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
4년간 함께 일했던 직장동료가 회사를 떠났다. 감정의 교집합이 많던 사람이라 아쉬움이 크다. 이별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작은 이별 선물도, 이별 식사도 함께하지 못하고 헤어져버렸다. 머릿속에 많은 계획들이 오갔지만 심각해지고 싶지 않았고, 가볍게 받아들이고 또 웃는 얼굴로 밖에서 다시 만나고 싶었다. 나는 내성적인 집순이라 먼저 만나자라는 연락조차 쉽지 않을 테지만, 우선 짧은 편지로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자꾸만 보고 싶고 시간을 내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웅크러드는 내 마음을 이긴다면 그녀를 만나고 싶다.
선생님,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여자 아이가 전학을 갔어요. 30년도 더 지났는데 이름마저도 기억에 생생해요. 친한 아이도 아니었는데 맘 속이 너무 공허하고 그 아이가 보고 싶어 무턱대고 그 아이가 전학 간 학교로 편지를 썻어요(돌이켜보니 약간 무모하기도). 내용은 대충 '너가 전학 가서 섭섭하다. 너가 보고 싶다.'라는 내용이었을 거예요(편지봉투 주소란엔 00국민학교 4학년 류소영에게). 시간이 얼마 지난 후 학교로 그 아이에게서 답장이 왔어요. 답신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첫 구절만큼은 선명히 기억나요. '00아, 너가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줄 미처 몰랐어...'라는. 나는 좀 내성적인 아이여서 표현을 잘 못했어요.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 지만 그때는 더더욱 내 마음을 깨닫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때론 어떤 나쁜 상황이 지나가고 시간이 한참이나 지체된 후에 분노라는 감정이 올라오기도 해요. 나는 아무래도 감정에 대해서는 좀 게으른 편인 거 같아요.
선생님이 떠나고 나면 좀 허전할 거라 예상은 했는데, 그래서 이별 선물을 준비해야 하나? 아님 회사 밖에서 서둘러 둘이서 식사라도 해야 하나? 여러 생각만 오가다 결론 없이 시간만 흘러버렸어요. 며칠의 휴일을 보내고 조리실 옆문을 열고 출근을 하는데 현관 앞 선생님의 부재가 오늘따라 나를 조금 센티하게 만들어버렸어요. 이렇게 내 보고싶음의 감정은 또 게으르게도 지각을 하네요.
참 바지런하고 성실했던 모습, 감정을 잘 유지하려 애쓰던 모습, 타인에 대해 최대한 공감하고 이해하려던 모습.. 때론 오히려 그런 감정의 바늘에 찔려 아파하던 모습. 내가 느낀 선생님의 모습들이에요.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면 감정의 피부도 더욱 두꺼워져 무뎌질 줄 알았는데, 얇은 감정의 피부는 더 얇아져 작은 쓰라림도 자꾸만 더 큰 통증으로 느껴지는 것이 세월인 줄 몰랐어요. 통증의 강도는 줄어들지 않지만 우리는 견디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선생님, 다른 곳에서의 생활도 어쩌면 이곳 생활과의 연장선일지도 모를 테지만 낯선 장소와 낯선 인연은 선생님 인생에 새로 돋아나는 뿌리로 선생님의 삶을 더욱 단단히 지탱해 주는 힘이 되어줄 거라 믿어요.
계속 생각나고 또 보고 싶으면 우리 시간 내서 한 번씩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셔요. 어떤 인연은 몸서리쳐지기도 하고 또 어떤 인연은 쉬이 잊히기도 하지만 선생님과의 인연은 시간을 두고 드믄드믄 생각이 날 거 같아요.
‘그런 착한 사람이 있었지.
잘 살고 있을까?‘라고...
요즘은 참 간편하다. 우표도 편지지도 편지봉투도 필요없다. 심지어 집주소를 몰라도 상관없다. 고맙다, 카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