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천천히 자란다.
요즘 내 위장과 전쟁 중이다. 즉, 극심한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중이다. ‘전쟁’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냈지만 그 뜻대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기보다는 내 위장을 어르고 달래는 중이다. 소화불량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소화불량은 어쩌다 오는 증상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부터 먹성은 좋았으나 식탐에 반하는 나의 소화능력은 내 먹성에 멱살을 잡았다. 속이 쓰리고 소화가 힘들고 콕콕 찌르는 통증을 한 참 앓던 중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첫 위경련 진단을 받은 게 불과 15살 때이다. 그 후로 30년 넘게 대체로 소화불량의 삶을 살고 있다.
어린 시절엔 (나이듦을 인정하긴 싫지만 내 육신이 나의 노화를 자꾸만 각성시키는 아이러니란) 소화가 되든 말든 신체 전반적인 컨디션에 큰 영향은 없었다. 그러나 불혹을 넘기고 지천명을 바라보며 이제는 녹록지 않음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중이다. 소화가 안되면 내 몸 전체의 시스템이 셧다운 되는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저하되면서 섭생에 지장이 생기니 활기가 떨어지고, 두뇌처리도 더뎌져 업무능률뿐만 아니라 일상의 사고 능력도 롤러코스터 하행선이다.
작년 봄 이런 증상이 크게 찾아왔었다. 석 달 이상 호되게 고생하고 갖은 노력 끝에 회복세로 전환되었던 기억이 있다. 한데, 작년 봄에 찾아왔던 그 아이가 죽지도 않고 올봄에 또 찾아왔다. (하, 설마 매 봄마다 오는 건 아니겠지?) 알레르기를 동반한 소화불량으로 신체의 모든 시스템이 슬로모션으로 작동되고 있다. 삐그덕 삐그덕, 끄억 끄덕 소리가 귀전을 울린다.
한껏 항진되어 있는 교감신경을 끌어내리고 가출한 부교감신경을 찾아오기 위해(부교감신경이 소화에 관여한다) 엊그제부터 저녁식사 후 동네 한 바퀴 산책을 시작했다.(미세먼지 때문에 고작 하루 밖에 못했지만) 남편과 함께 부드러운 밤공기를 음미하며 느리게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 1층 엘리베이터 앞, 지역신문이 적재되어 있다. 내 남편은 세상의 모든 소식을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정보 중독자이다.(이렇게 표현한 건 쉿! 비밀이다.) 남편이 지역신문 몇 세트를 쓰윽 집어든다.(한 세트로 만족하지 않는 건, 미래의 어떤 일에 대비해 신문을 곧잘 모아두는 준비성이라고 하겠다.) 넓지 않은 밀폐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내 미간이 찡긋 찌푸려진다. 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신문에서 풍겨오는 기름 냄새가 너무나 언짢다. 남편은 집에 들어와 손도 씻지 않고 미처 옷도 갈아입지 않고는 신문 읽기 삼매경이다.
무엇보다 내 심기를 강타한 것은 신문 발 기름 냄새이다. 겨우 다독여둔 교감신경이 개업집 앞 풍선인형 마냥 활개치고 일어났다. 눈이 가렵고, 구강작열감에 호흡곤란까지 스멀스멀 알레르기 증상이 올라오며.. 나는 직감한다. 오늘 밤도 숙면은 틀렸구나. 옷 갈아입으러 들어간 남편이 들을세라 작게 궁시렁거리며 주방과 거실 샷시를 열며 실링팬을 함께 가동시켰다.
밤새 악몽과 각성을 반복하며 그조차 몇 시간 안 되는 수면으로 뒤척이다 매우 수척한 모습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러고는 남편에게 정중히 부탁의 말을 전했다.
“어떤 생각으로 신문을 저 다지도 많이 모아둔지는 모르는 바 아니나 어제 내가 너무 힘들었다. 출근길에 분리수거장에 모두 갖다 버려주길 바란다.”
최후통첩을 했다. 참고로 팬트리에 각 잡혀 보관되어 있던 지역신문은 적재 높이가 대략 25센티미터 정도는 되어 보였다. 남편은 별말 없이 출근길에 그것을 가슴에 껴안고 나갔으나 표정만은 그리 평온치 않았다. 나 또한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 나랑 사는 저 남자, 정말 피곤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출근해서 급한 업무 몇 가지를 처리하고 남편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오빠, 출근 잘했어? 신문지 갖다 버리게 해서 미얀.」
이윽고,
「아니다. 괜찮다. 숨은 쉬고 알아야지.」
라는 이해, 다정함, 그리고 체념이 느껴지는 답이 왔다.
고맙고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