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민회관입니다. 겉보기엔 아직 멀쩡합니다. 아, 물론 내부 역시 보수작업을 거쳤기에 쓸 만합니다. 1964년에 건립되었으니 환갑을 향하고 있는 제주시 구도심의 터줏대감이지요. 그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기념비적 건물이 된 것은 아닙니다. 실내경기와 각종 이, 취임식을 비롯해 제주의 여러 굵직한 행사가 치러졌던 소중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쓰임새뿐 아니라 철골 트러스 공법을 제주 최초로 적용해 지어진, 건축사적으로도 의미가 큰 건물이기도 합니다. 시민회관이 막 문을 열었을 당시 사진을 보면 주위가 온통 초가집 일색이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으니 한마디로 제주 현대 건축사의 살아있는 시조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트러스 공법이란 재료를 삼각형 형태로 조립해 이를 접합한 뒤 서로 연결해 알맞은 구조체를 만드는 건축기법인데요, 시민회관이 충분한 실내공간의 확보로 체육대회를 치러야 할 '경기장'의 기능도 수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적의 공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 지붕이 'ㅅ' 자로 맞닿아 있는 맞배지붕의 연속된 모양으로 철골 뼈대를 연결해 나갑니다. 각 접합부위는 직각삼각형의 형태로 중력을 고루 나누어 받아 서로의 결속을 굳건히 하는 동시에 전체 지붕의 형태를 유지합니다. 철이라는 재료와 트러스 역학의 힘으로, 목조주택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했을 기둥을 갖지 않아도 되니 내부 공간은 얼마나 광활하게 보였을까요. 해방 후 최초로 설립된 건축사무소의 작품이어서 그런지요, 역사적 가치가 한층 더 돋보이는 듯합니다. 건물의 정면에서 보면 직사각형의 건물인데 무슨 소리냐 하실 수 있습니다. 정면 바로 뒤에 이어진 본 시민회관의 지붕은 'ㅅ'자로 경사진 모양임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때 건축물 안전진단 C등급을 받아 철거의 위기에 놓였다가 보수공사를 통해 제주시민의 공간으로 다시 거듭났습니다만, 최근 정부의 생활밀착형 사회기반시설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다시 9층 안팎의 새로운 건물로 신축되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그대로의 시민회관을 바라는 분들에겐 서운한 일이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추억을 만들어갈 세대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주시민회관의 지붕 구조와는 조금 다른 형태지만 연속된 삼각으로 연결된 철골 트러스의 지붕 구조체
정면과 이어진 파란색 지붕의 뒷부분이 제주 최초의 철골 트러스 건축물입니다.
공법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다니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는데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중요 건축물이다 보니 다소 흥분을 한 것 같습니다.
생각만 해도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장소가 있습니다. 제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에겐 제주 시민회관도 다름 아닙니다. 행사 참석차 시민회관을 가면, 주위에서 코흘리개 시절 여기서 봤던 공연이 생각난다거나 학교 대표로 이곳에서 열린 전도 탁구대회에 나간 적 있다는 경험담을 엿듣게 됩니다. 번듯한 체육관이자 공연장이 하나밖에 없는 시절이었으니 그때의 도민들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만한 추억인 것이겠죠. 덩치가 있는 공간이라 대표 격으로 소개를 드렸습니다만 옛 제주의 다운타운인 구제주 쪽에 있는 유서 깊은 극장이나 서점, 약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또래가 모이게 될 때 저를 제외한 모두가 제주 토박이인 상황이 있는데요, 오래전 제주시의 가게 이름 하나만 나와도 수다는 끊길 줄 모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친구들과 약속을 하곤 했다느니, 그 앞 골목에서 대장 노릇하던 게 자기라느니, 아로새겨진 추억이 없는 저의 입장은 아랑곳 않고 추억담 배틀이 한바탕 벌어집니다. 도무지 공감을 할 수 없는 추억담을 듣고 있자니 부러움과 소외감을 느끼곤 합니다만, 뭐 이해합니다. 이방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과정인 것이고, 친구들과 어릴 적 이야기 떠벌리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마치 어린 시절을 그들과 같이 제주에서 보낸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거리면 될 일입니다.
한참 성인이 되어 주소를 옮긴 이주민도 나름의 추억팔이 좀 해야겠습니다. 눈을 감고 기억의 씨줄, 날줄을 엮어봅니다. 떠오르는 장소라고 해 봐야 당산동의 놀이터, 학교 앞 문방구, 아파트 사이 잔디밭... 온통 집 근처군요. 그렇다면 조금만 더 범위를 넓혀 봅니다. 또 그래 봐야 기억나는 곳들은 전철로 30분 거리 안쪽이겠지만 어린 시절의 체감 거리로 따지면 상당히 멀 수도 있는 일입니다. 나름 먼 길을 떠나기 전에 꼬마의 자기소개를 좀 들어보시겠습니까?
저는 외동입니다. 당시엔 극히 희귀했던 무녀독남이었죠. 맞벌이인 부모님이 출근하시면 외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국민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부터는 아무도 없는 집에 열쇠로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자물쇠 따는 게 직업이 안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저와 같이 외동아들이었던 친구는 주위에서 딱 한 명 봤을 뿐입니다. 그 정도로 흔치 않은 게 자식 하나 있는 가정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외롭고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록 저녁 먹으러 얼른 들어오라는 엄마들의 호출이 동네에 울려 퍼지기 전까지였습니다만, 많은 친구들이 친형제를 대신해 주었으니까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가방을 소파 위에 던져놓기였습니다. 신발은 벗으면 안 되었습니다. 바로 놀이터로 뛰어나가야 했으니 말입니다. 늦으면 그날의 다방구 정식 멤버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깍두기가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 시절 야외에서 할 수 있었던 놀이의 종류는 요즘의 모바일 게임만큼이나 다양했습니다. 간편하게도 도구는 지극히 단출했지요. 흙바닥이나 모래 위라면 선을 그을 수 있는 나뭇가지 하나면 됐고, 아스팔트 바닥이면 하얀 줄이 그어지는 날카로운 돌만 필요했을 뿐입니다. 놀이의 이름만으로도 세월이 느껴지는 '오징어', '돈가스', '얼음땡'이 있었습니다. 지역과 동네에 따라 부르는 놀이의 이름도 천차만별이었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고무공 하나만 있으면 되는 놀이로는, 팔이 배트가 되고 글러브는 필요 없는 야구의 저렴한 버전인 '찜뽕'이 있었고 '왔다리 갔다리'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옛 놀이의 명칭을 가감 없이 나열한 것뿐인데 너무도 적나라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군요. 최소한의 도구 조차 필요 없이 기둥이나 적당한 높이의 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가능한 놀이는 앞서 말씀드린 다방구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잽싸게 기동하는 두 다리만 있으면 되는 법이니 신체 발육에도 좋고 게임을 구매할 비용도 필요치 않은 '국민 놀이'였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역사적 사실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나 나가고 싶지 않은 날도 무료할 걱정은 없었습니다. 볼펜과 종이만 있으면 좋았습니다. 놀아줄 사람이라곤 나 자신뿐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푹 빠질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자동차를 그리는 게 좋았고, 만화영화에 나오는 로봇을 그리는 게 좋았습니다. 지난 달력의 뒷장에는 달리는 고속버스가 줄곧 그려지다가 어느 순간 웅장한 로봇이 여백을 채웠습니다. 언제부터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날 이후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꼬마를 온통 사로잡은 영웅을 만나게 된 다음이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그 영웅은 반년에 한 번씩 위용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바로 극장 안에서 말이죠.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혹은 고만고만한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가는 날엔, 종이에 그려진 나만의 영웅이 커다란 스크린에서 현실이 되어 힘차게 움직였습니다. 만화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은 꼬마인 저에게 흥분과 설렘의 무대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제주의 시민회관에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이었나요? 서울 한복판의 그곳은 당시 '시민회관 별관' 혹은 '세종문화회관 별관'으로 불렸던 것입니다. 얼마 만에 부르는 추억의 공간인지요, '시민회관 별관'이라고 불러보는 순간, 심장은 다시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쿵쾅쿵쾅 요동칩니다.
부민관, 국회의사당을 거쳐 세종문화회관 별관으로 쓰였던 과거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인 서울시의회
서울시청 건너편 덕수궁 옆에 위치한 이 건물의 첫 이름은 '부민관(府民館)'으로,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극장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은 일제의 행정체제에 따라 경성'부(府)'로 불렸으니 '부민관'이라는 명칭은 곧 '시민회관'의 뉘앙스와 별반 다를 게 없었지요. 대, 중, 소강당을 갖추고 1935년에 준공된 건물입니다. 초창기엔 극단들이 공연을 열기도 했으나 관립(官立)이라는 한계로 친일 행사가 주로 열리던 곳이었는데요, 해방이 된 이후 1950년 국회의사당이 되었고 1975년 여의도에 지금의 국회의사당이 건립되면서, 시민회관과 세종문화회관 별관으로 사용되다가 1991년부터 지금의 서울시의회 건물이 된 것이 간략한 역사라 하겠습니다.
이곳이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이유는 제주의 시민회관과는 다릅니다. 건물의 구조가 특별하거나 공법의 특징보다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의미 때문이겠습니다. 일제가 조성한 부민관은, 동시에 자랑스러운 애국의 영웅들이 그 이름을 빛낸 곳이었습니다.
부민관 시절이었던 1945년 7월, 한 친일단체가 태평양전쟁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한 '아세아 민족 분격대회'를 이곳에서 열게 되자, 비밀결사 대한애국청년단이 당시 친일파의 거두인 박춘금(朴春琴)을 주 타깃으로 한 폭파계획을 세우고 거사에 임하게 됩니다. 대회의 주최자인 박춘금이 일본 제국주의를 선전하며 열변을 토하는 순간, 굉음과 함께 폭탄이 터지는데요. 안타깝게도 대회에 참석한 한 사람이 폭탄과 연결된 선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계획된 시간보다 일찍 폭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박춘금은 일본 의회에서 조선사람도 일본의 병역의무를 이행하도록 청원을 하기도 했고 한민족 독립운동 단체들에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고 하니 그야말로 뼛속까지 친일파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해방 후 일본에서 거주했으며 반민특위의 소환에는 끝까지 응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과거가 부끄러운 악당의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겠죠. 소환에 응했다면 어떤 험한 꼴을 보았을지요. 그러나 부민관에서의 행운으로 액땜을 한 것일까요, 그는 80을 훌쩍 넘겨 1973년에 사망했다고 하니 심지어 천명까지 누린 듯합니다. 저승에서도 이승처럼 운이 따라다닐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낯 두꺼운 폭력배의 대장을 제거한다는 소기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으나 다행히도 거사에 임한 강윤국, 조문기, 류만수 의사는 신속히 자리를 피해 잡히지 않았고, 독립의 의지를 전국에 알린 마지막 항일의사로서 큰 획을 그었다는 후세의 평을 받고 있습니다. 용기에 존경을 보내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랑스러운 영웅들, 왼쪽부터 강윤국, 조문기, 류만수 의사 vs 친일파 박춘금
악당은 왜 이리 전형적인 모습일까요. 얼굴에 쓰여 있는 듯합니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외모로 인한 선입견이 발현할까 두려우니까요.
영웅들의 거사로부터 약 30여 년 후, 데자뷔를 보듯 또 다른 거대한 영웅이 동일한 역사적 공간에 등장합니다. 그는 태권의 고수였지요. 대한민국 4,50대 남성, 혹은 그 이상의 두터운 팬덤을 자랑하는 주인공은...
그렇습니다. '로보트 태권 V'입니다. 1976년 7월, 1탄을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2탄 <우주전쟁>과 1977년 7월, 3탄 <수중특공대>가 세 분의 의사가 폭파 거사를 감행한 이곳, '시민회관 별관'에서 우렁차게 개봉을 하게 된 것입니다.
또래들 중 누가 열광하지 않았겠습니까만 저에게 태권 V는 각별했습니다. 스케치북과 달력의 뒷면을 끊임없이 채우던 태권 V는 최고의 모델이었고 최소한 수천번은 넘게 그렸음이 틀림없습니다. 지금도 태권 V 만큼은 아무 어려움 없이 뚝딱 그려낼 수 있습니다. 앞모습과 옆모습, 45도로 고개를 돌린 모습이 모두 머릿속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으니까요. 김청기 감독님 덕분에 이 거대한 로봇은 평생을 함께 하는 영웅이자 친구가 된 셈입니다. 시야에 꽉 들어찬 스크린에 비치는 태권 V의 돌려차기는, 박력 있으나 우아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대한민국 루머의 고전이 떠오릅니다.
" 그거 알지? 태권 V는 사실 여의도 지하에 숨겨져 있는 거. 전쟁이 일어나면 국회의사당 지붕이 갈라지거든, 지붕 모양을 봐 그렇게 생겼잖아, 갈라지기 좋게 돔 모양으로... 지하에 있던 태권 V가 거기를 통해서 출격하는 거라니까. 전쟁 나면 내 말이 맞는지 보라구."
익숙한 분들 계시죠? 그런데 말입니다. 실제 태권 V가 존재한다면 그래야 할 것도 같습니다. 유독 시민회관에 자주 등장했던 태권 V, 그 시민회관 별관은 이름이 바뀌기 얼마 전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이었으니까요. 스크린에 비친 영상으로 구(舊) 국회의사당에 나타난 전력(前歷)이 있다면, 실물 역시 국민의 심부름꾼들이 모여 있는 현(現) 국회의사당에 감추어져 있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태권 V 뿐 아니라 만화영화 속에 나오는 그 밖의 조연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훈이와 영희, 깡통로봇도 있었죠. 저는 선과 악을 넘나들 수밖에 없었던 '메리'를 주목하고 싶습니다. 악역인 카프 박사의 인조인간 딸로 등장하는 그녀는, 남자 주인공 훈이를 사랑하는 순수한 캐릭터이면서도 카프 박사의 의도대로 태권 V의 설계도를 훔치고 김박사를 살해하게 되는 악역을 맡았습니다. 절대 단순한 악역이 아니었죠. 사람을 사랑하는 인간의 감정을 가졌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명령을 수행해야만 하는 번민과 슬픔이 가득했던 캐릭터였습니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주인공이 되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복합적 캐릭터가 아닐까요. 인간이 되고 싶은 그녀의 바람은 당시 꽤 반응이 좋았던 O.S.T. 중 '메리의 노래'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검색을 하니 지금도 들을 수 있더군요. 열악한 음질과 지나친 고음이 살짝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로봇의 영웅담을 그린 만화영화의 O.S.T. 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슬픔이 가득 배어있는 노래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가사만 써 봅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어떤 것일까. 분홍색일까, 파랑색일까. 눈에 보이는 것일까.
기쁨이란 무엇일까. 어떤 것일까. 둥근 것일까, 모난 것일까. 손에 잡히는 것일까.
눈 감고 새겨봐도 나는 알 수 없네. 참다운 인간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일까.
나도 이제는 인간이 되고 싶은데, 언제나 될까. 기도해 볼까.
참된 인간이 돼볼까.
이 순간은 '악당' 메리였을까요?
이젠 환갑을 훌쩍 넘겼을 메리 할머니가 참된 인간으로 행복하게 살고 계시길 바랍니다. 물론 훈이와 영희, 그리고 깡통로봇의 철이도 말입니다. 철이는 제 나이와 큰 차이가 없겠군요.
일제의 계획으로 세워진 건물에서 용감한 영웅들이 목숨을 건 항거를 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의 국회의사당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의사당의 기능을 넘긴 뒤에는 코흘리개 꼬마들의 웅장한 영웅이 화면을 가득 채운 시민회관과 세종문화회관이 되었고, 이제는 서울시민들을 대변하는 시의원들의 둥지로 거듭났습니다. 이 역사적인 공간에서 서울시민의 현실 영웅들이 다수 배출되기를 바라고요, 태권 V가 숨겨져 있을 국회의사당에서도 진정한 국민의 영웅들이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렇게 되겠지요? 믿어보겠습니다.
서울의 중심인 이 부근을 지났던 적은 많지만, 어른이 된 후 6살 아이의 마음으로 다시 그 자리에 선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적어도 이 부근은 덕수궁의 돌담길과 이어져 옛 모습을 소환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아 다행이군요.
아, 저기 보입니다. 엄마 손을 잡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손을 뿌리치고 후다닥 극장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난번 1탄을 보러 갔을 때 매표소 앞의 줄이 너무 길어서 안절부절못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나 봅니다. 먼저 가서 줄을 서고 있을 테니 엄마 아빠는 천천히 오고 싶으면 그렇게 하시라는 겁니다.
드디어 20분 후에 시작될 영화티켓을 손에 넣었습니다. 1분이 하루인 듯 시간이 가기만 기다립니다. 매표소 반대쪽을 보니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이는군요. 꼬마는 곧 마주칠 영웅에게 헌사하는 심정으로 태권 V 주제가를 부르며 시민회관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합니다.
서너 번 왕복 후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드니 천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의 영웅 태권 V가 두 팔을 곧게 앞으로 뻗어 적진을 향해 하늘을 날아가고 있습니다.
태권 V 만만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