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는 즐겁습니다. 주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요. 더구나 새벽에 출근해 오후 두세 시쯤 퇴근하는 저로서는 온전한 하루가 주말에 더해 주어진 듯한 느낌이랄까요. 장마철에 흔치 않은 반짝이는 날씨 역시 모든 사물을 반사시키며 제주섬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여행자가 보통 그렇듯 그동안은 특정한 장소 몇 군데를 점찍고 나서 제주를 둘러보았습니다. 효율적인 운전을 위해 동선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놓고 서에서 동, 혹은 동에서 서로 선형적인 루트를 짰던 것이죠. 관광지와 맛집을 적절한 거리와 시간에 맞게 배치해 두고 하루를 구성하면, 특히 여행차 온 선후배나 친구들은 꽤 감탄스러운 칭찬을 늘어놓곤 했습니다. 워낙 오래 살았으니 저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음에도요.
제주도민이 된 지20년 가까이 흘러버린 이 시점에서 무언가 여행의 콘셉트를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예 행정구역상의 한 마을만 둘러보면서 제대로 알아보자는 생각 말이죠. 특정한 동(洞)이 될 수도 있고, 하나의 리(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여행지를 찍어가며 구경하는 방식이 뷔페식이라면, 각양각색인 제주의 마을 중 한 곳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살피는 것은 오직 하나의 메뉴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찾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골고루 이것저것 맛보지는 못하겠지만 '전복죽' 하나만은 기가 막히게 차려내는 소문난 맛집을 찾는 셈이니 되레 제주의 진국을 맛볼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게다가 하나의 마을 안에서만 움직인다면 동선의 효율 따위는 고려할 필요도 없는 일이겠습니다. 마을이 크지 않다면 걷기의 평화로움을 느끼며 특정한 지역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겠고,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그 마을 속 가장 맛깔스러운 로컬 식당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죠. TV에선 한참 전부터 도내 각 마을을 걸으며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호평을 받으며 방송되고 있었는데도 왜 보는 것에만 만족하고 실천하지는 못했던 건지, 굳어버린 머리가 안타까웠습니다. 도내 모든 마을을 단기간에 정복하리라는 무리한 진격보다는 시간이 나고 기분이 날 때 한 곳씩 한 곳씩, 각 마을의 매력을 찾아봐야겠다는 작은 결심을 해 봅니다.
제주 동북쪽의 구좌읍 평대리로 향했습니다. 도내 모든 마을을 적어도 한 번은 스치기라도 했을 테지만 내가 간 그곳이 평대리에 속했던 것인지는 신경 쓰지 못했던 게 사실이죠. 이젠 각 마을이 간직하고 있는 영광을 찾아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구좌읍 평대라(坪岱里), 뜻 그대로 '평평한 땅, 두둑' 모양의 마을입니다. 제주어로 평평한 들판을 뜻하는 '벵듸'라는 말에서 만들어진 지명입니다. 지금도 '벵듸'라는 말은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숨은 물벵듸(물이 고인 넓은 평지)' 등의 명칭에서도, 심지어 식당 이름에서도 볼 수 있어서 비교적 친근한 제주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 역시 비자림부터 바다까지 이어지는 지형이 비교적 평탄하기 때문에 '벵듸'라는 지명이 붙었을 텐데요, 알아둬야 할 것이 또 다른 '너른 들판'을 가리키는 제주어 '드르'와는 의미에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난드르', '알뜨르' 등으로 익숙한 드르는 그래도 쓸모 있는 경작지인데 반해, 벵듸는 척박하고 거친 땅을 표현할 때 쓰였다고 하는데요,평평하다 해도 화산재로 덮여 서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척박한 제주 동쪽 땅엔 '드르'보다는 이 '벵듸'란 지명이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척박한 벵듸지만 물 빠짐이 좋은 땅이라면 고맙게도 잘 자라 주는 당근을 재배작목으로 결정했던 것은 평대리민들의 지혜였습니다. 지금도 평대리를 포함한 구좌읍이 전국 당근 생산량의 2/3를 차지한다니, 이 근처에 당근케이크 맛집이 많다는 사실은 당연할 뿐이었습니다.
구좌읍 평대리 산간 쪽에 있는 M랜드
평탄하다고는 하지만 바다를 향해서 분명 내리막길입니다. 평대리는 앞의 지도에서 보셨듯 중산간에서 바닷가까지 길게 내달리는 마을입니다. 먼저 안쪽부터 시작합니다.
미로로 유명한 관광지를 찾습니다. 광고성 글이 절대 아니지만 앞으로 찾게 될 여러 공간에서도 비슷한 오해를 받을 수 있음을 직감합니다. 이야기를 풀어낼 거리가 있어서인데, 그럼에도 오해를 받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그런 곳에선 장소 자체에 대해 더 건조하게 던져놓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측백과 동백나무, 그리고 돌담으로 만들어놓은 미로가 넓게, '벵듸'스럽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입구에서부터 고민에 빠졌습니다. 정말 들어가야 하는지, 그냥 포기하고 전망대에 올라 조망만 할 건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여행에 있어서 위치 파악의 중요성을 그렇게도 강조하고 있는 제 자신이지만, 막상 그 위치 파악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미로 탐방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출구를 찾지 못해 당황하며 헤매는 잠시 후 저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그렇게 될 확률이 너무도 높았던 것입니다. 이런 쪽에 취미가 없다기보다는 소질을 키우려고 해도 관련된 부분의 두뇌가 덜 발달한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여행 전 차분히 지도를 보면서 위치를 파악하는 것과 번뜩이는 공간감각으로 즉각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능력이었습니다.
(좌) 측백나무 미로와 (우) 돌담 미로
극히 쉬운 길이 안내되어 있던 측백나무 미로를 지나니 만만찮은 돌담 미로가 나옵니다. 예상대로 헤매기 시작합니다. 출구가 바로 근처인 것 같은데 번번이 막다른 길에 막혀 버립니다. 누군가 미로의 벽에 손을 짚고 계속 이동하면 쉽게 출구로 향할 수 있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지만 소용없을 듯했습니다. 땀이 나면서 슬슬 다음 여정이 걱정되었습니다. 빡빡한 여행 일정이라면 미로를 체험하는 코스는 빼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행 중 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날 여정은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이죠. 인내심이 바닥이 날 무렵, 출구로 이어지는 통로를 찾아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일정의 차질 가능성을 떠나서 미로는 여름이나 겨울보다는 봄이나 가을에 갈 일이었습니다. 덥고 추울 때의 헤맴은 그 답답함과 고통이 몇 배는 될 테니까요.
미로의 출구와 이어지는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미로를 헤매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그 괴물이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역시 미로 하면, 아니 정확히 말해 '미궁(迷宮')하면...
바로 미노타우로스였습니다.
테세우스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미노타우로스, M랜드 건물의 벽화
그리스 신화에 익숙지 않은 분이라도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는 들어봤음직 할 텐데요, 신비로 가득한 신화 중에서도 유독 판타지 요소가 강한 데다가 이카루스 신화까지 이어지는 연속성으로 잘 알려진 것이 바로 미노타우로스, 혹은 테세우스 신화가 아닐까 합니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와 사랑에 빠져버린 왕비에 대한 적개심으로, 그 둘 사이에 낳은 자식인 미노타우로스를 최고의 발명가이자 건축가인 다이달로스가 설계한 미궁에 넣어 살게 합니다. 왕은 적국인 아테네로 하여금 전사와 처녀 각각 일곱 명씩을 이 미궁에 공물로 바칠 것을 요구해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삼게 하는데요, 바람난 부인에 대한 복수와 동시에 적국에는 공포심을 심어주었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공물 요구에 분노를 참지 못한 아테네 왕의 아들 테세우스가 미궁으로 자진해 들어가 결국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는 스토리인데요. 드라마에는 사랑과 배신이 있기 마련이죠, 테세우스에 홀딱 반한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가 미궁에 들어가는 테세우스에게 실뭉치를 건네줘, 미궁 속에서 실을 풀면서 나아가도록 탈출에 도움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를 알고 분노한 크레타 왕은 이 미궁을 설계한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그가 스스로 만든 작품 속에 가두어 버리게 되지요. 미궁 탈출이 어렵다고 생각한 다이달로스는 그의 특기를 살려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함께 아예 하늘로 날아오르고, 그 뒤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태양에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한 죄로 날개가 녹아 추락하고 맙니다.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다이달로스가 자신이 설계한 미궁에서 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굳이 날개를 만들었냐는 겁니다. 미노타우로스도 없으니 충분히 탈출이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나갈 수는 있지만 골치 아프게 길을 찾느니 그냥 날아버리자 했던 것인지, 그게 아니면 크레타 왕의 주문만 받고 설계는 다른 업자에게 하청을 주었던 거라 빠져나갈 길을 전혀 몰랐던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이 있었던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 현대의 작품인 듯한 돌고래 벽화의 모습
구좌읍 평대리에서 그리스까지 가 보았습니다만 한 가지는 명확히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유럽의 대성당에는 신비스러운 미궁을 보유한 곳이 많은데요, 미궁(迷宮)이란 말 그대로 미혹하는 공간, 집 등의 뜻이겠지요. 그런데 이 '미궁(Labyrinth)'은 '미로(Maze)'와는 - 특히 거기에 갇힌 사람의 입장에선 - 천지차이가 나는 개념입니다. 누가 처음 정의를 내렸을지 모르지만 미로는 선택할 곳, 막힌 곳이 많아 극단적일 경우 평생 그 안에 갇힐 수도 있는 곳인 반면 미궁은 다소 경로가 복잡할 뿐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하나로 연결돼 있는, 시간만 허락한다면 빠져나오는데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보자면 미로는 평대리의 M랜드 같은 곳 그 자체이고, 미궁은 두려움을 참고 쭉 나아가면 출구로 나올 수 있는 '귀신의 집'인 셈입니다. 우리는 흔히 답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러울 때 '미궁에 빠졌다'라고 표현합니다만 나 있는 길만 따라 걸으면 되는 것이 미궁이니 적절하지 않은 비유가 아닐까요. 앞이 안 보여 막막할 때는 미궁보다는 '미로'에 빠졌다'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리아드네는 미노스 궁전의 미궁에서 굳이 실뭉치를 테세우스에게 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길만 따라가면 출구가 나왔을 테니까요. 물론 아리따운 아리아드네가 건네주었으니 테세우스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을 만도 합니다. 탈출의 의지를 한층 북돋을 수 있었겠지요, 그게 어딥니까.
한번 더 생각하니 미궁이 미로보다 훨씬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도 있겠습니다. 미노타우로스 혹은 영화 <메이즈 러너>에 나오는 괴물들이 그 안에 숨어 있다면, '미로'에선 그것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미궁'에서는 길이 하나뿐이라 무조건 마주쳐서 싸워야 할 테니까요. 귀신의 집이 미궁이 아닌 미로 형태라면 망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가면을 쓰고 고생하는 알바생들의 헛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미로의 전경을 바라본 뒤 계단으로 내려가려는데 건물 안에 갇힌 새 한 마리가 심히 불안한 듯 날개를 파닥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메아리칩니다. 계단실의 상하좌우를 종횡무진하지만 출구를 찾아내지는 못합니다. 부질없습니다. 저러다 유리에 부딪혀 크게 다칠 것도 같습니다. 팔로 휘저어 방향을 알려줘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었습니다, 미로공원의 건물 안에서 정말로 갇힌 새라니요. 열린 세상으로의 인도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먼저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저 새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했습니다. 테세우스처럼 출구를 찾았을까요, 불쌍한 아테네 인들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탈진했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천장 쪽에 작은 틈이라도 발견하고 이카로스처럼 솟구쳐 올랐을까요. 부디 힘차게 창공을 가르며 잘 살아가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해안 쪽으로 달리다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니 수국 길이 반기고 이어 비자림이 나옵니다. 비자나무의 숲 그 자체가 관광명소가 된 지 오래지요, 15년쯤 만에 찾는 것 같습니다. 이름이 너무도 알려져 있어 도민들은 오히려 더 안 찾게 되는 그런 곳 중의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주차장에 빈 곳이 거의 없어 이상하다 싶더니만 차를 세우고 내려 매표소 쪽으로 가니, 웬걸요. 많은 관광객이 몰려있었습니다. 도내 명소지만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한적할 것이 뻔한데 내심 나라도 찾아줘야지 생각했는데 심각한 오산이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오히려 뻥 뚫린 청정 관광지에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던 것이죠. 숲길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창 주가를 올릴 때의 올레길 초입 풍경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덕분에 세련된 실내의 명소보다는 맑고 깨끗한 제주의 자연 그대로를 느끼고자 하는 국민들의 최신 취향을 더없이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좌) 비자림 산책길 (우) 비자나무 잎과 열매
숲의 청량함은 언제나 그립습니다. 비자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순환시켜 봅니다. 잎이 '아닐 비(非)'자처럼 생겼다 해서 비자나무라고 부른다는데요, 정작 나무의 한자 이름은 非子가 아닌 '榧子'나무입니다. '아닐 비' 모양의 잎이 붙어있는 나무를 뜻하는 새로운 한자로 '비자나무 비(榧)'를 만들었던 것일까요? 과거 비자나무는 최고의 바둑판 소재로 쓰이는 등 가공용으로 쓰임새가 많았을뿐더러 열매는 한약재로 살균과 노폐물 배출에 탁월하다는 효능도 있어 무차별 벌목이 이루어졌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이젠 천연기념물로까지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것이겠지요. 뭐든지 쓸 때 귀한 줄 알아야 하는 법이었습니다. 하물며 그것이 나무라면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양치식물로 가득한 깊은 숲 속을 보니 공룡이 금방이라도 나올 듯합니다. 브론토사우루스 같은 거대한 종이 아닌 벨로시랩터 정도가 어울리겠습니다. 이 길을 미궁으로 만든다면 미노타우로스 역할을 쥬라기 공원의 밸로시랩터가 하면 되겠다 상상하니 대낮인데도 제법 섬뜩했습니다.
한 바퀴를 쭉 돌고 나와 바다 쪽으로 향합니다.
아 참, 제주도민인 저는 자랑스럽게도 비자림 입장이 무료입니다. 부러우시죠?
평대리 해수욕장
평대리의 바다 쪽 끝자락입니다. 10여 명 되는 이른 피서객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는데요, 매년 여름 피서의 절정기에도 사람이 많지 않아 쾌적한 해수욕장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무엇을 해도 거리두기가 우선이라 한적한 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이처럼 작고 예쁜 제주 해수욕장들에도 생각보다 많은 피서객이 몰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해수욕을 하고 뭍으로 나온 뒤엔 즉시 마스크를 쓰라고 하는데, 과연 지켜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너무도 많은 것들을 어렵게 만드는 바이러스의 습격입니다.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던 날들로 속히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평대리의 하늘을 보고 땅을 바라봅니다. 살랑이며 불어오는 바람도 느껴봅니다.
미로에 갇힌 느낌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열광하고 나 혼자 감동받으며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라는 착각이 단단한 유리벽에 부딪혀 버리는 듯한 공포는 그 빈도가 점점 잦아집니다. 수수한 글이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며칠을 묵은 식용유 같은 기름이 떠 있고, 부드럽게 이었다고 여겼던 지난 글에서는 문장의 기괴한 관절들이 서로 부대끼며 듣기 싫은 마찰음을 내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만으론 용서가 되지 않는 일들이 세상엔 너무도 많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 조금이라도 세상을 위해 기여할 영혼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행위라고 믿고 있습니다. 뜻과 의지는 그러한데 그 증명까지의 길이 이렇듯 험난하기만 합니다. 자괴감과 불안함은 성장을 위한 제물인지요. 그렇기만 하면 좋겠습니다. 답답한 마음이 쌓여 훌륭한 문장을 엮어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속이 더 타들어가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은 내려놓을 필요도 있겠습니다. 세상을 위해 기여할 영혼의 작용이 글을 쓰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는 작가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세상을 비출 나만의 무엇은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서툴고 삐걱대며 심지어 엉망이 되어도 시도는 해 봐야 할 따름인 것이고 웅크리고만 있는 것은 철퇴를 맞아 마땅한 침잠입니다. 글을 쓰며 맞닥뜨리는 한계들은 미노타우로스와 같습니다. 아리아드네의 도움은 받지 않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