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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Nov 10. 2020

41 팔각(八角)의 유년
-서울 어린이대공원

모든 곳의 어떤 것들








 


 미국 애너하임에 위치한 디즈니랜드입니다. 아이들에게 꿈과 낭만을 심어준다고 하지요. 어찌 아이들 뿐일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손을 잡고 들어가는 아이들 만큼이나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어른들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미국 생활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디즈니랜드 탐방으로로 잡은 것이 아이들을 위한 자상한 아버지의 배려인 척 포장을 했지만, 실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두근거리고 싶었던 제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동심으로 돌아갈 노력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놀이공원이란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절로 덩치만 큰 아이가 되곤 했으니까요. 놀이공원에서 아이들과, 연인과 함께 하는 어른들은 사회에서의 책임을 잠시나마 벗어던지고 일방적인 즐거움을 선물 받는 피보호자의 혜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도 위로 좀 받아보자' 그런 의도가 깔려 있다고나 할까요. 짜릿한 시간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복잡한 것들을 잊기 위한 시간에 가까울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꽤 부담스러운 액수의 입장권 혹은 자유이용권이 있어야 하고, 동반하는 가족이나 연인에 대한 친절함이 전제가 되어야 즐길 수 있는 일탈의 시간이겠지요.

 아이들 입장은 다릅니다. 스펀지 같은 그들의 머릿속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놀이공원에서의 하루가 촘촘히 기록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엄마가 건네 준 빨간색 풍선과 아빠가 사 준 달콤한 솜사탕, 분수대가 있었던 널따란 공간과 초록색 청룡열차가 굉음을 내던 순간들이 담겨 있고요, 한없이 흐뭇한 표정으로 조그마한 나를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표정까지도 생생히 투영됩니다. 도시마다 특색 있는 테마파크가 있는 요즘보다는 갈 곳이 극히 한정되어 있었던 그때였으니, 유일하면서도 뚜렷한 이미지로 놀이공원이 기억되기에는 오히려 유리하지 않았을까요.    



 전철역에서 내려 출구로 올라와 보니 왼편 길 건너엔 세종대학교 정문이 보이고, 어린이대공원 정문은 뛰어가도 10초 이상 걸리지 않을 만큼 지척이었습니다. 40년도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 전통적인 정문의 모습과 그 뒤로 이어진 길들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어린 시절 벅차게 즐거웠던 한때의 기억은 역시 막강한 것인지요. 마치 엊그제 와 보기라도 한 듯 성큼성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때의 네 걸음이 이젠 한 걸음이 되었겠지요. 더구나 어린이대공원은 입장료가 없었습니다. 발걸음은 한층 더 가벼워질 뿐입니다.

 쭉 걸어 들어가 분수대가 보이는 갈림길에 섭니다. 무언가가 자꾸 신경 쓰입니다. 분수대 왼편에 있는 기념비로 눈길이 쏠립니다. 혹시 몰라 사진을 찍어둡니다. 그럼 그렇지요, 박정희 대통령의 글이었습니다.




 6,70년대 조성된 주요 시설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비가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착하고 씩씩하며 슬기롭게' 자라서 나라의 경제 역군이 되어야 할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니 왜 기념사가 적혀 있지 않겠습니까. 다만 능동에 자리한 서울 어린이대공원 이곳은 그 탄생 자체가 박정희 대통령과 직접적 관련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 서 있는 기념비가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인물 중 그만큼 공과 과가 뚜렷이 나눠지고 양 극단으로 평가가 갈린 사람이 또 있을까요. 역사적 평가를 여기서 다룰 생각도 여유도 없습니다만, 힘없는 다수의 희생과 감시가 전제되는 국익의 추구는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한 문장으로 간략히 그의 시대를 되돌아보려 합니다.


  지금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부지는 순종황제의 첫 번째 아내인 순명효황후 민 씨가 안장된 유강원(裕康園)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이 능동(陵洞)이 된 것이죠. 이후 일제 강점기 영친왕이 조선왕실 소유였던 이곳의 토지를 무상 기증해 1930년 경성골프구락부가 만들어집니다. 후에 '서울컨트리구락부'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던 이곳을 박정희 대통령도 애용했다고 하는데요, "각하, 나이스 샷!"이란 소리가 얼마나 자주 들렸을지 상상해 봅니다. 혹시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가 그분의 힘찬 드라이브 샷 직후 처음으로 탄생한 말이 아니었을까요.

 시간이 흘러 부의 집중으로 서울이 확장되면서 서울컨트리구락부가 도심에 둘러싸인 형국이 되자 정부는 골프장을 경기도로 옮겼고, 서울특별시가 이곳을 어린이대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고 합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은 기념비에 적힌 대로 1973년 5월 5일 개장을 해, 창경원과 더불어 당시 꼬마들의 판타지랜드 양대산맥이 되었습니다. 이후 용인 자연농원(現 에버랜드), 드림랜드, 과천 서울랜드의 연이은 개장으로 경영상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서울 도심 속에 있다는 커다란 지리적 장점으로 꾸준한 가족 나들이 장소로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기념비가 낯이 익었던 이유였겠다 싶어 집으로 돌아간 후 앨범을 넘겨봤습니다. 역시나 있었습니다. 그럴 것 같더라니 말입니다.



 유신시대의 아픔을 알리 없는 순수한 아이는 징그럽고 늙수그레하게 변하고 말았습니다만 기념비는 조금도 변함이 없어 보이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알고 보면 당연한 것임에도 신기한 것들이 참 많은 세상입니다. 그나저나 오래된 이야기를 끄집어 내려니 어쩔 수없이 자꾸 등장하는 사진 속 인물입니다. 이번 글에선 지겹더라도 양해해 주십사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래도 아이였을 때가 낫습니다.


 시원하게 뻗은 길을 따라 대공원의 중심으로 향합니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단연 압도적입니다. 하긴 주말 오후 혼자 어슬렁거리는 아저씨가 이상할 따름인 거죠. 넓은 공원에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 코로나 걱정은 조금 덜어도 될지요. 곧 동물원의 입구가 등장합니다. 경사로에 원형으로 쭉 이어진 동물원의 구조 역시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어릴 때 제대로 즐기긴 했나 봅니다. 이렇게 친숙하니 말입니다.

 동물원 구역에서 정면의 원숭이 우리를 지나 왼쪽으로 가면, 자아를 인식한다고 말씀드렸던 코끼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만약 말을 할 수 있다면 참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 동물입니다.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라는 것은 머릿속에 그렇게 각인되어 있을 뿐이고 실체를 경험해 본 적은 없습니다. 간혹 동물의 왕국에서 야생 코끼리들의 수준 높은 군집생활을 보여주기도 하고, 목숨이 다할 것을 알고 죽음의 공간으로 스스로 향하는 영적인 행동을 특집 다큐멘리로 접하게 되기도 합니다만 무엇보다 저 커다란 몸을 쓰다듬으며 교감을 나누고 싶어집니다. 몇 안 되는 제 능력 중 그나마 자신 있는 것이 아이들이나 동물들과 빨리 친근해지기인데요, 덕분에 조카나 지인의 아이들에겐 꽤 인기가 있는 편이라고 자평을 해야겠습니다. 허술하게 보여서 경계를 풀게 하는 그 무엇이 제 속에 있는 것일까요. 그게 아니면 아이들과 동물이 저를 동급으로 취급해서 만만히 여기고 있는 것이, 주위의 시선으로는 잘 놀아주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요. 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겠습니다만 저는 아름답고 조그마한 생명체들과의 즐거운 소통에 만족하며 살고 있으니 만만해 보여도 상관없겠습니다. 좋으면 된 거 아니겠습니까.


 서로의 자아를 탐색해 보기 전에 코끼리에겐 꼭 따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땐 왜 그랬냐고. 친해지고 싶어서 다가올 순 있었겠지만 그 어린 아기에게 너같이 위협적인 덩치의 접근은 무엇을 의미하겠냐고 말이죠.  




 여긴 창경원입니다. 위의 어린이대공원에 갔을 때보다도 어릴 때였으니 두세 살 쯤이었지요. 거짓말이라고 하지 말아 주십시오. 몇 안 되는 유아시절 기억 중 하나입니다.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일생일대의 공포감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코끼리를 가깝게 보게 하려는 의도로 저를 우리의 경계인 철제 난간 위에 앉혔습니다. 몹시 당황한 저는 잠깐만 버티면 된다는 각오로 멀리 있는 이상한 동물을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하고 거대한 동물이 슬금슬금 다가옵니다. 해자(垓子) 역할을 하는 구덩이가 그 동물과 제 사이를 떨어뜨려놓고는 있습니다만 저 무지막지한 코라면 제 몸에 닿지 말란 법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점점 다가올수록 몸집은 감당이 안될 정도로 압도적이었지요. 평소 같으면 울어버리면 될 것을, 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건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난간 위에 앉혀진 제 몸은 돌처럼 굳어버렸습니다. 뒷모습이 나온 사진에선 두려움이 포착되지 않아 너무도 평범한 어린 날의 한 컷이 돼 버린 듯합니다만 극한 긴장을 하면 신체의 기능이 마비된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울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저는, 어머니가 다시 안아줄 때까지 공포를 오롯이 감당해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코끼리에게 묻고 싶었던 겁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트라우마 생겼다고.

 아하, 자아를 의식하는 게 코끼리였죠. 그 창경원에 있었던 코끼리는 그 코끼리일 뿐이고 여기 있는 나는 다른 개체라고, 내 잘못 아니라고 쏘아붙일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 말이 맞습니다.    


 어린이대공원의 곳곳이 생각보다 익숙했더라도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언덕 위에 우뚝 솟은 팔각정이었습니다. 현대에 와서 지어졌으니 오래된 단청의 멋은 배어 나오지 않을지라도 대공원의 상징이 될 만한 구조물임에 틀림없습니다. 동물원 왼쪽으로 보이는 팔각정을 바라보는 순간, 45년 전 가족의 모습이 아련하게 그려집니다. 지금은 팔각정이 아닌 팔각'당'으로 부르더군요. 예상외로 여전히 거대한 위용이었습니다. 보통 어린 시절의 동네나 학교를 오랜만에 가 보면, 놀랍도록 작아져버린 건물들과 운동장에 짐짓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훌쩍 높아지고 넓어진 시야가 어린 시절 올려다보았던 배경을 축소시키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어린이대공원의 모든 것은 예전 그대로와 똑같은 느낌입니다. 동물원과 산책로, 팔각당 모두 과거의 기억과 1:1 배율입니다. 동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일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높게 솟은 타워 외에 남산의 또 다른 상징 역시 팔각정이라는 게 떠오릅니다. 게다가 옛 선인들의 풍류의 공간도 계곡 옆에 근사하게 자리한 팔각지붕의 정자일 때가 많습니다. 도대체 왜 하필 5각, 6각, 7각도 아닌 8각일까요? 무언가 안정된 상태를 만들어주는, 혹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드는 신비의 힘이 있는 숫자일까요? 앞에서 October가 왜 8월이 아니고 10월인지에 대해 짚어봤습니다만 숫자의 8을 뜻하는 '옥타드(Octad)'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언가 꽉 찬 기운을 가진 숫자였던 것 같습니다. 숫자 10 이내에서 동일한 수의 세제곱으로 이뤄진 수는 1과 8 뿐입니다.(1=1x1x1, 8=2x2x2) 세제곱이란 3차원, 즉 부피를 뜻함을 유추할 수 있는데요, 따라서 1과 8은 3차원 공간에서 한 변의 길이가 각각 1과 8인 정육면체로 형상화됩니다. 



 8이라는 숫자는 이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정육면체의 부피를 구현하는 기본 수를 담고 있는 전체입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정육면체는 꼭짓점을 8개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정육면체의 각각의 면은 정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땅, 어머니로 상징되는 사각형의 4, 즉 '테트라드(Tetrad)'의 2배가 8이니, 옥타드는 강화된 만물의 어머니이자 포용과 안정을 뜻하는 숫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동양문화권의 관점에서 보자면 8에 함의된 의미가 만만치 않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팔정도(八正道)라는 수행의 원칙이 있지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진(正精進), 정정(正定)으로서 바른 깨우침으로 이끄는 여덟 가지 방법입니다. 역학(易學)은 또 어떻습니까. 팔괘(八卦)가 있습니다. 태극기의 가장자리에 놓인 음효(陰爻)와 양효(陽爻)를 세 줄로 구성하면 총 여덟 개의 괘가 도출되고, 이것이 64괘의 기본을 이루는 완전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장소를 이동해서 고대 그리스로 가 볼까요. 기원전 400년경 엠페도클레스는 모든 물질이 물과 불, 공기와 흙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4원소설을 구현해 냅니다. 서구 자연철학의 시조가 된 이 믿음은, 이후 데모크리토스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계승되어 상당한 시간 후대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여기에 각 물질의 상태를 나타내는 또 다른 4원소(뜨거움, 차가움, 습함, 건조함)를 더해 여덟 겹의 분류의 틀을 생성하며 만물의 판단기준을 정립하게 되는데요, 이는 중세나 이슬람 시대 문양이나 건축요소 등에서 볼 수 있는 8각의 패턴으로 형상화되기도 합니다. 시각적으로도 완성도가 최고치인 도형으로 인식되는 8각형은 지금도 도로 위 표지판의 틀로도 이용되며 그 위력을 알게 모르게 발휘하고 있는 중입니다. 더구나 동, 서양을 막론하고 숫자 8은 동서남북의 방위에 북동, 북서, 남동, 남서를 더한 수로 세상 모든 방향을 나타낼 수 있었으니 어찌 완벽한 수가 아니었을까요. 수십 년간 기억창고에 변함없이 저장된 팔각정의 위력은 바로 이런 숫자 8의 완벽함 때문일 수도 있겠고, UFC의 전사들은 그래서 옥타곤(Octagon)이라는 완벽한 무대에서 최강의 자리를 놓고 싸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멈춰있는 놀이기구들을 지나 출구로 향하는 길, 어린이회관이 나무들 사이로 보입니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설립한 육영재단의 광진구 부지 내 어린이대공원과 접해 있는 이곳은 7,80년대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단골 견학지였는데요. 거의 매년 단체로 찾았던 탓에 건물의 외양이 낯설지 않습니다. 육영수 여사의 사망 이후, 재단의 운영권을 둘러싼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남매의 거듭된 다툼으로 '어린이'를 위한 재단이라고 기억되기 어려운 이 건물은, 운영이 정상화되지 않은 듯 인적이 끊긴 모습이었습니다. 한때 육영재단에서는 <어깨동무>, <보물섬>등의 어린이 만화잡지를 창간했다고 하지요. 우리의 인기스타 '둘리'도 <보물섬>을 통해 데뷔한 슈퍼스타이니, 지금 어린이회관의 모습을 본다면 적지 않게 당혹스러워할 듯합니다.


단체 견학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던 어린이회관의 과거와 인적이 끊긴 지금의 모습


 맑은 하늘과 적당한 기온이 많은 가족들을 대공원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한쪽에서 네댓 살 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엄마 아빠 앞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는 건 바나나..." 


 별생각 없이 웃음을 지으며 지켜보다가 순간 소름이 돋음을 느낍니다. 끝말잇기의 원조격이며 확실한 유래도 밝혀지지 않은 이 세대초월 동요의 위대함이 온몸에 전율을 일으키게 한 것이죠. 동요란 것이 세대를 거듭하며 이어지기 쉽다고는 해도, 우리 부모님도 흥얼거리며 불렀을 이 노래가 이 시대 아이들의 입 안에서 음반처럼 똑같이 재생돼 흘러나올 수 있다니, 신비한 마법이 실현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빠의 어린 시절은 아이의 노래를 통해 부활하며 복제되는 동시에 언젠가 엄마 아빠와의 즐거운 한때를 기억할 아이들은 그들의 아이들에게 똑같이 '원숭이 엉덩이'로 시작하는 이 마법의 노래를 가르쳐주며 대를 이은 추억을 공유하겠지요. 어쩔 수없이 동심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그래서 심각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 동심이 빠져나가는 조각만큼 그것을 채워줄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달아나는 꼬마의 기억들을 되새김질하며 적지 않은 위안을 받곤 합니다. 유년의 기억은 모나서 날카롭고, 깎여서 볼품없어진 우리의 마음을 매끈하게 사포질해 주곤 하니까요. 마치 매일 아침 종합비타민 한 알을 꿀떡 삼키고 집을 나서듯 우리의 따뜻한 회상 한 모금은 사회를 따라잡느라 힘겨운 일상에 소중한 청량제가 되어 줄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있건 우리 모두는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혀 짧은 소리로 동요를 부르던 바로 그 아이였습니다. 


 보세요, 바로 그 어린 시절의 꼬마가 손을 흔들며 응원과 위로를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이젠 지금의 우리가 그들에게 답을 할 차례입니다. 한마디만 해주시면 됩니다. 


 지금도 네가 여전히 그립고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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