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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연하게 Jul 25. 2022

어쩌면 어제 나를 죽였을지 모르는 살인자의 이름, 가난

'가난'이라는 잔혹한 살인자


'가난'이라는 잔혹한 살인자


20대 후반, 의료기술의 발달로 연명하는 나이가 100세인 지금 숫자로 보면 우스울 정도로 얄팍하게 느껴진다. UN 기준으로 18~65세가 청년이고 66~79세가 중년으로 새롭게 규정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더 어리게 느껴지는가? 이렇게 확실히 규정되어 있는 숫자만 보면 내 남은 인생은 아직 여유로운것처럼 느껴진다.

"조금 더 먹고 마시고, 인생 준비는 한 30대 후반이나 40대부터 하면 되지 않겠어? 인생은짧고 즐겨야 하잖아!"

막말로 내일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병에 걸려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나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니 감성에 젖는다. 내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라 하니, 누구보다 멋지게 보내고 싶어질 것이다. 가장 즐겨들었던 음악을 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멋진 음식을 맛보며 행복을 가미할 것이다. 시야는 환경오염과 건물, 자동차 전등에 가려진 환한 별 대신 까만 하늘에서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들에게 서운했던 일과 즐거웠던 일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나면 우리가 즐겨보던 영화의 한 페이지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 사고로 죽을 것을 염두에두고 살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매일 영화처럼 멋진 삶을 살고 싶어도 참아낸다. 물가가 폭등하고 일자리가 없는 이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순간의 유흥을 포기한다.

한때, 욜로(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유행했다. 경쟁사회에 지친 청년들에게 환상에 젖게 만들기 충분한 단어였을 것이다. TV 프로그램에서는 자연의 광활한 풍경과 함께 맛있는 음식들을 즐기는 모습을 너나 할 것 없이 만들어 보여주며, 욜로라는 자막을 붙였었다.


그 당시 나는 다시 오지 않을 오늘, 현재의 인생에 집중하는 이들과 달리 '절약'에 조용히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리 오늘이 내일이 되면 다시 오지 않을 날이라고 미디어에서 말해도 내겐 소용없었다.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을지도 모를 '내일'이 존재감을 뽐내며 얄미운 상사처럼 버티고 있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던 탓이었다.


꿈과 희망으로 반짝여야 할 내일, '미래'는 가난한 자들에게는 턱없이 잔인해진다.

"너 돈 없지? 그럼 좀 비참해도 참고 살던가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이거랑,저거 산 돈은 내놔!" 하며 사채업자처럼 멱살을 잡고 탈탈 털어대는 것이 가난이다.

물론 저렇게 말하는 가난은 좀 상냥한 편이다.


더욱 무서운 가난은, 어떤 소리를 내도 외부에 들리지 않게 만든다. 우리의 관심은 오직 반짝이고, 황홀한 부와 명성에 있기에 가난한 자들에겐 관심이 없는 것은 잔인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들은 늙고 돈이 없어지면 일자리마저 구하기 힘들어진다. 정부에서 나오는 생활지원금은 턱없이 적어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다. 공공기관에서 나오는 실버세대의 취업률은 단기간 일자리로, 하루에서 일주일에 그치는 것이 많다. 사실상 취업률이란 그래프를 채우기 위한 눈속임과도 같은 것이다.



번지점프가 아니라 마라톤을 해야 한다


복지시설에서 나와 도와주고, 무료 급식을 먹고, 몸이 성치 않아도 폐지를 주워 발품이라도 팔아야 하는 인생을 살지 않는 인생. 현재 시점으로 이미 가난한 노인들에게는 기회가 없다.

희망 차게 '평생교육'을 들먹이며 그들도 교육을 받아 새로운 취업을 말하는 자도 있겠지만, 그런 자들은 극소수에 해당한다. 고용노동부에서는 노년의 취업을 기업에 권장하고 있지만 산재 부담의 문제로 현실적으로 복지를 새로 개선하지 않는 한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는 오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가족으로 부모를 당연히 부양해야 할 시대는 끝났다. 시대의 흐름이 이렇게 급변할지 몰랐던 세대의 뒷처짐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그들이 지금 행복하진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연금 정책'덕 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과연 어떠한가?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었을 때 국민연금이 나오는 안정성을 믿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고령화 시대에 저출산까지 산사태처럼 막을 수 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당장 대통령 대선의 공약과 토론에서도 연금과 저출산 문제로 지방소멸 문제는 뜨거운 정치 문제로 거론된다.

하지만 당장, 아니 미래에도 해결이 어려운 이 시국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다.


미래를 위한 장기간의 질주

한창 코스피 지수가 상승세였던 시대는 갔다. 무시무시한 금리인상과 환경파괴로 인한 자원의 고갈, 인구 소멸 위기에 닥친 지금 우리에게 한 방의 기회는 어렵다.

물론, 이 어려운 시국에도 '한 방'이라는 기회를 잡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충분한 공부와 시대, 운이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소자본으로는 '한 방'의 길에 오르기도 힘들다.

우리에게 먼저 시급한 건 한 푼, 두 푼 모아 위험한 시대에 실업 위기가 왔을 때도 살 수 있는 현금과 미래를 위한 적금이다.


주식에 당장 투자하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주식은 여유자금을 가지고 하라 권하고 싶다.

소액으로는 배당금이 크지도 않으며 단기매매로 얻는 수익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꾸준한 하락장을 타고 있는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으로 바꾸기도 녹록치 않다.

퇴사를 하고 6개월에서 1년 동안 자신이 취업 하지 못해도 여유를 가질 수 있을 정도의 현금을 보유하지 않는 이상 현재 무리한 투자는 금물이다.

예견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가난은 우리를 급습하여 단호하게 우리를 재개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몰아붙여 가난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선명히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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