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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Apr 06. 2021

모든 곳의 어떤 것들 -닫는 글

모든 곳의 어떤 것들








 닫는 글을 정리하며 앉아있는 이곳은 강릉시 사천면, 바다가 보이는 솔밭에 자리 잡은 카페입니다. 19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값지고 밀도 있게 살아온 제주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잊지 못할 고장, 강릉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제주에 대한 글을 최종적으로 탈고하는 무대가 제주를 벗어난 곳이라니, 이 느낌을 뭐라고 표현할지 모르겠군요.

 무엇이든 뿜어내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던 지난 글쓰기의 시간은 안쓰러운 분투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코로나19의 발흥과 확산이라는 유례없는 난국과 보조를 맞춰 나란히 달려야만 했던 과정이었습니다. 말로 뱉어낸 것과 말로도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활자로 펼쳐놓고야 말겠다는 글쓰기 초보의 건방진 도전이었기에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 되돌아보고 또다시 돌아가 보아도 미숙함의 흔적들은 여전히 미숙한 제 눈에도 단박에 포착되곤 했습니다. 더 이상의 퇴고는 의미가 없어 보였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부끄러워도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하려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읽고 쓰는 것이 좋았습니다. 활자는 이제 저를 가두어 놓는 감옥이 되었고, 저는 기꺼이 그 감옥 안에서 무기징역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부작용이 따라왔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멋진 경험들을 만끽하게 해 준 업(業)이었던 '말하기'의 자신감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군요. 한없이 얕을 수밖에 없는 깊이에도 불구하고 글과 문장의 의미를 탐색하며 글과 문장으로 마음속 진심을 전하려 했던 시간들이 쌓여, 말하기에 집중되어 있던 뇌의 주된 기능이 읽기와 쓰기로 옮겨간 듯한 기분입니다. 전방위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능력이라면 감수해야만 하는 균형추의 이동이겠지요.


 공간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렇게 풀어놓았습니다만 책과 음악, 영화에 관한 기억들이 사람들과 뒤섞이면서 잦은 등장을 하고 말았습니다. 보고 들었던 관점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는 상념일진대 지나치게 개인적인 인상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불안함을 감출 수 없어도, 어차피 개인적인 느낌을 전해드리려 지금까지 엉덩이를 자리에 붙이고 손가락을 놀린 것이니 졸필의 끝에 찾아온 걱정스러움과 두려움은 이제 그만 떨쳐버릴까 합니다.         


 '샛길로 새다'는 그 본디 맥락을 벗어나 꽤나 즐거운 순간을 묘사하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에게 말을 건네다 샛길로 새서 더 재미있었던 이전의 에피소드가 떠오를 수도 있겠고, 토론을 하는 자리에서는 상대방의 주장으로부터 샛길로 빠져 기가 막힌 논리가 유추될 수도 있으니까요.

 말할 때 잠복해 있던 샛길은 글을 쓸 때 그 자취를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숨이 죽은 문장들을 어떻게든 살리려 발버둥을 치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샛길이 슬그머니 눈앞에 나타나고, 머릿속에 들어찬 상념을 활자로 폭격하듯 쏟아내는 와중에도 한층 더 매력적인 샛길이 순간을 비집고 들어와,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쌓여 구축되는 문장과 글은 필자의 의도에 뜻하지 않은 샛길들의 작용이 더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실감했던 날들이기도 했습니다.  


 공간은 시간이 있어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지난날들의 추억이 묻어있는 공간으로의 회상도 멋진 일이지만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자리와 걸어가는 이 길이 훗날 나의 우주에서 어떤 공간으로 기억될 것인지 상상해 보는 것도 일상의 가치를 한층 빛내주기도 했습니다. 

 공간에 대한 인상과 익숙해짐으로의 과정은 포기할 수 없는 글쓰기의 재료입니다.

 제주는 선물이었습니다. 무자비하도록 아름다운 탐라의 품에서 20년 가까이 살아볼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일까요. 제주의 오름에, 제주의 바다에, 제주의 모든 것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가능할 수만 있다면 다음 글에는 다시 돌아온 공간, 강원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고 싶습니다. 서울 촌놈의 진정한 유토피아는 어떤 공간이었는지 처음 알려준 고장입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막히고 가슴이 울리는 곳들이 넘쳐나니까요. 불확실한 앞날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밀어붙이려 합니다. 한 땀 한 땀의 천조각이 태피스트리가 되는 또 다른 그날을 위해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약간의 응원만 보태주셔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생각해 보면 오롯이 제 자신을 위한 것들 뿐이었습니다. 단조로움에 지쳐서, 혹은 급작스런 충격가 상실감에 놀라서 무언가 쏟아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을 나약함을 이겨내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나를 알아달라고, 이런 과거가 있는 사람이라고 떠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소심한 관종의 자기 홍보 수단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쓰는 사람의 심리상태는 글에서 그대로 드러난다는 속성에 비추어 볼 땐 충실하게 그 속성을 따른 듯합니다. 혼자 신이 나서 공간과 사람과 사랑을 찬양하다가도, 삶이 슬픔과 쓰라림으로 가득하다며 한없이 가라앉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문장에서는 조울증의 반복이었습니다. 오히려 조울로 점철된 글쓰기로 인해 현실은 평범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쓰기의 크나큰 효용을 하나 더 발견한 셈이군요.


 감사할 뿐입니다.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공간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여전히 출근을 할 수 있음에 안도하며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바라보는 일상의 풍경들과 이동이 자유로워져 언젠가 찾게 될 미지의 광경들 모두 감사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모든 공간들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공간을 찬양하다가도 결국 마음속에 내려앉는 꽃잎은 소중한 사람들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공간에 대한 찬양이 곧 사람에 대한 찬사에 다름 아니라면, 이 세상은 감사할 것 투성이입니다.


 스스로 빛나려 하지 않고 밝은 빛을 반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번지르르한 이성과 지식이 옅게 도포되어 있는 피부를 갖기보다는 감정의 솔직함이 녹아든 피를 순환시키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노력하겠다는 뻔한 말밖에는 드릴 수 없겠지요.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 글을 한없이 부족했던 이방인을 오래도록 안아주었던 


 제주라는 섬에 바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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