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그럴 입장이 되는 것 같아서.
브런치 앱을 여는 순간 보였던 메인화면 속 전현무 씨의 얼굴.
"......응?"
"아..... 브런치 시작했나 보네, 역시."
MOO진기행 아래의 구독자수를 보니 250여 명. 이 세계로 막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작가의 지명도를 고려한다면 수만명도 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다음날, 또 그 다음날에도 브런치에 입장하는 길목에는 그가 있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연예인이 더 있을 텐데, 유독 왜 이럴까?"
며칠 후 케이블에서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알게 되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먼저 잽을 던져본다면.
사십춘기가 온 전현무 씨에게 공감되었고, 그 증상으로 발현되는 허망함을 '글'로 채우려는 정신의 건강함에 미소가 지어졌다. 번아웃 증후군이 온 것 같기도 하다는 그의 말도 120%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창때 뛰어야만 하는 게 방송업계뿐일 리 만무하지만, 프리랜서로 여러 채널을 넘나들며 재능을 쏟아낸 시간이 벌써 10년이 되어가니, 왜 닳아가는 자신을 감지하지 못했을 것인가. 조금은 먼저 시작한 브런치 선배로서, 반갑기도 했고 응원을 보내주고도 싶었다.
현무 씨도 이제 그 맛을 알게 되겠군!
다음날도 브런치 메인화면엔 여전히 김승옥 님이 아닌 전현무 씨의 무진기행이 덮여 있었다.
"이건 아닌데..."
글쓰기의 능력도 갖춘 셀럽의 문장에 구독자 수가 폭증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며칠 사이 수천 명이 늘어난 구독자는 그래서 심지어 당연할 뿐이고, 그의 명성에 비한다면 아직도 한참 멀어 보이는 숫자일 뿐이다. 얼마든지 더 늘어날 수 있는 팬들이어서 응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번 MOO진기행의 메인화면 홍보는 브런치의 실책이었다는 것!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보니, 몇 년 동안 머리와 가슴을 쥐어짜며 힘들게 문장을 쌓아와, 한 명 한 명 늘어나는 구독자에게 진심의 감사를 느꼈던 나 자신이 덧없어 보인다는 내용. 아직 짧은 글 몇 개 뿐이지만, 방송과 브런치의 홍보로 급격히 유입되는 현무 씨 브런치 구독자 수를 바라보며 당연히 가졌을 법한 심리일 것이다.
단순한 투정일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인가?
전현무 씨뿐 아니라 다른 유명인들이 브런치에 글을 써도 구독자가 폭증하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럼에도 브런치가 스스로 홍보를 앞장서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브런치도 결국 장사가 돼야 하는 플랫폼이니 유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유명인이 개설한 브런치 계정을 알리는 것뿐이리라. 지극히 당연하겠다.
지극히 당연한 것인가?
브런치의 출범은 달랐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여느 블로그와 달리 광고가 붙지 않으며, 탈락에 속이 상해도 문장의 질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판명돼야 글을 쓸 수 있다는, 어찌 보면 위화감을 조성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글들의 집합처를 자청한 플랫폼이 브런치였으니까 말이다.
브런치에서 유명인이란 곧 구독자들의 내면을 울리는 활자의 마법사들 아니었던가.
다시 한번 오해하지 마시기를, 전현무 씨의 지성이면 스스로의 분투로도 브런치 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조용히 기다리면 될 일인 것이다.
그래서 브런처(?)들의 구독자 투정은 이유가 있고도 남는다. 여기에서만큼은 글로서 평등할 줄 알았는데, 그럼에도 글 실력 있는 셀럽들이 이 안에 존재할 것이고, 그들을 브런치가 소개한다면 충분히 인정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브런치가 '미는' 사람이 연재를 막 시작한 방송인이었다면 오해를 받아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좋지 않다.
브런치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전현무 씨를 위해서도 그렇다.
방송에서 그가 브런치를 시작하고 글을 써 내려가는 모습은 충분히 진정성이 담긴 듯 보였다. 앞만 보고 멈춤 없이 달려 나가는 삶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향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것을 위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담담히 펼쳐가고 있으니.
생각해 보자. 스스로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에게, 브런치의 '광고'는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
사람들의 환호 속 허망함을 가득 안고 있는 그가 무엇 때문에 글을 쓰려 하는 것이었을까. 적어도 그의 말처럼 장애물 없이 바로 튀어나오는 말이 아닌, 온전한 자기의 마음을 정제해 표현할 수 있는 글에서 위로를 받고 싶은 건 아니었을지.
만약 그렇다면 현무 씨는 브런치에서만큼은 방송인이 아닌 '작가'로서 대접받기를 원했을 거란 이야기다. 그의 진솔한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 주위에 빛을 발할 때, 우리 모두는 그를 진정한 브런치 작가로 인정하며 따뜻한 미소와 응원을 건넸을 거란 뜻이다.
15년쯤 된 어느 날이었다.
목동에서 있었던 '전국 아나운서 대회', 연말마다 열리는 전국 아나운서들의 송년회라고 하면 될 것이다.
총인원이 얼마 되지 않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선수들이니 단합력이 오죽할까. 각종 시상도 시상이지만, 아나운서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신입 아나운서들의 통과의례.
방송사별 신입들의 장기자랑이 끝나고 친한 선후배들은 무리를 지어 근처 가요주점으로 향한다.
이미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현무. 아 , 물론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제주에서 대회 참석차 올라온 낯선 선배일 뿐이었으니.
술이 약하다는 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그야말로 공식적인 신고식 날이 아닌가.
짠했다.
"너, YTN에서 매일 봤어."
옆에 앉은 선배가 환영의 뜻을 이렇게 표한다. 아마 KBS에 와서도 뉴스를 진행할 줄로 예상하셨는지.
"사실 뉴스 말고 다른 것이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술기운이 가득해도 그의 앞길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명 나게 방송을 했고, 그래서 재능을 꽃피웠고, 그래서 인기의 정점에 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지쳤고, 그래서 허망함이 밀려왔고,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를, 그의 문장을 조용히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브런치라는 이 소중한 플랫폼은 우리와 작가를 이어주는 그야말로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방송인이 아닌 순수한 '작가'를 연결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믿어본다.
너무도 고맙고 소중한 나만의 브런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