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곳의 어떤 것들
전 세계인이 국경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깊숙이 움츠러든 지 꽤 오래입니다. 이런 날이 올 줄 상상이라도 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이동수단이 없거나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었던 과거에도 이 정도의 감금생활은 없었던 듯합니다. 다시는 예전과 똑같은 수준의 자유로운 이동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고 코로나19가 극복되면 또 다른 어떤 위협이 인류 앞에 닥칠지도 모르는 터라, KF99 등급의 마스크 몇 개를 겹쳐 쓴 것 같은 답답함이 가득한 날들입니다.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한다는 폐쇄감을 떠나서, 모두가 굳게 빗장을 걸어 잠그고 이방인을 경계하는 낯설고도 두려운 상황이 더 답답한 것이겠지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 마지막으로 갔다 온 해외 여행지는 베트남의 푸꾸옥이었습니다. 베트남은 은둔생활 직전까지도 한국인이 사랑하는 여행지로서 가장 각광을 받은 나라였음에 틀림없었죠. 호치민이나 하노이, 다낭 등은 워낙 사람들이 몰리는 도시라 상대적으로 덜 붐비면서 남국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섬이라는 이유로 푸꾸옥을 목적지로 정했습니다. 마음과는 달리 더위에 점점 취약해지는 육신으로 인해 더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긴 합니다만, 남국 특유의 늘어지는 분위기만으로도 소중한 한 켠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베트남 푸꾸옥 서쪽의 해변
푸꾸옥 같은 휴양지의 편한 점은 방위와 거리에 대한 사전 지식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꼼꼼한 공부는 여행 중의 당혹함을 덜 수 있는 좋은 방법이겠으나, 교통수단이 택시나 셔틀 정도로 제한된 섬에서는 목적지의 이름만 알고 있어도 이동에 복잡한 것이 없으니까 말이죠.
물론 어느 정도의 복잡성을 가진 소도시 이상에서는 대략적인 방위와 목적지 부근의 지리, 지형을 미리 알아두는 게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이 명백합니다. 여행은 떠나기 전 준비과정이 가장 기쁜 시간이라고 하지요, 들뜬 마음으로 집중도도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내가 갈 곳의 위치와 특성, 교통편을 점검해 보는 작업은 현지에 도착해 커다란 효용으로 돌아옵니다. 동행인의 아낌없는 찬사를 이끌어 낼 사전 작업인 맛집 검색은 생각만 해도 얼마나 신나는 과정입니까.
학창 시절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지리였습니다. 지구별에 존재하는 나눠진 땅덩어리들과 그 덩어리들을 휘감고 도는 바다의 신비함에 넋을 놓고 파고들었습니다. 대륙별로, 나라별로 뿜어내는 개성과 매력은 어찌 그리 황홀했는지요. 혼자 여행하는 습관이 길러진 것도 어쩌면 낯선 곳의 땅과 기후, 그것들이 만들어낸 분위기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인이 되기 전 창문 위쪽에 붙여놓았던 외국 사진들 - 가장 이국적인 테가 나는 것들은 역시 대한항공 달력에서 오려놓은 사진들이었습니다 - 속 공간을 어른이 되어 한 곳씩 방문해 본다는 것은, 최배달의 도장깨기 이상으로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어디까지 파고든 뒤 그곳으로 떠나야 할지는 참으로 미묘한 문제입니다. 지나친 사전 탐구는 현지에 도착한 뒤 신비감을 감소시킬 여지도 있을 테니 적당히 낯설고도 효율적인 여행을 생각한다면 예습량 조절이 관건일 수도 있겠습니다.
여행의 동반자들이 목을 빼고 두리번거립니다. 오랜만의 장거리 도보로 허기가 극에 달하는 데다 근처에 분명 블로거들이 극찬한 맛집이 있는 것 같아 애가 탑니다. 기회입니다. 이럴 줄 알고 맛집의 위치를 머릿속에 저장해 놓고 시뮬레이션까지 해 봤으니까요.
"아마 저 앞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조금만 가면 길 왼 편에 있을 것 같은데?"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는 투로 한마디 툭 던집니다. 못 미더운 듯한 표정을 지은 뒤 마지못해 그대로 걸어가 봅니다. 우회전 후 20미터쯤 전진하니 길 건너편, 정말로 그토록 찾던 맛집의 간판이 보이는 것입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지만 소문이 아깝지 않을 맛집입니다. 여행자의 여유 있는 음미가 아닌 게걸스러운 식탐의 발현 속에서 모두가 한 목소리로 추켜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야, 너 아니었으면 쫄쫄 굶을 뻔했다."
"얘가 그렇게 공부를 하더라고, 내 알아봤다. 역시 여행은 이 녀석 없음 안돼."
위치와 정보를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것은 이렇듯 동료들의 찬사를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공간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가까운 일본으로 떠나 볼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 1위의 위상을 좀체 내주지 않았던 오사카입니다. 간사이 공항으로 오사카에 도착해 오사카만 보고 오는 관광객은 흔치 않을 겁니다.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교토와 나라, 고베 등이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해 있으니 '1일 1도시'의 기쁨을 외면하는 게 이상한 것이겠죠.
오사카
비단 맛집으로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간사이 지방도시의 지도를 입수해 갈 곳을 표시해 가며 며칠을 들여다보면, 다운타운과 유적들의 위치가 지도와 함께 머릿속에 저장되면서 익숙해집니다. 나라와 헤이안 시대의 중심이었던 나라와 교토의 지도를 보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당시의 주작대로가 지금도 확실하게 그려집니다. JR역에 내려 관광안내도를 보니 중국의 왕조를 모방해 구성된 도시의 공간배치가 이처럼 확연하게 드러날 수 없습니다. 위치 탐색이 목적이었던 한 도시의 지도와 지형은 곧 그곳의 역사와 함께 해당 지역의 특성과 문화, 산업까지도 짐작하게 해 줍니다. 고베항은 지리적 특성상 외래의 문물이 흘러들어오기 쉬웠고 그로 인해 동서양이 혼합된 문화가 퍼진 양상을 그려볼 수 있겠고요, 나라와 교토의 격자형 도시 구성은 역사적인 의미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나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문화재들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편리하다는 것도 쉽게 짐작 가능합니다.
당(唐)의 수도 장안을 모방해 건설된 나라시대의 도읍지, 헤이조쿄
우주에 퍼져 있는 모든 존재는 씨줄과 날줄이 얽혀 만들어진 산물입니다. 세상 속 나는 대한민국 제주의 이 자리에서 인체를 이루는 분자들의 총합으로 구성되어 뇌를 통한 명령을 손끝으로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내가 앉아있는 이 자리 역시 지구상에 한 곳밖에 없는 씨줄과 날줄의 교차점입니다. 위도의 위(緯)는 씨줄, 경도의 경(經)은 곧 날줄을 뜻한다고 하지요.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스쳐 지나고 있는 세계의 모든 지점은 각기 다른 위도와 경도의 교차점인 것입니다. 지리(地理)가 지구의 씨줄과 날줄의 황홀한 교차를 이해하는 작업이라면, 단어의 뜻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위치'보다는 '이치'를 다루는 분야임이 틀림없겠습니다.
오늘의 공간으로 오기까지의 여정이 너무 길었습니다. 내공 없는 글은 구구절절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늘어지기 마련인 법, 언제쯤 명징하고 간소한 글로 뜻하는 표현을 할 수 있게 될지 막막합니다. 그 수준까지 가는 왕도가 어찌 있을는지요. 거북이처럼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다 보면 독자의 입장에서도 막힘이 없는 문장을 빚어낼 날이 있을 거라 믿어봅니다.
추억의 엣 시민회관, 서울시의회 건물을 왼쪽으로 끼고 광화문 방향으로 조금 걸어와 보니 도로원표(道路元標)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라면 공식적인 중심이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이미 수없이 걸어서 지났던 곳이 그 포인트였음을 그동안 왜 눈치도 채지 못했을까요. 진정한 여행자가 되기엔 자격미달이었나 봅니다. 무심했던 자신을 탓하며 신기하게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아래의 연혁을 읽어보니 '서울과 전국 주요 도시 간의 도로상 거리를 표시하는 기준점'이라고 돼 있습니다. 원래는 지금의 이순신 장군 동상 자리에 있었으나 1997년에 이곳 세종로 네거리로 위치를 옮겼다고 하는데요,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 도시에도 기준 원표가 모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긴 그래야 정확한 두 지점 간의 거리가 나오겠지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477킬로미터라는 것은, 바로 이곳 서울의 도로원표로부터 옛 부산시청 교차로 교통섬 안에 있는 도로원표까지의 거리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영문으로는 위의 사진처럼 'The zero milestone'라고 쓰여 있습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의 백악관 앞에도 'Zero mile stone'이라는 도로원표가 설치되어 있고, 프랑스는 파리 노트르담 성당 앞에 'Zero Point'라는 도로원표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해외여행을 할 때 단골 피사체가 되는 '여기서부터 몇 km 표지판'에서 거리의 종착점이 되는 곳도 이곳이었군요. 그야말로 의미심장한 포인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그 부담스러운 두께에도 불구하고, 지리적 환경과 그로 인한 기후와 식생의 다양성이 인류 생활상의 차이를 가져왔으며 지구상의 일부 지역은 그 열악한 자연환경을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해 현재의 대륙간, 지역 간 문명 발전의 차이를 가져왔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이 핵심일 수 있겠는데요. 결국 태어나면서부터 앞서 간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간 서구 사회는 그들 조상의 능력이 탁월해서 문명을 먼저 향유한 것도 아니며, 더딘 발전으로 제국주의의 볼모가 되었던 제3세계 국가들의 국민 역시 그들이 열등해서 착취와 노역에 시달렸던 것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하는데 필요했던 지리와 지형의 개념이 인간세의 서로 다른 운명을 결정하는 엄청난 전제조건이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어디를 가든 나침반을 머릿속에 장착하고 다니는 자세가 참된 여행자의 덕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종로를 대각선으로 건너 종각역 부근으로 갑니다. 번화한 종로의 큰 길가 한 블록 뒤로 가보니 '피맛골'을 알리는 입구가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는 피맛골의 유래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맛집들이 포진해 있다고 하니 괜스레 먹을거리와 관련된 이름 - '피 맛'이라니요, 흡혈귀의 입장에선 먹자골목과 다름 아니겠습니다 - 인가 싶었지만 깔끔한 입구의 이미지와는 다른 역사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종로는 궁궐이 가까워 높으신 분들이 자주 행차하는 길목이었는데요, 서민들은 고관대작이 지날 때마다 엎드려 예를 갖추어야 했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와 정부청사, 국회가 지척에 있는 셈이니 높으신 분들이 오죽 많았을까요. 허리가 욱신거릴 정도로 엎드려야 할 일이 잦자 백성들은 아예 대로의 뒤쪽 좁은 길로 돌아서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백이십 퍼센트 이해가 되고도 남지 않습니까. 회사 내에서 상사를 마주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건만 하늘 같은 나라님들께는 목례 정도로 해결될 예가 아닌 것입니다. 관절의 빠른 노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게 맞는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높은 분들이 타고 있는 '말을 피한다'는 의미에서 피(避)마(馬)골, 즉 '피맛골'이 된 것이군요. 코로나19 시국에선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모두가 넓은 길을 놔두고 이면의 좁은 길로 다니려니 어깨를 부딪힐 수밖에 없는 밀집된 공간이었겠습니다. 사람이 몰리는 길이었으니 저렴하고 소박한 서민의 맛집들도 앞다퉈 들어서게 되었을 것이고, 자연스레 먹자골목의 기능도 추가된 공간으로 거듭났을 것입니다. 이래저래 피맛골은 서민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회포를 풀 공간이 될 운명을 지녀야 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간중간 끊어진 피맛골은 종로 3가 쪽으로 가서 다시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쪽의 피맛골 분위기는 종각 쪽 입구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허름한 건물 뒤편, 어지럽게 엉켜있는 전선들과 바닥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 페인트가 벗겨져 회색의 속살이 드러난 담벼락들이 도시의 분위기를 무겁게 내리누릅니다. 높은 분들의 시야에선 절대 포착될 수 없는 서민의 팍팍한 삶의 민낯과도 같습니다. 존재할 수밖에 없는 대도시의 암울함인 것인지요.
종로 3가에서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대학생 시절 이곳에 있는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느라 매일같이 오간 이유로 익숙한 공간들이 제법 눈에 보입니다만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지난겨울 찾은 익선동이 떠오릅니다. 오래된 전통가옥들이 리모델링을 통해 개성 있는 음식점이나 액세서리 가게 등으로 변신한 지 오래였습니다. 길 건너 고층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이 배경이 되는 역설과 대비의 공간입니다. 과거 피맛골이 이랬을까요? 보행자들의 어깨가 쉼 없이 부딪히는 좁디좁은 골목길이지만 그래서 겨울엔 오히려 아늑함이 느껴집니다. 반짝이는 젊음들은 스스로가 풍경의 일부가 되어 익선동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수놓고 있었습니다. 곱게 부활한 옛 것을 가장 환영하는 주체는 청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젊음은 분명히 옛 것을 구식이라 여기고 마뜩잖게 생각할 거라고 깊은 고민 없이 예상하는 건 기성세대들뿐입니다. 익선동 골목 안의 옛 것들은 반짝이는 청춘들이 태어나 처음 접하는 최신 트렌드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전통의 공간은 곧 힙 플레이스이자 핫 플레이스인 것입니다. 협소한 길목에서 맛집 탐방을 위해 긴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옆 테이블 커플의 사랑의 속삭임조차 생생히 전해져 올 정도로 바싹 붙어있는 자리 역시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뉴트로의 낭만을 위해서라면 이쯤은 감수하는 그들입니다.
익선동 골목
모든 샵들이 들어와 있는 대형 쇼핑센터나 백화점에 '소비'를 위해서 간다면, 몇 평 안되지만 개성 있는 점포에는 소비'경험'을 위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립니다. "난 한놈만 패" 하고 말하는 영화 속 캐릭터처럼 작지만 한 분야에 특화된 업장은 그 뚝심으로 유명세를 자랑하곤 하는데요, SNS의 막강한 힘으로 전국에서 손님이 몰려드는 맛집도 이곳 익선동 골목에 다수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지만 강한 것들의 시대일까요. 규모의 경제가 세포의 경제를 두려워할 때가 온 듯합니다.
어느 날 아침 전기면도기를 청소하다가 신기하게 느껴진 것이 있었습니다. 사실 신기한 게 아닌데도 말이죠. 뚜껑을 열고 면도기 내부를 전용 솔로 슥슥 털어내는데 미세한 수염 분말(?)이 손에 묻어, 마치 숯을 만진 것 마냥 두 손이 시커멓게 되었습니다. 흐르는 물에 면도기와 손을 씻어내면서 문득 그 원리가 궁금해지더군요. 며칠 면도를 하지 않아 덥수룩해진 턱에 붙은 수염은 아무리 만져봐도 손에 묻어나는 것이 없는데, 미세하게 잘려 가루가 되어 버린 수염의 미분화된 잔해들은 살짝만 닿아도 손을 온통 시커멓게 만듭니다. 물리적인 크기만 변했을 뿐일 텐데 염색의 기능이 생겨난 것이죠. 작은 것의 위대함까지는 아니어도 작은 단위로 쪼개지며 나타나는 특별한 기능에 대해서는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물질의 특질은 기본단위나 원자 단위에 가까워질수록 더 발현되는 법일까요? 꽃잎이나 광물도 잘게 부서진 뒤 염료로서의 훌륭한 역할을 해 내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지저분하게 수염을 예로 든 것이 송구해집니다만, 면도를 하는 순간에 느낀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해 봅니다. 하긴 아무리 작은 원자라 하더라도 원자핵과 그 주위의 전자의 결합방식에 따라 명확한 특질을 가지고 있으니 작은 것이 확실하고 강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진리에 다름 아닐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익선동의 점포들 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노포들은 이런 소강(小强)의 진리를 이미 깨우친 듯하군요.
씨줄과 날줄의 수많은 흔적들 중 대한민국 역사의 흥망성쇠와 함께 했던 교차점들이 유난히 많았던 세종로와 종로 일대입니다. 그만큼 주목을 받았으면서도 무거운 중력을 견디어내야 했던 장소들의 집합처일 텐데요, 이 역시 공간이 지닌 운명이라면 운명일 것도 같습니다.
도로 원표를 떠받치며 대한민국 수도 중심의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장소가 있고, 힘없는 도심 서민들의 주된 도피처가 되어주며 굴곡진 민심의 메아리를 되보냈을 공간이 있다면, 힘없이 스러져갈 운명을 멋지게 탈피해 이 시대의 젊은 세포들과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는 공간도 속속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어떤 공간들보다 무거운 짐을 지어 왔던 서울의 한 복판, 부담을 놓아버리고 조금은 가벼운 몸짓으로 날아오를 것을 기대해 봅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튼튼한 씨줄과 날줄의 조합으로 영원한 대한민국의 코어로 남아줄 것을 부탁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