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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Apr 30. 2020

04 나이듦이 안심인 이유  -제주시 한울누리공원

모든 곳의 어떤 것들








 "앗 뜨거!"


 어떤 곳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정신을 놓지 말아야 했습니다. 한지로 겹겹이 쌓인, 생각보다 커다랗고 묵직해 보이는 두 꾸러미의 자루를 렌터카 트렁크 안으로 옮기려 손을 대는 순간 화끈한 열기가 전해졌습니다. 잠시 자루가 식을 때를 기다린 다음 살짝 눌러보니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밀가루의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2016년은 윤년이었습니다. 달력의 날짜를 실제 태양력에 맞추기 위해 여분의 하루 또는 달을 끼워 넣는 해이죠. 많은 사람들이 이 윤년의 윤달에 조상의 묘를 개장해 이장하곤 합니다. 손(損) 없는 날에 결혼과 이삿날을 잡는 게 몸에 밴 우리인데 돌아가신 분의 흔적을 이동시켜야 하는 날은 오죽할까요. 장묘업체가 쾌재를 부르는 대목 중 대목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의 습격으로 2020년 도쿄 올림픽은 전례 없이 연기되기도 했습니다만, 매 올림픽이 열리는 해가 곧 윤년이더군요. 기억하기 어렵진 않겠습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한 공원 분묘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유골을 수습해 화장을 한 뒤 제주로 옮겨왔습니다. 두 분의 따뜻한 흔적은 제주로 오는 내내 생각보다 저를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뭇 긴장하고 올라간 게 사실인데 막상 두 분을 배낭 속에 모시고 오는 여정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업고 가는 효도관광인 듯했습니다. 그렇게 개장이라는 실례를 무릅쓰고 두 분을 제주의 품 속에 모셨습니다. 봉분의 넉넉함에 비할 바 없는 좁은 공간이었으나 화목장(花木葬)이라는 이름 그대로 꽃과 나무들 사이에 계실 테니 손자에게 크게 뭐라 하시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제주시가 관리하는 자연장지 '한울누리 공원'


 얼마 전 하늘색이 워낙 좋아 퇴근 후 바로 달려갔습니다. 전경이 일품인 공원이지만 봄 잔디가 완전히 올라온 뒤가 훨씬 좋을 것 같아 한 달쯤 후 다시 올라와야 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사자(死者)들이 묻혀 있는 곳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도 가장 좋은 터라고 한다는데, 역시 등 뒤엔 멋진 오름이, 눈앞엔 푸른 제주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조상을 그리며 공원을 찾아온 후손들의 표정이 참 밝습니다.

 

 이젠 조문을 가는 일이 워낙 잦아진 나이가 되니, 죽음이란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의 한 이벤트일 뿐이라는 담담한 느낌이 더 단단해집니다. 꼭 '무뎌진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급작스럽고 불행한 끝을 맞게 되는 일부 비극을 제외하면 한 세상 그럭저럭 살아오다 큰 변고 없이 적당한 나이에 삶을 마친 분들을 추모했던 기억이 대부분이기에,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보다는 애잔함과 유대감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규격화된 이벤트로서의 죽음을 접하는 일이 잦다 보니 왜 그리 허무함이 늘어나던지요. 단순히 내 가족의 죽음이 아니어서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인구가 얼마나 많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은 곧 그만큼의 세상의 종말이자 우주의 상실인 것이고, 죽음을 추모한다는 것이 책상 서랍에 쌓여있는 근조 봉투에 무심하게 넣은 돈을 유족에게 전달하며 육개장 한 그릇 후딱 비우고 돌아오는, 그런 요식행위만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무정해지는 인간사가 원인일까요.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큰 슬픔이 아닌 듯 위로를 하며 애써 담담한 척하는 것은, 한 꺼풀만 젖히고 들어가면 마주하게 될 공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일상화시키는 세뇌 작업을 스스로 하는 까닭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누구도 꺼내기 싫지만 누구나 직접 겪어내야 하는 죽음입니다. 100세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웰 다잉(Well Dying)에 대한 정보가 쏟아져 나옵니다. 세상의 마무리를 맞기 전에 최대한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도록 노력하자는 내용에 더해, 죽음을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긍정적으로 여생을 보내자는 심리적 안정감을 강조합니다. 결국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경감시키는 것이 웰빙과 동시에 웰다잉의 전제조건임을 우리에게 알리려 하는 것이죠.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사실 우리는 '죽음'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가 공포를 갖는 것은 죽음 '전'의 과정과 죽음 '후'의 공허라고 해야겠습니다. 임종을 목전에 두고서는 혈압이 떨어지면서 오히려 고통이 없어진다고 하지요, 물론 비교적 편안한 죽음을 맞는 경우에 해당되는 과정이겠습니다만. 우리가 정말 공포를 느끼는 것은 생명의 불이 꺼지기 전, 침상에 누워 각종 바늘을 꽂은 채 자신이 의사표현도 자유롭지 못한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겨지는 시간들일 것입니다. 몸이 아프고 불편한 것이 서럽지만 그보다는 의미 없는 생을 유지하며 기다릴 것은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될 순간이라는 것이죠. 사랑하는 가족도 친구들도, 아름다운 과거의 추억들도 더 이상 마주칠 수 없다는 나락의 구렁텅이가 입을 떡 벌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극심한 통증까지 동반한 삶의 종반부라면 죽음의 의미를 곱씹기보다는 어서 이 비루한 생을 끝내고 싶다는 처절한 바람밖에 남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죽음의 시점을 선택하고 싶어 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죽음 '후'의 공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역설적이게도 죽음 후의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죽음 뒤 다른 삶이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고, 죽음 후의 '삶'이 두렵다는 뜻이 됩니다. 만약 죽음이 나의 회로가 영원히 꺼져 버린다는 의미라면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 유신론자나 영혼의 별개 존재를 믿는 사람과는 달리 죽음을 액면 그대로 나의 모든 것에 대한 죽음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도대체 두려워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일입니다. 심장이 멈추고 혈액이 돌지 않아 신속히 기능이 저하되는 뇌가 작동을 끊어버리면 생각도 판단도, 즉 사람들이 영혼이라 부르는 것의 실체 역시 사라집니다. 영혼이 사라졌는데 두렵고 말고 할 게 있을까요. '두렵다'는 감정과 관련된 뇌의 신경세포들이 전기적 연결을 통해 발현돼야 두려운 것일 텐데 그걸 담당하는 신체가 기능을 멈춰버렸으니 스위치 오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 없는 사후는 내 알 바가 아닙니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믿는 대로 우리 몸의 전원이 꺼지는 동시에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와 숨진 나 자신을 바라본다면 그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위에서 목놓아 울고 있는 나의 배우자나 가족들이 보이겠고요, 남겨진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해집니다. 에네르기 상태로 떠도는 덕에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빛의 속도로 둘러보니 내 생각과 다르게 나의 죽음을 그다지 슬퍼하지 않는 친구도 보이는군요, 괘씸해 미칠 지경입니다. 저 하늘에서 무언가 빛이 내려오는 것도 같은데, 그 빛을 따라 올라가 버릴지 조금 더 여기 남아있을지 고민도 됩니다. 삶을 가만히 돌이켜 보니 몸이 아프기 전, 한동안 나의 신을 모시는 것에 소홀했던 것 같아 편치 않습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들이 떠오릅니다. 이대로 빛을 따라가서 심판을 받아버리면 혹 천국으로 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몸이 없어도 몸서리가 쳐진다는 느낌에 소름이 끼칩니다. 그러다 '이 정도면 악행까지는 저지르지 않고 성실히 살아온 편이 아니겠어' 하는 자신감이 샘솟습니다. 빛을 따라 오르려는 순간 아들과 딸, 손주들의 얼굴이 눈에 밟힙니다. '딱 한 시간만 더 있다 갈까, 그때는 빛이 다시 내려올까' 하는 갈팡질팡이 이어집니다. 살아있을 때보다 골치가 더 아픕니다. 다시 한번 골도 없는데 골치가 아픈 것에 혼란을 느끼면서 내가 아직 살아있는 건지, 내가 영혼이라는 존재가 맞는 건지도 혼란스럽고 두렵습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으면 좋을 거라고 한탄을 하며 영안실에 누워있는 나를 바라봅니다.


 친한 동생이 있습니다. 내과의로 지금은 제주를 떠나 경기도의 대형 종합병원에 있습니다. 오직 환자만 생각하고 다른 것은 개의치 않는, 메디컬 드라마 주인공의 전형과도 같은 녀석이지요. 언젠가 이 동생에게 전해주려 마음먹은 양식이 있습니다.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입니다. 도저히 살아날 가망성이 없어 보일 때, 무의미하게 목숨만 붙어있도록 수많은 튜브로 공기와 약물을 넣는 연명의 굴레를 거부하며 완화치료만을 통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겠다는 것을 사전에 선언해 그에 맞는 치료과정을 요구하는 서류입니다. 의향서의 의향은 이렇듯 간단히 설명될 수 있으나 실제 병상에서의 해석 범위는 상당히 복잡하다고 하는군요. 어디까지가 여생이 의미 없는 단계인지도 모호할뿐더러, 질환의 종류에 따라 적극적인 치료가 끝까지 법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연명치료를 거부했다고 해도 기본적인 산소, 영양분 공급과 진통을 위한 처방은 이루어지는 것이니 때에 따라서는 예상보다도 오랜 시간을 병원 침대에서 보낼 수도 있습니다. 사람 목숨에 관한 결정입니다. 단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단순한 판단이 어찌 가능할는지요. 그럼에도 멀쩡한 상태에서 작성한 의향서가 없다면 급박한 상황에서는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환자가 평소 연명치료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뒤에도 <연명의료 계획서>라는 것이 있어 무의미한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기회는 남아있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해당 환자가 서류에 침착하게 서명을 하게 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가족들에게 무거운 결정의 짐이 주어지게 되는데 임종 직전의 상태가 아니라면 과연 선친의 소생 가능성을 부정하고 싶을까요? 약간의 가능성만 있어도 적극적인 연명치료를 택할 여지가 높아 보입니다. 슬프지만 당연하게도 죽음은 남겨진 자들의 몫이 아닙니다. 숨이 넘어가는 환자의 문제입니다. 세상의 종착역에서 존엄을 느끼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본인의 현명한 판단은 선결조건입니다. 본인의 목숨이니까요. 차가운 기계들의 사이에서 십여 개가 넘는 바늘을 꽂고 남겨진 자들의 짐이 되는 동시에 스스로의 고통을 이어나가는 가시덤불 숲 속입니다. 혹시 삶을 지레 포기하는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세상에 태어나 죽음으로 가는 마지막 과정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한 자기 존중의 방법일 뿐입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책상 위에 턱 하고 내려놓으면 빙긋이 미소를 띨 동생의 얼굴이 벌써 눈에 그려집니다.      




 삶의 마지막을 말하고 있으니 나이 들어감에 대한 무력감이 더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노년의 삶을 걱정하는 것은 푸른 젊음을 지나왔기 때문일 겁니다. 신체의 쇠락함이 두려운 것과 별개로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던, 아니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던 당당한 청춘을 맛보았기에 역사의 뒤로 사라지는 나의 존재가 두려운 것이 아닐까요. 한 몸 건사하기도 수월치 않은 인생의 종반부에서 사랑과 설렘은 사치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겠습니다.

 홀로 되신 지 한참이 지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모아 친구를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내심 이 분들 중 실제로 좋은 인연이 이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힘겹고 거친 삶을 살아오시다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신 분들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이 분들의 연세를 감안하면 떨리는 마음을 다시 갖기엔 무리일 거라는 편견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평균 70세 이상인 어르신들의 얼굴은 첫 미팅을 앞두고 있는 20대의 그것과 다를 게 없어 보였습니다. 첫눈에 이상형을 찾은 듯 끊임없이 애정공세를 펴시는 할머니가 계셨다면, 녹화가 끝난 후에도 연락처를 따내려 안간힘을 쓰시는 할아버지의 분투의 현장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꽃이 피어나듯 싱그러운 젊음의 입장에서는 신기한 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삶의 흔적이 깊은 주름으로 새겨진 노년의 터널에서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죠. 생기를 잃어가는 육신에도 불구하고, 설렘도 사랑도 언제나 진행 중입니다.     


 앞서 죽음 후에 벌어지는 상황들에 대해 짐작을 해 보았습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그중 하나는 죽음 후에 아무것도 '안 벌어지는' 상황이겠지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마침표를 찍고 난 후 영혼만이 남아 다른 차원으로 가게 되거나 또 다른 삶으로 윤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목숨이 다한 후 목숨이 다한 나를 느끼지 못하는 오롯한 '무(無)'의 단절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답을 알기 위해선 죽어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도대체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어떤 대답과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요.

 '상황에 따라'에서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이 삶이 끝나고 영혼으로, 혹은 다른 존재로의 후생을 믿는 사람들은 다가올 그날을 나락에서 출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더불어 살아가는 현생에 최선을 다하며 임하면 될 것이겠고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죽음을 믿는 사람들은 바로 그 신념 때문에라도 한 번뿐인 지금의 삶을 한순간, 한순간 흠뻑 빠지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복잡할 것이 없어졌습니다. 결국 죽음 이후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확실한 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뿐입니다.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이 삶이 돌아갈 집이 있는 잠시의 소풍인지, 애초에 집 따위는 없는 방랑 그 자체인지는 몰라도 김밥을 싸서 나온 이 즐거운 나들이를 맘껏 즐기다 가면 될 뿐입니다. 몸이 불편하고 체력이 약해 달리기에서 입상을 하지 못할 수도, 운이 없어 보물 찾기에서 하나의 보물 쪽지도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만 나들이는 나들이이기에 즐거운 것입니다. 선생님들, 친구들과의 이 멋진 이벤트를 어찌 근심으로 날려버릴 수 있을까요.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아직 죽음과는 거리가 있을 저의 글에 저부터 공감이 어렵습니다. 노년을 살아보지도 않고 가벼운 생각을 툭툭 던져 넣자니 얼마나 건방을 떠는 짓인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만 지금의 삶에 감사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한다고 내린 결론 자체는 크게 부끄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울누리공원  맞은편을 바라보니 나무가 빼곡한 오름 아래 제주 전통의 무덤들이 보입니다. 무덤 주위를 둘러싼 돌담을 뜻하는 산담으로 둘러진 봉분들은 제주의 풍경 그 자체가 된 지 오래입니다. 이렇듯 시원한 시야에 두 분을 나란히 모셨으니 이곳에 가끔 오신다면 이색적인 경치를 즐기실 수 있겠고, 계시지 않는다 해도 손자가 두 분을 추억하며 좋은 공기 들이마셔서 건강해지겠지요.

 

 복잡한 줄로만 알았던 장기기증 서약의 방법은 심할 정도로 간단했습니다. 김이 빠질 정도로 말이죠. 몸의 일부를 기증하겠다는데 좀 더 거창한 의식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지, 헌혈할 때 혈압을 재는 것 같은 최소한의 관문이라도 있어야 되는 게 아닌지 하는 허전함이 밀려왔습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접속해 인증절차만 거치고 인적사항을 채워 넣으니 끝이었습니다. 일사천리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게 맞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불댔으면서도 그걸 몰랐다니요. 죽음의 뒤편 어떤 우주가 존재할지는 모르는 일이어도 지금 나의 육체만큼은 명백히 사라집니다. 불에 태워져 연기로 날아가더라도 땅 속에 묻혀 언젠가 바스러지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닙니다. 알갱이와 기체가 되어 덧없이 사라지는 데에도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이 필요하고 여러 도구들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보통 수고스런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후에 영혼이 남아있다면 내 육신의 일부가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는 것을 기꺼이 지켜보게 될 것이고, 신체와 함께 소멸하는 정신이라면 내 육체는 그저 덩어리일 뿐입니다. 쓸모 있는 장기가 있다면 기증을 하지 않을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습니다. 단순 명백하게 옳을 결정이니 기증 신청 과정도 당연한 듯 간단해야죠. 일사천리의 신청 절차는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나를 닮은 나를 복제하며 세상은 끊이지 않고 이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나 사랑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다 자연으로 돌아가겠지요. 반짝이는 삶에서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곧 아름다운 마지막을 맞는 방법임을 점점 더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의 농도는 나이가 들수록 더 진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순간 떠오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미소가 눈부시게 아름다울 뿐입니다.

  힘들게 제주도까지 효도관광을 모셨습니다. 그동안 똑같은 경치만 보느라 지치셨다면 이제 제주의 하늘과 바다를 실컷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손자는 신경쓰지 마시고 따뜻한 남쪽에서 평안히 쉬시라고 전해드립니다. 영혼이 남아계신다면 들으실 테고, 없어도 상관없겠습니다. 제 마음 속 분명히 두 분이 계시니까요.


  이제 집으로 가보겠습니다. 아직 바람이 차네요.

  손자가 감기 걸리면 싫어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죠 할아버지?


 제 말이 맞죠,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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