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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연하게 Aug 10. 2022

그네를 타고 날아올랐다

겁쟁이가 하늘을 나는 법


휴대폰이 없던 시절, 목청 높여 친구네 집 앞에서 이름을 불렀었다.


골목을 쩌렁쩌렁하게 메우는 어린아이의 음성에 짜증하나 없던 그날 낡은 골목은 햇살이 좋고 건조했던 거 같다. 잠시 뒤 나온 친구와 함께 동네 놀이터를 가면 모르는 아이들과도 어느새 어울려 시소나 그네, 흙장난을 치며 놀곤 했다.

어릴 때는 자주 보던 노란색 민들레는 다친 곳에 갈아 마시면 무엇이든 낫는 만병통치약이었고 드물게 보이던 하얀 민들레는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마법의 약이었다.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친구들과 놀 시간과 풀이 파리를 찧을 돌멩이, 쌀알인 모래만 있으면 행복했던 아이였다.


몇 벌 없던 옷을 금세 더럽히고 마는 철없고 해맑던 나는 어디로 간 걸까? 아직 내 안에 존재는 하는 걸까?



돈과 걱정에 매일을 매달려 일만 찾아 어영부영하다 20대 후반이 된 백수는 산책을 하던 도중 우연하게 빈 놀이터를 발견했다.

평소라면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웃음이 끊이지 않을 텐데 낯 설정도로 적막한 다양한 색채의 놀이터는 내 마음을 이끌었다. 도로를 걸으며 지나가는 어른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천천히 놀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뜨거운 여름의 아스팔트보다 조금 더 부드럽고 통통 튀는 녹색 땅을 밟았을 때 어린 시절의 향수가 물씬 나를 휘감았다.


꼬질꼬질, 잘 씻지도 못하고 더럽게 다녔던 나를 차별 없이 받아들여줬던 이름 모를 동네 친구들과 시소에 나면 언제나 마지막은 쿵! 하고 엉덩방아를 낡은 타이어에 찧고 말았었다. 그럼에도 유능한 마법사 놀이 다음으로 언제나 시소를 가장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와 함께 발을 굴려 높이 떠올랐다 다시 내려오는, 얕은 신뢰가 깔린 그 행위는 다 같이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동작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시소나 미끄럼틀을 타고 싶었지만 훌쩍 위로, 가로로 자란 몸뚱이로 혼자 시도하기에는 큰 부담이 따랐다.


할 수 없이 고무 재질로 줄이 잘 마감된 그네에 앉았다. 우리 동네의 그네는 철이 엮인 형태였는데, 그 사이에 살이 찝히기도 하고 여름철에는 너무 뜨거워 고생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앉은 그네와 놀이터는 무척이나 근사하다. 어른이 앉아도 튼튼한 그네는 나를 쉽게 하늘로 떠밀어 올렸다.


운동량 보존의 법칙에 의해 금세 밑으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고개를 추켜올리지 앉아도 쉽게 하늘을 볼 수 있는 경험은 오랜만이었다.

비록 고소공포증이 극심한 겁쟁이라 그네를 타는 도중에도 속이 울렁거렸지만 오랜만에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은 착각에 신이 나 없던 투지를 끌어올렸다.

좀 더 높이, 높이를 부르짖으며 한 참을 탔을까, 투지 앞에서 금세 투색된 두려움은 그 시절 높이 올라가던 동경의 대상들을 소환시켰다.

"어른이 돼서도 그들을 따라잡는 건 무리군." 용감하고 운동신경이 발군이었던 언니, 오빠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나와 함께 눈가를 휘며 걱정 없이 웃었던 그날의 이름 모를 친구들도 오늘의 나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 안에 있는 추억, 그날을 떠올렸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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