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나 라면땅, 뽑기가 생각보다 흔하게 보이는 요즘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복고를 경험할 수 있는 박물관에서나 팔던 어릴 적 먹을거리들이 초등학교 앞 문구사나 마트에서도 당당히 군것질거리로 팔리고 있으니, 이젠 딱히 신기한 느낌마저 들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기가 막히게 복제해 내는 시대, 그리운 과거를 통째로 옮겨올 수 있는 세상이 온 것 같습니다.
장을 보러 마트에 가서 한번 더 복고를 느낍니다. 이번에는 고체가 아닌 액체. 네, 마실거리입니다. 그 옛날, 세 꼭짓점 중 하나를 가위로 잘라내고 빨대를 넣어 두 손에 올려놓고 마셨던 '삼각우유'가 냉장 진열대에 늘어서 있습니다. 과자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情과 동의 이음어인 초코파이, 음료수로 본다면 하늘에서 별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리는 오란씨 정도가 탄생부터 지금까지 맥이 단절되는 일 없이 쭉 이어져 온 대표 장수 간식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손이 베일 듯 날카로운 모서리의 위용을 뽐내는 삼각우유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재등장한 아이템이기 때문에 그 재회의 감동이 오히려 배가 되는 느낌입니다.
카트를 세워놓고 삼각우유를 한참 주시하고 있자니, 전통에서 뒤질 것 없는 다른 음료계의 대부들이 떠오릅니다. 바로 국민 건강음료 베지밀(Vegetable + Milk라지요), 그리고 최근 진정한 본색(本色)을 놓고 흰색 파와 노란색 파가 뜨겁게 격돌하고 있는 바나나 우유입니다. 어느 하나도 대한민국의 음료사(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대 강자들이지요. 티격태격 우두머리를 두고 벌이는 다툼이야 느긋하게 관전하면 될 뿐이지만 이곳에서의 경쟁만큼은 워워하며 말릴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슈퍼마켓이나 구멍가게에 비해 살벌하니까요. 평상에 앉은 고객들의 손마다 무조건 마실 것이 들려 있으니 우열이 눈앞에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소개합니다. 포스를 자랑하는 목욕탕 음료수의 3대장들입니다. 박수 한번 주시지요.
시대에 따라 목욕탕이나 사우나에서의 인기 음료는 다를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막강한 위세를 떨쳤던 주인공은 바로 이들이라는 걸 부정하시지는 못할 겁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지요, 콜라나 사이다, 오렌지주스 등 맛있는 마실거리들은 넘치고 넘쳤음에도 왜 땀을 흠뻑 배출한 뒤 선택받는 것은 하필 이들인 건지요. 공통점을 찾아보자니 우유 아니면 두유군요. 얼핏 생각하면 탄산이 들어간 음료가 청량감은 한수 위일 것 같은데도 부드럽고 달콤한 유제품이 제왕의 자리를 다투고 있습니다. 물론 베지밀의 경우는 마땅히 'B'를 집어 들어야 달콤함을 맛볼 수 있겠지요, 세상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 중 하나가 베지밀 B로 알고 마셨는데 A일 경우라 하지 않습니까. 마시는 행복을 제대로 느끼려면 꼼꼼한 사전 확인은 필수입니다. 목욕탕에서 최고의 음료수라는 훈장을 반대로 해석하면, 목욕탕을 벗어난 일상에서는 각양각색의 맛을 뽐내는 음료들과 살벌한 경쟁을 해야 하는, 사뭇 차원이 다른 약육강식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 3대장들을 위해서라도 옛날 목욕탕으로 무대를 좁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목욕탕을 검색하면 나오는 대부분은 현대식 사우나입니다. 외관만이라도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동네 목욕탕은 구제주 지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정겨운 재래식 목욕탕이라고 구분 지을 수 있는 지표 중의 하나는 바로 기다란 굴뚝일 텐데요, 힘들게 찾아간 곳에도 역시 굴뚝이 서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이거 어떡하나요, 어린 시절 목욕탕의 추억을 돌이키려면 내부로 들어가서 보여드릴 것도 많은데 동네 주민들이 남탕, 여탕 입구로 제법 들어가십니다. 주인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 찍는 것을 허락받는다고 해도 많은 손님이 안에 계신다면 맨살들이 등장하는 각도를 피해 촬영을 한다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추억도 좋지만 의도치 않은 19금 사진작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발길을 돌려 차라리 집 근처를 구석구석 살펴보기로 합니다. 애월읍내에 설마 재래식 목욕탕 한 곳이 없을리가요.
인터넷 검색은 정말 행복한 과정입니다. 궁금한 것은 쓰면 답이 나옵니다. 좋고도 신기합니다. 집에서 불과 차로 5분 거리인 하귀리에 진정한 옛 목욕탕이 떡하니 있었습니다. 역시 검색으로 찾아낸 곳이었지요. 파란색 안내표지가 붙어있는 남탕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아버지 한분이 남탕과 여탕의 입구가 동시에 보이는 쪽방 같은 공간에서 요금을 받고 수건을 한 장 내주십니다. 신발을 벗고 안을 들여다보니 탕 안에 한 분이 계십니다. 머리를 수건으로 터프하게 털고 계시는 걸로 봐서 목욕 마무리 단계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분만 나가신다면 혼자뿐입니다. 주인 할아버지에게 취지를 설명드리고 흔쾌히 허락을 받았으니 마음 놓고 사진을 찍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워낙 작습니다. 지금까지 가 본 목욕탕 중 최소인 초미니 목욕탕입니다. 부잣집 거실 하나 정도의 넓이에 욕조와 샤워시설, 사우나가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이건 마치 무어의 법칙이 말하듯 18개월마다 집적도가 두 배가 되는 고성능 초집적 메모리 칩 같습니다. 자그마한 공간에 없는 것이 없습니다. 아, 물론 옷장이 있고 스킨, 로션을 바를 수 있는 바깥 공간은 빼고 말입니다.
지금까지의 장소들은 편하게 바라보며 감상에 젖으면 그만이었지만 오늘은 몸소 재현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탈의와 샤워 욕조 안 몸 불리기, 찬물과 뜨거운 물로의 반복 입수, 터프하게 물 끼얹기를 예전 그대로 재연해야 합니다. 단 등 밀거나 밀어주기는 혼자라 불가능하겠습니다. 평소 사우나를 자주 찾는 분이면 아무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겠으나 오랜만에 대중목욕탕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오래된 감성을 자극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을 터입니다. 경건한 알몸의 의식을 치르기 위해 유리문을 열고 탕 안으로 들어섭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조용한 목욕탕 내부에서 어렵지 않게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주변에서 열심히 때를 밀고 있는 아저씨들도 말이죠.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초등학교 졸업까지 일요일 아침은 곧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야 하는 '목욕탕 타임'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뜨겁디 뜨거운 물에 들어가야 하고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그 시간이 어찌 즐겁기만 했겠습니까만 어쩌다 탕 안에서 친구라도 마주치게 되면 목욕탕은 곧 수영장으로 변신했고요, 모든 세신 과정이 끝난 뒤 맛보는 3대장의 매력은, 마지못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게 되는 이유가 될 수 있었습니다.
샤워를 하고 뜨거운 욕조 안으로 들어갑니다. 뜨겁습니다. 사람들은 왜 어른이 되면 그리도 수월하게 펄펄 끓는 탕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요? 어른이 되면 뜨거운 걸 잘 못 느끼게 되는 걸까요, 아니면 어릴 때부터 쌓아온 한국인 특유의 열탕 입욕 경험으로 내공이 쌓인 덕분일까요. 열을 느끼는 통점이 어른이 되면 덜 민감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고통을 참아내고 뜨거운 물에 입수할 때, 정확히 말하면 뜨거운 물에 들어가 적응이 되었을 때 받을 수 있는 극강의 안도감과 평화로움에 눈을 뜨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시원~~~~~~하다!"
열탕 속 샤우팅인 시원함의 역설은 수십 년간의 훈련으로 다져진 우리나라 국민들만이 기꺼이 받아들이는 최선의 모순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어린 시절 목욕탕'하면 두 가지 사건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생생하게 목격을 한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없이 여유 있고 편안해야 할 공간인 목욕탕에서 오히려 조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사례들이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욕조 옆 목욕탕 의자에 앉아 몸에 비누칠을 할 때 일어났습니다. 초등학생이니 이제 다 컸다는 양 혼자 몸 구석구석을 문지르고 있는데, 바로 옆에 서서 샤워를 하고 있던 한 아저씨의 그림자가 이상하게 흔들거립니다. 왼쪽 위를 올려다보니 눈에 초점이 사라진 아저씨가 몸을 크게 비틀거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몇 번 앞뒤로 휘청거리시더니 제가 앉아있던 방향으로 몸이 기울어졌고, 저는 순간 커다란 아저씨의 몸에 깔릴 수 있겠다는 두려움을 직감하며 자리를 박차고 옆으로 피했습니다. 아저씨는 앞으로 기울어진 상태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습니다. 옆으로 보이던 아저씨의 입에선 거품이 가득 나오고 있었습니다. 제 심장은 공포로 요동을 쳤습니다. 아저씨가 긴급히 실려가기 전까지, 아니 실려가고 나서도 머릿속은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아저씨가 넘어질 때 내가 그대로 있었다면 내가 다칠 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목욕탕 바닥에 아저씨가 그대로 처박히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뒤늦은 후회였죠. 아저씨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평소 관련된 지병을 앓고 계셨을 가능성이 높지만 하필 그 증상이 발현한 장소가 낙상의 충격 완화와는 거리가 먼 목욕탕 안이었으니 아무렇지 않은 듯 금세 털고 일어나시긴 쉽지 않았을 거라고 판단이 되더군요. 지금도 그 트라우마는 여전합니다. 사우나라도 어쩌다 가게 되면 옆을 의식하게 되니까요.
아저씨 죄송했습니다. 제가 너무 어려 아저씨의 몸이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 피해 버렸네요. 지금 어디에 계실지 알 수 없지만, 그때의 사고에서는 완전히 회복되셨을 거라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제 말이 맞겠지요? 부디 용서해 주시기를요.
두 번째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슬픔이었습니다. 더할 수 없이 인자했던 고모부에게 찾아온 비극이었지요. 죽음의 심각성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던 어린 나이였지만, 자상하고 모두에게 환영받던 고모부가 사우나를 하시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 충격은 상당했습니다. 평소 혈압이 높았던 분이 사우나 안에서 뜨거운 기운을 참아내며 버티시다 쓰러졌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 쉽게 꺼질 수 있는 것이었다니요. 하루아침에 한 집안의 가장은 그렇게 허무한 생의 마감을 하고 말았습니다.
한국인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정화의 공간이 상상도 못할 사고의 현장이 되는 소식을 이따금 듣습니다. 대부분 제 고모부의 경우와 같은 종류의 사고입니다. 뜨거운 물은 40도만 되어도 입욕 전 몸에 물을 묻히는 준비단계가 필요할뿐더러 전신을 담그기 전에 일단 가장자리에 앉아 하반신부터 열에 적응시키는 일련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에 반해 건식 사우나는 그 내부의 온도가 무려 80에서 100도에 육박하지만 그 정도의 체감온도를 느끼기 힘들고, 건조하기 때문에 화상을 일으키지 않으니 많은 어르신들이 경쟁하듯 땀을 흘리며 버티고 앉아계시곤 합니다. 한때 문제를 맞혀야만 사우나에서 탈출할 수 있는 내용의 예능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상기된 얼굴을 한 연예인을 보고 아찔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젠 그런 식의 무모한 방송은 만들어질 수 없겠지요. 급격한 온도 변화 자체가 몸에 큰 무리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은, 호랑이 문신을 새긴 힘깨나 쓰는 분이라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겠습니다. 그래서 사우나에는 예나 지금이나 이런 문구가 붙어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기에 걸린 자나 꼬마들은 사우나 이용이 권장될 리가 없고요, 수축기 혈압이 저 정도로 높은 분들은 알아서 사우나는 들어오지 않으시겠지요. 갑자기 뜨거워진 공기가 안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눈 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도 좋을 것 없겠고, 안면 홍보증은 안면 홍조증이 잘못 인쇄된 것이겠습니다. 노약자, 임산부, 고열환자 및 중증 심장병 환자 역시 사우나 이용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래 두 항목입니다.
먼저 '술 마신 후 2시간 이내의 자'.
이렇게 공공을 대상으로 한 안내문구라면 ~~ 한 '사람'이나 ~~ 인 '분'은 맛이 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 한 '자(者)'여야 제 격이지요. 술 마신 후 '2시간'이라고 못 박아 놓은 것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모든 규율에 수치가 들어가는 이유는 명확한 사후 판정을 위해서이기도 할 텐데요. 소주 한 잔 마신 사람과 한 병 마신 사람 공히 2시간인 건지, 차라리 사우나 입구에서 음주측정을 하는 게 더 나은 건 아닌지 웃음을 띄게 하는 문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막을 볼까요? '출혈을 많이 한 자'입니다.
상식적으로 출혈을 많이 한 자가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고 목욕탕에 들어오려 할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범죄자이거나 누명을 쓴 자가 흐르는 피를 완벽히 닦아내려고 시야에 들어온 목욕탕을 급히 찾는 일은 혹시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응급상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면 과거에 심각한 출혈을 경험한 사람이 대상일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투박하지만 순수한 문구들입니다. 트집 잡으려 했던 게 아닙니다. 오랜만에 느끼는 문장의 순박함 때문에 물고 늘어졌던 것이지요. 그렇다 해도 웃어넘겨서 만은 안될, 생명이 달린 소중한 문장들이기도 합니다.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가치가 있는 한국 목욕업 중앙회의 공식 입장입니다.
앗! 이런 기계가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실물로 영접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자동 등밀이 기계'라고 좌측 상단에 분명히 쓰여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거리낌 없이 등을 내주고 밀어주었던 예전의 목욕탕에서는 필요 없을 발명품입니다. 오히려 호혜의 덕목을 말살할, 인간성 박탈의 원흉이라는 이유로 진즉에 퇴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창조물입니다. 이 시골의 작은 목욕탕에서도 시대의 흐름은 감지가 되는군요. 하긴 낯선 사람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하는 것이 쉬운 부탁은 아닌 세상입니다. 과거 서로 등을 밀어주었던 어르신들조차도 이젠 선뜻 그런 제안을 하기 쉽지 않으실 테니까요. 양 옆에 달린 봉을 잡고 등을 대볼까 하다가 이내 포기합니다. 이태리타월의 강력한 맛은 아버지의 손길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법이니, 기계로 하여금 추억에 생채기를 내도록 할 수 없었습니다.
피부 표면에 열상의 고통을 감내하고서도 온 몸의 찌꺼기를 털어내려면 충분한 물의 공급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법입니다. 몸을 물에 불려 피부에 달라붙은 이물질을 붕 뜨게 하고요, 이렇게 벗겨낸 각질은 물로 시원하게 끼얹어야 말끔히 사라질 테니까요. 어찌 됐던 더러워진 몸뚱아리는 '물'로 정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오랜 과거부터 우리 민족은 더없이 맑은 물로 멱을 감고 청결을 유지했던 깔끔한 목욕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목욕, 청결의 방법이나 습관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는데요, 몸 깨끗하게 하는 것에 무슨 차이가 그리 있을까 싶어도 그 역시 하나의 독특한 문화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겠습니다.
고대부터 이어진 유럽의 역사를 보면, 물보다는 향료나 향기가 신체의 청결을 위한 지배적인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의 믿음체계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듯합니다. 로마시대의 목욕탕이 지금까지 거리에 남아있을 정도로 당시 상류층은 물과 가까웠지만 일반적으로 고귀하게 청결하다고 인정받기 위해서 고대 유럽인들은 향이 진한 연고를 몸에 바르거나 훈향을 피워 몸에 향기를 입히는 방법을 선호했다고 하지요. 단어 Perfume 이 '연기를 피워내다'하는 뜻의 어원을 갖고 있는 이유입니다. 고대의 축제는 자극적인 향을 연신 피워대고 장미꽃잎을 수시로 공중에 날리며 진행되었다고 하는데요, 그야말로 '후각적 자극'이 청결이 기준이었던 시대였습니다. 오래 씻지 않아 더러워지면 향기로 가리면 될 일이었습니다.
중세의 청결은 잘못된 상식으로 인해 물을 더 멀리 하게 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대도시에서는 온갖 쓰레기와 동물 시체, 분뇨들이 길거리에 뒤섞여 있었다고 하지요. 이 오물들은 엄청난 악취를 풍기는 동시에 결국엔 근처 강으로 버려져 도시민들이 사용하는 물까지 오염시켰는데요, 도심의 정화기능이 개선되는 것을 기대하느니 시민들은 차라리 진한 향기로 주변을 치장하며 냄새를 냄새로 이겨냈던 것입니다. 한편 14세기부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 즉 페스트는 악순환의 방아쇠 역할을 하고 맙니다. 감염된 쥐벼룩에서 비롯돼 수년간 2천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양산한 이 유럽 최대의 역사적 비극은 청결로 나아갈 수 있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게 되는데요,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 유럽인들은 페스트가 전염되는 원인이 다름 아닌 부패한 냄새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흑사병에 걸려 숨진 사람들의 몸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로 인해 진실로 받아들여졌고, 그 전염의 원인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훈향, 월계수 나무 등을 태워 공기를 소독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던 것이죠. 물을 써서 더러움을 씻어내지 않고 오직 향기로 청결을 유지하려 했으니 전염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물은 오랜 유럽의 역사 속에서 '씻기 위한' 물질이 아닌, 육신을 '타락시키는' 퇴폐적인 상징이었다고 하니 현대인의 관점에선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과거일 수밖에 없습니다. 뒤틀어 생각하면, 심대한 희생을 치르면서도 그토록 향료를 찬양하고 향기에 집착했던 유럽인들이라 근대 이후 세계인의 찬사를 받는 명품 향수를 끊임없이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 손목에 살짝 뿌리고 나온 면세점 향수는 무지와 후회의 역사가 질료로 응축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행히 이 나라에서, 이 시대에 태어나서 깨끗한 물로 몸을 씻을 수 있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펑펑 써서 문제가 될 정도로 말이죠. 글을 핑계로 오랜만에 재래식 목욕을 체험하며 물의 고마움을 깨닫습니다. "청사아아아~~~안~~~"을 읊조리며 온탕의 '수면'에 눈의 초점을 맞춥니다. 어릴 적 습관이 나온 것입니다. 40년 전 익숙했던 동네 목욕탕 욕조의 수면에는 때가 둥둥 떠 있었으니까요. 조금 떠 있으면 안심했고, 많이 떠 있는 날은 감수하면 됐습니다. 지나치다 싶을 땐 목욕탕 안의 누군가가 "때 좀 걷어가~" 하고 어김없이 외쳤고, 목욕탕 직원분이 바짓가랑이를 접고 들어와 잠자리채 같은 도구로 쓱~~ 두어 번 수면을 휘저으면 어느새 탕 속의 물은 외관상 1급수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와 수자원공사가 통탄할 과거입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기도 하지요? 지금으로선 용납이 안될 위생 수준의 목욕탕에서 목욕을 마쳤을 때의 개운함이란, 화사한 향기의 바디젤로 샤워를 하고 난 느낌보다 몇 수는 위였던 느낌입니다.
남탕, 여탕으로 입구에 유난히 큰 글자가 새겨진 것도 남녀유별의 엄격함을 드러낸 것이겠지만, 그 엄격한 틀을 넘나들었던 추억들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중학생쯤 되면 남자 친구들 사이에서 서로에게 묻곤 했던 질문이 불현듯 떠오르는군요.
"너 몇 살 때까지 엄마 따라 여탕 들어갔냐?"
누구는 6살 때까지라고 하고, 또 다른 친구는 4학년 때까지 갔다며 이해할 수 없는 당당함으로 답을 합니다. 저도 대여섯 살 때쯤까지로 기억납니다. 기억나는 것이요? 음...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이 엄마인 줄 알았다는 정도?
무조건 여탕만 간 건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절 데리고 가는 날엔 여탕, 아빠가 데리고 가는 날엔 남탕이었으니까요. 그 역할이 어느 시점 이후는 아버지의 전담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남녀 인체에 대한 대략적인 초급교육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선 동네 목욕탕이 꽤나 역할을 한 셈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재래식 목욕탕은 교육기관이기도 했던 것일까요.
여덟 살의 겨울철로 돌아갑니다. 꽁꽁 언 날이라 오늘은 아빠와 함께 가는 목욕탕행이 싫지 않습니다. 추울 때 뜨끈한 물속에 들어가 있는 건 어린아이라도 기분 좋은 일이니까요. 그런데 날이 추워서 일부러 뜨거운 물을 세게 틀어놓으신 건지, 여느 때보다 온탕의 물이 더 팔팔 끓습니다. 온탕이라기보다 열탕에 가깝습니다. 샤워를 마친 후 탕에 들어가려니 발목 이상을 담그는 게 여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탕 속에 앉기를 주저하는 저를 보며, 아빠는 옆에 있는 냉탕에서 찬 물 한 바가지를 떠서 제가 서 있는 발아래 뜨거운 물에 섞기 시작합니다. 건너편에 앉아있는 아저씨 눈치를 살짝 보고 나서 1학년 꼬마가 입수할 수 있을 온도를 맞춰주기 위해 찬 물을 더 부으시더군요. 이제 몸을 담글 만합니다. 금세 뜨거운 기운이 또 밀려오겠지만 일단 목까지 담그고 나면 한동안은 참을만하니 상관없습니다. 여덟 살이라도 뼛속까지 한국인임엔 틀림없습니다. 뜨거운 물이 주는 위안에 "으~~~"하는 탄성이 안 나올 리 없습니다.
탕 속에서 몸을 충분히 불리고 나오니 공포의 때밀이 시간입니다. 아빠는 손에 익은 이태리타월로 제 팔을 빡빡 문지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는데 진피층의 물질까지 모조리 딸려 나오는 건지, 굵은 때들이 피부 위에서 물결을 이룹니다. - 뭘 드시며 읽고 계시다면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 없는 때도 만들어내는, 아버지는 진정한 세신의 장인이셨습니다.
고우영 作 <만화 삼국지>
집에는 만화책이 많았습니다. 여덟 살 무렵에는 작고하신 고우영 님의 <만화 삼국지>에 흠뻑 빠지기도 헸는데요, 스포츠 신문에 연재되던 성인용 삼국지가 아닌 철저히 교양 목적으로 그려진 진지한 만화였습니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과 검증된 내용을 바탕으로 위. 촉. 오의 역사적 전투 장면이 꼬마의 눈 속에서 생생하게 재연되었습니다. 그런데 전투에서 맞닥뜨리는 병력의 규모가 웬만하면 '백만 대군'입니다. 극적 효과를 더하기 위해 다소 과장이 되었을지 몰라도, 중국의 스케일을 실감할 수 있는 숫자였습니다.
팔의 때를 다 밀었으니 이젠 군살이 없어 때 밀기의 효율이 좋은 등을 밀 차례입니다. 뒤로 돌아앉아 아빠에게 등을 내어놓습니다. 욕조 안의 물을 한 바가지 끼얹으시고 자그마한 아들의 등을 밀기 시작합니다. 삼국지에 빠져있는 저를 의식하셨는지, 아빠는 저의 등의 때를 밀며 1분에 한 번씩 과장스럽게 외치십니다.
"장~~ 군, 백만때군의 적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백만때군입니다!"
창피했습니다, 그래도 마실 건 챙겨야겠지요. 얼른 목욕 마치고 삼각우유 들고 집에 가야겠습니다.
아빠의 폭언을 엄마한테 일러바칠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