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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Sep 09. 2020

13 헬로우Mr.구럼비
-서귀포 강정마을

모든 곳의 어떤 것들








 태풍이 다가옵니다. 오늘 밤부터는 직접 영향권에 든다고 합니다. 내일은 새벽부터 특보를 전하느라 바쁠 것 같습니다. 야외 테이블과 의자를 보일러실에 넣는 걸 깜빡했군요, 가스통을 벽돌로 단단히 막아놓는 것은 다행히 잊지 않았습니다. 카페 건너편에 보이는 숲은 바다와 같습니다. 풍성한 잎들이 동시에 바람에 휘청거리니 파도가 넘실대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지난주 오랜만에 찾은 곳은 십 수어 년간 매몰찬 바람이 부는 현장이었습니다. 그 매서운 광풍에, 한 마을에 사는 모든 이들의 마음은 갈가리 찢긴 지 오래입니다. 지나간 듯 하지만 계속 주변을 맴도는 비바람입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덕목 중 '공감능력'이 그 중요성을 더하는 듯합니다. 갑질도, 경제 양극화도, 성폭력도 타인의 입장이 되어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비극이겠지요. 하물며 연인들이나 사무실의 동료들 간에도 공감능력은 사랑과 믿음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아닐까요.


 일상적인 삶에서의 공감능력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필요한 만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가정과 사회가 매일 큰 부대낌 없이 돌아가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첨예한 사건들에서는 이 공감의 차이가 그렇듯 극단적일 수 없습니다. 본연의 삶에서 내동댕이 쳐진 이웃을 볼 때 어떤 사람들은 마치 본인이 겪고 있는 일인 것 마냥 가슴으로 울고, 또 다른 사람은 별 느낌 없이 그런 일이 있구나 하며 넘겨 버립니다.


  애써 그런 척했는지 몰라도 저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공감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축에 속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큰 문제없이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안타까운 사연들이 가슴속으로 왜 바로 꽂혀 들어오지 않는 건지 답답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제 와 공감능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이 아름다운 땅 제주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슬픈 일들을 자꾸 곱씹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 사건의 발단부터 건드려 봅니다. 그곳에 사는 주민이 되었다고 감정이입을 하면서 하나하나 비극이 만들어진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합니다. 이 평화의 섬이라고 하는 곳에는 다행스럽게도, 동시에 안타깝게도! 공감이 필요한 현장이 너무도 많습니다. 동서남북 어디를 찔러봐도 아픈 곳이 나올뿐더러 섬 주민 사이 갈등과 반목의 예는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널려 있습니다. 그중 저로 하여금 공감의 능력을 조금이나마 장착하게 해 준 곳은 한라산의 부드러운 능선과 반짝이는 수평선이 눈부신 곳, 아름다운 강정마을이었습니다.




 마을 곳곳에 휘날리던 현수막과 깃발은 이제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씩씩하게 동네를 누볐던 활동가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타임머신을 탄 듯, 이곳에 해군기지가 설치된다는 발표 직전으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반대 현수막이 막 내걸리던 그때로 말이죠.


 해군기지 계획이 세워진 건 생각보다도 먼 시점입니다, 1993년 안덕면 화순항을 후보지로 전제한 뒤 1995년 정부의 국방 중기계획에 반영됐으니까요. 화순 주민들이 유치에 반대하자 남원읍 위미리로 방향을 돌렸다가 이 또한 여의치 않아 2007년, 결국 이곳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대상지로 점찍게 됩니다. 이곳을 '점찍었다'라고 표현하면 정부에서 억울해할 듯도 합니다. 강정주민들이 원했던 것이고 투표까지 거쳤는데, 그게 어딜 봐서 우리가 점찍은 거냐 하면서 말이죠. 

 세상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런 글을 써도 서슬 퍼런 감찰은 없을 것이고 남산에 있었던 무시무시한 곳에서 잡아갈 일도 없을 테니까요. 그래도 혹시나 이 글 이후 후속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제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거나 무서운 곳에 끌려갔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신고해 주시고 탄원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렇습니다. 투표를 거친 건 맞습니다. 2007년 4월 해군기지 유치를 찬성하는 8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압도적인 '박수'로 유치를 결정한 건 맞습니다. 마을의 운영 규정에 따른 적법한 총회가 아니었을 뿐이죠.

 강정마을 주민들은 때문에 두 달 뒤 적법한 마을총회를 다시 열어 찬, 반을 물었습니다. 참석 인원이 700여 명이었습니다. 학생 등 외지로 나가 살고 있는 주민을 제외하면 가능한 인원은 거의 다 나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지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총회가 시작되는 순간, 찬성 측 주민 수십여 명이 투표용지가 들어있던 상자를 탈취해 순식간에 총회장 밖에 있던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집니다. 퀵 서비스도 이 정도로 신속할 순 없습니다. 이렇듯 주민총회를 무산시키기 위한 막장극에 해군이 사전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12년이 지난 후 경찰청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밝혀집니다. 공식적으로 '경찰청'에서 발표했다는 말입니다. 투표함 탈취사건 당시 마을회장은 임시총회에서 해임됐고, 새로운 마을회장이 선출돼 열린 또 한 번의 정식 찬반투표에서는 총 725명 중 680명이 해군기지 유치에 반대표를 던집니다. 그러나 이미 정부와 해군이 앞선 80여 명의 찬성으로 기지 유치를 결정한 뒤였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리지만 찬성이냐 반대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어느 쪽이라도 이해가 되는 방법으로 의견이 모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만약 반대 측에서 기습 투표를 통해 마을의 의견을 정리하는 척했다면 그 역시 비난받아 마땅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울려 살던 마을 주민들 간의 되돌릴 수 없는 갈등은, 이런 더러운 반칙으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범섬을 뒤로 군함이 보이는 전경(좌)과 한적한 강정 크루즈터미널(우)


 오랜만에 보는 둥글게 얽힌 철조망이 펜스 위에서 출입 엄금을 알려줍니다. 한달음에 뛰어갈 수 있었던 바닷가는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는 장애물로 삭막하게 가로막혀 있습니다. '군항(軍港)'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자 기괴하게 만들어낸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그 하이브리드한 명칭에 걸맞게 크루즈 터미널이 지척에 위치합니다. 터미널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인력의 것으로 보이는 차량 몇 대를 제외하고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습니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니었어도 그간 터미널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차에서 내려 둘러볼까 하는 순간, 만나기로 약속한 회장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부장님도 국장님도 아닌 회장님인데요, 당장 달려가야겠습니다.


  강정마을 안의 '물통'


 주소를 찍고 가는데 회장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물통 바로 앞입니다." 하시더군요.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단박에 그 정체를 알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 보지 않아도 얼음장 같을, 용천수가 솟아 나오는 마을의 명소였습니다. 포털사이트에 '강정마을'이라고 검색하면, 마을의 본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삭막한 이미지만 나올 뿐입니다. 해군기지의 위용, 반대단체들의 시위 모습, 군과 주민의 대치 장면... 제주의 어느 곳도 이렇지는 않습니다. 해군기지가 아니었다면 강정이라는 곳은 평화로운 마을의 전경과 구럼비 바위가 보이는 쪽빛 바다, 선명한 한라산 조망 포인트,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범섬의 절경이 자랑스러운 이미지로 검색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강정 소년들의 최애 피서지인 '물통'도 쉽게 검색되지 않았을까요?

 동네 아이들 서너 명은 건강한 미소를 머금으며 효율 만점의 피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쯤이면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사라질 것인지요. 그리 되지 않으면 안 될 일입니다. 반드시.


 전화 통화가 아닌 얼굴을 뵙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공적인 일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몇 가지 여쭤보겠다고 요청했는데 너무도 반갑게 응해 주셨습니다. 밭일을 막 끝내고 땀에 흠뻑 젖은 채 돌아오신 참이었는데 바쁜 일상에 귀찮은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숱한 고생들 때문이었을까요, 호남형에 당당한 체구를 자랑하셨던 회장님은 그간 많이 야위어진 모습이셨습니다. 그래도 그 기백만큼은 어디 갈 턱이 있을까요.


  강동균 회장님


 사진 아래에 그저 '회장님'이라고만 썼습니다. 현재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주민회'의 회장님이시지만 또 어떤 회장직을 맡으실지 모르는 일이기에 먼 훗날에 봐도 상관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13년 전, 주민들의 마을회장 해임과 동시에 강동균 님은 새로운 마을회장으로 선출됩니다. 당시의 마을회장은 협상과 설득의 능력만 요구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해군과 경찰에 맞선 공사 강행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혀 심각한 부상을 당한 것은 물론이고 공사 방해 혐의로 제주교도소에 수감되어야 했습니다. 물론 부당한 국가의 행위에 제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가를 받았던 국민은 적지 않았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활동가들과 그저 국가의 불통에 분노한 일반 시민들, 정당인들,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한 종교계 인사들, 심지어 미국 평화 재향 군인회 소속으로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들까지.. 도저히 참으려야 참을 수 없었던 이유로 한데 모였고 모든 억울함까지 나눠 가졌습니다. 간략히만 살펴보아도 해군기지 유치와 관련해서 지금까지 700여 명이 연행돼 690건의 사법처리가 이루어졌습니다. 구속 건수가 36건에 이르고 주민들에게 부과된 벌금은 무려 3억 원에 달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업의 포기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의 한 조사에서는 강정주민 중 50%가 정신건강 '위험군'에 속했고,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한 비율이 40%를 넘었습니다. 지금은 이 비율이 크게 떨어졌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해군기지가 지어질 테니 '환경적'으로 좋지 않다. 물론 당연한 말입니다. 수중 생태계가 실제로 크게 훼손되었다는 조사도 있었으니까요. 따라서 '환경'문제로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것 역시 백번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나라에서 '기본적으로 지킬 것을 지켰냐' 하는 문제입니다. 지킬 것을 지켜가면서 해군기지를 건설했다면, 억울하고 아니꼬워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찬성과 반대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마땅히 지켜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요? 이 역시 핵심만 추려보겠습니다.


1) 해군기지 건설은 국책사업입니다. 법률에 의거해 국방부 장관은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야 합니다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2) 국가 항만관리계획에 누락되었을뿐더러 국토관리계획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사업입니다.

3)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른 평가도 받지 않고 사업을 강행했습니다.

4) 이 문제로 행정소송이 제기되었으나 당시 대법원은 이 사업을 '합법'으로 둔갑시켰습니다.

5) 해군의 투표함 탈취와 사전 모의가 드러났습니다.


 세세한 것까지 찾아 적자니 앞이 캄캄해 이만하겠습니다. 지킬 것을 '비겁하게' 지키지 않은 것이 화가 난다는 것입니다. 주민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했던 일이나 폭력과 구타를 가했던 일 등은 뒷주머니에 넣어둔다 하더라도 말이죠. 모든 불법적인 과정으로 나타난 결과는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선 그 자체가 아닙니다. 추진과정에서 불거진 주민 간의 불화, 대를 이어서까지 원수가 될 것을 걱정하는 증오와 불신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도 아픈 과정을 거친 대가는 더 끔찍할 뿐입니다. 한 마을이 쑥대밭이 된 것이죠.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쯤은 엉망이 되어도 괜찮은 것인지요. 그러면 안됩니다. 안 되는 겁니다.  


    해군의 공사 강행 현장에서


 5시에 문상을 가야 한다고 하셔서 '5분이면 됩니다' 말씀드렸건만 하염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으십니다. 처음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알려질 때를 시작으로 그동안의 싸움과 마을의 갈등, 앞으로의 과제까지. 이러다 늦으시면 어쩌나 제가 더 초조해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건 두 가지라고 하시더군요. 


 첫째는 조건을 걸고 사과하지 말고 정부가 진심으로 사과 한마디 하는 것.


 두 번째는 사라진 평화센터를 다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정부는 국제관함식을 여는 조건으로 걸맞은 보상과 사과를 약속했습니다. 주민들 입장에서 관함식 개최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의미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곧 해군기지가 들어선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니까요. 그동안의 모든 것들을 잊고 인정할 테니 이제부터는 마을을 봉합해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즉 정부와 해군은 관함식 개최라는 '조건'을 걸고 사과를 약속했던 것입니다.

 2020년 5월 해군참모총장은 강정을 찾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의 의견이 모이면 사과를 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무슨 의견이 모이면 사과를 하겠다는 것일까요? 크루즈 선회장을 포함한 해군기지 항만 수역 전체를 군사기지 보호구역으로 설정하겠다는 것에 대한 의견이었습니다. 군사기지 보호구역으로 설정하는 것으로 의견을 주면 사과하겠다는, '조건부'였습니다. 가슴에 피멍이 든 강정주민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 먼저 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요. 나라 돌아가는 게 다 그런 거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이해는 되지 않습니다. 결국 관함식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고 해군참모총장의 방문을 허락해도 진심의 사과는 한 조각도 없었던 것입니다. 강동균 회장님이 바라는 건 그냥 속에서 우러나오는 사과였습니다. 그간 당해왔던 몸과 마음의 숱한 상처는 그거 하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조건이 없는 사과'. 


 마침 이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이 강정마을을 찾아 주민 피해에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주민들 앞에서 해군 참모총장이 발표한 내용을 들어보니 다시 글로 돌아와 내용을 추가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발언의 핵심은 '사과의 의미로 주민들과 협약을 맺어 지역발전계획을 세우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강정에 건물, 도로를 더 건설하고 투자 좀 하겠다는 것이죠. 가장 황당했던 것은 해군기지 건설과정에서 있었던 행정대집행 비용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지 건설과정에서 주민들이 반대활동을 위해 설치한 가건물 등을 해군이 힘들여, 돈 들여 다 무너뜨리고 치워놓았으니 그 수고가 얼마나 크고, 손해가 막심했을 것이냐. 그런데도 드넓은 아량으로 그 철거비용을 주민들에게 청구하지 않겠다는 소리니 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 사과인 것인가, 이 말이죠. 

 차라리 오시지 말지 그랬습니다. 해군 측이 말하는 이 행정대집행 비용 청구 취소는, 경찰청 조사단의 권고로 국방부가 이를 받아들여 진즉에 결정된 것입니다. 즉 공식적으로 이미 비용 청구가 취소된 사항이라는 것이죠. 해군참모총장이 뒤늦게 강정마을을 찾아 '비용을 청구하지 않겠다'라고 언급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주민들에게 해군이 큰 선처라도 베푸는 것처럼 느끼게 할 심산이었을까요. 황당하고도 허탈했습니다. 어찌 됐건 각종 기사 제목엔 '해군, 강정주민들에게 드디어 사과'라고 쓰여 있으니 제주의 이 억울한 마을의 문제가 거의 해결됐구나 생각할 분들이 많아질까 그게 걱정입니다.


 부당함을 참지 못하고 각지에서 모인 용기 있는 시민들은 강정의 평화센터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2012년부터 든든한 연대의 힘을 보여준 진원지, 평화센터는 농협에 부지가 매각되어 고스란히 헐리고 말았습니다. 해군의 밀어붙이기식 강행에, 이를 반대하는 국민들이 차분히 대처하고 준비할 시간이 있었을 리 만무합니다. 급하게 빌린 땅에 설치한 평화센터는 시작부터 위태로웠습니다. 모든 희망이 모였던 그 자리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교차로에 있었던 평화센터의 터


 희망은 아직도 있었습니다. 뜻있는 사람들이 강정주민들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평화센터를 짓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것입니다. 좀 더 해군기지 쪽에 위치한 부지를 새로운 평화센터의 보금자리로 만들 계획이라고 합니다. 동참할 분들의 희망 기금 액수를 더해 일정 모금액 이상이 되면 본격적으로 건축에 착수할 예정인데요, 얼마 남지 않은 모금기간에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권해 봅니다.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강정의 아픈 기억들을 잊지 않고 남기고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필요해서입니다.

  평화를 강조하는 랜드마크가 필요조차 없는 제주 섬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군사기지가 들어선 이상, 아픔을 기억하고 세계인들에게 진정한 평화의 뜻을 알려줄 공간은 이젠 필수요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함께 해 주신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상상해 봅니다. 평화센터가 새로 들어서면 강동균 회장님은 매일 그곳에 들러 손님들을 맞으실 겁니다. 어서 그날이 오기를요. (시간이 흘러 모금기간은 끝났습니다. 예상보다도 많은 동참이 이루어졌다는 후문이군요, 평화의 사절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평화센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공정력(公定力)이라는 법률용어가 있습니다. 법률용어이니 만큼 정의 역시 무미건조 그 자체입니다. '행정행위의 효력 중 하나로 행정행위가 하자가 있는 경우라도 그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당연 무효가 아닌 한,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하여 취소될 때까지 상대방 또는 이해관계인들이 그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는 힘'이라고 돼 있는데요, 쉽게 풀어쓴 글들을 참조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뉴스에서 특정 자동차 제조업체의 한 모델이 엔진 등에 하자가 생겨서 해당 모델을 소유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어느 시점부터 '리콜'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하곤 합니다. 이럴 경우 해당 모델을 가지고 있는 나는, 차가 이상하다고 고객센터에 항의한 적이 없어도, 엔진에 문제가 있는 차를 팔았다며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소비자들과 연대해 고소를 한 적이 없어도, 무조건 '리콜'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문제가 있던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니 '혜택'이라고까지 하기도 뭐합니다만, 제조업체에서 마땅히 해당 모델을 가지고 있는 소유자 모두에게 리콜받으시라고 연락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찾아온 모든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해 줘야 합니다. 당연해 보입니다. 그리고 법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공정력 제도는 이와 딴판입니다. 정부의 어떠한 행정행위가 부당하다고 느낄 때, 그것이 부당하니 개별 국민이나 기업이 소송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소송에서 승리합니다. 그러면 소송 승리자에게 법원에서 판단한 정도의 보상이 돌아갑니다. 해당 행정행위 역시 부당한 것으로 인정되면 소멸하거나 수정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이전의 행정행위가 부당했으므로 해당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상이 돌아갈까요? 소송을 제기해서 승리한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 보상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엉망진창이었던 규제나 명령이었다고 해도 말입니다. 당연히 보상받고 위로받아야 할 일이 '정부'가 취한 행정행위와 규제에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국민에게 100만 원을 잘못 부과했다고 해도, 소송을 해서 이기지 못하면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합니다. 당연한 상식이 '정부'의 행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독일에 '아우슈비츠 거짓말 법'이라는 것이 있더군요. 강정의 문제가 유대인 학살의 역사로까지 비화될 문제는 아닐지 모르지만 국가의 책임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논할 가치가 있어 보였습니다. 명백한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부정하고 폄훼하며 피해자들과 세계인들의 인권에 반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지극히 정의의 편에 놓인 법이지요. 문제는 이 이름의 법이 만들어지기 전,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고소인의 자격범위였습니다. 직접 피해를 입지 않은 유대인이 아니면 고소할 수 없었고, 그렇다면 고소할 수 있는 '유대인'에 포함되기 위한 혈통의 비율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가치 없는 논란만 커져 갔습니다. 유대인을 가려내자니 심지어 히틀러가 기준으로 삼았던 가계 혈통도까지 언급되기도 했고요, 한마디로 좋은 취지의 법이 죽은 망령을 살리는 꼴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우슈비츠 거짓말 법은 이런 폐해를 없애고자 고소인이 필요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즉, 특정 유대인 박해사건을 부정하며 모욕을 건 경우 고소한 사람이 없어도 기소가 가능하고 배상을 강제하도록 한 것이죠. '친고죄'의 굴레에서 역사를 구출해 낸 것입니다.


 어지럽게 왔다갔다한 것 같습니다. 강정마을의 주민들에겐  '공정력 제도'가 아닌 '아우슈비츠 거짓말 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심지어는 공정력 제도만큼이라도 국가에서 신경을 써 주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평온한 마을, 국가의 사전 모의로 투표가 조작되고 그 치사하고도 단순 무식한 절차로 국가의 대 사업이 결정됩니다. 잘못된 일 아닙니까? 그 일이 잘못된 일이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소송을 제기하면, 이의를 제기하고 소송을 제기한 국민에게만이라도 사과하고 보상하십시오! 공정력 수준조차도 지키지 않고 있는 것 아닙니까.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국민들을 갈라놓았습니다. 아우슈비츠 거짓말 법 까지는 아니더라도 국가가 나서서 통렬히 사과하고, 한 발 앞서 보상하고, 먼저 반성하며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것 아닐는지요. 상처 입고 피폐해진 모든 국민들에게 정부는 친고 여부를 따지지 말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강정천 유원지


 올여름의 기세는 그 꼬리가 길게 늘어질 것 같습니다. 따가운 햇살은 강정천의 수면에 닿는 순간 되튀어 흩어져 버리고 맙니다. 바다와 맞닿은 천혜의 경관은, 강정은 애당초 이런 곳이었다는 증언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제주는 평화의 섬이니 평화를 지키는 군사기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논리입니다. '금남(禁男)의 섬'에 남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거구의 남성 격투기 선수들이 섬의 초입에서 살벌하게 지키고 있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그들이 말하는 평화의 수준을 극단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라면 백록담 분화구에 핵을 보유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군요.


이미 돌이키기엔 늦었을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강정의 모습은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되겠다는 다짐의 장소로서, 산산이 깨어진 관계들이 다시 사랑스럽게 봉합되는 상징으로서의 강정은 충분히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 안에 지독하게 아파서 신음을 내고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저조차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곳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지요.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분명 대가가 필요하겠습니다. 그 대가는 우리의 공감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가까운 미래, 새로운 평화센터가 완공되는 날을 상상해 봅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해군이 진정으로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철천지 원수가 되었던 이웃들은 손을 맞잡고 포옹하며 미안함의 눈물을 흘립니다. 기나긴 아픔을 딛고 상생의 모범으로 우뚝 선 강정마을을 탐방하러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진실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각지에서 온 손님을 맨 앞에서 환영하기 위해 회장님이 뛰어나오십니다.

 지난날보다 더 바빠질 '강정 세계 평화마을' 강동균 회장님이십니다.


 바다 위엔 유람선이 떠 있습니다. 한 폭의 풍경화입니다. 

 

 이게 강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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