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금살금 따라갔습니다. 들키면 제대로 된 대화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흔치 않은 기회였습니다.
"무사 삐삐 쳠수과, 막 마시기 시작해신디."
제주가 고향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했군요. 취업준비로 서울에 와 있을 때 가끔 방화동 포장마차에 들러 함께 소주를 마시곤 했습니다. 마지막은 항상 후루룩 들이켜는 우동 한 그릇이었죠. 한두 잔 술이 들어가고 슬슬 발동이 걸릴 무렵, 친구의 어머니께서 삐삐를 쳤습니다.(삐삐는 '쳐야' 맛이었습니다) 친구는 막 시작된 술자리의 흥이 깨진 것이 못마땅한 듯 약간은 귀찮은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용건을 묻습니다. 불효자식 같으니라고요.
휴대전화는 언감생심이던 시절이었습니다. 포장마차 옆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친구가 들어갔고, 저는 친구의 뒤에 붙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제주도 가족 간의 대화를 몰래 엿들을 수 있었습니다. 통화가 끝나면 내심 "이런 말이었지?" 하고 해석 능력을 자랑할 참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안에서 쓰는 말이니 어려워봤자 얼마나 어려울까 싶었던 거죠. 토익의 듣기 평가라 생각하고 집중했으나...
이런, 시도 자체가 허사였습니다. 제대로 구사하는 제주어는 저에게 외국어였던 것입니다. 결국 해석 대신 겸손한 자세를 갖춘 정중한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왜 문장의 끝을 그렇게 올려야 하는 거야?"
"기이~~ 는 정확히 언제 쓰는 말인데?"
"왜 죄다 받침을 빼는 건데? 이서 어서가 정말 있어 없어 맞아?"
친구의 고향은 제주의 남서쪽 마을, 모슬포였습니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제주에 살고 있는 저는, 오늘도 모슬포에서 산방산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환상적인 도로지만 친구와의 추억이 담긴 비밀스러운 길인 듯 여기면서 말이죠.
모슬포~산방산 해안도로의 초입
누구나 나만의 공간이 있습니다. 그곳에선 내가 진짜 내가 되는, 그 신성한 장소에서 부는 바람과 공기는 피부에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몸속을 통과해 거칠 것이 없는 느낌입니다. 물아일체와는 다른 '소아일체(所我一體)'의 감각이라 하겠습니다. 그 공간은 반드시 거칠 것 없는 풍경의 바닷가나 깊은 산 속일 필요는 없습니다. 늘 마음이 편해지는 단골 식당일 수도 있고 도시의 야경이 기막힌 하숙집 옥상이어도 좋겠습니다. 모슬포 친구만의 공간은 어디였는지 왜 물어보지 못했을까요. 그러고 보니 소중한 벗들과 각자의 공간에 대해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꽤나 짜릿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모슬포항을 입구로 시작되는 해안도로는 사계리~송악산~산방산으로 이어지는 파노라마를 연출합니다. 숨을 들이쉬면 제주의 기운이 폐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합니다. 좌측에 우뚝 서 있는 산방산과 오른편에서 철썩이는 짙푸른 바다는 잠시 운전자의 현실감각을 삼켜버립니다. 산방산의 뒤로 한라산의 능선이 섬 전체를 덮고 있고 반대편 멀리에는 가파도와 마라도가 물수제비를 뜨기 위한 납작한 돌 마냥 바다에 떠 있습니다.
오가는 차도 거의 보이질 않습니다. 언제나 존재한 적 없었을 것 같은 구름의 부재 속에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바람을 맞는 자신뿐입니다. 사계리의 굽이치는 도로는,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 펼쳐진 공간이 되어 버립니다.
도로를 달리던 차는 송악산을 오른쪽으로 둔 오르막의 시작점에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오르막길 너머의 풍경이 보이지 않습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은 바로 그 순간부터입니다. 설렘과 긴장감으로 다시 페달을 밟습니다. 어느 정도는 속력을 내야 합니다. 너무 천천히 고개를 넘어가면 찰나의 반전을 기대하긴 힘드니까요. 동승자가 있다면 기대해도 좋다고 예고하는 것 잊지 마셔야 합니다. 하늘로 이어질 듯한 고갯길의 정점을 향해 가속을 합니다. 도로의 절단면을 가뿐히 넘어섭니다. 순간 눈앞에 마술이 펼쳐집니다. 사진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비현실적 광경이 급작스럽게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겁박하며 기를 죽이는 압도가 아닙니다. 심장을 강타하며 박동수를 높이는 감탄과 환희의 압도입니다.
형제 해안도로를 따라 보이는 산방산, 형제섬
2000년대 중반까지는 이 환상적인 해변에 계절음식점이 있었습니다. 피서철이 되면 제주의 내로라하는 주당들이 달빛과 형제섬을 안주 삼아 그곳에서 한라산 소주를 새벽까지 기울였지요. 어느 날 구석기 사람 발자국 화석이 이 일대에서 발견되면서 음식점들이 다시는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어도 이렇듯 성스러운 바닷가에 곤드레만드레 술집은 들어서선 안될 일이기도 했습니다. 낯이 벌게질 정도로 부끄러운 과거입니다만 돌연 발견된 사람 발자국 화석엔 감사와 찬사가 아깝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곳을 지켜낸 주역이 되었으니까요.
바다 위 형제섬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산방산을 바라봅니다. 완만한 초가지붕의 곡선처럼 부드러운 능선을 자랑하는 제주 오름의 스카이라인에 익숙해진 두 눈에는 산방산의 수직적 질량감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바다를 향해 질주하듯 뻗은 송악산과 함께, 도내에서 몇 안 되는 '~~ 산'이라는 명칭을 가진, 그야말로 제주 서쪽의 대표적인 상징,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제주를 눈에 담아야 하는 관광객들은 이틀 이상의 여정이 보장되면 제주를 동, 서로 나눠 훑고 지나갑니다.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동선의 효율성만 따진다면 동쪽 하루, 서쪽 하루가 맞습니다. 낭비되는 루트를 최소화하는 방법이 되겠지요. 숙소를 한 곳에 정해두어야 한다면 제주시나 서귀포시의 정 중앙 부근에 잡아야 동, 서 여행의 비중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반시계 방향으로 이동하는 게 어떨까요. 그래야 바다의 조망에 거칠 것이 없을 테니까요.
현재 제주는 양 행정시 체제입니다. 즉 구좌읍, 애월읍, 표선면, 한경면 등의 읍, 면은 그대로 존재하나 동서방향으로 자른 선을 기준으로, 북쪽의 기존 제주시 동지역과 읍, 면은 모두 제주시에 속하게 되고 서귀포 동 지역과 남쪽의 읍, 면은 서귀포시의 하위 행정조직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애월읍 수산리인 저의 집 주소도 도로명으로는 그저 '제주시 엄수로' 일 뿐입니다. 읍이나 면의 정체는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사는 곳이 정의됩니다.
2006년 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기 전, 25년여간 유지되었던 제주의 행정체제를 나타낸 지도입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그리고 북제주군, 남제주군의 2시 2군 체제였죠. 당연히 도지사의 권한은 특별자치도가 아니었으니 지금보다 제한되었고, 반대로 시장과 군수의 영향력은 훨씬 컸을 과거의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서민들이 일상에서 우리 시장님, 우리 군수님의 파워를 피부로 느낄 정도로 전혀 다른 삶은 아니었습니다. 총 4개의 시, 군이 존재하는 데에서 오는 매력은 문화의 영역에서 뚜렷했습니다. 많은 제주의 축제 속에는 각 시, 군이 자랑하는 문화와 특산물이 경쟁적으로 홍보되기 바빴고요, 도민체전 기간처럼 각 시도에 대한 충성심이 마음껏 발현되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새롭게 닻을 올린 특별자치 시대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모든 도민이 가슴 가득한 설렘으로 자치도시의 선점효과를 기대하며 의사와 정책결정의 단순화에 동의한 결과, 북쪽은 제주시, 남쪽은 서귀포시로 통합되고 양 행정시의 시장은 제주도지사가 임명하는 개혁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특별자치도 행정의 장, 단점을 경험을 통해 축적한 도민들은 양 행정시로 인한 불편함과 폐해가 생각 이상이라고 판단해 행정체제 개편 작업에 속도를 내게 됩니다. 물론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중앙 정치권의 논리와도 마찰이 불가피했고 개편추진위와 도의 불협화음은 첨예했으며, 의회 내부와 도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서로 다른 목소리는 합의로 굴러가는 바퀴에 제동을 걸기 충분했습니다. 한번 굳어진 구조를 다시 변형시킨다는 것이 어디 쉬울 리가 있었을까요.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개편의 목소리는 현실화되지 않고 다시 땅 속에 묻혀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제왕적인 지사의 권한을 적정 수준으로 제한하고 특별자치의 섬 제주를 더욱 빛나게 할 새로운 행정체제로 상당한 단계까지 논의된 안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바로 동 지역으로 환원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양 행정시, 그리고 과거 남제주, 북제주군을 대신할 동제주, 서제주 - 郡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요? - 의 '4개 시군 시즌2'가 그것입니다.
현행 제주시, 서귀포시의 2 행정시 체제
제주시, 서귀포시, 동제주, 서제주로 분할되는 개편안
섬 안에서 오랜 시간 살아왔고 또 살아갈 주민들의 입장에선 참으로 민감할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제주사람이 다 되었다고 해도 오래된 '이주민'일 수밖에 없는 처지라 이렇듯 경솔하게 내뱉는 것이 우려스럽기도 한 게 사실입니다. 다른 의견을 가진 많은 분들에게는 욕을 먹어도 싼 주장이겠지만, 어디까지나 깊이 없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이라 여기시고 넘어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먼저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동 지역은 과거처럼 밀집된 구역까지만 시(市)로 경계를 짓는 편이 좋겠습니다. 특별자치도 이후 제주시 복판과 멀리 떨어진 한경면이나, 서귀포시 동홍동 번화가에서 한참 먼 일출봉이 있는 성산읍 조차 각각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편입돼 동질감 없는 시의 산하 구역이 되었습니다. 한경과 성산에서는 굳이 신경 써도 되지 않을 도심에서의 이해관계나 정책들이 마을의 중요 안건에 앞서 알려지고 논의됩니다. 행정체계의 간소화를 위해 만들어진 양 행정시 체제지만 해당 읍, 면의 행정을 책임감 있게 운영하는 실질적 리더의 부재로, 도와 시에서 나오는 읍면 관련 정책들은 공허하고 괴리가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보다 현실적이면서 정서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거리'의 문제입니다. 지금은 서귀포시 대정읍에 사는 주민과 성산읍에 사는 주민의 집은 제주섬의 가장 긴 두 점인 동, 서로 떨어져 있습니다. 직선거리만 70km에 달하지요. 같은 서귀포시라는 이유로 어느 한 곳에서 시민 단합대회라도 할라 치면 다른 한 곳의 주민은 섬에서 가장 먼 거리를 달려가야 합니다. 거리가 멀면 마음도 멀어집니다. 마음이 멀어지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서귀포시민으로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감내할 수 있는 마음이 멀어질 것이라는 소리입니다. 같은 행정구역 내 읍, 면이 이런 식으로 나뉘어 있다는 건 행정의 효율성을 고려해 봐도 엄청난 낭비 요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주시와 서귀포시 외에 두 곳의 구역을 추가할 때 예전의 남, 북 제주가 아닌 동, 서 제주를 내세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방금 말씀드린 효율의 문제겠습니다. 조천, 계좌, 성산, 표선, 남원을 동제주로 묶고, 애월, 한림, 한경, 대정, 안덕을 서제주로 구획한다면, 가장 먼 두 지점의 직선거리는 약 30km에 불과합니다. 군민들의 현안 논의와 단합에 차질을 빚을 만한 거리가 아니라는 것이죠.
두 번째는 기후와 토질, 그리고 그에 따른 작물의 차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전체를 둘로 싹둑 잘라버리게 되면 그 행위 자체가 편견을 불러오는 요인이겠지만 '대개', '대체로' 그렇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제주의 동쪽은 비가 많이 내립니다. 서쪽은 바람의 속도가 평균적으로 높습니다. 순간 최대풍속도 제주 서부에서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요소에 토질의 차이가 더해져 동쪽과 서쪽의 농산물도 어느 정도 구분이 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듯 구좌 당근이 유명하고 대정 마늘이 최고입니다. 같은 섬일지라도 이왕이면 비슷한 기후와 토질을 가진 지역이 하나의 행정단위를 이루는 것이, 기상과 산업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는데도 훨씬 유리할 것이란 생각입니다.
미국의 중서부에 인접한 유타주와 콜로라도주의 차량 번호판입니다. 경계를 공유하는 주이니 만큼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싶어도, 실제 유타주엔 황톳빛이 지배적이라면 로키산맥이 높여 놓은 콜로라도주의 한 부분은 설국이 따로 없습니다. 거대한 미국의 땅덩어리를 감안할 때 위도와 경도의 차이가 미미한 두 곳이지만, 유타주의 여름철 살인적 더위와 콜로라도주의 눈 덮인 고원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킨 관광객 유치 전략은 눈여겨볼 만한 것입니다. 큰 땅덩어리가 몹시 부러워지는 것은 사실이라 해도 동과 서의 독특한 매력이 제주의 특질이라면 충분히 차별화된 홍보전략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이 아마도 가장 민감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정서'의 차이입니다. 동, 서 제주를 반대하는 의견의 핵심은, 개성이 뚜렷한 문화를 보유한 동, 서 제주를 공식적으로까지 묶어버리면 숨어있던 동, 서의 갈등이 드러날 것이라는 우려일 텐데요. 과연 그렇게 될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수많은 외지인과 외지 문화가 유입된 제주는 이제 지킬 것을 지키되 고유의 문화에 긍정적으로 더해질 것들은 탄력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미 제주 곳곳의 매력을 발견한 도내, 외의 실력자들은 동, 서를 떠난 자기만의 '동네'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토질의 차이와 기후의 차이, 문화의 차이는 동, 서 제주를 개성이 강한 차별화된 멋을 가진 공간으로 만들어 줄 공산이 크고요, 동, 서의 색깔 차이는 어우러지고 보완을 거듭하며 하나뿐인 환상의 섬, 하나의 제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관광객의 입장에서도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 비효율적인 구획보다는 분명한 색깔이 드러나는 카테고리화에 더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효율적인 여정의 동선에도 당연히 유리하겠지요. 각 시, 군의 밋밋한 자동차 번호판에도 다른 나라의 사례처럼 개성을 담아보면 어떨까요? 번호판에 들어갈 상징을 정하는 데에도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제주라면 꼭 필요한 감성 정책이 아닐까 합니다.
두 말할 필요 없이 행정체제를 이런 식으로 개편하는 것에는 많은 숙제가 뒤따릅니다. 문화, 교육여건의 극심한 양극화를 불러일으키는 도심의 인구집중 문제를 서서히 라도 해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동등한 입장에서의 4개 시, 군 체제는 요원한 것이겠지요. 또한 특별자치도의 취지에 걸맞게 각 시, 군은 각자의 자율성을 누리면서도 제주도 차원에서 중차대하고 시급한 사안은 적극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 중앙정부에 대응하는 단결의 자세가 반드시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동, 서 제주의 구분은 조화일 뿐입니다.
지역색을 그리도 드러내고 싶다면 아예 읍, 면 단위로 쪼개는 것이 어떠냐 하는 물음도 있기 마련일 겁니다. 모두가 마음속에 '적당한' 기준을 가지고 있을 텐데요. 특별자치도도 결국 '자치분권'을 위한 장치입니다. 분권의 항목에는 입법분권,행정분권,재정분권이 있다고 하지만, 일단은 '재정'이 분권 가능해야 나머지의 권리도 보유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당연히 100% 자치재정은 멀고도 먼 이야기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국가나 도의 지원을 받으면서 재정 유지가 가능한 최소 단위는 현 상황에서 4개 시군 체제가 아닐까 하고 믿고 있는 것이죠. 거기서 더 쪼개지는 단위의 지자체는 부유한 지자체에 밀려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너무도 클 것입니다. 물론 각 시, 군은 문화와 관광, 2차 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자체적인 재원 마련의 비율을 높이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함은 당연한 말씀이겠습니다.
형제 해안로를 알리는 표석 뒤 형제 섬이 조망됩니다. 모슬포의 친구에서 시작한 구시렁거림이 건방지게도 제주의 행정체제 개편이라는 주제까지 옮겨가 버렸습니다. 도심의 한 복판이었다면 땅의 특징, 기후와 풍광의 차이에 대해 언급을 했을까요? 제주라는 공간이라 행복한 구분을 하게 된 것이겠고, 오랜 시간 제주에 머물렀지만 외지인의 입장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섬을 바라보며 했기 때문에 오히려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것 같습니다.
화석이 나오지 않았어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겠지만 계절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애월의 달 못지않은 보름달이 그야말로 '휘영청' 떠 있습니다. 휘영청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었습니다. 밤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흔치 않은 날입니다. 제주에서의 새로운 인연들과 술잔을 기울입니다. 언제 내가 바다와 산과 보름달을 벗 삼아 술 한잔 한 적이 있던가... 감탄만으로도 안주는 필요치 않은 터였습니다. 멋진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기쁨보다 마음을 둘 공간을 찾아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먼저 몸속을 채웁니다.
어쨌건 이방인입니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모니터를 볼 때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가 되었어도 이방인은 이방인일 뿐입니다. 제주에 새롭게 정착한 사람들이나 여행을 온 친구들에게 시덥지 않은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어도 이방인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습니다. 형제 해안도로에서 얼굴을 때리는 매서운 바람은 끝없이 객(客)일 수밖에 없는 불변의 정체성을 차갑게 각인시키곤 합니다.
그래서 더 소중합니다, 타지에서의 나만의 공간은 말이죠. 완벽하게 적응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섬에 녹아들어 하나가 되고 싶지만 역부족임을 느낄 때, 행복한 제주섬에서의 삶이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애수를 억지로 참아내기 힘들 때 반드시 달려갈 '그곳'이 필요합니다. 낯선 공간의 일부라 하더라도 내가 선택하고 그리워하는 그곳은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닙니다. 한없는 위로와 안식을 전해주는 나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모슬포 친구의 집을 더듬다 오게 된 나만의 공간이니 모슬포 해안도로를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한 일등공신은 역시 그 녀석이겠군요. 눈을 감습니다. 다시 방화동의 포장마차로 회상의 공간은 이동합니다. 친구의 통화는 생각보다 오래 이어지고 있습니다.
"알아수다. 내가 알앙하쿠다. 걱정하지 맙서. 들어갑써 예? "
뒤에서 엿듣는 걸 눈치채고 얼른 전화를 끊습니다. 다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소주잔을 부딪히고 우동 국물을 들이켠 뒤 조각난 곰장어 하나를 입에 털어 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