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성당의 클래식 공연
여행하는 자의 신체는 두 가지 의미에서 바쁘다. 첫 번째 바쁨은 때로는 안쓰럽다. 여행자는 재충전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떠나왔어도, 늘 그렇듯 스파이더맨의 거미줄보다 끈끈한 현실의 촉수를 끊어내기는 힘들다. 협력업체 과장의 긴급한 메시지는 지체 없이 확인해야 하고, 자리 비운 그를 대신한 후배의 긴급 구조 요청을 외면하면 다음 휴가 내기도 민망해지는 법이다. 모진 마음을 먹고 일터와의 연결을 단절한 사람일지라도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골라내 보기 좋게 배치하는 것도 일이고, 부러움을 사되 그다지 잘난 체하지 않아 보이는 문장을 고심하는 것 역시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이다.
이 모든 것을 초연한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의 여행자로 보인다. 느긋하고 여유로울뿐더러 제대로 된 휴식의 즐거움을 아는 자들이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대도시에 머물러도 그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독보적이다. 비움의 본보기가 되어 낯선 공간으로 저절로 흡수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감각기관만큼은 절대 쉬는 법이 없다. 두 번째 바쁨이다. 고요한 눈동자는 사실 산맥 너머의 풍광을 분절 없이 감상하는 중이고, 유럽의 가을 도심을 걷는 여행자의 후각은 젖은 낙엽의 매캐한 향기를 포착한 뒤 뇌의 변연체로 흘려보내 추억을 상기하느라 쉴 틈이 없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거친 벽에 손바닥을 쓸어보기만 해도 지옥과 같던 날의 고통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눈과 귀, 코와 입, 손과 발의 감각은 그대로 허파와 심장을 침투해 들어간다.
오늘은 철저히 두 번째 번거로움을 선택하려 한다. 긴장했던 손과 고생했던 발을 무장해제시키고 오로지 청각에 기댈 것이다. 그것도 느슨하게. 음악의 도시 빈에 왔으니 한 번쯤은 모든 걸 귓전에 맡기는 날도 있어야 한다.
클래식의 본좌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빈에서는 감상의 기회도 그만큼 풍성하다. 여행자가 즐길 수 있는 빈의 음악회는 장소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겠다. 먼저 음악감상만을 위한 정식 공연장에서의 감상이다. 알베르티나 건너편에 있었던 슈타츠오퍼에서는 고품격 오페라 공연이 열리고, 빈 음악의 중심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홈그라운드다. 네 곳의 공연장을 보유한 콘체르트하우스(Konzerthaus)는 연간 750여 회의 공연을 제공하며 양과 질에서 넘사벽인 콘서트홀이다.
정식 공연장보다 음향 전달효과는 떨어질지 몰라도, 성당이나 궁전에서 마련되는 공연도 수준급이다. 비발디의 사계 콘서트로 명성이 자자한 카를 성당(Karlskirche)과 두말하면 잔소리인 슈테판 대성당의 주말 공연, 그리고 쇤브룬 궁전에서 야간에 열리는 분위기 만점의 클래식 공연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세기말 빈의 영화가 집중되어 있는 시내 중심부에서 저녁 시간까지 머물 여행자라면, 그중에서 슈테판 대성당과 가까운 성 베드로 성당(St.Peterskirche)의 공연을 추천한다. 구글맵으로 경로를 탐색하면 슈테판 대성당에서 도보로 3분, 자동차로는 5분이다. 걸어서도 코 앞인데 주위가 온통 일방통행로니 차 타는 게 손해라는 뜻이다. 성 베드로 성당은 하루 세 차례(13:30, 15:00, 19:00)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오르간 연주로 알려져 있으나, 목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8시 30분에 시작하는 '클래식 앙상블' 공연이 무엇보다 제격이다. 미사를 보던 기다란 나무 의자가 곧 공연장 좌석이 된다. 그래서 이 성당의 신자가 꽂아놓은 찬송가 악보가 그대로 놓여 있기도 하다. 엉덩이 근육이 부실한 사람은 좌우로 무게중심을 바꿔가며 앉아야 둔부에 고통이 덜할 것이다. 약간의 통증과 맞바꿀 가치가 충분한 것은 비교적 저렴한 감상 비용, 그리고 성당 내부의 비현실적 화려함과 현악 4중주의 연주가 조합되어 나오는 공감각의 앙상블이다. 성 베드로 성당의 공연 감상은 시청각의 빈 틈을 허용하지 않는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알프스 너머 이탈리아의 기세를 아직도 느낄 수 있는 오페라 공연이 아니어서, 비발디와 드보르자크를 제외하면 연주 목록은 빈에서 활약한 슈퍼스타들의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현악 4중주의 실내악은 웅장함 대신 황홀함을 선사하며 몰입을 이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여행 차 왔다가 성당에 억지로 끌려온 소년이 졸고 있는 게 보인다. 그게 더 자연스럽다. 냉방 장치가 없는 내부는 연주자의 재킷을 벗기고, 어색한 장벽 없는 솔직한 공연은 여행자를 무장해제시키며 대가들의 시대로 시간을 되돌린다. 모차르트의 세레나데,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Eine Kleine Nachtmusik)>로 출발한 음악여행은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과 슈베르트의 가곡 <죽음과 소녀(Tod und das Mädchen)>를 지나, 프라하의 묘지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드보르자크의 현악 4중주 12번 <아메리카(Amerikanisches)>로 끝을 맺는다. 무대에 조명이 집중된 정식 공연장이 아니라서, 객석이 된 미사석에 앉은 관객들의 표정이 적나라하다. 입을 다물 줄 모르고 음악에 몰입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고개를 흔들면서 입이 악기가 된 듯 흥얼거리거나 성당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탐색하는 관객들이 뒤섞인다. 격식이 덜한 빈의 밤 공연은 누구도 부추기거나 나무라지 않으며, 화려하지만 간소한 클래식의 선율을 모두에게 선물했다.
연주가 마무리되자 그제야 황금빛으로 가득한 성당의 양식이 눈에 들어온다. 돔에 그려진 천장화에서 캐노피와 설교대, 제단의 화려한 장식까지 온통 금빛의 향연이다. 공연장으로도 기능해야 해 덧붙인 조명도 빛을 발하고 있으니 이쯤 되면 빛들이 다투는 형국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휘황 찬란이고 눈이 시릴 정도의 동시 발광이다.
중세에 지어진 성당은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했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으로 개축되었던 건물은 휘황찬란한 바로크 양식으로 18세기 초에 재탄생하게 되는데, 지금까지도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성당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로크 양식은 치장과 장식이 과도해 르네상스의 균형에서 벗어난 스타일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사람으로 치자면 진한 화장과 과한 액세서리를 두른 졸부가 연상된다고 할까. 이렇듯 과하게 덧붙여지고 그려진 바로크는 절대권력의 의도에서 비롯된 양식이다. 군주의 힘을 강조하려다 보니 웅장하고,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려 성당이나 교회에 입힌 바로크 양식은 오히려 신앙의 본질을 망각하게 하는 부작용도 있었다고 한다. 18세기 오스트리아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한 전성기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뿌리를 박고 있던 곳이다. 견고한 권력이 화려함을 과시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던 시기였다는 뜻이다.
유럽 대륙을 반으로 갈라 남과 북을 구분하면 종교와 예술 역시 어느 정도는 양분되어 전해 내려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을 전제해 두겠다. 먼저 남프랑스와 이탈리아 반도로 대표되는 지중해 연안을 둘러보면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경연장이나 마찬가지다. 르네상스 이후로 한정해 봐도,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서 인상주의와 입체파, 야수파의 거장들은 대부분 고향이 어딘지를 떠나 남쪽의 따스한 햇빛을 양분 삼아 성장한 인물들이다. 음악은 어떨까. 고전주의 음악가들이 등장하기 전 이탈리아에서 오페라와 오라토리오가 유행해 북쪽으로 넘어왔지만, 이후 이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세기를 대표할만한 음악계의 거성은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고, 푸치니와 베르디의 명성은 한참 뒤인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의 업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알프스의 북으로 올라가면 어떨까. 독일을 중심으로 한 중, 북부 유럽은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해 악성과 천재들이 자웅을 겨루었던 경연장이다. 바로크 음악 직후 등장한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낭만주의로 이어지는 대가의 계보는 클래식의 기둥을 이루는 명성, 그 자체다. 미술 쪽에서는 루벤스를 위시한 플랑드르(현재의 벨기에, 네덜란드 일부 지역) 회화가 빛을 발했지만, 전대미문인 음악 부문의 발화에 비한다면 화려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유가 뭘까?
자연적이자 물리적인 요인이 있을 것이다. 위에서 나는 남부의 '햇빛'을 언급했는데, 색과 빛을 조합하고 창조하는 예술인 회화 장르를 고려하면 유추하기 어렵지 않은 기본 조건이다. 투명한 하늘 아래 반짝이는 과실나무와 살랑이는 바람에 넘실거리는 밀밭, 총천연색의 꽃들로 채워진 남부의 환경에선 그리지 말라고 해도 집밖으로 뛰쳐나와 마을을 스케치하려는 화가들이 넘치지 않았을까. 온화하고 기름진 땅은 흥겹고 해학적인 줄거리의 오페라를 창작할 무대도 되었을 것이다.
남쪽에 비해 서늘하고 음산한 중, 북부 유럽은 회색빛 하늘이 익숙하다. 들판에서 노닐 의욕은 사라지고 생각이 깊어지면서 삶에 대한 진지한 고뇌에 빠지는 일이 잦다. 철학은 일상이 되었고 빛 대신 소리에 천착하는 예술가들이 늘면서, 장중하고 극적인 음악이 만들어진다. 표정과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기악이 중심이 되어 속 깊은 곳의 고갱이를 터뜨리고 풀어낸다. 반면 다채로운 자연의 빛을 상실한 미술가는 대상의 내면을 그려내거나, 화폭의 구석에서 한 줄기 구원의 빛을 받아들이는 것에 천착할 뿐이다.
소리의 예술과 빛의 예술이 나뉜 두 번째 이유는 종교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16세기 초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 게시 이후 갈라진 신교와 구교의 분화는 종교시설의 모습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며 성상(聖像)을 엄격히 제한했던 유대교와 달리 기독교의 성소는 성화와 성상, 제단의 각축장이었다. 제단화나 천장화의 대가, 완벽한 성상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조각가가 대접받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다 맞닥뜨린 종교개혁의 열풍은 성경의 가르침이 우선이며, 교회 안을 장식하고 있는 모든 기물과 그림은 철저히 부차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신도들에게 심어주었다. 프로테스탄트라는 신교도들을 위해 지어지기 시작한 교회 내부에는 과한 장식이 배제되었고, 품을 많이 들여야 하는 조각이나 그림은 사라지게 되었다. 가톨릭의 신앙심을 유발했던 그림과 조각이 사라지자 교회는 음악에 성스러움이란 효과를 담아야 했다. 오르간은 장중해졌으며,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 선율을 작곡할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필요했다. 신교의 발상지였던 독일을 중심으로 중, 북부 유럽에선 신교가 위세를 떨치며 확장했고, 자연히 성가를 창작해 낼 음악가들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반면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에선 여전히 구교가 중심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성화와 성상은 여전히 신성물이었으며 화가와 조각가들이 맡아야 할 작업들은 숱하게 남아있었다.
자연환경의 차이와 신교와 구교의 분화. 큰 두 갈래의 요소가 유럽 예술이 지역별로 전문화될 수밖에 없었던 주요한 계기가 아니었을까.
성당을 나온 관객들은 빈의 반짝이는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밤 10시가 임박했으니 숙소로 돌아가거나, 빈의 나이트라이프를 만끽하려는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클래식의 도시 빈의 밤하늘은 현악기가 수놓은 음표들로 가득한 듯하다. 오스트리아의 음악사에 있어 빈의 세기말은 그저 전성기에 뒤따라온 예술의 연장선일 뿐이다.
여기는 유럽 예술의 중심, 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