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쯤은 커피와 디저트

빈에서는 카페에 앉아

by Total Eclipse







체코 프라하에서 시작한 반시계방향의 동선은 거의 원을 완성해 가고 있다. 중부 유럽의 아모르파티와 메멘토모리를 체득하는 여정은 빈을 제외하면 이제 도시 한 곳밖에 남지 않았다. 여행의 후반을 지나며 그동안 섭취한 이야기들은 쌓이고 쌓여, 머리와 가슴에도 휴식이 절실하다. 그러나 백 년 전 영화가 거리마다 증명되는 빈이라는 도시는 여행자를 느슨하게 풀어놓지 않는다. 세기말의 정신은 현재의 공기를 타고 둥둥 부유하다 사람들의 들숨을 타고 들어가 그들을 좀비로 만든다. 속절없이 숙주가 된 우리는 예술과 문화의 유적지로 취한 듯 발길을 돌릴 뿐이다. 그래도 한 박자는 쉬어야겠다, 커피 한 잔 하면서. 예술가들의 교류가 활발했던 카페라면 범상치 않을 것이다. 오늘 하루는 달콤 쌉싸름에 이 한 몸 던져 넣으려 한다. 느긋한 일정을 생각하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열흘 이상의 여행이라면 이런 날도 있어야 한다.

아뿔싸. 소문난 맛만 즐기면 될 줄 알았더니 그게 다가 아니다. 카페문화의 중심 빈의 대표 카페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알지 못하면 커피와 디저트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는다. 120년에서 길게는 240년 이상 영업을 해 온 카페에 왜 쟁여놓은 이야기가 없겠는가. 그럼 타협을 해야겠다. 밀려드는 손님 탓에 눈치는 좀 보이겠지만, 커피 한 잔을 더 시키더라도 유서 있는 카페 좌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최대한 버틸 참이다. 그렇게 모처럼 커피 향을 만끽하며 여유를 즐기는 대신, 타임머신을 타고 세기말로 돌아가 카페가 품고 있는 내밀한 사연들을 곱씹어보는 것이다. 빈의 대장 카페들은 걸어서도 충분히 오갈 만한 범위 안에 흩어져 있다. 한 곳에서 마신 커피의 기운이 가시기도 전에 다음 카페의 간판이 보일 것이다. 먼저 빈 카페의 중심, '카페 첸트랄(Cafe Central)'로 간다. 예상대로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보였지만 그쯤은 각오한 바이다. 식당이 아니라서 테이블 회전이 비교적 빠른 편이다. 5분 정도를 대기한 뒤 웨이터가 빈자리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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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첸트랄


화려한 디저트 라인업으로 유명한 빈의 카페에서는 커피를 주문하기 전, 눈 호강은 애피타이저가 된다. 쇼케이스에 열 맞춰 늘어선 케이크들의 자태가 영롱하다. 원색의 조화는 미각을 돋우며, 보기 좋은 케이크가 먹기도 좋다는 불변의 진리를 새삼 각인시킨다. 카페치고 지나치게 높은 천장은 손님들의 발화를 다양한 각도로 반향시켜 웅성거리는 메아리를 만들어내는데, 작은 공연장에 와 있는 느낌을 줘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다. 누구라도 결정 장애가 올 법한 케이크 낙점을 끝내고, 아인슈패너(Einspänner)와 함께 주문을 한다. 달달한 케이크에는 구수한 아메리카노가 궁합이 맞을지라도, 빈에 왔으니 일단은 아인슈패너다. 어쩔 수 없다.

20240827_124112.jpg 카페 첸트랄 내부
20240827_124521.jpg 쇼케이스 속 다양한 케이크
20240827_131106.jpg 아인슈패너와 힘비어 하모니(Himbeer-Harmony) 브라우니


힘비어(Himbeer)는 산딸기다. 그 의미를 몰라도 케이크 위에 사뿐히 한 알이 올려져 있으니 산딸기 케이크임을 모를 수 없다. 집중할 것은 아인슈패너다.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Einspänner)'의 마부가 고삐를 잡지 않은 한 손으로도 쏟지 않고 마실 수 있는 커피였던 아인슈패너는 이젠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가 비엔나커피라고 오해했던 것의 원형이다. 아이스크림이 아닌 휘핑크림이 커피 위에 올려져 있어 커피의 탈출을 막는다. 크림 층이 두꺼워 스푼으로 휘휘 저어가며 커피와 크림을 함께 맛보는 것이 제격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달지 않다. 커피 위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익숙한 입맛 때문일 것이다. 단짠이 아닌 단단을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여간해서 공짜 물 인심이 없는 게 서양이라지만 빈의 카페에서는 커피를 주문하기도 전에 생수 한 컵이 나온다. 입을 잘 헹구고 커피의 참 풍미를 느껴보라는 선의에서 비롯된 서비스니 깔끔하게 호응해 주어도 좋겠다.

카페 첸트랄은 원래 한 공작이 살던 저택의 커다란 홀이었다. 그래서 범상치 않은 천장의 높이와 구조를 자랑했던 것이다. 공간 개조 후 영업을 시작한 것이 1876년이니 150년 전통의 맛집이다. 개업을 하자마자 첸트랄은 세기말 빈의 명사들이 사랑해마지 않은 공간이 되었다. 슈테판 츠바이크, 카를 크라우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아르놀트 쇤베르크, 아돌프 로스, 아르투르 슈니츨러 등 시대의 인재들은 첸트랄에서 조우하며 식견을 넓혔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들의 왁자지껄한 대화가 공간을 가득 채웠을 첸트랄의 과거는 역사의 울림통이었다.

일부러 한 인물을 빼놓았더랬다. 카페에 들어올 때부터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인간 카페 첸트랄', 작가 페터 알텐베르크(Peter Altenberg, 1859~1919)는 이곳의 영원한 단골이 되어 지금도 밀려들어오는 손님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중이다.

1765600324148.jpg 카페 첸트랄에 있는 페터 알텐베르크 인형


우리가 그렇듯 세기말의 명사들도 자주 찾는 카페가 있었겠지만 페터 알텐베르크는 오직 첸트랄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첸트랄의 사장이었다면 그를 무턱대고 반길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신경과민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첸트랄의 '죽돌이'가 된 알텐베르크는 한마디로 외상 전문 괴짜였다. 늘 동료 작가나 예술가들에게 영수증을 건네 커피값을 치르게 하였으며,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오가는 손님들 - 대부분 여자들 - 을 관찰한 뒤 각각의 인상을 메모지에 기록하곤 했다. 그 메모지의 총합은 물론 작품이 되었지만, 요즘 카페에서 이랬다간 변태 혹은 성추행범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버젓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알텐베르크는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카페에서 산문을 끄적이며 하루 종일 앉아있는 게 낙이었다고 하는데, 뛰어난 필력으로 엽서에 쓴 글을 팔아가며 용돈 벌이를 했다고 한다. 정리 안된 수염에 벗어진 머리, 땅딸막한 체형이었지만 여러 사진에서 확인한 그의 손만큼은 어찌 그리 고울 수 있는지. 얼굴에서는 연상이 쉽지 않은 섬섬옥수는 천상 글 써야 할 알텐베르크의 팔자를 짐작하게 한다. '카페 문학'이란 장르를 탄생시킨 알텐베르크는 외상이 미안했는지, 죽어서 첸트랄에 보답을 하고 있다. 그것도 백 년이 넘게. 사장의 눈총을 받았을 짠돌이 작가는 이제 카페의 명물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역시 사람은 외길을 파야 한다.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뻔뻔한 창작. 카페에 있는 알텐베르크의 인형은 조야해 실망스럽다가도, 이런 모습이 되레 소탈한 그를 표현해 주는 것 같아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럴 수가! 그의 산문 <꾸밈없는 인생의 그림(Bilderbogen Des Kleinen Lebens)>을 읽어보니 그와 내가 통하는 면이 있었다. 잘츠부르크 편 글의 소제목 중 하나를 <대칭이 싫어서>로 박아 넣었는데, 그 후 접한 알텐베르크의 글에서 그의 '대칭 혐오'가 드러난 게 아닌가.


무엇보다도 모든 좌우 대칭이 깨져야만 한다. 좌우 대칭을 노골적으로 피해야 한다. 좌우 대칭은 정원을 자연 공원으로, 원시림으로 꿈꾸는 환상을 방해한다.

-<꾸밈없는 인생의 그림> 198p 페터 알텐베르크, 민음사


좋아하는 대상을 공유한 사람들보다도 같은 무언가를 극혐하는 무리는 결속력이 막강하다. 오늘날 알텐베르크를 알현했더라면 절이라도 꾸벅 올리고픈 심정이다. 하긴 그와 나, 공통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내세울 만한 외모가 아니며 손은 장년의 남성치곤 그리 거친 편이 아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단골로 가는 카페가 있기도 하다. 존경스러우면 뭐라도 닮고 싶어지는 법이라 주저리주저리다. 다만 난 누구에게 커피를 얻어마시진 않는다. 사면 샀지. 그러니 카페에서 우연히 절 만났다면 한 잔 쏘라고 하셔도 좋겠습니다.


울렁거리는 속에도 불구하고 2차 카페 투어를 떠난다. 떠난다고는 했지만 첸트랄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소화기관에 여유를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걷는다. 두 번째 장소는 1786년에 개업해 빈의 상징적인 카페 중 가장 형님 격인 '데멜(DEMEL)'이다.

20240828_132149.jpg 카페 데멜


예약을 받지 않는 카페 데멜 앞은 언제나 대기줄이 있다. 기다리는 십여 분조차 꿀 같은 시간이다. 때로는 온라인 예약이 없는 곳이 단순해서 명쾌하다. 오는 순서대로 들어가면 되니까. 데멜로 입장하면 동공부터 확장된다. 쇼케이스의 케이크들은 첸트랄의 강렬한 색의 그것들보다 톤다운되어 부드러운 식감을 예상하게 하지만, 테이크 아웃 카운터 뒤로 보이는 디저트 매장은 무지갯빛 파라다이스다. 안내된 자리에 앉아 메뉴를 고르자마자 카페 1층을 채우고 있는 디저트 군상들을 샅샅이 탐색한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데멜의 케이크를 지독히도 탐닉했다고 하는데, 비주얼로는 그럴만하겠다 싶다. 아내인 시시도 다이어트를 위해 입술을 깨물어가며 데멜 케이크의 유혹을 매번 이겨내야 했다는 후문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왕궁에 납품을 했던 가게라면 내공이 보통이 아닐 것이다. 모차르트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었던 케이크의 성역이라면 가업은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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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8_125326.jpg 카페 데멜의 디저트


빈에서 구입할 기념품을 찾는다면 데멜의 과자나 초콜릿 류도 추천할 만하다. 열쇠고리나 냉장고 자석만큼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잘만 들고 간다면 넉넉한 유통기한에 고급스러운 포장과 검증이 필요 없는 맛으로 받는 이의 찐 감탄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데멜엔 일일드라마 혹은 첩보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만한 역사가 있다. 초콜릿과 살구잼의 궁합으로 유명한 디저트, '자허 토르테'로 오스트리아 카페 제일의 자리에 오른 자허(Zacher)와 데멜의 범상치 않은 인연 이야기다. 천하의 라이벌이었던 두 카페는 어느 날 혼인으로 동맹(?)을 이루게 되었다. 자허 대표의 아들과 데멜 대표의 딸이 결혼을 한 것이다. 마치 강대국 간의 긴장을 왕족 간 혼인으로 풀고 세를 확장시킨 중세 이후 유럽 왕실의 무수한 사례가 떠오른다. 이러다가 합병된 슈퍼 메가 카페가 등장하는 건가 싶었던 그때, 남편인 자허의 아들은 자허 토르테의 제조법을 아내에게 전수해 데벨 판 자허 토르테가 만들어지도록 도왔다. 아내를 지극히도 사랑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사돈이라도 자허 토르테의 비법만큼은 넘길 수 없었던 시댁, 카페 자허는 제조법을 가로챈 혐의로 데멜을 고소했고, 판결에서 승소하며 메뉴의 독점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긴 시간 진행된 재판으로 자허 토르테의 레시피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고, 결국 빈의 많은 카페에서 일반명사화된 자허토르테를 제조해 만드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설립자이자 카페의 명칭인 '자허'는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취급하는 토르테와 자연스럽게 결합한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제조법의 유출도 길게 보면 카페 자허에도 손해가 되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집안싸움으로까지 번졌던 카페 명가들의 전쟁은 자허 토르테의 위상을 그만큼 강화시켜 준 셈이고, 오리지날리티의 명성은 그와 비례해 한 단계 도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허토르테.jpeg 카페 자허의 자허토르테


커피와 디저트를 파는 달큼한 공간은 근현대사의 증인인 동시에 놀라운 사연을 품은 이야기 공장이었다. 첸트랄과 데멜, 자허는 인지도 끝판왕이지만, 천이백여 개나 있다고 하는 빈의 카페들은 저마다 반짝이는 역사를 자랑하며 오늘도 단골을 미소로 맞는다. 신문을 탐독하거나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시를 구상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적당한 고독과 함께 은거하거나. 카페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그들은 도시 풍경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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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때까지 가 보기로 한다. 지친 몸에 고열량을 주입할 목적으로 달달구리의 끝판왕 음료인 데멜의 아이스 쇼콜라데(Eisschokolade)를 주문한다. 효과는 있다. 여행자의 피로를 덜어준다. 부작용은 예상한 대로다. 여행 내내 쌓아 올린 느끼함의 화산이 폭발할 지경이다. 해외에서 한식을 자주 찾지 않아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입맛이지만 오늘은 참을성에 한계가 온 것이다. 위장의 치료가 절실하다. 우버 택시를 응급차 삼아 한식당으로 돌진한다. 메뉴판 위 빨간 것들만 시켜 기력을 잃은 위장을 다스리리라. 김치찌개와 비빔냉면은 기본값이다. 내일은 광대한 묘지를 돌아다녀야 하니 배불리 먹어둬야 한다.

빈의 빛나는 카페에서 알텐베르크는 오늘 밤에도 건너편 손님을 관찰하며 메모를 하고 있다. 제발 대놓고 쳐다보지 말라고 한 마디 해야겠다. 우리의 소중한 괴짜 천재가 오해받아 연행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