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tal Eclipse Jun 22. 2020

08 비록 정신없는 산책일지라도 -애월 수산리 마을길

모든 곳의 어떤 것들








 저에게 느긋한 산책이란 생각보다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후배의 집으로 느지막이 맥주 한잔 하러 가는 기분 좋은 걸음을 제외하면, 시골에 터를 잡은 뒤 일상이 될 것 같았던 유유자적한 산책은 자주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니었지요. 그렇다고 퇴근 후 항상 기진맥진한 몸뚱이를 건사하지 못해 집안에만 웅크려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이틀에 한 번 꼴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무슨 말장난이냐 싶으시겠습니다만 그 산책이 느긋한 것이 아닌 정신 사나운 산책이라는 것이 문제였다는 건데요, 이 모든 건 사람을 제외하고 제가 가장 미안해하는 대상인 이 녀석 때문이었습니다.



     입양되기 직전인 2016년 8월쯤의 리내


 시골에서 주택에 살아야 하니 집을 든든히 지켜줄 중형견 한 마리 정도는 식구로 들여야 한다는 강박으로 여러 견종을 알아보고 주변의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집안에는 이미 장년을 넘겨 노년으로 가는 몰티즈와 장모 치와와들이 있어서 강아지를 기르는 데는 불안감이 없었습니다만 평소 관심이 갔던 견종인 보더콜리는 도무지 지칠 줄 모를 정도로 폭발하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하니 서로의 행복을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요, 결국 침착하고도 사랑스러운 우리의 자랑, 진돗개를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리내'라 지었으니 자연스럽게 저의 성을 딴 풀네임은, 어릴 적 동네 나쁜 형들에게 자주 듣던 바로 그 말, '이리내'가 되었습니다. 

 처음 집에 오고 두어 달 정도는 몰티즈와 덩치가 비슷해서 같이 뛰어놀더니만 어쩌면 그리 쑥쑥 자라는지요. 듬직한 견공을 원했던 당초 바람과는 달리, 성장이 더뎠으면 하고 매일 커가는 녀석을 안타깝게 바라보았습니다. 결국 반년쯤 지나자 혈기왕성해진 청년의 기세로 절 끌고 다니더군요. 줄을 연결한 건 저였지만 줄을 리드하는 건 그 녀석이었습니다. 견공들은 모두 주인을 앞서지 않고 품위 있게 걷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강형욱 씨의 지도가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네 발의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었던 건 당연했지만 급정거하는 순간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더군요. 개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거나 멈추는 이유는 순간적으로 집중할 만한 냄새를 포착해서라고 합니다. 냄새를 맡는 행위 자체가 견공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큰 역할을 한다고 하니 왜 갑자기 그쪽으로 가냐고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때문에 무릎 관절에 긴장감을 유지한 채 급정거나 방향 전환을 염두에 두면서 터프한 산책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옆에서 나란히 걷는 것을 가르쳐볼까도 싶었지만, 줄에 고정된 채 극히 축소된 행동반경을 박차고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 얼마나 짜릿했을까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행은 유산소 운동을 한 셈 치면 되니, 산책시간만큼은 녀석의 종노릇을 계속 감수할 생각입니다.


 제주의 6월 초는 향기가 서서히 옅어지는 시기입니다. 5월이 되면 섬 곳곳은 황홀한 감귤꽃 향기로 뒤덮이는데요, 지명도 대비 최고의 향기를 내는 꽃이 감귤꽃이라고 감히 확신합니다. 열매의 향긋함이 워낙 알려져 상대적으로 늦봄에 피는 '꽃'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은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아무리 숨이 헐떡이는 고속의 산책이라도 감귤꽃의 감미로운 향기를 맡으며 가는 길은 충분히 낭만적입니다. 5월에 제주를 찾으신다면 어느 동네라도 좋으니 인적 드문 시골길에서 글로는 표현 못할 이 향기에 흠뻑 취해보시기 바랍니다.

 

 감귤꽃은 사랑입니다.


      

 냄새를 맡는 것, 향기를 느끼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과정인 것 같습니다. 인간의 최소 10만 배에 이르는 탐지 능력을 가진 개의 후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사람의 후각은 아련한 기억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오감의 하나라고 설명하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분명 어떤 냄새나 향기를 맡고 기억 속 공간이나 사람을 떠올린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오랜만에 사진으로 보거나 우연히 만난 옛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것과는 달리 세밀하고 원초적인 기억의 감정들을 속속들이 재생해 주는 기능은 후각만이 가진 능력이 아닐까 합니다. 뇌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다른 감각들은 중간 뇌의 앞부분에 위치한 시상하부를 거쳐 외부의 정보를 전달하는데 비해 특정한 냄새와 향기는 유일하게 시상하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후각 상피세포로 향한다고 하는데요, 이 후각 상피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가까이에 있어 해당 냄새와 관련된 특정 기억을 환기시키는 작용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뇌 속의 이런 복잡한 감각처리과정을 알지 못하더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후각은 추억을 살려내고 추억은 그날의 감성을 동반하고, 감성은 또 다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한 글자만 다른 유사어들을 굳이 분석해 차이를 드러내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까다롭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세상 이치의 올바른 정의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분들이죠. 배상(賠償)과 보상(補償)의 예처럼 되갚는 과정도 불법행위로 인한 것인지 적법행위로 인한 것인지에 따라 엄청난 뉘앙스의 차이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있습니다만, 산책과 산보처럼 굳이 차이를 식별해 가며 구분 지을 필요가 없는 말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두 단어는 거의 동일한 개념으로 쓸 수 있는 유사어라고 하지요. 다만 걸으며 하는 사색이 누구보다 필요했던 철학자들은 산책과 산보의 개념을 나누기도 했다고 합니다. 산책(散策)이 무언가를 꿈꾸고 상상하며 깨닫기 위해 거니는 행위라면, 산보(散步)는 그저 풍경 속을 거니는, 보(步)의 목적이 더 중시된 걸어 다님이라고 선을 그었다는 것이죠.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도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는 법인데 뭘 이리 머리 아프게 구분을 짓는 걸까요. 역시 철학자들은 다릅니다. 때로는 글과 언어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후각이 추억을 살려내고 감성과 직결된 감각이라면, 향기가 동반된 산책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힐링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향기는 꼭 달콤한 꽃의 향기일 필요는 없겠지요. 나무가 뿜어내는 청량한 향기일 수도 있겠고 낙엽을 태우는 깊은 느낌의 냄새여도 좋겠습니다. 


가을에는 세상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은 냄새가 난다. 낙엽, 불타는 나뭇가지 더미, 즉 영원하다고 생각했지만 끝나가는 것들에게서 나는 냄새 말이다.


 이탈리아의 화학자이자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말입니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낙엽더미를 걸으며 들이마시는 향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후각의 소용돌이 후 둥둥 떠오르는 감성과 상념 역시 모두가 상통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향기를 정리해 보는 것도 멋진 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런, 1년 내내 태양이 작열하는 적도지방과 떨어질 나뭇잎조차 없는 극지대에서는 낙엽 태우는 냄새를 설명하기 불가능할 수도 있겠군요. 


   


 애월읍 수산리는 관광객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애월읍 한 복판의 마을입니다. 바닷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깊은 중산간 쪽으로 들어가 있지도 않은 곳이죠. 제주시내까지의 출퇴근 시간도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고 눌러 살기도 적당한 곳이어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제주에선 흔하지 않게 저수지를 품고 있는 마을이라 높은 지대에선 바다와 저수지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동네이기도 합니다. 물과 산이 좋아 수산리(水山里)라 부르니 마을의 이름만으로도 자연의 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임이 증명되겠고요, 우리말인 '물'과 '뫼'를 칭하며 예전부터 부르던 '물메골'이 더 정겹게 느껴지는 동네입니다. 관광객들이 수산리라는 곳을 가보았다고 한다면 아마도 성산읍에 있는 수산리를 찾았을 가능성이 더 큰데요, 성산일출봉 등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산의 수산리는 제2공항 건설사업에 따른 갈등을 방어막 없이 그대로 겪고 있습니다. 애월이건 성산이건 제주의 아름다운 '물'과 '뫼'가 온전히 지켜질 수 있는 수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수산리 곰솔


 수산리의 자랑인 천연기념물 제441호 수산리 곰솔입니다. 400년 이상의 수령에 둘레가 4.7미터에 달하는 당당한 체구의 소나무인데요, 나무의 껍질이 검기 때문에 '흑송'으로 분류한다고도 합니다. 이 소나무가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보다 저수지를 향해 뻗어있는 수형(樹形)입니다. 수면을 향해 길게 뻗어있는 나뭇가지는 곰솔의 밑동보다도 2미터나 낮게 처져 있으니 독특한 형태를 가진 것은 분명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곰솔'이란 이름이 물을 마시러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 백곰의 형상과 같아 붙여졌다는 사실인데요. 전체적인 모양 자체는 그럴 듯도 해 보입니다만 왜 하필 '백곰'인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제주에 곰이 번식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만약 그랬어도 반달곰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북극에 살며 코카콜라를 마시던 폴라베어가 제주 애월에 갑자기 출현했다고 상상하니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나저나 만약 북극곰과 산책 도중 마주친다면 리내 이 녀석이 절 보호해 줄 수 있을지요. 워낙 현격한 체급 차이입니다. 엎드려 죽은 척해야겠습니다. 옛날 그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산책을 하며 벌어진 명사의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그중 인상적인 것은 괴테와 베토벤의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던 지금의 체코 북서부 테플리체라는 온천휴양지에서의 산책인데요, 서로를 향한 가득한 존경으로 이 아름다운 도시를 거닐던 괴테와 베토벤은 신성로마제국의 황비가 시녀들을 대동하고 걸어오는 곳을 보았는데 괴테는 공손히 모자를 벗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반면 베토벤은 뒷짐을 진 채 허공을 바라보며 지나갔다고 합니다. 나중에 괴테가 왜 그런 행동을 했냐고 묻자 베토벤은 "그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를 해야지 왜 내가 인사를 해야 하느냐."라고 답했다고 하는데요. 베토벤은 그 특유의 뻣뻣함으로 괴테의 속물성을 비판했고, 괴테는 베토벤의 유연하지 못한 일면을 나무라며 이후에 둘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고 합니다. 산책도 이처럼 동반자를 잘못 만나게 되면 해악도 가져올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테플리체에서의 일화, 괴테와 베토벤의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후세에까지 인물과 그에 얽힌 사연으로 가득한 산책길이 많을 것이고, 그런 곳들을 하나하나씩 탐색해 가며 둘러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굳이 유럽까지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길의 풍경 자체만으로 볼 때 제주만 한 곳이 또 어디 있을는지요. 오히려 숨 막히는 오름의 능선과 넋을 놓게 되는 짙푸른 바다가 사색에 있어 방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산책의 코스는 자연과 더불어 생활의 공간과도 어느 정도는 버무림 되어 있어야 효용이 있는 상념에 빠질 수 있을 텐데요, 눈이 휘둥그레지는 파노라마는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넘어 깊숙한 충격을 던집니다. 압도하는 자연 앞에서는 감동을 하고, 그 뒤에 이어지는 오솔길에서야 비로소 산책 모드로 전환하면 될 일이겠습니다. 


 익숙해진 동네의 길들이 많아집니다. 올레길 16코스와도 겹치고 사찰순례길과도 접해 있는 구간임에도 순례객들과 마주치는 경우가 잦지는 않은데요, 그래서 더 시골마을길 답습니다. 개와 함께 내달리지 않고 찬찬히 걸어도 된다면 상념과 사색에 꽤나 안성맞춤인 산책길임에 틀림없습니다.

  리내와의 산책을 거르지 않으려 애는 써 보지만 회사에서 퇴근해 몸이 피곤할 때는 산책을 포기하게 됩니다. 낮은 담장 때문에 풀어서 키우지 못하는 관계로 하루 종일 묶여있을 녀석에게는 미안함이 점점 쌓여만 가는군요. 꿈꾸던 전원생활을 해 나가려 하니 그만큼 신경 쓸 일도 많아져 힘들다는 핑계도 대곤 합니다만 든든하게 집을 지켜주는 리내에게는 핑계 댈 구석이 없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주인의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건지 기특하게도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속도 조절을 해 주는 듯합니다. 배려에는 배려로 답을 해 주어야겠지요. 미안함의 정도를 조금씩 덜 수 있도록, 힘을 내서 더 자주 산책길에 나서야겠습니다. 


 적어도 우린 괴테와 베토벤 보다는 훨씬 각별한 사이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07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부산, 제주 하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