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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Apr 29. 2020

03 비싸도 삽니다
-제주 동쪽 독립서점

모든 곳의 어떤 것들









 자기 전문분야의 깊은 지식과 축적된 경험으로 글을 쓰고 책을 펴 내는 사람은 존경스럽습니다. 언제쯤 그 깊은 내공을 가늠해 보기라도 할 수 있을까요. 

 평소 책을 읽을 때 고집스러운 규칙이 있습니다. 과학분야의 책을 읽었다면 다음엔 역사로, 그 뒤엔 철학, 이어서는 예술이나 문화, 이런 식이죠. 이런 똥고집은 다음 싸이클로 돌아오는 과학 분야 자체에도 적용이 됩니다. 지난번 읽었던 분야가 천문학이었다면 이번 차례는 물리학, 다음은 생물학, 뭐 그렇게 말입니다. 박학다식의 사명감이라기보다는 전 과목 평균을 따라잡으려는 열등생의 발악이라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물론 언젠가 이런 똥고집이 세상의 이치를 조금이라도 알려주겠지 하는 희망은 가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열등생의 콤플렉스를 덜어줌은 물론이고, 살아오며 쌓인 지식과 지혜를 지면에 풀어놓아 독자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숭고한 작업의 주체들이 어찌 존경스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훨씬 많은 책들은 보통사람의 손에서 쓰여 보통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곤 합니다. 어디 세상에 필요한 것이 '전문'지식뿐일까요, 진솔하게 쓴 '나'의 고백이 많은 '우리'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렇게 서툴지만 힘겹게 문장을 채워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이 좋습니다. 이른 봄의 제주는 이틀 험상궂고 이틀 티 없이 맑습니다. 삼한사온이 아닌 '이우이청(二雨二淸)'이라고 할까요. 동쪽으로 갑니다. 그간 꽤 많은 독립서점들이 생겼습니다, 나름의 개성을 갖고 말이죠. 제주 곳곳에 분포해 있지만 상대적으로 동쪽에는 서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하루 테마여행 삼아 돌아보기에 안성맞춤일 수도 있겠습니다.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제주 풀무질'


 독립서점계에서 풀무질 주인 부부는 '셀럽'들이셨습니다. 서울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같은 이름의 서점을 운영하시다가 제주로 내려오셨고, 혜화동의 풀무질은 지금 능력 있는 젊은 분들이 알차게 꾸려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문독서의 즐거움을 퍼뜨리다가 수험, 취업 서적을 구비해 놓을 수밖에 없었던 상업적 씁쓸함이 쌓여 제주행을 결심하셨다는 후문이 들리더군요.

 박공지붕에 빨간 벽돌이 눈을 상쾌하게 만드는 풀무질의 외관은 매력적이고, 생각보다도 많은 책들을 구비해 놓은 내부는 근엄하지 않지만 포스가 느껴집니다. 손이 가는 인문서적들이 예닐곱 권 있었으나 한권만 사기로 합니다. 한 군데에서 몇 권씩 사버리면 책방 투어는 곧 럭셔리 투어가 되어 내킬 때마다 할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작은 서점에서 새 책을 사서 나갔는데 금세 이런 광경을 마주친다면 어떨까요? 아마 손에 들려있는 그 책이 하늘과 바닷빛을 받아 훨씬 더 소중하게 느껴질 법도 할 것 같습니다.

  구좌읍 세화 바닷가


 많은 독립서점의 주인장들이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소개된 서점들도 막상 찾아가 보면 이미 폐업한 경우가 많은데요, "책방도 결국 유행 타는 거야!" 하며 쇠락을 예고라도 하는 듯 툭 한마디 건네는 사람들이 얄미워 보입니다. 다른 업종도 아닌 책방 아닙니까. '노래'방도 아니고 'pc'방도, 이름부터 수상쩍은 '키스' 방도 아닌 '책'의 방 아니겠습니까. 시작부터 큰 욕심을 부릴 수도 없을뿐더러 주위에 책의 향기를 퍼뜨리려 용기를 내 차린 독립서점에도 엄밀한 경제와 시장논리의 잣대가 적용되는 것이 씁쓸합니다. 책방 주인이 된 듯 감정이입되는 걸 보니 언젠가 나만의 책방을 차리고 싶다는 욕망이 제 머릿속에도 있나 봅니다. 남들의 관심사는 냉철히 분석당해야 마땅하고, 내가 믿는 가치에는 시장논리가 먹힐 수 없다는 건방진 이분법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합니다. 참으로 쩨쩨하기 그지없습니다.


 경어체로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고민은 좀 됐습니다. 그러다 우리말 만의 자랑거리가 퍼뜩 스치며 단박에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곳 중 한국어만큼 경어의 낱말과 용법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곳이 있을까요. 언어학자가 아니기에 세밀한 분석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상대를 파악하는 순간 존대의 정도를 직감으로 깨달아 알맞게 조정된 말의 형식과 글의 양태를 그 자리에서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과 글의 우수성은 세계 최고 수준임엔 틀림없습니다.

 그나마 일본어가 호칭과 접두사, 어미가 다양하게 변하며 세밀한 경어를 쓰고 있지만 어미를 찬찬히 분석해 보면 우리말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영어는 어떨까요.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맨 뒤에 'Sir!', 'Ma'am' 한 마디 붙이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스페인어는 'Usted'로 '너'가 아닌 '당신'이라는 단어를 따로 구비해 놓은 정도가 아닐까요. 중국어의 '你'는 '您'으로 '마음 심'자가 아래를 떠받치며 상대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먼 옛날부터 왜 경어가 없었겠습니까. 고대에는 노예를 왕족과 철저히 구별해야 했기에, 중세에는 교회의 권위를 강제하기 위해서라도 분명 조직적인 경어의 체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후 사회의 변화에다 실용적인 어법이 널리 쓰이게 되면서 많은 경어의 흔적들이 사라지게 됐을 텐데요, 한국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부침과 외세의 침탈에도 존중과 존경의 표현을 거의 온전히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로 절대권력의 압제 기간 다양한 경어가 발달했다는 역사적 사례를 보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전제군주가 오랜 기간 철권통치로 백성들을 내리누르는 시대는 없었음에도 이렇듯 온전히 경어를 보전했다는 뚝심이 놀랍기만 합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자랑스러운 우리글의 경어체는 안 쓰는 게 너무 아까울 정도입니다. 혹 저자 자신을 비굴하게 낮출 위험이 있는 걸까요? 독자와 저자가 페이지를 넘어가며 친숙해지는 과정에서 그런 우려는 사라질 거라는 생각입니다. 존중은 존중을 낳을 테니까요. 

 민족의 정체성인 각국의 언어에 대해 지나치게 간략하게 평가한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어의 특장점을 말하려 두루뭉술한 개요를 살짝 건드린 것일 뿐이니, 세상의 모든 언어들이여 분노하지 마시옵소서.


   구좌읍 평대리 '혜원책방', 무인 책방입니다.


  구좌읍 종달리 '책자국'

   책자국 내부


 예전 제주목의 동쪽 끝에 위치한 마을이었다는, 혹은 종처럼 생긴 지미봉의 아래에 있다는 의미에서 종달(終達)리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은 서점마저 제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얼마 전 한번 들렀다는 이유로 얼굴을 알아봐 주시는 주인 부부님들이 참 고마웠습니다. 이번에도 책을 샀습니다. 물론 한 권이었습니다. 바다가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커피의 향은 최고였습니다. 

 책의 표지와 앞날개에 담긴 저자 소개, 그리고 목차를 차례로 살펴봅니다. 특히 목차는 꼼꼼히 보고 머릿속에 흐리게나마 저장시켜 두는 것이 독서의 효율성을 높여준다고 믿기 때문이죠. 이것도 똥고집일까요? 전체 구조를 어느 정도 잡고 글을 쓰는 것이 저자의 입장에서 훨씬 수월할 것이기에 읽는 시간 역시 안내된 흐름부터 담아두게 되면 책 내용을 소화하는데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전리품을 챙기고 돌아갑니다.


 인터넷 서점이 아닌 책방에서 e-book 이 아닌 종이책을 만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읽기와 쓰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폭발하면서 종이책에 대한 찬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옵니다. 새롭게 손에 쥔 책 한 권에서 느껴지는 단상은 사람들마다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서점에 전시된 종이책들만큼 군상을 이루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무리들이 또 있을지 모르겠군요. 책의 형체만 유지한다면 어떤 유혹의 기술도 허용됩니다. 화려하게 시선을 끄는 표지는 곧 외모입니다. 컬러풀한 찬란함을 무기로 내세우는 책이 있는가 하면 단색의 배경에 고졸하고 짧은 제목이 전부인 표지도 있습니다, 독자를 유혹하는 첫인상이죠. 우리는 변덕스러운 카사노바가 되어도 좋을 일입니다. 화려한 외모를 좇다가도 이번엔 질박한 외양을 고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상으로는 철면피 소리를 들을 수 있어도 책의 선택에서는 아무런 흠이 되지 않습니다. 단단한 양장의 겉표지냐 평범한 종이 표지냐의 차이도 존재합니다. 책의 내용을 훑어보니 양장이 제 격이다 싶으면 그저 선택하면 될 일입니다. 관심에 따라, 개성에 따라 본능이 이끄는 대로 책을 서가에서 꺼내 속을 살펴봅니다. 전자책으로는 도저히 느낄 도리가 없는 종이의 질과 손가락 넘김의 맛, 그리고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며 맡는 특유의 책 향기는 첫인상 뒤에 느끼는 아직은 낯선 이성의 맵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녀의 헤어스타일과 미세한 손동작, 특유의 버릇이나 세련된 향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콘텐츠로 들어갈 차례입니다. 책날개에서 저자의 소개를 받습니다. 소개의 방법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저자일 경우엔 큰 상관이 없겠으나, 학력과 경력 등을 진부하게 나열한 앞날개라면 본문의 내용도 어느 정도는 짐작 가능합니다. 내용이 문제가 아닌 글 형식이 짐작된다는 소리입니다. 학력은 찾아볼 수 없고 저자의 신조로 물 흐르듯 채워진 소개라면 책의 내용 역시 자유분방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저자와 추천사에 이어 속 내용을 들여다봅니다. 의외로 나의 동반자가 될 운명의 책은, 고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외모와 맵시가 평균 정도의 점수만 유지했다면 결정타는 역시 책의 내용입니다. 계산을 결심한 책의 느낌은 또 다르게 다가옵니다. 다시 한번 묵직한 질량감을 만끽하며 목차를 재차 확인한 뒤 그립감을 최종 점검합니다. 내 동반자가 된 빳빳한 새 종이책을 집이나 카페에서 처음 꺼내놓는 순간은 새로운 데이트의 시작입니다. 연인과 내가 친숙해지는 것을 느끼며 한 장 한 장 무소의 뿔처럼 전진합니다. 어느덧 읽은 분량보다 읽을 분량이 적어지면서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옮겨갑니다. 손바닥이 느끼는 미세한 중심 이동의 전류는 20cm 앞 눈팅을 하던 내 손바닥 안 연인과의 이별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하는 한편, 새로운 인연을 만날 설렘을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만듭니다. 모니터 속 전자 연인에게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형체와 형체의 접촉, 향기와 질감, 활자와 색감이 소용돌이치는 사랑의 과정이 우리가 종이책을 그리워하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나만의 책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공간에 대해서도 그려보고 싶습니다. 독자의 마음을 잡아끄는 신간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요즘입니다. 반드시 이 책은 사야겠다 싶으면 인터넷으로 주문해 버리면 그만이지요. 서점에 두 발로 걸어 들어갈 때는 따라서 그 이상의 이유나 여유가 있을 때일 겁니다. 동네 책방이나 독립서점의 아취에도 불구하고 대형서점이 빛을 발할 순간은 이처럼 구매의 결심이 흐릿한 상황에서 입니다. 서점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눈에 띄는 책들을 마주합니다. 내용을 훑어보니 사야 할 책이 그렇게 많을 수 없습니다. 결국 들어갈 때의 모호함은 어디로 사라지고 신간들로 무거워진 양 손입니다. 서점의 코너를 일주하는 과정은 여행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분야별 코너를 넘나들고, 거기에서 찾은 귀중한 나만의 책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여행입니다. 

 독립서점은 이에 비해 서점 그 자체가 유인의 이유일 경우가 많습니다. 개성 있는 내부와 서가의 레이아웃, 그리고 간혹은 주인의 유명세가 손님을 끌어모으기도 하고요, 대개 호젓한 중산간이나 바닷가에 자리한 제주의 독립서점은 아예 전체 여행 중 주요 목적지가 되기도 합니다. 필요한 책을 구매하는 곳이 서점이지만 평소의 필요성과는 큰 관계없이 직관적으로 읽히는 책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많은 독립서점들이 향 좋은 커피를 함께 제공하기에 손에 들린 책은 결국 감성을 건드리는 내용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의 취향대로 특정 분야의 도서만 취급하는 일이 잦지만 지나치게 주제를 좁히게 되면 배타적인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따스한 느낌이 독립서점의 매력이라면 어느 정도의 관대함은 미덕이겠습니다. 타인을 받아들일 때 취향이 너무도 단단히 굳어져 있다면 고집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독립서점에서는 책 판매만으로는 이익을 크게 낼 수 없다고 합니다. 공급받는 가격과 판매되는 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죠. 게다가 규모가 작은 독립서점들은 대형서점처럼 대량 구매에 따른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없을뿐더러 재고의 부담도 크기 때문에 그야말로 남는 게 없습니다. 생계의 수단이 오롯이 독립서점 운영이라면 책 이외의 아이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커피 한 잔으로 남는 이익은 책 한 권 팔고 남은 금액보다 월등합니다. 책방에서 책 보다 커피에 신경 쓴다는 비판의 소리도 들리지만 주인장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배려심 없는 나무람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운영비는 나와야 작은 서점도 굴러갈 수 있는 법이니까요. 북 코디네이터이자 일본 독립서점계의 스타인 우치누마 신타로에 따르면 순발력 있는 서점들은 재치 있는 액세서리 판매로 흑자 경영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천문학 컬렉션의 서가 옆에 소형 천체망원경을 멋들어지게 세워놓고 판매한다든지, 반려동물에 대한 책들이 꽂힌 서가 아래에 강아지나 고양이 모양의 방향제를 두는 등 소소한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입장료가 있는 저자와의 북 토크 콘서트 등의 행사를 정기적으로 열어 고객의 폭을 넓히는 것도 운영에 큰 도움이 되는 현실이지요. 심지어 술을 파는 야간 서점도 있다고 하니, 독립서점의 변신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은 서점을 당차게 꾸려나갈 분들이 독자분 중 얼마나 된다고 서점의 살 길을 이렇듯 늘어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향기가 있고 감촉이 있는 종이책을 찬양한 것이고, 서점이라는 고마운 공간에 찬사를 보낸 것뿐입니다. 혹시 압니까? 주파수가 일치하며 마음을 공명시키는 애인 같은 책을 만나러 간 서점에서, 노팅 힐의 우연처럼 운명의 사랑을 마주하게 될지 말이죠.   


 단지 서점인 것도 감사한데 제주의 서점이라면 더 황송할 따름입니다. 주말 아침, 카페인의 유혹을 간신히 부여잡고 바닷가의 서점으로 달려갑니다. 이번엔 한림으로 가니 서쪽입니다. 커피를 주문해 놓고 오늘 나와 인연이 될 책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탐색에 들어갑니다. 스토리가 있는 주제별 큐레이션에서 주인장의 감각이 탁월함을 알아차립니다. 5분쯤 서성인 후 책 두 권을 꺼내 들어 커피와 함께 음미합니다. 그리고 면접이 시작됩니다. 이 활자의 여인의 나의 인연이 될 것인지 따져보는 것이죠. 

 오늘은 두 권 모두 합격입니다. 이런, 삼각관계가 되겠군요. 커피를 비우고 일어섭니다. 굳이 받을 필요가 없었던 영수증을 보니 책 뒷면에 적혀 있는 정가 그대로입니다. 온라인으로 주문했더라면 두 권 합쳐 1,200원이 저렴했을 뻔했습니다. 그럼에도 미소가 지어집니다. 아낄 것은 따로 있다는 건 이런 순간에 실감이 되는군요. 손에 들려진 이 두 권의 책은 온라인으로 주문해 받은 책과 질적으로 다릅니다. 서점으로 달려간 설렘과 손길로 감각을 더듬으며 책장을 넘긴 기분 좋은 긴장감이 더해졌고, 책방 주인장의 정신이 담긴 가치가 책을 감싸고 있습니다. 소중한 시간, 소중한 공간에서 마주친 연인과도 같은 책은

 

 비싸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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