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으로 발령받아 자리 잡은 지도 두 달이 지났습니다. 다들 안녕하셨죠? 모습을 바꾸며 기가 죽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란 놈 때문에 안부인사를 여쭙기도 송구스럽기만 한 요즘입니다. 무조건 안전한 날들 보내시길 바라는 동시에 다 함께 환호하며 얼싸안을 수 있는, 언젠가 올 그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모든 곳의 어떤 것들-외전>에서 전해드린 것처럼, 한없이 고맙게도 매거진의 글을 종이책으로 출간할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의 일정에 따라 아직은 꽤 기다려야 합니다만 일정 때문만이 아니라 어체의 변경, 자료의 수집과 편집 등 거쳐야 할 것들이 워낙 많기도 해서 그리 길게 느껴지지도 않을 시간일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정해진 것은 <모든 곳의 어떤 것들>의 전체 글들 중 '제주'편만 발췌해 다른 제목으로 출간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국내 여러 장소들을 중구난방 돌아다니며 매거진 속에 다루었으니 편집자 입장에서도 얼마나 정신 사나웠을까요. 출판사의 권유대로 제주 편을 먼저 보듬고 나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낸 후에, '강원'편, 그 이후 타 지역의 감상을 다룬 글들을 차례로 엮어내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의 성과가 어느 정도냐는 거죠. 여러분에게 도움을 요청할 날이 그래서 올 거라는 얘깁니다. 추후 부탁을 드리게 될 겁니다. 모른 척하지 말아 주시길 바랄 뿐.
제주를 담은 글의 '문체' 역시 달라질 것 같습니다. 경어체로 쓰인 전체 문장을 평어체로 바꾸는 작업의 첫 번째 마무리를 얼마 전 했는데, 몇 번은 더 다듬어야 할 것이 명백합니다. 경어체로 놓인 방송원고에 익숙한 탓에 평어체로 글을 변신시키는 것이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마치 앞에 계신 어르신에게 반말을 지껄이고 있는 민망함과 죄스러움의 결합이라고나 할까요. 두세 번의 퇴고를 거친 뒤에는 그래도 버릇없음이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것의 어떤 것들> 중 제주에 대한 글이 가장 많아 단행본으로 묶기 충분한 분량이 되었으니, 이제는 모자란 강원도에 관한 글을 추가해야겠지요. 그래서 주말마다 도내 곳곳을 바삐 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언제나 돌아가고 싶었던 강원의 품 속에 조그만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진심을 다해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쓸 것을 다짐해 봅니다. 물론 부산이나 전주 등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공간과 사연들 역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보잘것없는 필력에 출판까지의 길은 운에 맡기더라도, 언젠가 인접 지역으로 묶어 브런치 매거진의 형식으로 매듭지을 생각입니다. 모든 것이 정리가 되기 전까지는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매거진 내 글의 번호도 뒤죽박죽일 테고(지금이 그렇습니다), 제주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의 글들은 처음 매거진에 올린 대로 줄 서있을 뿐입니다. 또한 제주 편이야 분량이 방대해 그냥 그 모습으로 놔둔다 해도, 강원도를 다룬 글부터는 매거진 내에서 평어체로 바꾸는 작업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존의 글의 형태가 바뀐 채 다시 매거진에 올라가도 이해해주시고 후속 글 역시 기다려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모든 곳의 어떤 것들>의 계획에 관한 말씀은 여기까지고, 그 사이 소품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매거진에 대해 당부를 드려야겠습니다. 언젠가 꼭 써봐야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강릉의 바다를 바라보며 그때가 지금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에 여러분께 복잡하게도 이렇게 보고를 드리게 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이 다해가는 순간 후손이나 친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일생을 함께 하며 나의 일부가 됐던 '인생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철 모르는 시절부터 삶의 석양에 이르기까지 심장을 울렸던 나만의 음악들을 다들 간직하고 계실 텐데요. 하나의 음악을 배경으로 들으며 그에 어울리는 짧은 글을 뽑아내고 싶었습니다. 누구든 성능이 뛰어난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고 계시니 어디서든 브런치의 글과 함께 음악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듣는 책'이 유행인 요즘이지만 '음악을 들어야 맛이 사는 글'의 감상도 꽤 낭만적이지 않을까요?
다른 것들이 그렇듯 음악도 호불호가 나뉩니다. 제가 고를 음악도 그렇겠지요.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곡들을 함께 하며 차가운 문장은 만들어내지 못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말랑해지고 넘어지고 벅차고 쓰리고 싶어집니다. 그래서겠죠, 음악과 함께 선물해 드리고 싶은 제 짧은 글들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친구들은 이 대목에서 터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네 친구가 그런 감성도 지닌 녀석이라는 것을) 네, 참으로 두루뭉술합니다. '사랑'이라니. 사랑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는 세상 가장 흔한 장르가 된 지 오래고, 토닥토닥 사람들을 위로할 사랑 이야기는 더더욱 아무나 쓰는 게 아닌 것도 같으니까요. 그럼에도 이렇듯 당당하고 뻔뻔하게 예고를 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사랑의 환희와 아픔이 가장 날카로운 나이가 따로 있는 건 아닐 테고, 경계도 희미한 '사랑'이란 단어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사람마다 그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어서 딱히 적임자가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다는 소리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결론은.
감히! 써보겠다는 겁니다. 음악의 힘을 빌려, '음악과 글로 이루어진 세트메뉴'로 포장을 해서 말이죠.
문제가 있습니다.
클래식을 소개하는 종이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QR코드는 브런치 글에 복사하기 적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음악을 재생하며 글을 읽어주십사 코드를 생성해서 복붙 하는 것이야 너무도 간단한 일이지만, 브런치 글이 열려있는 감상자의 폰에서 코드를 인식하려면 또 다른 폰이 필요하다는 말이죠. 두 분이 머리를 맞대고 한 분은 글을, 한 분은 QR코드를 찍어 함께 해 주시면 상관없겠으나, 보잘것없는 글 읽어달라고 스마트폰을 두 대나 준비하시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니 난감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동영상으로 유튜브를 링크해서 서두에 올려놓는 것이었습니다. 브런치 글을 열고 본문 앞에 나오는 유튜브 화면을 터치하면 음악이 바로 흘러나오니까요.
문제는 여기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튜브 화면과 음악은 당연히 재생이 되는데 정작 브런치 글을 읽으려 되돌아가기를 누르면 유튜브 자체가 중지된다는 것이죠. 아... SNS 무능력자의 비애를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파일을 직접 가져오자 싶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음악들의 파일을 끌어오더라도 음악이 재생되지 않아 낭패였던 것입니다. (물론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으로 감상해 주신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습니다. 유튜브 재생을 클릭한 뒤 글을 읽어내려가시면 되니까요.)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그렇다면 브런치 내에서 글을 읽으면서 해당 음악이 깔리게 하는 방법이 있는 건지. 혹시 알고 계시다면 제발 알려달라는 겁니다. 이 방면에 워낙 재주가 없는 사람이니 여러분에게는 방법이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글머리에 안내해드린 음악파일을 따로 가지고 계신 분은 재생을 누른 뒤 읽어주시면 아무 문제없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이 계실 것이기에, 글 발행과 동시에 음악 재생도 가능한 방법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아무 방법이 없을 경우,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알아서 곡을 찾아 들어주시라 부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유튜브 영상을 매 글의 첫머리에 링크해 놓을 생각인데, 그저 '이번 글과 함께 하실 음악이 이런 곡입니다.' 하고 알려드리는 차원일 테니, 구독자분들께서 어떤 식으로든 어떤 매체로든 음악을 재생하시고 글을 읽어주셨으면 한다는 것이죠. 염치가 없을지라도, 한 곡의 음악을 한 편의 글과 짝을 지어 세트메뉴로 출시하려는 것이라 이렇듯 떼쟁이가 되어 버립니다.
사랑 글을 이처럼 까다롭게 소개하는 심정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무슨 사용설명서 쓰듯 하는 제 모습이 딱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죠. 주제가 사랑인데. 사용법이 어디 있을 리 만무한데.
건조한 건 이번 글까지입니다.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지금의 사랑을, 혹은 과거의 인연을 떠올려보시죠.
지나고 보면 굴곡이 없었던 듯 보이는 시간들도 돋보기를 들이대면 기승전결과 부침이 변화무쌍합니다. 그 변화무쌍함을 담고 있는 것은 우리의 기억에 앞선 소리와 음악들이 아닐까요?
그의 부름이 생생합니다. 그녀의 대답이 아른거립니다. 그와 함께 부르던 노래가 거리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녀와 함께 듣던 노래가 카페에서 번지고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선곡일지라도, 각 사랑의 단계에 방해는 되지 않을 거라 자신합니다. 그러니 노래와 글에 그대로 묻혀 보시길 권합니다.
사랑에 환희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날카롭게 찌르는 아픔도 담았습니다. 통렬한 아픔, 묵직한 아픔, 찌르는 듯한 아픔도 모두 사랑의 다른 모습일 테니까요.
아! 지나간 사랑일 수밖에 없겠군요. 이렇게 안타까울 데가... 설렘부터 이별과 추억의 그날까지 일련의 과정을 담아내야 하니 끝나버리고 만 사랑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겠어요. 그럼에도 달디 단 부분만 삼키기는 싫었습니다. 무 자르듯 사랑의 곡선을 재단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사랑의 탄생부터 소멸과 후광까지, 줄기를 나눠 보관해두고 싶었습니다. 언제 떠올려봐도 짜릿한 설렘의 시간과 결실을 맺은 사랑의 황홀함, 우리 둘 사이 예상치 못했던 어긋남에서 이별 후의 쓰라림과 쓰라림 속의 달콤 쌉싸름함까지. 4개의 매거진으로 나눠 음악글(음악+글)을 하나씩 쌓아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