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전하기 쑥스러운 이야기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by 초예민

20대 정도까지는 남편(당시 남자 친구)에게 한 번씩 편지도 쓰고, 크리스마스 때면 꼭 카드를 쓰곤 했었다. 연애 6년 이후 결혼 20년 차인 지금은 당연하게도 카드 따위는 쓰지 않는다.(크리스마스는 그냥 공휴일 중 하루일 뿐) 그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카드를 2세트 구매해서 하나는 남자친구에게 내밀며 카드 쓰기를 강제(?)했다. 그 어떤 선물보다도 마음속 이야기가 더 큰 선물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글쓰기라고는 질색을 하는 남편은 카드 쓰기를 매우 어려운 숙제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연애 때와 결혼초반에 연례행사였던 크리스마스 카드 교환 행사는 역사 속으로 저물게 되었다.


2023년 겨울, 연말이 다가오는 지금. 크리스마스 카드 교환 이벤트가 부활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집 안을 간단히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미려 구매한 가랜드 속에 빈 카드가 사은품으로 동봉되어 었었다. 그 카드가 손에 쥐어지는 순간 어렴풋한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카드를 남편과 하나씩 나눠 가지고 각자에게 카드를 쓰기로 했다. 서로에게 카드를 쓰고 교환하자는 합의이기보다는 이번에도 역시 내측에서 일방적으로 강제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나는 며칠을 고민하고 진심을 담아 빈 카드 속에 한 줄 한 줄을 써 내려갔다.


가슴속에 차오로는 벅찬 감정으로 울컥 눈물도 났지만 남편에 대한 감정이 어느 정도 권태로워진 지금, 애틋했던 시절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어제 카드 초고를 스마트폰 메모에 작성하고 퇴근할 남편을 기다리며 저녁을 짓는 동안 '아, 어쩜 그렇게나 그때 그 감정을 잊고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식탁을 차리는 내 손길에 더욱 정성이 묻어났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두려운 것도 많은 1998년 21살. 불안하고 무서워서 그렇게 늘 화가 나있고 예민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딱 하필 그때 오빠를 만나서 나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태어나서 그렇게나 나를 생각해 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었을까? 세상에 버림받고 상처투성이에 악만 남은 나에게 늘 식사 걱정을 해주고, 아르바이트로 바쁜 나를 대신해 누추한 빈 자취방을 치워주고, 손수 속옷 빨래까지 챙겨주는 남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를 찾아와 주는 남자.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 오빠일 텐데.. 나는 요새 그걸 자꾸만 까먹곤 하네. 이젠 내가 더 챙겨줘야 되는 귀찮은 존재도 되었다가, 태어나 내 일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지낸 제법 나이가 지긋한 측은한 동반자이기도 하다가.. 그 속 어딘가에 분명 사랑도 존재할 텐데 ㅎㅎ


일상을 살면서 우리의 애틋함이 묽어지는 때가 더 많을 테지만 때때로 되새기며 사이좋게 늙어가자. 시장 가는 길, 산책 가는 길, 어딜 가든 두 손 꼭 잡고 아무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일지라도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고자질하듯 이야기하며 하루하루를 쌓아가자.


오빠, 내가 부족할 때도 넘쳐날 때도 항시 나를 인정해 주고 지켜줘서 고마워!

올 연말 우리 함께 기쁘고 행복하게 잘 보내고,

더욱 건강한 2024년 맞이하자!

사랑해요^^


올해는 카드와 함께 소소하지만 크리스마스 파티도 준비해 보았다. 고작 와인 한잔씩에 안주거리 몇 가지지만 오랜만에 분위기 내며, 식탁에 식사가 아닌 파티 음식을 사이에 두고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눠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