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곳의 어떤 것들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꿈을 꾸었습니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 벅참의 여진으로 침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새가 된다면 첫 10분간 느낄 법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격으로 온몸이 심장이 되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꿈이라도 프로이트에게 던져놓으면 꽤나 심각한 해석을 동반하겠지요. 그 속에 담긴 뜻을 끄집어내려는 분석보다는 단순히 기분 좋은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깨고 싶지 않은 사랑스러운 꿈은 그 자체가 행복한 경험입니다, 굳이 해석이란 단계를 거칠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흔하면서도 미소 지을 법한 꿈은 뭘까요? 말 그대로 '꿈에 그리던'이라는 관형어구의 수식이 어울리는 것들일 겁니다.
먼저 꿈에 그리던 '사람'을 만나는 꿈이 있을 겁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어릴 적 둘도 없이 가까웠지만 서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연락이 끊긴 친구가 있겠고요, 한동안 짝사랑하다가 결국 한 마디도 못 꺼내고 흘려보낸 버스 정류장의 그녀가 있다면, 평생을 함께 할 거라 믿었다가 슬픈 이별의 대상이 되어버린 그 사람이 등장하는 꿈들은 비록 먹먹한 감정이 섞여있을지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멋지고도 애잔한 꿈이 될 겁니다.
두 번째는 꿈에 그리던 '장소'에 대한 꿈이 아닐까요. 이 장소는 또 둘로 나뉠 것 같습니다. 과거에 가 본 경험이 있는데 언제라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과, 한 번도 가지 못했지만 언젠가 꼭 갈 거라 다짐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세상 무한한 공간 속에서 나만의 '장소'를 여럿 만들고 싶어 하는 저는, 기억 속 추억의 장소에 대한 꿈을 자주 꾸는 편입니다. 비록 실제의 공간과는 다르게 왜곡되어 보인다 해도 다시 그곳에 내가 서 있다는 설렘과 흥분이 너무도 소중해서 - 여러분도 간혹 경험하시듯 - 꿈인 줄 알면서도 깨지 않으려 애써 발버둥 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 꿈엔 익숙한 장소가 아닌 낯선 공간이 등장했던 것입니다, 드문 일이었죠. 벅찬 정도가 최고조까지 치달았던 이유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가면서 풍경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거기에 백 뮤직까지 깔렸으니 극적인 효과가 배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 음악이 뭐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옛날 항공사 CF 배경음악과 비슷한 느낌으로, 하늘을 훨훨 날면서 듣기에 맞춤한 음악이었습니다. 하늘을 날면서 눈물샘과 공기가 마찰을 일으켜 촉촉해진 눈으로 바라본 그 동영상은 청정한 자연도, 유명한 랜드마크도 아니었습니다. 최대한 비슷한 이미지를 찾아본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하늘을 날면서 왼쪽을 쳐다보았으니 시선의 방향은 아래의 사진과 비슷했고요, 전체적인 집들의 색감은 위의 사진과 유사했습니다. 한 마리 큰 새가 되었으므로 사진들보다 시야는 조금 더 높이 위치했겠지요. 배경음악과 함께 낮은 산의 능선을 따라 가로지르는 비행의 순간은 몇 안 되는 '인생 꿈'이 되었습니다. 스토리라고는 전혀 없으니 딱히 잊지 못할 이유를 대기도 힘들지만 댈 필요도 없을 듯합니다. 단순한 꿈이어도 그저 기억에 박혔으니 그거면 된 거 아니겠습니까.
어디서 본 듯한 꿈속의 현실 공간을 찾아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달동네는 산재해 있지만 집들의 형태를 떠올려보니 외국임을 직감했습니다. 어렵지 않게 찾아낸 꿈속의 공간은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빈민촌 '파벨라(Favela)'였습니다. 파벨라라는 단어 자체가 고유 지명이 아닌 '슬럼가'를 뜻하는 포르투갈어라고 합니다만 리우 데 자네이루의 파벨라가 유독 영화나 뮤직비디오의 배경으로 유명했던 탓에, 브라질에서 파벨라라고 하면 곧 이 동네를 일컬을 때가 많다고 합니다.
왜 가본 적도 없는 이곳이 꿈에, 그것도 잊지 못할 명작의 배경으로 등장했을까요? 하늘을 날면서 형형색색의 점들을 바라본 인상이 특별했던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한참을 지난 뒤 그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 경사가 진 공간을 늘 동경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걸 몰랐다니요.
부산 초량 이바구길 초입
부산의 대표적인 언덕마을로는 감천동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태극도'란 신 종교단체가 원 거점이었던 보수동으로부터 집단이주를 한 곳이 감천동인데요, 한 번에 집단으로 마을을 조성한 덕에 앞집이 뒷집의 경관을 가리지 않게 하는 등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시간이 흘러 마을 구성원들이 들고 나면서 종교적 색채는 약해지고 지금 같은 핫플레이스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하지요. 관광객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마을의 정보를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어 굳이 이곳을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고요, 지형적인 특성으로 부산에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언덕마을이 넘쳐나게 많으니 다른 공간을 탐색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작정하고 뿌리를 찾아가 보는 게 낫지 않겠니?' 하고 자문합니다. 몇 달 살지는 않았지만 명백히 저의 출생지인 부산, 그 안에서도 서민들이 살을 부대끼며 살아온 달동네였던 초량동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항구를 눈 앞에 둔 지리적 이유로 외세의 출입이 잦았던 초량은 지금도 가장 이국적인 거리로 유명합니다. 1884년 청나라 영사관이 들어서는 등 조계지가 설치되며, 근방인 용두산 일대의 '왜관(倭館)'에 빗대 '청관(淸館)'으로도 불렸다고 하는데요, 비탈진 언덕으로 걸어 올라가는 초입은 지금도 마라탕의 향이 가득할 정도로 차이나타운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장소인 초량교회를 지나 부산 산복도로의 역사와 초량 출신 유명인의 자취를 전시해 놓은 담장갤러리는 이른바 초량 '이바구길'의 첫 볼거리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바구'라니,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단어입니다. 그렇죠, 이바구를 '푼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썰'을 푼다는 뜻이죠. 이바구는 '이야기'의 경상도 방언입니다. 일제강점기 부산항이 개항하면서 밀려들어온 외국의 문화와 한국전쟁 직후 밀려 들러온 피난민들의 사연이 얽히고설키면서 복잡하고도 애잔한 삶의 이야기가 끊일 수 없었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그 혹독한 삶의 무게를 지고 올라가는 언덕길에 어찌 오만가지의 이야기가 묻어있지 않았을까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발길을 재촉합니다. 이바구길의 끝에서 보이는 부산의 전경을 먼저 상상해 봅니다. 채 5분도 걸어가지 않았는데 끝이 없을 듯 이어진 계단이 보이고, 그 옆에 알록달록 채색된 건물이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전방에 보이는 168계단과 밝은 색으로 장식된 모노레일 역사
외국에서나 볼 법한 작은 동네의 모노레일은 정말 있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이 알록달록한 모노레일 역사(驛舍)의 관리와 승하차 관리를 책임지고 계셨습니다. 동네 주민이 아니어도 탑승료가 없다는 안내 말씀을 재차 확인하고 이바구길 최상부에서 내려오는 모노레일을 기다렸습니다. 짧은 거리에 속도도 빠르지 않을 텐데 왜 그리 기대가 되던지요. 도심 한복판이나 놀이공원이 아닌, 달동네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생활밀착형 교통수단이라는 사실이 묘한 이국적 낭만을 불러일으킨 모양입니다.
이럴 수가, 한눈에 봐도 수직에 가까운 급경사의 레일입니다. 정작 모노레일 안에 탑승하면 본체는 레일의 경사와 관계없이 수평을 유지하며 올라가는 까닭에, 아래를 내다보는 두 눈에만 힘이 들어갈 뿐 몸의 기울기는 평지와 다름없음에 편안함을 유지합니다. 고령인 마을 어르신들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시설이니 마땅히 안정된 승차감을 고려했을 거라 짐작하게 되는데요, 탑승자 대부분은 관광객입니다. 이 초량의 명물도 널리 유명세를 탈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마을에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찾아와 주신다면 동네에도 쏠쏠한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감탄을 하며 올라가는 모노레일에서 바라본 마을의 옆모습은 마치 홍콩의 한 구역을 떠오르게 합니다. 초량의 모노레일 격인 피크트램(Peak Tram)을 타고 오르는 빅토리아 피크까지의 모습과는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감상하는 소호의 분위기와는 꽤 가깝다는 인상입니다. 홍콩의 명물인 에스컬레이터의 오름이 끝나는 지점에는 아래의 번잡함과 달리 상업시설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주거공간이 담을 맞대고 있습니다. 초량 이바구길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요, 복잡하고 치열한 아랫동네를 유유자적 내려다보는, 인생을 달관한 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두 공간의 개성이 닮아 보이는 이유입니다.
홍콩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주변의 모습
세상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주거지를 초량동과 비교한 것이 적절치 않은 듯도 하지만, 유사한 오르막의 분위기만을 척도로 삼았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억척스럽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초량의 민초들 만큼이나 홍콩의 주민들 역시 개항에 따른 열강들의 간섭 속에 어찌 고난이 없는 삶을 살았을까요. 국제적 규모의 항구도시인 부산과 홍콩의 시민들 모두 번영의 미래를 열어 나가시길 기원할 뿐입니다.
홍콩으로까지 시야가 넓어진 김에 언덕을 따라 조성된 또 다른 관광도시를 잠깐 둘러볼까요? 개인적으로는 네 번 방문에 합이 석 달 정도를 머문 적이 있는 도시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여러 수식어로 가득한 곳이지요. 젊음과 자유과 가득한 도시, 힙한 예술과 철저히 존중되는 성문화 다양성의 메카, 금문교와 베이 브릿지로 감싸인 낭만적인 경관의 도시, 모범적인 다민족 융화의 고장, 첨단산업의 인큐베이터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이 도시를 그토록 사랑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무엇인지 가지치기를 해보면, 결국 '굽이치는 언덕으로 가득한 도시'라는 명쾌한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고저(高低)의 미(美)가 넘실대는 공간이 내보내는 주파수가 저의 감성과 일치했다고 말씀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케이블카가 오르내리는 샌프란시스코의 도심
샌프란시스코의 굽이치는 언덕의 연속은 케이블카라는 요소로 인해 더 빛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가장 치명적인 매력은 언덕의 경사를 경사 그대로 놔두지 않고 평지와 다름없이 집약적인 생활공간으로 채웠다는 것입니다. 수동기어의 차를 몰았다면 분명히 시동을 꺼뜨렸을 거라는 아찔한 상상을 하게 되는 급경사의 언덕 마루에도 주민들의 차는 신기하게 굴러 떨어지지 않고 온전히 주차되어 있습니다.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최상급자 코스의 슬로프라 해도 무리가 없을 그 가파른 고개를 따라 집들은 잘도 밀집되어 붙어 있고, 사람들은 그리 버겁지 않다는 듯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지에 조성된 도시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도시계획자의 입장에선 그보다 유리한 지형은 없겠지요. 굴곡이 없으니 구획을 나누기도 편리할뿐더러 시야가 수평 방향으로 골고루 미치니 균질함과 평등함은 자연스레 도시의 장점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경사진 도시는 왜 이동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 매력을 드러내는 걸까요?
그림이나 사진 중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작가는 색채와 구도, 균형 등 필수요소들의 완벽한 조합을 구현해 내면서 감상하는 이들로 하여금 부지불식간에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데요, 구도와 균형의 실현을 위해 그들은 작품 속 '선(線)'들의 조화로운 구성을 고민합니다. 잘 된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그림을 분석해 보면 곧 구조의 기본이 되는 선들이 아름답게 교차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초기의 시. 서. 화 삼절,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를 보겠습니다.
많은 구성요소 중 오직 구조선만을 본다면 단순하게는 이런 형태이겠습니다. 그림의 초점이 되는 인물의 오른쪽 절벽은 화면의 삼등분한 세로 방향으로 길게 수직선을 그어내리고 있습니다. 그 옆에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나뭇가지의 움직임은 유연하게 커브를 그리며 역시 아래를 향해 드리워져 세로의 군(群)을 형성하고 있군요. 반면 무심한 듯 엎드려 있는 인물과 그 아래의 바위는 수평으로 놓이며, 흐르는 물과 마찬가지로 가로의 군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십자 형태의 수직, 수평의 밋밋한 교차가 아닌 적절히 한쪽으로 치우친 수평과 수직의 배치는 보는 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안정되고 기품 있는 작품이라는 아우라를 맘껏 뿜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언덕의 경사가 주는 샌프란시스코의 도심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그림이 아닌 샌프란시스코의 실제 모습이죠. 그러니 여러 가지 매혹적인 구조선을 만들어 내는 건 이곳에 서 있는 인물 하기 나름입니다. 고개를 삐딱하게 돌리거나 시선을 전후 좌우로 돌리면 명작들이 수시로 모습을 바꾸어 등장합니다. 다만 고정된 위의 프레임을 기준으로 한다면
각각의 선들의 구조는 대략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상단 좌측의 사진은 언덕 위쪽에서 아래를 조망하는 시선입니다. 도로 양쪽으로 높이 선 빌딩이 만들어내는 위압적인 수직의 기운이 있다면, 내리막길이 만나는 수평의 차도가, 보는 이의 시야와 가까운 지점에선 길게, 건물의 나열이 끝나는 지점에선 짧게, 화면의 하단과 중앙 부분을 가르고 있습니다. 또한 원근법으로 점점 좁아져 삼각형을 이루는 파란 선들은 전체 풍경에 역동성을 부여합니다. 어느 도로이건 직선으로 뻗어있다면 원근법상 삼각형 형태로 좁아지기 마련이겠으나, 고도가 달라 내려가거나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삼각형은 그 느낌이 절대 같을 수 없는 법입니다.
그 옆의 사진으로 가겠습니다. 케이블카가 내려가는지 올라가는 건지 모르는 상황입니다만 급경사에서 상대적으로 평탄한 경사로 바뀌는 부분이 도로가 잘라져 보이듯 수평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도로의 정상 부분에 하늘과 맞닿은 부분도 역시 수평의 선입니다. 이를 오른쪽의 가려진 건물이 짧은 수평으로 완화하고 있으며 우측으로 비스듬하게 내려오는 삼각형이 시선을 유도하며 수직과 수평의 사이에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 역시 건물의 수직선과 경사진 삼각형이 좌에서 우로 어우러지며 수직과 수평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난 모습입니다. 원초적 구별인 십자(十字) 형 이분법적 남녀의 모습에서, 사랑의 결실인 아이들이 더해진 가족사진으로 바뀐 모습이랄까요. 그래서 언덕은 경사가 주는 특유의 긴장감에서 되레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구태여 구조선으로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높이가 주는 시선의 차이가 여러 풍경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법한 일입니다.
모노레일 출발지점뿐 아니라 정상에도 동네 어르신들의 서비스 정신은 빛을 발합니다. 가족들, 연인들을 가리지 않고 최적의 촬영 포인트로 안내해 주십니다. 그것뿐인가요, SNS의 위력을 누구보다 인정하시는 듯 몇 가지 '프사'용 포즈를 알려주시며 추억으로 남을 컷을 선물해 주십니다. 전망대의 옆에 위치한 카페에서도 달콤한 에이드를 만드는 것은 역시 동네의 아주머님들이었습니다. 추세가 그렇지요, 동네를 누구보다 잘 아는 지역민들이 마을을 안내하고 해설하는 관광의 첨병 역할을 맡곤 합니다. 초량 이바구길의 어르신들에게 그 역할은 너무도 쉽고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미소와 함께 던져지는 부산 특유의 억센(?) 친절은 이 고단했던 달동네를 환하게 만들어주는 에너지였으며, 훈훈한 기분으로 걸어 들어간 마을카페의 큼직한 창가 명당자리는 덤이었습니다.
이바구길을 내려와 그리스의 산토리니인 듯 영화에 등장했던 그곳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바다 건너 송도의 경치에 전혀 뒤질 것 없는데도 억울하게 '2송도'로 불렸던 또 다른 언덕 위의 동네, 영도의 '흰여울 문화마을'입니다.
흰여울 문화마을길
흰여울 마을에서 다리 건너 송도를 전망할 수 있습니다
큰 비라도 내리면 봉래산에서 거센 물줄기가 급경사지를 타고 내려와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이 흰 여울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라고 합니다. 절벽에서 바라보는 송도 쪽의 절경이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빼어난데도 1도 아닌 '2'송도라 불렸던 까닭은, 이곳 역시 피난민들이 거주하는 낙후된 공간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왜 언덕의 주거지는 온통 피난민들로 채워진 걸까요. 평지가 부족한 부산에서는 너무도 명백합니다. 살 만한 곳이 언덕이나 절벽밖에 남아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이젠 말끔하게 단장한 축대 위의 눈부신 마을에선 관광객들이 좁은 길을 왕래하며 "이런 곳에 살았으면 좋겠다." 한 마디씩 던집니다. 상전벽해란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흰여울 마을의 드라마틱한 이미지는 드넓은 바다와 수직을 이루는 절벽이라는 공간의 구성에서 비롯됩니다. 바다와 마을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오직 절벽뿐입니다. 짙푸른 바다는 발아래 까마득한 곳에서 수평선 멀리까지 광활하게 깔려있고, 하늘과 일직선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는 이곳과는 확실하게 이격된, 거친 자연의 공간입니다. 생활의 장소에서 눈앞의 바다로 뛰어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장엄한 감동을 주는 한 폭의 그림임에 틀림없지만, 편안하고 친숙한 잔잔한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너무도 직설적입니다.
(좌) 그리스 산토리니와 (우) 이탈리아의 소렌토입니다. 곳에 따라 해안의 저지대부터 완만하게 층을 올렸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이 두 휴양지의 이미지는 가파른 절벽에 만들어진 삶의 공간들입니다. 흰여울 마을과 마찬가지로 망망대해를 눈앞에서 조망하는 장쾌한 이미지를 가슴에 담을 수 있습니다. 대신 시선은 급전직하로 내려 깔리기도 하며 서늘한 단절과 낯섦을 기억 속에 새기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경사의 정도가 변화무쌍하여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선호하시는지, 가슴이 뻥 뚫릴 명암의 대비처럼 장쾌한 절벽의 직립이 더 끌리시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저라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갈 수 있게 된다면, 현실감을 망각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절벽 위 레스토랑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 한 잔을 하고 싶고요, 여행이 끝난 뒤 돌아온 소중한 나의 공간은 여러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는 정감 있는 언덕 위의 집이 될 수 있었으면 하고 말이죠.
점진적 경사는 조화, 뚝 잘린 경사는 고립이라고 무식하게 나누려는 것이 아닙니다. 눈이 시린 장쾌함을 1년 내내 감상하고 싶은 사람들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삶이 힘들어서, 몸 하나 의지할 곳이 없어 오르고 또 올라 자리 잡은 고난의 공간들이 이젠 도리어 평탄한 아랫마을에 사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없으니 파벨라의 파노라마를 역동적으로 보려면 다시 똑같은 꿈을 꿀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잠이 들기 전 반복해서 떠올리면 그 장소나 사람이 꿈에 나온다고는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군요.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와 있었던 시간들을 쭉 이어 보면 되겠고 가 본 적이 있는 장소는 그때의 추억들을 곱씹어보면 될 텐데, 브라질의 파벨라는 그저 이전 꿈에서 봤던 장면뿐입니다. 후속 꿈으로 이어가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연관된 무엇이 없을까 검색해보니... 아하! 그렇군요. <인크레더블 헐크(2008)>에서 에드워드 노튼이 숨어 지내는 장소로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한 곳이 바로 리우 데 자네이루의 파벨라였습니다.
헐크의 유전자 정보를 탈취하기 위해 브라질의 파벨라 한복판까지 군대가 들이닥칩니다. 브루스 배너는 최대한 흥분치를 높이지 않으며 도주하려 했습니다만 결국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이자 녹색 괴물 헐크로 변해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내용이 영화 초반의 하이라이트 장면이지요. 빼곡히 들어찬 빈민들의 주택들과 힘겹게 언덕을 오가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다시 그려보니, 확실히 꿈에서 본 그곳이 리우의 파벨라와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엔 누워서 영화의 도입 부분을 계속해서 떠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알록달록한 지붕의 높낮이가 제각각인 파벨라의 집들과 오가는 사람들, 줌 아웃해서 보이는 언덕 전체의 모습.. 이 정도면 환상적인 꿈, 다시 한번 꿀 수 있지 않을까요?
문제가 있습니다. 엄청난 스판 재질인 건지 좀체 찢어질 줄 모르는 브루스 배너의 바지와 달리, 상의는 갈갈이 뜯겨나가며 초록색 괴물의 형체가 조금씩 드러납니다. 네, 헐크입니다. 변신 완료 후 족히 5미터는 돼 보이는 무지막지한 체구가 주위를 압도합니다. 아무 잘못 없는 저를 노려보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다가오는 일촉즉발의 장면이 그려진다는 겁니다. 이러다간 파벨라의 환상적인 꿈 대신 어벤져스의 빌런, 로키처럼 헐크에게 사정없이 난타당하는 악몽을 꿀 것 같습니다. 큰일입니다.
초량동 이바구길로 꿈의 무대를 바꿔야겠습니다. 양 떼가 이바구길 168계단 위로 뛰어오릅니다. 양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백 예순여덟 마리.
잠이 오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