쓰러지자마자 벌떡 일어서는 연기력이 강화되는 것일 뿐이죠. 어쩔 수 없이 더 파고들지 못하고 더 집중하지 못해 안타까운 것들도 여전히 넘쳐납니다. 삶의 과정마다 이렇듯 불쑥 솟아있는 돌들은 예상치 못하게 발바닥을 찌릅니다. 다만 그 고통이 유난히 뼛속 깊이 느껴질 때가 청춘이라는 고갯길인 것이지요. 푸른 봄은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법입니다.
재수 시절 만난 친구들은 예상외로 끈끈했습니다. 물론 입시에 집중하지 않는 녀석들끼리 그랬다는 겁니다. 학교의 품에서 벗어나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중간자의 신분으로, 나름의 고통과 방황을 같이 경험했기 때문일 텐데요. 노량진에서 앞날을 함께 꿈꾸고 있는 지금의 청춘들은 끈끈한 우정과 함께 실속 있는 결과도 거두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힘들기만 한 지금도 결국엔 거칠어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너무도 소중할 지금을 약속의 시간으로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싱싱한 회와 힘들었던 과거를 안주삼아, 길 건너 수산시장에서 이 치열했던 공간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취할 수 있지 않을까요.
더 이상 학력고사를 앞두고 초조해하는 꿈을 꾸지 않으려 합니다. 꾸어야 할 황홀한 꿈들이 너무도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 과거는 못다 한 숙제처럼 여겨진다는 값진 교훈만큼은 안고 갈 작정입니다.
고(苦)는 진(盡)하고 감(甘)은 래(來)할 것입니다. 보태드릴 것은 없습니다. 그저 넓은 모래사장 나루터에서 분투하고 있는 모든 청춘들에게 이 못난 선배가 뜨겁디 뜨거운 응원의 박수라도 보내드리겠습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