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휴일에도 6시만 되면 눈은 희멀건 천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럴 나이 되었다며 놀려대는 동생들이 있지만 수년간 5시 기상을 해 온 결과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체리듬일 뿐입니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어도, 원한다고 한번 깬 잠이 다시 오지는 않습니다.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을 여정이지만 7시쯤 출발하면 충분하겠다 싶어 여유를 부렸습니다. 알람을 해놓지 않아도 그전엔 무조건 깰 테니까요. 눈을 떠보니 7시 반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많이 걷긴 했지만 그게 늦잠의 이유인 것 같진 않았고, 나 홀로 틀어박혀 마시는 술은 언제나 예상보다 적은 양으로 취할 수 있었으니 과음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평소 모자란 잠을 몸이 알아서 보충했던 드문 아침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추측하며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숙소를 떠납니다. 오늘 동선을 생각하면 바삐 움직여야만 합니다.
서울에서 떠나던 남쪽에서 올라가던, 강원도로 가는 길은 아련하고 아련합니다. 보잘것없는 고독으로 밤새 쌓여있던 독소들은 아련함으로 날려 보낼 수 있었습니다. 호남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국도에 접어드는 시간의 흐름 동안 계기판에 표시된 바깥 온도는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강원도의 힘입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고 해도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찾기 수월하지 않았을 터인데 하물며 위치가 옮겨졌으니, 이사 후 첫 방문자는 길을 잃지 않으려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봄 같은 겨울날이 될 거라는 예보를 들었음에도 오대산 자락의 영역엔 코웃음을 치듯 눈이 굳게 뭉쳐 있습니다. 강원도의 힘입니다.
한국자생식물원 입구
한겨울이라 색색이 어우러지는 꽃들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발을 들여만 놔도 좋으니 문만 닫혀있지 말라는 심정으로 차에서 내렸습니다. 홈페이지에서도 운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이 엄습해 왔습니다. 빠드득 눈 밟는 소리를 내며 걸어가 정문을 열어젖힌 순간, 마치 파주 '지혜의 숲'의 축소판과도 같은 인상이 오랜만에 온 방문자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식물원이 아닌 도서관을 찾은 걸까요.
식물 생태계의 자연스러움이 그리웠기도 했지만 사실 이 북카페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 공간이 이렇듯 초입에 자리 잡고 있을 줄은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죠. 안내를 해 주시는 분은 겨울철이라 야외에 볼 게 없어서 어떡하냐며,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괜히 미안한 표정을 지으십니다. 설마 저를 어느 계절에 와도 자생화 감상이 가능할 거라고 믿고 있는 멍청이로 생각하신 건 아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꽃이 피지 않았더라도 오대산 자락의 상쾌한 숨을 들이마실 수 있도록 야외 전시장으로 가는 문은 열려 있으니 상관없었습니다. 관람에 대한 안내를 받고 나서 저는 입술의 끝에서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질문을 던집니다.
"저, 혹시 김창렬 원장님 계신가요?"
한국자생식물원 내 북카페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전 국민의 베스트셀러 <태백산맥>도 다 읽어보지 못했는데 진행자의 자격이 있는 건지 괴로웠습니다. 분량을 두려워하지 말고 인내심으로 독파할 필요가 있는 것이 대하소설이라는 조정래 선생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저 단행본 실용서만 애정해 온 탓이었습니다.
2014년의 가을, 중국인을 비롯한 엄청난 관광객의 유입과 부동산 시세 폭등으로 광풍이 몰아친 바로 그때였습니다. 넘쳐나는 인파와 그 인파를 조금이라도 더 수용하기 위한 개발사업을 우려하는 반작용의 움직임 역시 도내 곳곳에서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폐해를 예방하거나 재난의 방아쇠를 당기는 일 모두가 가능했던 막중했던 시기였지요. 이럴 때 언론의 대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토론의 부제는 '제주문화를 말하다'였지만 개발과 보전의 이슈가 주된 내용으로 다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정래 작가와 김원 건축가,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그리고 당시 초선이었던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패널로 초대되었습니다.
주제와는 직접 관련이 없어 언급이 되지 않을지언정 방송에 초대된 인물의 지나온 발자취를 진중히 들여다보는 일은 진행자가 갖춰야 할 예의와도 같습니다, 벼락치기를 해서라도 거쳐야 할 준비단계인 것이죠. 조정래 선생님을 제외한 다른 분들도 물론 책을 저술하셨지만, 글 자체가 발자취인 소설가의 글을 완독하지 않고서 여유 있는 진행자 행세를 한다는 것이 그리 마음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시간 최대한 자료를 긁어모아 글에서 드러난 네 분의 삶과 가치관을 마음속에 보관한 상태로 도민을 대신해 '성심성의'껏 질문을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개발은 재앙'이라는 단순한 결론을 넘어 패널들의 애절하기까지 한 제주사랑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조정래 작가와 김원 건축가의 단단한 우정은 제주를 향한 마음에서 더 굳어지는 듯했고, 대한민국의 걷기 열풍을 몰고 온 주인공 서명숙 이사장의 고향사랑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두 번째 도지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원희룡 지사의 경우 지금은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지만, 토론 당시에는 제주 자연의 지킴이가 되겠다는 의지가 드높기 그지없었습니다. 제주 돌문화공원에서 진행된 이날의 녹화 후 조정래 작가와 김원 건축가는 '제주도를 사랑하는 예술인 모임'을 결성해 제주의 지킴이임을 증명했습니다. 영화감독 임권택, 이장호, 작가 김훈, 문화평론가 유홍준, 연극인 박정자, 손숙, 건축가 승효상, 사진작가 배병우, 가수 김수철, 피아니스트 백건우 등 50여 명의 어마어마한 인물들이 제주를 위해 뭉친 셈이니 얼마나 뿌듯한 일이었겠습니까. 제주는 제주도민이 지켜내야 할 터전임에도 전국적인 제주사랑의 기운이 워낙 강렬했던 까닭에 그저 밝고 긍정적인 앞날만 상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6년 가까이 지난 2020년 여름, 조정래 선생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엔 토론이 아닌 강의였습니다. 녹화는 도입부에 연사 소개를 하고 본격적인 강의가 이루어진 뒤, 전면에 넓게 나눠진 스크린에서 강의를 지켜보고 있는 온라인 방청객들의 질문을 받아 선생님께 전달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방송의 진풍경이었죠. 공개홀에는 강연자와 스테프들 뿐이었습니다.
40분 정도의 강연 속엔 회한이 구석구석 배어있었습니다. 6년 전 지켜질 거라 믿었던 제주의 속살은 속절없이 파헤져졌으며 숲을 지키고 난개발을 막아들라는 부탁과 그 답변이었던 도지사의 약속은 허공에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는 진한 아쉬움, 어쩌면 슬픔에 가까운 탄식은 마이크를 통해 공개홀을 울렸습니다.
녹화가 끝난 뒤에도 6년 전의 기대와 지금의 한탄은 대화의 주된 주제가 되었습니다. 말로만 제주를 찬양하는 것이 아닌 100번을 훌쩍 넘게 제주 땅을 밟은, 그러나 변해버린 제주를 보며 그 발걸음이 슬픔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던 조정래 선생님의 진정한 제주사랑에 대기실의 공기는 숙연해질 따름이었습니다.
빼놓은 질문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차량까지 배웅을 해 드리는 길에 선생님의 평생 짝꿍인 김초혜 여사님께 작정하고 여쭤봅니다.
"아, 여사님. 선생님께서 오대산 한국자생식물원에 책들을 기증하셨다면서요, 예전에 기억이 있던 곳이라 꼭 다시 가볼까 하고 있는데, 식물원과 무슨 인연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깜짝 놀라셨습니다, 그것까지 어떻게 아느냐면서. 스토커가 된 기분이었습니다만 무언가 인정을 받은 느낌도 없지 않았습니다. 자생식물원 원장님과 막역한 사이고, 월정사 부근에서 집필을 하는 계절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추억에 더해 한국자생식물원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는 셈이었습니다.
조정래 선생님, 그리고 한국자생식물원 김창렬 원장님과 함께. 아무리 봐도 전 마스크를 쓰는 편이 낫습니다.
"아, 원장님이요? 여기 계시잖아요."
서너 분만 계셔서 더 휑해 보이는 북카페의 한편에 커다란 스토브가 있었고, 그 앞 의자에 김창렬 원장님이 앉아계셨습니다. 사실은 입구에 들어오면서부터 저 분일 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했지만 요즘의 마스크란 생면부지의 사람을 자칫 절친으로 오인할 수 있게 하는 위력 - 물론 그 반대의 위력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 을 가지고 있기에 확인은 필수였습니다. 마스크를 내리신 모습을 보니 확실했습니다, 그간 인터넷으로 종종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원장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고, 지금은 제주로 자리를 옮겨 일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이름이 익숙하다며 반색을 하셨지만 설마 그러실 리가요. 반가운 마음에 명함에 새겨진 이름조차 낯익게 보였던 건지, 아니면 겨울 한 복판에 기억을 따라 다시 찾아온 제가 기특해서 고마운 말씀을 해 주신 건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원장님으로부터 예전 식물원에 화재가 나 지금의 위치로 옮겨온 사연과 북카페를 짓게 된 까닭 등을 듣고, 궁금했던 조정래 선생님과의 인연을 여쭤보았습니다.
"잘 알지."
미소와 함께 던지신 한 마디면 충분했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친분의 스토리를 굳이 캐내려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조정래 선생님과 방송을 한 인연에 더해 선생님이 각별한 인연으로 책을 기증한 곳이 바로 제 기억에도 소중히 남아있는 한국자생식물원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라웠다는 말씀을 드리니, 원장님은 아직 방문객들에게 개방되지 않고 있는 2층으로 저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한국자생식물원 북카페 2층, 조정래 선생님의 집필공간과 기증도서가 꽂힌 서가
책을 더 채워 넣어서 조정래 선생님의 집필기간을 제외하고 이곳 역시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하십니다. 꽃을 감상한 뒤 느긋하게 책을 고르고 있는 탐방객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지면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제가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식물원과 도서관, 세상을 깊고 맑게 만드는 이상향 두 곳이 합쳐진 비현실적 공간입니다. 회색의 겨울이 지나고 나면 창밖으로 보일 만개할 야생의 꽃들과 책을 든 사람 꽃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연출할 것 같습니다.
황량한 광경이겠지만 자생식물원에 와서 식물들이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인내하는 현장을 안 보고 갈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식물원을 나가는 길은 북카페와 통하는 구조니, 원내를 한 바퀴 둘러본 후 다시 뵙기로 하고 겨울왕국 속 식물원 탐방에 나섭니다. 실외로의 경계를 넘는 순간 매콤한 강원도의 겨울 공기가 코 끝을 자극합니다. 바람이 없어 차라리 청량하기까지 합니다. 정면에 서 있는 안내도를 살핀 뒤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하늘과 나무들을 번갈아 보며 뚜벅뚜벅 걷습니다. 그런데 나무들 사이로 걷다 보면 나오겠지 싶었던 그 화제의 조형물이 탐방로 초입, 눈 덮인 잔디밭 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국제적으로도 이슈가 되었던 '영원한 속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영원한 속죄'
일본의 관방장관까지 나서 한일 양국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로 그 조형물입니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직접 날아온 극우단체의 항의 등으로 김창렬 원장님은 힘든 시간을 보내신 듯했습니다. 소녀상만 서 있어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들이니, 사죄하는 일본인의 모습까지 형상화된 것을 어찌 참을 수 있었을까요. 하버드대학 교수의 자격에 대해 심심한 의심을 표하게 될 정도인 마크 램지어의 망언이 있었던 터라 영원한 속죄로의 길은 아직도 요원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끝내 부정하고자 하는 돌 같은 의지를 공유하고 있으니, 조정래 선생님과 김창렬 원장님의 막역한 관계는 필연임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계절에 찍은 사진을 보니 영원한 속죄의 공간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조형물을 호위하는 듯한 진초록의 나무들과 낮게 깔려 꽃을 바치고 있는 관목들, 양탄자와 같은 잔디는 그래서 더 서글픕니다. 언젠가 진정한 사과와 응답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장 슬프기 마련이라는 역설을 이만큼 현실에서 증명해 주는 공간이 또 있을까요. 조금은 가라앉은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다 그렇지 싶어도 단 것을 지나치게 좋아했습니다. 초콜릿은 어린 저에게 천상의 식품이었지요. 간식을 두고 경쟁할 형제조차 없다 보니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온 초콜릿들은 오롯이 저의 몫이었습니다. 골고루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어린이에게 결코 쉽지 않은 과업입니다. 단 것을 찾을수록 달지 않은 것들은 점점 더 쓴 맛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죠. 결국 달콤한 것만 좇은 꼬마의 입 속은 충치균들이 점령해 버리고 생각도 하기 싫은 치과 치료는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쓴 약이 몸에 좋건 나쁘건, 치과에 가기 싫으면 쓴 맛처럼 느껴졌던 것들 위주로 먹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것들에 미혹됨이 없고 누가 봐도 안정감이 느껴져야 할 나이가 되어도 습관은 어디 가지 않는 듯합니다. 순간의 달콤함에 의지를 깨는 일은 여전히 빈번하고 말초적 유혹엔 망설임 없이 굴복하고 맙니다. 진중함은 또 얼마나 부족한지요, 흔들리지 않아도 될 자극에 쉽게 반응하고 분노와 억울함, 짜증이 뒤섞여 반사적으로 맞받아치고야 맙니다. 담백하고 쌉싸름한 것들을 받아들이는 척 건방을 떨지만, 실은 그 사이에 찾아올 꿀 같은 달콤함을 놓칠까 전전긍긍하며 연기를 하는 중입니다. 무언가 개조를 하지 않으면 이러다 몸의 성인병보다 무서울 마음의 성인병을 앓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워 찬사를 보내는, 달콤하고 향기로워 갈구하는 뻔한 본능은 정 반대의 길을 찾는 것으로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는 것일까요. 성장과 수확의 시기를 지나 시련과 인내의 시간으로 움츠리고 있는 겨울의 숲을 찾아 그들을 위로하는 것도 마음의 담백함을 고양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춥고 외로운 것들, 움츠리고 쓰디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존재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야겠습니다. 삶의 후반전은 그래야만 할 것 같습니다.
과학자의 근성과 이야기꾼의 재능을 고루 갖춘 호프 자런은 그녀의 책 <랩 걸>에서 모진 운명을 지닌 채 살아가야 하는 식물들의 대변인이 됩니다. 모든 나무와 꽃들은 수억 년의 세월 동안 인간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대신해 준 그녀에게 얼마나 감사한 심정일까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러나 어느 계절엔 수많은 사람들과 곤충들의 찬사를 받았을 식물원의 생명체들을 바라보며 뿌리내림의 절대성에 대한 책 속의 문장을 곱씹어보게 됩니다.
일단 첫 뿌리를 뻗고 나면 그 식물은 덜 추운 곳으로, 덜 건조한 곳으로, 덜 위험한 곳으로 옮길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 서리와 가뭄과 굶주린 입이 찾아와도 그로부터 도망갈 가능성 없이 모든 것을 직면해야 한다.
씨앗 속 모든 에너지원을 총동원해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하면 그 순간부터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대부분의 씨앗을 생각하면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이 축복일 뿐입니다. 뿌리를 내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 또 다른 대다수의 개체를 생각하면 성장을 경험해 본다는 것 또한 은총일 뿐이지요. 어쩌면 이곳 자생식물원에 서 있는 생명체들은 말도 안 되는 경쟁률을 뚫은 최고의 능력자들일지도 모릅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혹독한 한겨울만 잘 버텨내면 관객들의 사랑의 눈길을 받을 일만 남아 있으니 뿌리내려야 할 곳에 제대로 뿌리내린 행복한 녀석들이기도 하겠습니다.
움직임 없이 운명을 받아내야 하는 식물들에 비하면 인간이라는 동물의 자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수준입니다.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신체의 이동은 물론이고, 노쇠하거나 장애를 가지지 않았다면 각자의 의지로 공간을 탐색하고 동선을 그릴 수 있는 행복추구권을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맞지 않는 공간이라 생각하면 벗어나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픔을 겪는 이유는, 이런 물리적 이동이 아닌 심리적 이동능력의 부재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공간에 머물고 있던지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자책과 후회, 마음의 껍질을 찢어버리는 듯한 애절함과 슬픔은 자신과 합일이 되어 떠나지 않습니다.뿌리라도 확장시킬 수 있는 식물에 비해 가슴속 깊숙이 박혀있는 애상이란 놈의 감정은 나노의 단위조차 움직이지 못한 채 고정되어 버립니다. 동정이 필요한 것은 그 자리에 서 있는 식물이 아니라 상념에 천착해 끝 모를 바닥으로 추락하는 인간이 아닐까요.
"좋은데? 20년 만에 찾아온 친구 만난 느낌이야!"
이보다 고마운 말씀은 없었습니다. 추억을 움켜쥐러 다시 찾은 것뿐인데 무려 자원방래의 친구 같다고 해 주시다니요. 원장님은 본인의 책과 식물원 달력을 손에 들려주시며 꽃이 피면 꼭 다시 오라고 하셨습니다. 마땅히 그래야겠지요, 오대산의 한기를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니 새로운 계절, 황금빛 햇살에 옷을 갈아입을 이 기적의 생명체들을 영접하지 아니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두근거리는 상상을 해 봅니다. 자생식물원 북카페의 2층으로 올라가니 새로운 장편소설 집필에 여념이 없으신 조정래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냐고, 건강은 괜찮으시냐고 그리웠던 인사를 전합니다. 미소를 짓고 계신 선생님께 고마움이 앞서면서도 국민소설 집필에 방해꾼이 되어버린 것이 분명해 죄송함을 느끼는 순간, 아래층에서 김창렬 원장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뭐하세요들? 어서 내려와서 대추차나 한 잔씩 하시자니까."
선생님과 저는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래를 향해 제가 큰 소리로 답합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원장님. 선생님 모시고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이 환상적인 삼자대면이 이루어지는 날은 오늘 같은 겨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꽃들이 만발해 포근함이 가득 채워질 봄이나 초록의 파도가 숨이 막힐 정도로 파고들 여름, 오색의 단풍이 몸과 마음을 잠식해버릴 가을보다는 채워야 할 마음의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아프고 쓰라린 영혼들이 추위를 견디며 버티고 있을 겨울의 시간에 두 분의 존재가 훨씬 더 소중할 테니까요. 혹독한 겨울의 오대산이라야 대추차의 맛이 제대로 느껴질 테니까요.
한국자생식물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미소를 짓게 하는 문구가 보입니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 모두가 '꽃'입니다.
누군가는 오랜 세월을 인내하며 시대의 명작을 창조해 냅니다. 다른 누군가는 불굴의 의지로 황무지를 개간해 산속 생명체들의 보금자리를 조성해 냅니다. 그리고 이 땅에 뿌리내리고 서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 유전자에 새겨진 아름다운 본능에 따라 황량한 계절을 겪고서 씨를 날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며 열매를 거느리는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침잠과 슬픔이라는 쓰디쓴 퇴비를 흡수해 사랑과 환희라는 결실을 끝내 만들어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