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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Aug 20. 2020

22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브루클린  -Dumbo

모든 곳의 어떤 것들







  뉴욕을 찾은 것은 5년 만이었습니다. 아내와 딸, 아들은 하루 종일 걸어 다녔던 게 무리였는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지더군요. 아이들은 그때만 해도 열 살도 안됐을 나이니 제 보폭을 따라잡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쉬어, 난 금방 갔다 올게." 저 역시 눈이 시큰거릴 만큼 노곤했지만 5년 전 못다 한 숙제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다시 전철을 타러 나와 인파 속으로 섞였습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검색을 해 보니 내린 역의 이름이 'High Street - Brookyn Bridge Station'이었군요. 맨해튼을 연결하는 강 쪽 다리만 바라보고 가면 되는 것이라 별 어려움 없이 방향을 잡고 영화 포스터에 있었던 바로 그 포인트를 찾아냅니다. 열흘에 가까웠던 첫 뉴욕 여행기간에 왜 이곳을 빼놓았을까 하는 아쉬웠던 마음과 밀린 숙제를 해결한 안도감이 피로를 압도합니다.


 

 맨해튼 브릿지가 건물 사이로 보이는 이곳입니다, 익숙한 구도의 사진이죠. 특히 최근 들어서는 뉴욕 방문객들의 필수 촬영지가 된 듯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날이 갈수록 특정 랜드마크 같은 단독 대상물보다 함께 조화를 이루는 거리나 구역 전체가 피사체로서 인기를 끄는 것 같습니다. 단편적인 인상에서 복합적인 감성으로 여행자의 취향이 진화하는 것일까요. 저에게 이 공간은 설명하기 힘든 감정의 선율과 함께 특정한 구도의 심상이 액자처럼 각인되어 있습니다. 한번 불러내면 다시 집어넣기 어려운 프레임입니다. 정지된 화면이 시간의 예술인 음악을 덧대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직접 서 있던 그곳에서 코끝이 찡해집니다.  


   


  불세출의 이탈리아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가슴 뜨거워지도록 만들었던 그의 수많은 작품 중 <Once Upon a Time in America>의 감동이 하늘로 떠난 그의 자리를 대신 채웠습니다. 만인이 인정하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였던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를 빼놓고는 실타래를 풀 수 없습니다. 1928년생인 엔니오 모리꼬네가 여덟 살 때부터 한 살 아래인 세르지오 레오네와 알고 지냈다고 하니 하늘이 주신 인연이지요. 영화 제작과 작곡으로 각자의 인생을 경주하던 둘은, 세르지오의 제안으로 엔니오가 그의 작품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며 동반자로서의 호흡을 맞추게 됩니다. 서부극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황야의 무법자(1964)>를 시작으로 <석양의 무법자(1965)>,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1968)> 등에서 협업을 했는데요, 이탈리아 출신의 두 친구가 '미국' 서부영화의 전문 제작자였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긴 그러니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등장한 것이겠지요. 초강대국이 되어가는 미국의 문화를 전 세계가 주목하던 시기였으므로 어디서 온 누가 만든 영화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후 두 사람은 한참 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에서 재회해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 냅니다. 60년대의 서부에서 80년대 뉴욕의 뒷골목으로 무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갈등의 해결방법은 무법자들의 총격전이었습니다.


 엔니오 모리꼬네(좌)와 세르지오 레오네(우)


 누아르 장르의 뛰어난 작품 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만큼 등장인물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스토리 전개 방식도 큰 역할을 했지만 1930년대 경제공황의 후유증과 금주법 철폐로 인한 혼돈의 배경에서 이민자들의 꿈과 좌절, 그리고 사랑과 우정을 '갱스터 무비'답지 않게 섬세한 감성으로 풀어낸 것이 이 작품이 극찬을 받았던 이유가 아니었나 합니다. 철저히 고증된 무대장치와 캐릭터 그 자체였던 배우들의 연기력은 말할 나위가 없겠죠. 거기에 누들스, 맥스 등 등장인물들의 아역을 맡은 배우들이 그대로 자라 로버트 드 니로와 제임스 우즈가 된 듯한 미친 싱크로율도 관객들의 몰입을 자연스럽게 유도했다는 평이 많습니다.    




 영화는 포스터의 그것처럼 갈색 톤입니다. 나이 든 누들스가 어린 시절 사랑에 빠진 여자는 데보라였습니다. 춤을 추는 그녀를 몰래 바라보는 몽환적인 장면 역시 갈색이 시야를 감싸고 있습니다. '갈색 추억'이란 말 그대로인 것인지요. 갱스터 무비의 전개에서 흔한 단초가 되는 회색의 배신과 협박도 추억의 갈색에 맥을 추지 못하고 묻혀버리고 맙니다. 이 영화를 본 남성들 중 데보라의 춤을 넋 놓고 보는 누들스에게 갑정 이입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요? 모두가 누들스가 되어 첫사랑에 빠지는 순간입니다. 첫사랑과 첫 우정은 누구에게든 꿈같은 기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갈색의 감성 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FSedIebrxp8#action=share

                 데보라의 아역을 맡았던 제니퍼 코넬리



 그들의 첫 합작품 <황야의 무법자> 직후 세르지오 레오네가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촬영하기 전에 음악부터 완성해 달라는 것이었죠. 음악에 의해 영화가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보다는 영화 속 음악의 힘, 그리고 그 힘을 발휘할 줄 아는 친구, 엔니오를 오롯이 믿은 까닭입니다.

 

 제가 처음 다녔던 회사는 음반과 필름, 그리고 당시로선 혁신적인 저장장치였던 플로피디스크와 CD를 만들고 유통시키는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1년에 두어 차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장에서 회수된 CD를 단돈 천 원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이벤트가 있었다는 것이었죠. 2만 원만 들고 가면 20장의 앨범을 손에 쥘 수 있으니 얼마나 꿀이었겠습니까. 해당분야의 공룡이었던 까닭에 국내외 전방위적 장르의 음악 CD들이 테이블 위에 깔려 있었고 저는 영화나 드라마의 O.S.T. 앨범만 쏙쏙 골라냈습니다. 이야기가 눈앞에 전개되는 동시에 절묘하게 다듬어진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니, 음악은 영상을 빛나게 하고 영상은 음악을 더 깊게 만들어 주는 시너지 효과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회사에서 사 온 O.S.T.앨범에 더해 명음반으로 알려진 그 외의 것들을 꾸역꾸역 사 모으게 되니, 영화를 보기도 전에 영화음악부터 듣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처음엔 음악부터 듣는 것이 무언가 알맹이를 빼버린 듯한 혹은 시험을 앞두고 괜한 벼락치기를 한 듯한 기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세르지오 레오네의 의도를 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O.S.T.로 음악이 먼저 익숙해진 상태에서 영화를 보면, 구석구석 찔러 넣어진 익숙한 선율이 극적 효과를 한층 높여줍니다. 귀로 듣는 것만으로도 감동했던 음악은 영화 속에서 100배는 더 증폭된 벅참으로 가슴을 때립니다. 그것도 명장 엔니오 모리꼬네가 지어낸 음악이라면 그 증폭의 정도는 헤아릴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그 자체만으로 한 편의 영화가 되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에서 오히려 영화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었던 것 아닐까요. 저에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그랬습니다. 트랙을 외울 정도로 익숙해지고 난 후 영화를 보았습니다. 눈과 귀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지며 유독 긴 러닝타임 내내 한 번도 영화 속에서 선율을 분리할 수 없었습니다. 극적인 장면에서 심장을 때리는 연주곡이 때맞춰 나오는 순간엔 탑승한 엘리베이터가 급강하하는 듯한 철렁함에 감성이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도 취해버린 감정은 해독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입니다. 동시대 세계 어떤 민족보다도 아픔을 겪고 있었던 한국인의 상황을 고려하면 차라리 낭만적일 수도 있습니다. 굳이 이 시절 미국 도심에서 추억을 찾는다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만 곤궁했던 시절 먹고살기 위해 낯선 도시로 이주해 겪어야 했던 쓰라림은 세상 많은 곳의 소시민들이 경험했을 기억이기에 그리 동떨어진 감정은 아닐 듯합니다. 어디 세르지오의 영화에서 묘사되는 유럽계 이민자들만의 이야기였을는지요.

 미군의 신부로, 전쟁의 고아로 건너간 초기를 지나 1965년 이민의 장벽이 허물어진 이후 엄청난 수의 한국인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1980년대에는 대한민국이 멕시코, 필리핀에 이은 세 번째 이민 대국의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는데요, 그중 뉴욕으로 들어온 한국인들은 영화의 배경이 된 이곳 브루클린에 대거 정착했다고 합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배경은 브루클린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땅을 처음 밟은 유럽인인 네덜란드인들이 자국의 도시의 이름을 따서 '브뢰컬런'으로 명명되었던 이 도시는, 이후 영국인들의 침략으로 '브루클린'으로 이름이 바뀌는데요. 19세기 중반부터 엘리스 섬을 통해 유럽 이민자들이 물밀듯이 들어왔고 1950년대부터는 미국 남부에서 흑인들이 대거 밀려오게 됩니다. 이어 중남미와 아시아에서 흘러든 이민자들이 합세해 인종의 전시장이 된 '브루클린'이라는 장소는 영화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칸드림의 희망과 좌절, 순수와 범죄가 공존하는 표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이민자들의 공간을 떠올릴 때면 모노톤의 애잔함 쪽으로 치우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1989)>의 폐부를 찌르는 슬픔이 덧씌워지기도 합니다.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의 음악감독이었던 한스 짐머와 생전의 엔니오 모리꼬네


 여기 또 하나의 영화음악계 거장이 있습니다. <라이온 킹>, <진주만>, <인터스텔라> 등 어마어마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독일의 작곡가 '한스 짐머'인데요, 그도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듣고 영화음악에 투신하기로 결심했다고 하지요. 엔니오의 사망에 그 누구보다 애석함을 표한, 동종업계의 진정 실력 있는 후배입니다. 그의 인상적인 음악이 이야기를 이끌어 갔던 작품으로 <로맨틱 홀리데이(2006)>가 있습니다. 외롭거나 상처 받은 두 여성이 홈 익스체인지 사이트를 통해 거처를 바꿔 낯선 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사랑을 찾아간다는, 제목 그대로 '로맨틱'한 영화인데요. 브루클린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L.A. 와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 한스 짐머는 유쾌한 영화음악 제작자인 마일스(잭 블랙扮)를 통해 엔니오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합니다, 소소한 오마주일까요. 마일스가 여자친구와 차를 타고 L.A. 의 주택으로 들어오는 장면에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O.S.T.를 틀어놓고, 처음 만나는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扮)에게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주요 등장인물의 직업을 영화음악 제작자로 설정한 것도 한스 짐머가 낸시 마이어스 감독에게 슬쩍(?) 압력을 넣은 결과가 아니었나 하는, 기분 좋은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니 <로맨틱 홀리데이> O.S.T.의 타이틀 곡인 'Maestro'의 도입 부분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S.T. 중 'Deborah's Theme'의 분위기와 유사하다는 것은 저만의 느낌인지 모르겠습니다.


덤보에서 바라본 맨해튼 브리지(좌)와 브루클린 브리지(우)


 덤보(DUMBO)는'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의 줄임말로, 이스트 강을 가로지르는 맨해튼 브릿지와 브루클린 브리지 사이에서 맨해튼을 마주 보는 구역을 뜻합니다. 1883년 돌을 재단해 완공된 브루클린 브릿지의 진중한 우아함과 1909년 철재로 만들어진 맨해튼 브릿지의 세련됨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더 이상 이민자들의 고단함을 대표하는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빨간 벽돌 건물의 연속으로 각인된 브루클린의 덤보는 이제 젊은 예술가들의 성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맨해튼의 팍팍함에 신물이 난 중산층 이상의 시민들로 새롭게 채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 브루클린뿐일까요, 아프고 위험했던 오욕의 과거를 희망과 어울림으로 채우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새로이 거듭날 수 있다는 조건 하에서, 고통의 과거는 오히려 절대 잊혀서는 안 될 유산으로 남게 됩니다. 실제로 처절했던 지난날이 스토리텔링의 재료가 되어 부흥하는 도시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안쓰럽고 억울했던 도시의 시간은 치유 중인 도시의 진정한 의미를 더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리 건너 가진 자들의 공간을 동경하며 억센 삶을 애써 살아내 왔습니다. 그저 살아온 것이 아니라 살아낸 것이었습니다. 맨해튼까지의 물리적 거리보다 한없이 멀었던 심리적 거리로 인해 좌절을 삼키었을 브루클린의 소시민들. 치워지지 않는 바리케이드의 무게를 감당했던 그들의 삶이었기에 브루클린은 곧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무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루클린 다리를 조망하기 제 격인 이 자리에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S.T. 속, 'Childhood Memories'를 들어야겠습니다. 현실을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이었을 테니까요.


 덤보의 한 복판에서 누들스가 데보라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배고프면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그녀가 거기 있는데요.


 그거면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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