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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Mar 09. 2021

46 발명왕 in 경포-경포호,참소리박물관

모든 곳의 어떤 것들








 공간이 주는 힐링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좀 더 세밀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은 순간의 마음 상태에 따라 꼭 들어맞는 종류의 힐링을 선사하는 맞춤형 공간들을 나름의 리스트에 새겨 넣고 있습니다. 오늘 당기는 음식을 정확히 찾을 수 있는 일류 레스토랑의 메뉴판과도 같겠고요, 감정 치유를 위해 달려가야 할 목적지까지의 여정이 그려진 내비게이션 화면은 명의의 처방전과도 같겠습니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달리다 강원도의 심장부에 가까워지면, 내려놓아야 할 속세의 찌꺼기들이 하나둘씩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도가 높아지고 기온이 내려갈수록 정화의 속도는 빨라집니다. 도심을 벗어난다는 단순한 이유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변방 속의 변방일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가진 강원의 산간지역은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온 몸을 다해 언제나 방문자를 끌어안습니다. 한 두장의 사진으로 훑고 지나가고 마는 나그네에게도, 태백산맥의 기운은 축복을 뿌려주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가슴속을 냉장고 삼아 그 청량한 축복을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힐링의 효과는 높아지겠지요.

 쭉 뻗은 영동고속도로가 끝까지 연결되지 않아 구절양장의 대관령 고갯길을 긴장 속에 내려오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막혀있던 가슴이 뚫리고 깔려있던 잡념의 부스러기들은 이미 날아가 버렸습니다. 영동지방으로 향하는 도로의 최고점에서 대관령의 내리막으로 돌입하는 순간부터는 또 다른 쾌감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활자로 옮기고 싶었던 감정이었습니다. 태백산맥이 선사했던 위로로 차분히 가라앉아있던 심장이 다시 요동을 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이제 별천지 세계로의 진입입니다. 거대한 세상의 부속이 되어 힘에 겨웠던 곳을 벗어나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풍경의 변화를 지나면, 요새 같은 산맥의 건너편엔 짙푸른 바다를 품고 있는 도시가 항상 그 자리에 놓여있습니다. 


 강릉입니다.       


 

  강릉 경포해변

 

  경포호수에서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


 도심을 가로질러 그대로 직진하면 바다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바다를 감상하는 것은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그네의 감성을 사로잡을 드넓은 경포호수가 브레이크를 밟게 할 가능성이 농후하니까요. 예전엔 볼 수 없었던 몇몇 호텔들의 모습이 멀리서부터 보입니다. 호숫가를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은 제대로입니다. 안전해 보일뿐더러 최고의 배경이 깔려 있으니까요. 랜덤 재생되고 있는 USB 속 음악은 설탕이 물에 녹듯 풍경 속으로 흡수되어 버립니다. 그리던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선율, 세상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경포 해변으로 달리는 왼편으로 박물관이 보입니다. 주위에 별다른 시설이 없으니 금세 눈에 띕니다. 바다와 하늘이 구분되지 않을 푸른 날에 실내로 들어가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셀프 여행사의 여정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강릉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


 한국자생식물원과는 정 반대의 카테고리에 놓일 공간입니다. 공통점이라면 두 곳 모두 설립 당시의 부지에서 벗어나 지금의 장소로 이전을 했다는 점이지요. 원초적인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산속의 천국에서 내려와 인간의 집념으로 만들어진 것들의 역사를 둘러보려 했습니다. '내돈내산'이라고 합니다만, 생각과 글감의 훌륭한 소재가 되겠다 싶을 뿐이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실 거라 믿습니다.

 이주 전 위치인 송정 솔밭의 운치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널따란 터에 규모가 상당한 세 곳의 박물관이 한데 모여 군집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모태가 된 축음기 박물관으로 들어갑니다. 

 코로나19의 영향은 이곳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모이면 해설사가 동반 안내를 시작하는데 기다려도 들아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1인 전담 해설사의 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꿀입니다. 




 컬렉션의 방대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관장님과 인터뷰를 할 때에도 전시물의 종류가 어디까지인지 물었던 기억이 있는데 더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아예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새끼손가락 크기의 USB에 저장된 음악을 듣고 온 제 눈앞에 100년 전의 축음기 군단이 위용을 드러내고 늘어서 있습니다. 유형별로 축음기 하나씩만 전시되어 있었다면 오히려 꼼꼼히 살펴봤을 텐데,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해 지나쳐버리는 것들이 태반입니다. 역시 많으면 귀한 줄 모르는 법인지요.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가 세상 최초의 축음기는 아니었습니다. 음반과 재생의 역사는 해당 산업과 맞물려 간단치 않은 흐름이 이어져 왔는데요, 소리가 곧 파동에너지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기록하려 시도했던 인물들 중 프랑스의 마르탱빌(Martinville)은 1857년, 최초로 포노토그래프(Phonautograph)라는 소리 기록장치를 발명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기록'장치일 뿐이었습니다. 멧돼지 털을 바늘 삼아 동물 가죽과 종이에 소리의 진동을 기록할 수 있었지만 재생까지 하고자 할 노력은 하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짜릿한 것은 현대의 기술력이 이를 구시대 창고 속 기록물로 남겨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르탱빌이 진동을 기록해 놓은 원본을 지난 2007년 캘리포니아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가 입수했고, 이를 재생하는데 성공한 것이죠. 그에 따라 마르탱빌의 녹음 원본은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보물로 평가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대를 이끄는 인물들의 소리 '재생'시도에도 불구하고 첫 특허를 따낸 건 역시 우리의 스타, 에디슨이었습니다. 골동(骨童)의 미가 물씬 풍기는 소리나팔 축음기의 원조는 그의 발명품인 틴 포일 포노그래프(Tin foil phonograph)였지요. 소리나팔에서 모아진 음성은 진동으로 바늘에 전달되어 실린더에 감겨 돌아가는 틴 포일에 홈을 만들었고, 틴 포일을 수평으로 유지한 상태로 다시 파인 홈에 바늘을 통과시키니 거꾸로 진동판이 울리며 소리가 '재생'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초로 특허를 따낸 축음기로 역사에 기록된 것이죠. 


   틴 포일 포노그래프


 재미있는 것은 이 축음기의 용도였습니다. 비즈니스의 귀재이기도 했던 에디슨은 이를 상업화하려는 방안으로 직접 틴 포일 포노그래프의 쓰임새를 적시했다고 하는데요, 


 - 속기사를 대신할 수 있는 받아쓰기의 기능

 - 반복 청취로 인한 어학능력 향상

 - 녹음으로 유언 대체

 - 오디오북으로서의 기능


 MP3의 광고가 떠오르는 것도 같습니다만 음악 청취의 기능보다는 '음성'을 기록하고 재생하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마법의 실현에 동시대인들은 아연실색하지만 포노그래프의 대중화까지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회전하는 실린더는 불과 2분 정도의 저장밖에 할 수 없었고 무거웠으며, 무엇보다 비쌌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 상태로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자 에디슨은 이때부터 그 유명한 '전구' 생산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무차별적인 아이디어의 발현에도 불구하고 에디슨은 진득함의 결여라는 단점을 갖고 있었던 걸까요. 전화기의 발명으로 유명한 벨과 그의 사촌 치체스터 벨(Chichester Bell), 그리고 찰스 섬너 테인터(Charles Sumner Tainter)는 에디슨이 포기한 재생 분량과 음질을 개선해, 새로운 그들만의 축음기 '그래포폰(Graphophone)'을 만들어냅니다. 에디슨의 틴 포일 대신 왁스를 입힌 마분지 실린더의 적용으로 소음을 줄인 것이 결정적인 기술의 차이였는데요,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 원기둥인 실린더 형태가 아닌 마분지 '원반'에 왁스를 입혀 바늘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긁어 나가도록 재생 방식을 바꿈으로써 세계 최초의 레코드'판'을 탄생시킨 주역들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만약 에디슨이 저 하늘에서 그의 초상화와 축음기가 찍힌 앞의 사진을 바라본다면 썩 유쾌할 것 같진 않습니다. 초상화와 램프 아래에 놓인 축음기에는 '포노그래프'가 아닌 벨과 그 일파의 상품명, 'Graphophone(그래포폰)'이 선명하게 쓰여 있으니까요.  




 지난해 복고를 그리며 찾았던 서울 황학동에서 오랜만에 LP의 웅대한 정렬을 목격했습니다. 추억의 명반들이 장르별로 늘어서 있어 되레 무엇 하나를 고르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참소리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그러나 값진 축음기들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었습니다. 비닐로 포장된 큼지막한 사각형의 외양뿐 아니라 간혹 들르게 되는 바(BAR)에서 듣는 LP의 지글거림은 예전에 몰랐던 황홀함을 선사합니다. 더없이 거슬렸던 소음은 시대가 바뀌어 영혼을 울리는 소리로 거듭난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잡음 중 가장 아름다운 하나는 턴테이블 위에서 돌아가는 LP의 불규칙한 긁힘 소리가 아닐까요.


 독일 출신 에밀 베를리너의 금속 플레이트 발명 이후 음반의 재질과 성능은 진화를 거듭합니다. 결국 소리골이 촘촘하게 파여도 문제없을 정도로 튼튼한 성질을 지녀 음반의 소재로 선택된 폴리염화비닐(PVC)과 획기적으로 무게와 부피를 줄인 바늘은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위력으로 음반사업의 전환기를 가져오는데요, 재생시간을 대폭 늘린 이 PVC 레코드의 명칭이 '장시간 레코드(long playing record)'의 머릿글자를 딴 'LP'가 된 것이었습니다. 영국 그라모폰(Gramophone) 사의 로고로 널리 알려진 HMV(His Master's Voice)의 이미지에는 축음기에서 나오는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영문을 몰라하는 폭스테리어 '니퍼'가 그려져 있는데요, 녹음된 소리를 처음 접했을 사람들의 충격을 공감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극한의 선명도를 자랑하는 음질을 향유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니퍼가 그려진 LP 속 음악을 들으며 세월의 흔적이 담긴 잡음을 감상하려는 역주행의 물결도 거세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참기가 힘들어지는군요. 조만간 LP바에 가서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신청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HMV로고 속 니퍼의 모형과 로고가 새겨진 음반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옆 건물은 에디슨 과학 박물관입니다. 사실은 두 곳 모두 에디슨의 업적과 흔적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관장님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에디슨 사랑과 엄청난 수집능력으로 혀를 내두를 지경인데요, 에디슨이 만들어낸 발명품의 종류와 특허의 개수만큼이나 컬렉션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자타공인 '발명왕'인 에디슨의 유명세를 생각한다면 고국과 멀리 떨어진 대한민국 강릉에 그의 박물관이 있는 것도 그리 어색하다고 할 수 없지만, 한때 그의 직원이자 가공할 라이벌이었던 테슬라가 만약 살아있었다면 진한 소외감과 불공평함을 느낄 것 같습니다. 에디슨의 능력은 인정하나, 마치 그만이 세상 유일한 발명가처럼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좋은 경쟁자로서 테슬라의 업적도 박물관의 한 부분에 정리가 되었더라면 공간의 의미가 한층 풍성해졌을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세르비아 출신의 니콜라 테슬라(1856 ~ 1943)와 토마스 앨바 에디슨(1847 ~ 1931)의 전류전쟁(The Current War)은 이제 영화와 책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세간에 알려진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지만, 일반에

테슬라라는 인물과 전류를 둘러싼 전쟁의 흥미진진한 내막이 전해진 건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합니다. 짐작하시듯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사(社)가 몰고 온 폭풍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겠지요. 역사적 이벤트와 인물의 평가는 절대 고정될 수 없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들어맞는 잣대로 재평가되고, 심지어 호오(好惡)가 뒤집히는 사태도 벌어집니다. 아마도 니콜라 테슬라는 이 시대의 틀에 무리 없이 들어맞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사후에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인물로 거듭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토마스 앨바 에디슨 & 니콜라 테슬라
 


 맨해튼의 밤을 환하게 밝히겠다는 에디슨의 무기는 직류, 뜻 그대로 곧게 나아가는 전하의 흐름이었습니다. 크기와 방향이 변하지 않고 흐르는 것이죠. 소방호스로 물을 쏠 때 똑바로, 힘차게 나아가는 물줄기를 상상하면 되지 않을까요. 직류에는 +, - 의 극성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직류 공급장치로는 건전지, 즉 배터리를 들 수 있습니다. 전기자동차의 배터리도 따라서 직류 시스템인 것이죠. 직류는 일관적입니다. 10볼트의 배터리는 아예 방전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10볼트를 내뿜다가 장렬히 전사합니다. 전구 하나, 자동차 한 대가 아닌 도시 전체를 밝히고자 계획됐던 에디슨의 직류 발전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발전소에서 각 가정으로의 송전은 거리가 멀어지면 엄청난 고전압이 필요했다는 건데요, 800미터 간격으로 발전소가 설치돼 곳곳에서 전기를 생산해야만 온 도시로의 송전이 가능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나마 도시에선 어떻게든 공간을 마련해 이곳저곳에서 전선을 끌어와 발전기 설치를 할 수도 있었지만 교외에선 엄두도 내지 못할 송전방식이었던 것이죠.  

 테슬라가 발명한 교류 발전의 특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류의 방향과 크기가 수시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개발한 전동기는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던 전기의 방향 전환을 가능하게 했으니 전기를 '운전'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교류는 직류와 달리 극성이 없습니다. 전류의 승압은 물론 강압도 자유자재입니다. 전류의 흐름이 변화하는 주기를 Hz로 나타내는데 우리나라는 60Hz, 즉 초당 60번의 주기 값을 갖습니다. 방향 전환과 전압의 승강이 용이하니 변압기만 있다면 멀리 있는 가정까지도 전기공급이 가능하다는 탁월한 장점을 갖게 됩니다. 소화 밸브에서 물을 보내면 여러 호스를 통해서 다수의 지점을 겨냥할 수 있습니다. 각 호스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이 워낙 짧아서 마치 모든 호스에서 동시에 끊기지 않고 물이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공급받는 220v의 전력도 교류방식으로 흘러들어온 것입니다. 


 직류(좌)와 교류(우)의 흐름


도시 전체의 전기공급을 가정하면 아무리 봐도 테슬라의 교류방식이 즉각 채택되어야 마땅했을 겁니다. 그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도 교류를 받아 생활하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러나 적어도 1차 전류 전쟁의 승자는 에디슨이었습니다. 도심에서 고압선에 노출돼 감전사하는 사례가 발생하자 에디슨은 교류를 '죽음의 전류'로 정의하고 곳곳에 위험성을 알립니다. 효율보다는 안전이 우선이라는 대중의 지지를 유도하기 위한 의도였죠. 에디슨의 직류는 땅 속에 깔린 전선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노출 위험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같은 전압일 때는 직류가 사람에게 더 위험하지만 전송방식의 특성상 총량으로는 교류가 보다 고압으로 보내져야 하기 때문에, 이런 특성이 감전사의 이미지와 결합해 여론은 에디슨의 직류 방식에 손을 들어준 것이었습니다. 에디슨은 한 술 더 떠 교류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송전방식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전기를 이용한 사형집행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교류란 것은 무시무시한 살인 능력을 지녔으므로 순간적이고도 고통 없이 사형수를 숨지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사형용' 도구라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이었지요.  

 최초의 전기 사형의 대상으로 1890년 뉴욕의 한 교도소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죄수 윌리엄 캐믈러가 선택됩니다. 에디슨의 확신대로라면 단 한 번의 교류 송전으로 케믈러는 고통조차 느끼지 않고 생을 마감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인도적인' 사형의 혜택을 받았어야 했던 것이죠. 그러나 그는 한 차례의 감전에 사망하지 않고 엄청난 고통을 느끼다 결국 2천 볼트의 전류에 70초나 더 노출된 후에야 끔찍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송전 방식의 장단점을 이성적으로 비교할 의지도 없이 직류의 수호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에디슨의 무모함이 드러난 역사의 한 부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집행에 사용된 것은 어쨌든 교류였으니 에디슨의 직류는 반짝 호황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긴 호흡으로 볼 때 역사는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테슬라는 고주파 교류를 자신의 몸에 흘려보내는 실험을 시연해 정확한 송전 절차만 전제된다면 아무리 높은 전압의 교류일지라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내는데요, 이후 세르비아 출신 천재의 교류 발전을 각지에서 채택하며 전류 전쟁의 대단원은 테슬라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존경하는 에디슨에게 교류 발전의 실용성을 설득하며 순진하게 다가섰다가 좌절을 맛본 것은 물론이고 라디오를 먼저 발명하고도 특허 신청에서 마르코니에게 뒤져 이인자로 낙인찍힌 그였습니다. 1916년 테슬라는 전기 과학분야의 업적을 인정받아 공교롭게도 '에디슨'메달을 받게 되는데요, 복잡한 심사가 머릿속에 가득했을지라도 끝내 초연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 봅니다. 테슬라가 세상에 태어나던 날 폭풍을 동반한 번개가 몰아쳤다고 하지요. 인류의 삶 한복판에 전류를 타고 내려온 그의 카르마는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연의 관찰력과 포기를 모르는 집요함에 사업가적 기질까지 갖춘 발명의 왕 에디슨과 동시대에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천재성과 순수함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테슬라. 결국은 두 라이벌의 덕으로 우리는 집에서 편하게 전기를 공급받아 tv를 시청하고, 전기자동차를 운행하며 석유에너지 감축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저 세상에선 두 천재들의 99퍼센트의 노력에 더한 1퍼센트의 '우정'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두 영웅의 영향력은 오늘날의 상표명에 그대로 전이되고 있습니다. 성과 이름 어느 하나라도 놓치기 싫었던 걸까요.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물론이고요, 그의 이름인 '니콜라'는 수소 자동차 개발업체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국내 전기버스 제조업체는 에디슨을 기리며 '에디슨모터스'라는 사명으로 맞불을 놓고 있습니다. 이러다 에디슨의 퍼스트, 미들네임인 토머스와 앨바도 어떤 기업에서 불현듯 채 갈지 모르는 형국입니다. 그러고 보니 원하는 전시물은 목숨을 걸고라도 수집했다는 참소리박물관의 관장님은, 그가 존경하는 에디슨의 일면과도 많은 부분이 겹쳐있는 것도 같았습니다. 




 차를 세워놓고 경포호수변의 데크를 걸어봅니다. 시선에 크게 거칠 것 없이 뚫려있는 풍경은 해방감 그 자체! 지평선과 수평선이 맞닿아 있는 모습을 매일 보는 것은 값비싼 루테인보다도 뛰어난 눈 건강의 명약입니다. 제주나 강릉처럼 열린 하늘 아래가 아니라면 이젠 어디서도 살 수 없을 듯한 예감은 단단한 확신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간 선택해서 지나온 공간들에 무한한 감사를 보내며 호수와 바다를 조망합니다. 

 오늘 저녁시간은 오랜만에 뵙게 될 선배님들 덕분에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홀로 한발 한발 내딛는 여행에선 어쩌다 마련되는 그리운 사람들과의 재회가 커다란 힘이 됩니다. 일상적이 아닌 만남의 벅참은 해로운 상념을 날려 보내고 새로운 것들을 마음으로 들여놓을 자리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겠지요. 


 평소 케이블 채널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분명히 본 것 같은 영화인데도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이 정신없는 세상에서 그럴 수 있지 싶어도, 그 정도가 꽤나 심한 편입니다. 그저 영민함과 기민함이 떨어져 가는 것이 이유일까요? 자책을 하면서 되돌아보니 이 죽일 놈의 망각 증세는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했습니다. 재생 버튼만 누르면 물 흐르듯 흘러가는 영상이니 뇌의 활동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받는 것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어지는 영상과 스토리에 집중하며 앞뒤 맥락과 상징, 인물들의 심리에 집중하며 나 자신이 영화의 요소가 되어버리면 시간이 흘러도 에디슨의 직류가 몸을 관통하듯, 테슬라의 교류가 뇌를 자극하듯 줄거리가 떠오르지 않을까요. 깨어있는 시간들은 깨어있으라고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은 마땅히 깨어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이 한정된 시간 속 우리의 모습과 대화를 생생히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 밤도 그래야 합니다.


 "야, 이게 얼마만이야.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아 그럼요 형님들, 건강하신 거죠?"


 형식적이지만 묻지 않을 수 없는 안부인사로 출발을 끊고, 곧 서로의 진짜배기 이야기들이 넘실댑니다. 오랜만에 강원도에서 먹는 감자전과 막걸리의 조합은 천상의 선물과도 같습니다. 이 선물의 발명자는 에디슨급 대접을 받아 마땅합니다. 


 "에디슨 박물관만 있으란 법 있나요? 테슬라 박물관도 하나 있을 법하잖아요!"


 얼큰히 취한 상태에서 이상한 애드리브가 튀어나옵니다.


 커서 훌륭하고 돈 많은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테슬라 박물관 관장 정도라면 그래야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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