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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Feb 24. 2021

44 Andante, Andante -벽화마을과 객사길

모든 곳의 어떤 것들

 







 젊음으로 재무장한 두 다리로 찻길 위 다리를 건너 자만벽화마을 초입에 들어섰습니다. 도시마다 벽화가 조성된 마을이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으니 특별한 게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한옥마을에서 구름다리로 이어지는 낭만적인 접근부터가 무언가 다른 것이 숨어있는 공간이 틀림없을 거라는 예감을 들게 했습니다.

 입구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오목대가 서 있는 맞은편 언덕만큼이나 가파른 경사의 언덕에 오래된 집들이 그대로 박혀 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딴판입니다.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이건만 아무리 두리번거려봐도 주변의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방인의 진입을 달가워하지 않는 언덕길 위의 강아지는 경계의 날을 바짝 세우며 눈빛을 쏘아붙이고 있습니다. 설마 '마을'인데 쉬는 날이 있을 리는 없겠지요. 그리 화려하지 않은 벽화들이 서있는 오르막을 따라 자만마을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전주시내가 조망되는 위치의 매력과는 별개로, 어떤 재생 작업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금세 추락할 것만 같은 마을의 위태로움이 보입니다. 이곳에선 벽화 그리기가 그 재생의 방법으로 선택된 것이겠지요. 영화와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그려진 벽들은 오직 한 명의 관람객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이걸 어쩝니까, 너무 시끄러워도 안 되겠지만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의 꺄르르 소리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호객을 하는 소품 가게 주인의 어울림을 상상했던 것인데 전혀 다른 심상이 마을을 휘감고 있습니다. 마치 오래전 폐장을 한 작은 테마파크의 분위기라고 말씀드려야 할지요.    

 다른 골목으로 돌아 내려가는 차에 사진의 강아지와 어떻게든 친분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네 마리 견공들의 아빠 아닙니까. 앉아있는 쪽으로 슬쩍 다가오기는 하는데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짖어대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이렇듯 썰렁해도 그동안 수많은 방문객들을 봐 왔을 텐데... 진정 까칠한 녀석이구나 쓴웃음을 짓던 순간, 동네 할아버지의 불같은 호통이 귀청을 때립니다.    


 "거기 있으면 개가 계속 짖잖아. 여기 사람 사는 곳이야, 구경하는 데가 아니니까 어서 내려가!"


 지난 수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 지치셨을지 이해가 됐습니다. 전국 각지의 평온하던 마을이 도시재생 사업으로 변신하면서 갑자기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더니, 원주민을 괴롭게 하는 바로 그 문제의 관광객이 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최대한 정중하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 뒤 터덜터덜 다시 오르던 길을 내려와 벽화마을의 다른 입구 쪽을 찾아 걸었습니다.  




 여태명 선생님이 설립했다는 한글미술관을 꼭 찾고 싶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한가득이었습니다. 2016년의 모습까지는 블로거들에 의해 자세히 소개가 되어 있는데 그다음 해부터의 미술관 소식은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음식점이었으면 보통 이런 경우엔 폐업을 했음이 분명하니 미술관 역시 문을 닫았을 확률이 높을 거라고, 커다란 실망에 스스로 예방주사를 놓아버립니다. 인적이 끊긴 마을의 또 다른 입구에서 마침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한 분을 발견하고 얼른 다가가 물어봅니다.


 "혹시 한글미술관 지금도 여기 있는지 아시나요?"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풍채 좋은 남성 분은 참 친절했습니다.


 "아, 지금은 문을 닫았습니다. 구경 오셨나 봐요?"


  이 때는 몰랐습니다, 이렇듯 간단한 문답으로 시작한 대화가 무려 40분 넘게 이어졌다는 것을요. 마을 해설사와도 같은 설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극한 부침을 겪고 있는 자만벽화마을의 운명에 대해 속속들이 들을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으나, 현재의 상황으로 마무리한 스토리의 결말은 결국 비극이었습니다.

 

 벽화로 유명한 국내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낙후된 공간을 생기 있게 소생시켜 보자는 취지는 같았습니다. 다만 이 자만마을의 상황이 특별했던 것은 그 어느 곳보다 '더' 낙후된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언덕을 따라 점점이 붙어있는 집들에 실제로 살아가는 주민의 수는 극히 적었습니다. 역사적인 장소들의 사이에 놓여있는 농도 짙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았던 주민의 대부분은 짐작하실 수 있듯이 고령의 어르신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서로의 안부를 몰라, 돌아가신 후 한참 뒤에야 발견된 분들도 있었다고 하니 무서울 만큼 적막했던 마을의 분위기를 어찌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저에게 긴 설명을 해 주었던 이 탁월한 해설사는, 바로 자만마을에서 태어나 가정을 꾸린 뒤 한 번도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온 토박이였습니다. 하나둘씩 빠져나가는 주민들을 보며 어떻게든 다시 웃음소리가 가득 찬 자만마을로 만들기 위해 공공기관과 함께 자만벽화마을을 조성한 주인공이었던 것입니다. 노력의 보답이었을까요, 자만벽화마을은 늘어나는 방문객들로 활기를 띠었고 이곳에 집을 두고 외지로 나간 주민들의 협조에 힘입어 비어있는 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임대해 주기 시작하면서, 예술가를 비롯한 뜻있는 외지인들의 보금자리로 거듭나기도 했습니다.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이곳 자만벽화마을은 여정에서 빼놓아선 안 될 핫 플레이스로 잠시 부활했던 것입니다.    


 

  닫혀있는 한글미술관


  자만벽화마을이 유명세를 막 치르고 있었던 그때, 있음직한 마찰들이 불거져 나왔다고 합니다. 이주민들과 원주민들과의 갈등, 외부에서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 제주에 사는 저에겐 퍽이나 익숙한 과정입니다. 도시재생이란 작업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관에서 예산을 주고 원하는 대로 하라는 식의 재생사업은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공간의 재생이란 마을의 물리적 개선을 넘어 공동체의 분위기를 고양시킬 이주민과 마을의 전통을 품고 살아가는 원주민의 심리상태까지 완벽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세심한 조절 능력이 필요한 작업인 것입니다.


 여태명 선생님은 한글미술관을 차리고 그 안에 상주하며 관람객들을 직접 맞으셨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한글 휘호나 가훈을 즉석에서 써 선물로 주시기도 했다는데요. 사람들이 몰리는 게 못마땅했던 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부의 따가운 시선으로 결국 미술관 운영을 중단하고 이곳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이후에 자리를 잡는가 싶었던 다른 이주민들도 하나 둘 마을을 등지게 됐다고 하니, 그렇게 자만벽화마을은 '벽화'만 남은, 인공호흡이 필요한 마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정확한 마을의 변화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마을에 사는 모든 분들과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 봐야 할 터입니다. 배경으로 깔렸던 다른 이야기들을 여기에 옮기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이곳에 남아 마을을 숨 쉬게 만들겠다는, 저에게 과분했던 1일 해설사님의 뚜렷한 의지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을 말씀드려야겠군요. 중요한 것은 쓰라린 지금의 모습도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남아 있는 주민들과 함께 흉물로 남아있는 마을의 곳곳을 정비하고, 전주시와도 꾸준한 교류를 통해 옛 멋을 희생하지 않고 생기가 넘치는 마을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야무진 자만마을 지킴이의 결의가 사뭇 믿음직해 보였습니다. 쉽지 않은 재탄생의 산통, 여유를 갖고 잘 극복하시고 언젠가 이곳을 다시 찾게 되면 활짝 웃는 모습으로 재회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여행이 주는 선물 중 하나가 우연한 만남이라고 하는데요, 새로운 인연과 함께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마을의 재생과정에 대해 한 수 배우는 시간까지 덤으로 얻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름과 얼굴은 공개를 꺼리시는 듯해 -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 싣지 못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한글미술관 바닥을 가리키는 여태명 선생님 (전라북도 공식 블로그에서 퍼 옴)


 톨게이트 현판에서부터, 비록 문이 닫혀있었지만 한글미술관까지, 여태명 선생님은 이번 전주 여행의 큰 동기가 되어 주셨습니다. 직업의식이 발동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우리 문화계의 스타를 동경했다는 편이 맞겠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나를 동경해, 내 흔적들이 남아있는 공간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순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뿌듯하고도 고마운 기분이 들까요. 내 흔적을 찾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글미술관을 둘러보면서 느슨해진 직업정신을 다잡고 싶었으나 더 이상 운영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예상을 품고 있었기에 실망은 그리 깊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한글의 성지에 발을 딛고 섰으니 평소 어지럽게 머릿속을 떠돌던 우리말 사용법의 파편들을 차분히 정리라도 해보자는 작은 다짐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글과 말은 무궁무진한 데다 맞춤법도 까다로우며 신조어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기는 현실이니 100퍼센트 흠이 없는 문장을 만들어내기란 생각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입에서 나오는 대로, 손에서 써지는 대로 놔두면 되는 노릇일까요? 말과 글을 가르치거나 방송을 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세련되고 올바른 언어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그 습관과 어울리는 정신을 소유하며 한껏 매력을 발산하는 것을 늘 목격해 왔습니다, 그쪽으로는 유심히 관찰해 온 편이니까요. '틀린 말을 쓰지 말자'는 단순하고 뻔한 표어가 아닌, 시대에 맞고 간결한 언어의 구사로 자신이 가진 장점을 한층 끌어내자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흔히 지나치게 쉬운 실수들을 점증하는 심각성에 따라 구분해 본다면 비교적 가볍게 꼽을 수 있는 실수 중 하나는 맞춤법의 오류일 것입니다. 까다로운 맞춤법에 통달하고 있다면야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국어학자가 아닌 이상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요. 아무 문제 아닙니다. 정확한 맞춤법을 깨닫고 외워 다시 쓰면 될 일입니다.

 두 번째 경우는 조금 더 심각하겠습니다. 글이나 말의 호응 문제입니다. 친구 사이에 빠르게 내뱉은 문장들은 그야말로 구어인 데다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으니 고치기 쉽지 않다 해도, 글로 긴 문장을 써보면 오류가 금세 눈에 들어옵니다. 주어가 없는데 술어는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꾸며주는 관형어는 있는데 어떤 글을 수식하는 건지 아리송할 때도 많습니다. 저 역시 문장 구조를 제대로 엮어놓은 건지 수시로 뒤돌아 글을 점검하기도 하지만 불완전한 문장은 항상 발견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조언을 드린다? 노력하자는 겁니다, 완전한 사람은 없으니. 

 올바른 문장 구조는 곧 올바른 정신을 구현해 냅니다. 문장 구조에서 있어야 할 주인공이 빠지거나 필요 없는 요소가 비집고 들어가 있는 것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판별해 내는 사람은, 장담컨대 외국어 습득 능력도 월등할 것입니다.  

 한층 더 심각한 말과 글 사용의 실수는, 이미 있는 아름다운 자원을 포기하고 국적불명의 언어를 차용하거나(느껴집니다. 이런 고루한 인간이라니, 하며 쏘시는 눈총을...) 반대로 아직은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쓰고 있는 표현을 무조건 비난하는 두 가지 경우입니다. TV 속 아나운서들의 수십 년간 이어진 호소로 인해 바른 언어 사용법의 인지도는 크게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적절치 않은 단어를 쓰는 실수는, 사실 올바른 표현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저질러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실수가 아닌 것이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젠 어디서든 들을 수 있어 오히려 빨리 사라질 수도 있는 신조어 '뇌피셜'입니다, 당당히 포털사이트에서 그 뜻이 검색될 정도지요. '객관적인 근거가 없이 자신의 생각만을 근거로 한 추측이나 주장을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 긴 문장을 단 세 글자로 축약할 수 있으니 효율적이긴 합니다. 그래도 우리말로 줄여보자면 '개인적 추측' 정도가 될까요. 각국의 언어가 춤을 추며 어울리는 시대, 새로운 외국의 언어가 흘러들어와 유행처럼 쓸고 지나가는 것에 큰 반감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말과 예쁘게 섞여서 어울려야 나름의 맛도 생겨나지 않을까요. 엔터테이너에서 파생된 '셰프테이너' 나 '에듀테이너', 심지어 우리말과 섞인 '만능테이너' 정도는 이해가 되는 수준입니다. 'entertainer'라는 단어 자체가 <enter>와 <tainer>의 결합이고, '서로(inter) 혹은 들어온(enter)'의 의미에 '움켜쥐다, 잡다'의 뜻을 가진 'tain'이 이어진 뒤 사람(er)이 붙어 '주위를 꽉 휘어잡을 만한 사람', 즉 '연예인'이 된 것이니, enter의 자리에 '셰프'나 '에듀'나 '만능'을 끼워 넣어도 어느 하나의 어근 자체를 분리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enter'를' tain하는 것이 아닌 에듀(edu)'로' tain하는 것일 테니 격(格)은 달라지겠지만 말이죠. 그러나 '뇌피셜'은 그렇지 않습니다. 엔터테이너의 사례를 적용하면 뇌피셜의 '뇌'는 오피셜의 '오'를 대신한다는 건데, 'official'의 'o'와 'fficial'이 뿌리의 의미로서도 분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이 신조어는 급이 떨어지는 단어라 판단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뜻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가 맞습니다. 다만 나름대로 쓸만한 말과 글의 사용에 대한 주관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일 뿐이죠.

 다음은 거꾸로 아직 공식적인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아 쓸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무실에 있던 어느 날 전화가 왔습니다. 심의실이었습니다. 짐작은 하실 겁니다. 방송인들에게 심의실에서의 연락이란 곧 긴장과 공포 그 자체라는 것을.


 "어제 라디오 뉴스 듣고 모니터 요원이 연락이 왔거든. 사고 소식 중에 S.U.V.라는 말이 나왔다는데, 아나운서라면 좋은 우리말로 바꿔서 말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뭐라 하시더라고."      


 다행히 큰 건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정도 확신은 하고 있었기에 국립국어원에 문의 후, 에스 유 브이는 우리나라에서 특정한 말로 번역해 쓰자는 통일된 표준이 아직 나오지 않은 용어이고 알파벳 약자(略字)가 거슬린다 해서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이라 말하면 그것도 어차피 풀어쓴 영어 이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나운서 마음대로 '운동용이자 쓰임새가 많은 자동차'라고 곧이곧대로 번역해 방송을 할 수는 없는 것이며, 그 모호한 표현이 정확히 어떤 차량을 뜻하는 건지 즉각적으로 알아들을 사람도 많지 않을 거라는 전화를 심의실로 드렸습니다. 정중하게 말입니다. 국립국어원의 확인까지 거친 대답이니 심의실에 계신 국장님도 모니터링 담당자에게 정확히 전달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지구 반대편의 소식이 손에 들린 작은 스마트폰으로 시차 없이 전달되는 세상에서 어찌 싱싱한 외국어의 유입과 창의적인 신조어의 탄생을 막을 수 있을까요. 또 그 과정에서 우리의 말과 글로 즉각 대응시키지 못할 언어들은 또 얼마나 많을는지요. 서로의 언어가 일부 섞이는 현상은 피할 수도 없을뿐더러 바람직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감각적이면서도 이성적인 대처로 멋들어진 언어를 걸러내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것이죠.


 마지막 실수는 심각함에 있어 최고 단계입니다. 특히 정서적인 영향을 봐도 그렇습니다. 문법이 틀린 것도 아니고 맞춤법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최근에 유입된 외국어가 끼어든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뉴스를 즐겨 보거나 듣는 분들은 거의 매일 접하게 되는 말입니다. 심각할 필요가 없는 기사를 권위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의 단어이자 리듬의 중독성으로 좀체 떼어버릴 수 없는 말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먹고 탈락시켜 버리면 그만일 뿐이기도 합니다, 이런 말들은 '사족'일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빼 버려도 문장의 의미와 구조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입니다.


 당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함에 따라 강화된 방역을 실시하고, 이상 증상이 있는 접촉자는 무조건 격리 조치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문법적으론 실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 속엔 당국의 막강한 힘이 녹아 있으며 공권력의 권위가 한층 빛나고 있습니다. 철저한 방역으로 감염을 막아야 할 당국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그저 별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 한 문장이,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 당국을 권위적이고도 절대적으로 보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역을 실시하다', '교육을 실시하다'에서 '실시'가 꼭 필요한 것일까요? "뒤로 누워 실시한다, 실시!"속의 엄격한 '실시'의 위력이, 그 앞의 무엇을 실시한다는 것인지 본질을 흐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실시는 말 그대로 무엇을 실제로 행한다는 뜻에 다름 아니지요. 그저 교육을 '하고', 방역을 '하면' 될 뿐입니다. 사족이자 잉크와 자판의 낭비인 것입니다. '격리조치'는 어떻습니까. 그냥 격리한다고만 해도 충분히 엄격한 느낌이 전달되지 않으시는지요. 독재의 망령이 떠오르는 '긴급조치 9호'가 당장이라도 발동될 것 같습니다. 굳이 격리를 '조치'해야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더구나 '조치하다'는 말은 '해결을 위해 필요한 대책을 세우다'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시급한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서둘러 격리만 하기에도 바쁜데 접촉자를 격리하기 위한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대책을 세울 여유'를 단어에 첨가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실시'와 '조치'라는 단어는 억울하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적확하게 필요한 곳에 쓰이는 '실시'와 '조치'가 아니라, 방역과 격리 뒤에 붙어 위압적인 어감을 주는 사족으로서의 기능이라면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문장의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지 않느냐, 지금까지도 써 왔으니 그냥 쓰자 하는 의견에는, 특정한 글과 말에는 역사를 거치며 품게 된 정서가 있다고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면 순화될 수는 있을지언정 지금 이 시점에서 강제와 억압의 느낌이 깔려있는 사족은 굳이 쓸 필요 없다고 말입니다. 말과 글은 사람의 정서를 변화시킵니다. 매일같이 듣고 사용하는 문장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효율적이고도 탈권위적인 문장은 그와 닮은 언중(言衆)을 만들어내는 법입니다.




 쉬지 않고 걷기에 꽤나 자신이 있음에도 오늘 걸은 거리가 상당했었나 봅니다. 하반신의 관절이 단체로 쉬어가자는 신호를 보냅니다. 조금은 익숙한 객사길을 마주치니 코로나19로 힘겨울 식당과 술집들이 막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들을 제외하면 전주의 젊음들이 소중한 만남을 위해 모여드는 대표적인 공간입니다. 조선시대 외부의 귀빈을 묵게 하거나 고관이 부임하면 읍성으로 들기 전 예를 올렸던 곳, 즉 객사(客舍)의 기능을 했던 풍패지관이 이 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 이 부근이 객사길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흠... 역사를 담은 명칭은 이해가 되는데 나그네 입장에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진정한 '객'의 입장으로 어떻게든 걸어왔는데 '객사(客死)'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다행히 전주의 상징이기도 한 이곳을 찾기 위해서 길을 묻는다거나 택시를 탈 때, 혹은 GPS에 입력해 검색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지명은 다양했습니다. '객리단길'이 어디냐 물어도 되겠고요, 중앙동, 고사동, 아니면 다가동을 검색해도 되겠습니다. 심지어 영화의 거리를 찾아 차에서 내려도 이 근방은 트렌디한 식당이나 카페의 외관을 감상하며 도보로 즐겁게 이동 가능한 구역입니다.

 

 전국의 핫하다는 골목은 모조리 '~리단길'로 불리는 시대입니다. 서울에 경리단길, 망리단길이 있다면 수원엔 행리단길, 경주는 황리단길, 부신은 전리단길이 있습니다. 광주에 동리단길이 있고 인천엔 평리단길이 있으니 객사길의 '객'을 딴 객리단길도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것이죠. 그야말로 'N리단길의 전성시대'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서 ~리단길이 만들어지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전국 '~리단길'의 원조는 물론 서울 이태원에 있는 경리단길입니다. 그런데 힙한 젊음의 멋과 맛이 떠오르는' ~리단길'의 어감은 원조인 경리단길에서 산산이 박살 납니다. 경리단의 정식 명칭은 1969년에 이곳에 들어선 육군중앙경리단이었는데요, 조그마한 영세사업체라도 무조건 주판을 튕기며 앉아 있어야 했던 바로 그 '경리(經理)'의 뜻이 포함된 장소입니다. 즉 육군의 재정을 관리하고 담당하는 회계기관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미군이 밀집해 있는 용산과 이태원이 코앞이니 자연히 이국적인 레스토랑이나 펍들이 하나 둘 들어서게 되었고, 유명세가 퍼지며 지금의 핫플레이스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듣기만 해도 굳어버릴 것만 같은 군의 재정담당기관이 전국의 힙한 N리단길의 유래였다니, 당혹스럽고 멋쩍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경리단'은 그러니 '경리(經理)'와 '단(團)'의 합성어이겠지요. 따라서 객사길을 나타내는 '객'을 대입하고 싶다면 객리단길이 아닌 '객단길', 경주 황남동의 경리단길이라는 뉘앙스를 취하고 싶다면 사실은 '황단길'이라고 해야 구조상 들어맞는 것이겠다 싶다가도, 경리란 경(經)제의 이(理)치 혹은 경(經)영의 원리(理)라고 더  쪼개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니, 황리단길이던 객리단길이던 지금으로도 큰 탈 없이 경쾌하기 그지없는 이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 그 워커스 하이(walker's high) 효과가 시작된 것일까요, 어둠이 스며드는 객리단길을 계속해서 걷고 있는데도 발목을 사로잡았던 통증이 사라집니다. 어디든 들어가서 식사도 하고 목도 축일 시간이 됐다는 기대감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장소를 골라봅니다. 전주의 명물, 가맥집 몇 곳이 보이지만 혼자서 들어가기엔 쑥스러운 공간입니다. 한 주전자 단위로 주문하면 수십 가지의 안주가 딸려 나오는 막걸리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소 '둘'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이곳 전주에서는 뼈를 때리듯 체감됩니다. 결국 어느 모퉁이에 있는 펍을 점찍고 올라갑니다. 2층 전체가 탁 트여 있는 넓은 공간입니다. 주말마다 홍대의 유명 밴드가 내려와 공연을 한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지만 요즘 시국엔 그마저도 중단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이른 시각이었는지 이 드넓은 공간에 손님은 저 하나뿐입니다. 공기가 낮게 깔린 스산한 분위기입니다. 설마... 객사할 일은 없겠지요?


 혼자 무엇을 하는 것엔 큰 해석의 편차가 존재합니다. 혼자 운전을 하거나 여행을 하고, 혼자 산책하며 거니는 것은 아무런 거슬림이 없습니다. 내 안에서 우러나는 혼자만의 쾌감도 있을뿐더러 외부에서 보는 혼자인 나 역시 담백함의 시선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존과 직결되는 식음(食飮)을 홀로 해결할 때에는 내 안에서 슬그머니 본능적인 슬픔 비슷한 것이 스며 나옵니다. 외부 시선으로 인한 불편함은 그다음 문제인 것입니다. 사실 특이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타인들은 혼자인 나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혼자 산책하는 것과 식사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고독의 슬픔이 공히 배어있다고 해도, 산책은 적어도 '처량함'을 내보이진 않습니다. 명상과 고찰이 동반되는 고차원의 행위는 혼자 영위하는 것이 제격이고 생존을 위한 본능적 활동을 홀로 하는 것은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행동으로 보이는 탓일까요?    


 식당을 가도 마찬가집니다. 특히 맛집으로 소문이 난 곳을 혼자 찾게 되면 그렇게 미안할 수 없습니다. 4인용 테이블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식당매출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악당이 되는 것이 영 찜찜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머무는 시간을 단축하곤 합니다. 작은 테이블이 없는 이런 곳에는 그래서 가장 붐빌 시간을 살짝 넘겨서 가는 것이 죄책감을 덜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 펍에서 가장 작은 테이블은 창가에 놓인 2인용입니다. 텅텅 비어있는 자리들이니 아무 자리나 잡더라도 미안할 것 없겠지만 4인용 테이블은 휑하니 넓기만 한 것이 오히려 맥주 맛을 떨어뜨릴 것 같은 느낌입니다. 2인용 자리는 적당합니다. 아니 최선입니다, 혼자 오는 손님에게는 말이죠. 적어도 저에겐 그렇습니다. 요즘은 혼밥과 혼술이 당당한 음식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관계로  - 유행이라기보다 1인 가구의 폭증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습니다만 - 밥집이나 술집에서 1인을 위한 자리들을 많이 구비해 놓곤 합니다. 주로 바깥을 바라보는 창가의 자리에 바(BAR) 형태의 선반을 설치해 놓곤 합니다. 이렇게 혼자 여행을 할 때면 더없이 환영해야 할 구조가 틀림없음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더 머뭇거려집니다, 참 까다로운 객이지요. '혼술 환영'이란 문구까지 더해 나홀로 손님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있는데 그것이 더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혼자 왔다는 것을 스스로 명백히 증명하는 셈이라서 그런 걸까요. 옆 자리에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 손님이 또 있다면 모르겠으나 1인용 자리의 최초의 손님이 될 경우는 그 고독의 인정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혼자 온 손님이니 더 정성을 쓰는 주인장의 관심 역시 부담을 키웁니다. "제가 외롭지 않고 어색하지 않게 신경 쓰겠습니다." 하는 고맙고도 친절한 마음의 소리가 나에게 생생히 전달되기는 하는데, 그 선의의 수신 과정이 어색하고 신경 쓰이는 걸 어떡하겠습니까. 4인용 테이블에서의 미안함과 1인용 테이블의 부담보다는 중용(中庸)인 2인용 테이블의 절충이 낫습니다. 지금은 혼자지만 늦더라도 올 상대가 있을지 모른다는 예측불허의 느낌도 뿜어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창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계핏가루를 뿌린 흑맥주를 주문해 단숨에 들이켭니다. 이 맛은 차라리 샷을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가깝습니다. 피로가 사라지는 동시에 다시 몰려듭니다. 창 밖을 바라봅니다. 어둠은 완전히 깔렸고 객리단길 중심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곳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일 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마주하게 된 공간인지에 따라 그 공간에 대한 상념과 이미지는 내 속에 들어와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좀체 바뀌지 않습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경조사를 비롯한 어떤 이유에서건 이 도시에선 혼자일 때가 대부분이었으니 전주는 저에게 외로움이었을까요. 둘 이상이 되어야 누릴 수 있는 전주의 멋과 맛을 포기하게 되는 것쯤은 당연합니다. 대신 일상의 반복으로 잠복해 있던 모든 감정들이 하나둘씩 새어 나와 그것들을 정리해야만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을 치러내야 합니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터뜨리고 고르게 다져주지 않으면 몸속에서 썩어버릴 것들에 대한 소독과 해소의 타이밍이니까요. 전주의 밤은 그래서 없어선 안될 변곡점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멜랑꼴리에 머무르고 말 것이고, 그건 무엇보다도 싫은 일입니다.   


 가끔은 그럴 때가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쓰던 말인데 입술로 뱉은 그 발음과 의미가 갑자기 어색해지는 순간 말이죠. 이번엔 하나가 아니라 한 쌍이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말들이었기 때문에 더 당혹스럽더군요. 사전적 의미나 용법 등은 걷어차버리고 느낌만 이끌어내고 싶었습니다. '신경 쓰다'와 '신경 쓰이다'라는 한 쌍입니다. 두 단어를 번갈아 중얼거리며 골똘히 생각해봅니다. '신경 쓰다', 약간은 의무적이고 메마른 느낌의 단어라고 할까요. 회사에선 내 일에 대해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고,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인간관계에 신경 쓰지 않으면 사회생활해 나가기 녹록지 않을 것이며 타인의 신경을 쓰지 않으면 의도치 않은 실수도 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경 쓰이다'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저만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건지 여러분에게 묻고 싶기도 합니다. 말의 뉘앙스는 사람마다 다르게 취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 말 역시 마음 편한 상태를 뜻하진 않습니다. 무언가 거슬립니다, 자꾸. 그런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신경이 집중된 상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가 밟혀서, 그러나 대놓고 위하고 대놓고 눈에 밟힌다는 심정을 드러내지 못할 때 집중되는 신경의 상태를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며칠 전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이 신경 쓰이고, 내 충고를 받고 시무룩해졌던 아끼는 후배가 오늘 밤 자꾸 신경 쓰입니다. 오늘도 카페에서 마주칠지 모를 남이 된 그녀가 자꾸 신경 쓰이며, 내 집이 편하니 잘 필요 없이 바로 돌아가겠다고 말씀하신 어머니가 신경 쓰여 죽겠는 것입니다. 

 신경을 쓸 때는 날카로워지고 민첩해져야 합니다. 신경이 쓰일 때는 대개 먹먹해지고 머뭇거려집니다. 

 신경이 쓰이는 그 사람을 위해 너무 신경 쓰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저 편안한 시선을 보내주고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시선과 미소가 닿지 않는 곳에 그가 있다면 하늘을 향하면 될 일입니다.

 압정으로 벽에 박힌 듯 혼자 점이 되어 박힌 밤의 한가운데에서는 신경이 쓰이는 사람들을 위한 축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천천히 걸어보십시오, 천천히 걷는 발걸음에 반비례해 긁혀버린 마음을 위한 위로의 효과는 한층 빨라질지도 모릅니다.

 급해선 안될 것들이, 서두르면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내는 마을 공동체로의 회복도, 다시 돌아올 어깨동무의 날들도, 더 이상 신경 쓰이지 못할 정도로 곁에 두고 바라볼 그 사람을 위한 순간들도.


 전주의 모든 것이 준 가르침이었습니다. 

 천천히 한 걸음씩. 

 그렇게 가는 것.


 객사길의 조명이 하나 둘 잦아듭니다.       

 그믐달입니다. 

 나홀로인 나그네에겐 오히려 제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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