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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연하게 Aug 01. 2022

신을 기다리고 있어

사회적 약자가 떨어지기 쉬운 지옥


신을 기다리고 있어

사회적 약자가 떨어지기 쉬운 지옥



나는 다행스럽게도 돈 모으는 재미를 비교적 빠르게 알아차린 편이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돈이 없을 때의 추락에 대해서는 진지하지 않았다.


6살때 부터 밥 먹을 돈이 없어 컵라면으로 때우고 그마저도 없을 때는 밖을 돌아다니며 홍보성 전단지에 사탕이 끼어있는지를 살피곤했다.


쌀이 그리워 이젠 죽나보다 싶었을때,

다행히 조모가 손주를 보살펴 주시러 와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이후도 살림이 급격히 좋아지진 않았다.

대신 할머니가 동사무소에 사정을 알려주신 덕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되어 최소한의 삶을 사회로부터 허락받았다.


싸게 구매할 수 있게 된 쌀, 일 년에 한 번 주는 김치, 가루유와 매 달 다른 색으로 나오던 형광색의 파랑, 초록, 노랑의 식권. 어른이 뒤, 사실을 잠시 잊고 살았던 힘든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자기방어와 망각이란 이름의 축복 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사회에서 강자로 분류되지 못한다.

돈도 없고 대학도 나오지 못한 미혼의 여자, 저임금의 직장에 겨우 다닐 수 있는 스펙과 경제성은 자칫 잘못해 한 발자국이라도 잘 못 디디면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는 걸 회피할 순 있어도 현실을 바꾸긴 어렵다.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내 인생 전반으로 다시 꺼내 온 건, 우연한 기회였다. 회사 관련 서적을 인터넷 대형 서점에서 구매하여 덤으로 날아온 홍보성 부록. 얇은 종이 장으로 구성된 작은 책은 얕은 흥미 위주로 눈을 사로잡았다.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적혔다는 책은 짧은 내용 만으로도 나를 쉽게 매료했다. 놀랍도록 나와 닮은 한 여자의 이야기였다. 있다는, 자신마저도 의문을 갖는 허무맹랑한 자신감 사이로 침입하는 궁핍은 여성을 한도 끝도 없이 지옥으로 내몬다.


나는 책을 구매하기 위해 바로 이북을 검색했지만 그 당시 이북으로 바로 출시되지 않았다. 공간 및 다양한 문제로 가능하면 이북을 선호하던 나는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이북으로 출시되지 않을리 없다는 확신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책을 기다렸다.

내 예상대로 책은 금방 이북으로 출시됐다. 곧 바로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책을 구매했다. 책은 얇은 디스플레이 너머로 나를 금세 매혹시켰다. 홀린듯 책을 탐미해 마지막 장을 읽는 것은 금세였다.


곧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믿는 주인공의 믿음과는 달리 사회는 그리 쉽게 여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금방 방세를 낼 돈도 없어져 길거리로 쫓겨나는 바람에 단기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찾아야된다.

하지만 안락한 보금자리와 기반이 되는 돈이 없다면 그건 꿈과 같은 일이다.


주인공은 밑으로, 밑으로 끝임 없이 추락한다.

주변에 쉽게 손을 벌릴 수 있는 사람이 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평소 허리띠를 조금 더 졸라맸다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가늠하기 힘들고 작고 사소했던 문제는 금세 산더미만 해져 주인공을 괴롭힌다.

모든 것이 주인공의 탓은 아니었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누구 하나 쉽게 손을 뻗어주지 않고, 뻗어주더라도 그게 순수한 호의인지 끊임없이 사람을 의심하게 만든다.

현실은 우리들의 생각보다 훨씬 가혹하다. 짧고 많은 서류들은 우리들의 최소한의 기준을 심사하고 도와준다 하지만 그것에 딱 맞게 맞춰들어가 도움을 받기란 보통 쉬운일은 아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결국 지옥에서 빠져나온 여성, 나오지 못할 여성, 빠져나온 여성을 모두 목격했다.

누군가는 어리석다며 혀를 찰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쩌면 나와 내 친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나는 하나의 책을 보며 내 미래를 가늠하고 여기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낸다.


물론 잠시 쉬는 것은 괜찮다. 힘든 자신을 질책하는 건 더 심한 지옥으로 빠지기 쉬운 지름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냥 여기에 안주한다면 가까운 미래는 아니더라도 먼 미래에 나는 결국 길거리에 앉아 더 이상 미래를 꿈꿀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혼자 살기를 꿈꾸는 경제적 기반이 없는 여자라면, 저 책을 한 번쯤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여자이기에 돈과 사람은 더욱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과 생존을 위한 대비는 언제 해도 빠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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