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부자

걱정다이어트2_미래일기

by 초예민

2023년 12월 7일 맑음


지난 토요일 건강검진(재검) 후 결과가 채 나오기도 전에 걱정에 걱정을 보태는 것에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올해 두 번째 재검을 위해 검진센터를 방문했을 때 주치의가 이번에도 혈액검사 수치가 회복되지 않으면 다음번엔 더욱 정밀 검진을 해보겠다고 경고(?)를 한 터라 겁도 났지만, 마음에 파도가 더 거칠어진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워낙에 건강이 좋지 못하기도 하고 그래서 중증의 건강염려증을 앓고 있었던 지라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뭐든 하지 않고, 건강에 좋다는 건 뭐든 해보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런데도 건강 수치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나는 이제는 무엇을 더 해야 하나?’라는 자포자기 심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닥치지 않은 시련에 대한 근심이 되려 건강을 해친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엊그제부터는 마음을 다잡고 본격적으로 ‘걱정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걱정다이어트 스톱워치의 전원은 켜졌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은 어찌나 더디게 흐르는지.

드디어 검사 결과가 카톡으로 전송이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메시지 속의 검진결과를 근엄진하게 터치하는 순간, 아직 해동이 덜 된 내 마음이 와르르 녹아내리는 듯! 대체 나 왜 긴장하고 걱정하고, 미리 애태웠던 거야?


재검에 재검을 했던 검진결과는 염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모든 수치가 완전히 정상적으로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번보다 많이 회복된 수치였다. 빨간색의 엄중한 경고성 텍스트에서 파란색으로 경고의 강도가 가벼워진 정도이다. 수치 회복을 위해 여태 노력했던 것에 대해 칭찬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유혹하는 '달콤, 쌉싸름, 파사삭, 쫀득, 핵불매운'이런 맛들과 오랫동안 결별의 시간을 보냈다.


이 번 검진 결과에 여러 가지 프로모션도 걸려 있었다. 첫 번째로는 하필 검진 다음날 뷔페 나들이가 예약되어 있었다. 뷔페에서 섭취할 식단의 범주를 얼마만큼으로 허용할 것인지가 검진 결과에 달려 있었고, 두 번째로는 다가올 크리스마스 파티 때(달랑 남편과 둘이서만 하는 거지만) 너무나도 애정하는 까망베르치즈와 브로켈(와인)을 딱 한잔이지만 허용할지 말지가 결정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태 제한식단하느라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 예쁜 요가복이다.


뷔페 가서 그 날 만큼은 정말 여태 참았던 단짠맵과 육해공 음식들을 맘껏 먹고 행복한 시간 보낼 테야! 크리스마스 파티땐 단 한 잔만 허락된 와인이지만 갖가지 맛있는 안주들로 분위기 한 껏 내고,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겨 있던 예쁜 요가복도 단칼에 결제해야겠다! 초예민, 수고했다. 앞으로도 자~알 부탁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내일 적고 싶은 미래일기다.


나는 나에게 엄격한 편이다. 기준점을 찍어 놓고 잣대를 그어 버리면 나는 스스로를 그 속에 가둬버린다. 그 속에서 한번 입력된 알고리즘을 오차 없이 착착 실행하고 있는 내가 있다. 때론 하기 싫어도 한 번 입력된 프로그래밍은 디버깅이라는 과정도 없이 무리한 실행을 강요받는다. 빤히 오류가 보이는 것 같은데도 밀고 나가본다. 나는 그것을 스스로가 성장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치부하고 살았다. 열심히 계획하고 그것을 한치의 어김없이 지켜나가는 것이 내가 원하는 나로 완성되어 가는 길이라 여겼다.


나이가 들면서 중년에 접어든 지금은 그런 잣대들이 내 사지를 올가메는 올가미로 느껴진다. 가둬 둔 주체는 나다. 그렇다면 그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주체 또한 내가 되는 것이다. 각성까지 시간이 길었지만, 이젠 그 속에 갇혀있는 나를 구출할 때이다.


내 마음속의 도어록 비번을 눌러 잠금을 해제해 본다. 초예민, 방이 너무 협소하고 유니폼도 너무 꽉 조여서 답답했지? 여기 준비해 둔 헐렁한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얼른 거기서 나와! 지금 12월이라 조금 춥긴 한데, 약간 쌀쌀한 공기가 오히려 쾌청해. 폐부 가득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었다가, 케케묵은 이산화탄소를 죄다 불어 내버려!





12월 8일 오전, 실제 건강검진 결과가 스마트폰으로 전송되었다.

4개 검사 항목의 수치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중 3개의 결과치가 정상범위에 안착하였고, 1개의 수치만 빨간 경고 텍스트에서 파란 경고 텍스트로 경고단계가 하향 되었다. 즉, 수치들이 많이 정상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역시 걱정은 미리 사서 할 필요가 없다! 얼른 장바구니 요가복을 결제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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