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연하게 Nov 25. 2022

컵라면과 알사탕 - 2



당시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매일 같은 종류의 컵라면만 먹다 보면 신물이 나기 마련이다. 그마저도 가릴 처지가 되지 않아 하루에 하나씩, 아껴먹었던 컵라면이 모두 동나버렸다. 어른이 되어 돈을 벌면 절대로 다신, 컵라면은 먹지 않을 테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굶주림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소리소문없이 집을 떠난 아버지는 내가 정령 죽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그 어떤 의미도 없는 자식에게 관심이 없는 걸까. 잘 모르겠다.

매일 물만 마시고 잠만 자는 쳇바퀴 속에서 생각이란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쓸데없는 생각을 줄이고 어떻게 하면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지 떠올린다.    

 

매일 시끄러운 소리 탓에 우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웃집에 자존심을 굽히고 인사를 하며 밥을 얻어먹을까, 아니면 동네를 떠돌다가 모르는 사람의 옷을 부여잡고 밥 한 끼 사달라고 눈물을 짜내볼까.     


망상은 있어봤자 무의미한 자존심을 깎아내는 것을 전제로 무궁무진하게 퍼져나간다. 물론 종국에는 그 무엇도 현실성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할 수 없이 집에서나 바깥에서나 구분 없이 입는 옷을 입은 채로 밑창이 떨어진 신을 끌고 동네 번화가로 나갔다.     


밤이 되면 술집의 노란 조명이 켜져 시끄럽고 현란한 골목이었지만, 낮에는 할머니들께서 대로변에 농산물을 파는 거리였다.     


나는 동네에서 주정뱅이의 술 심부름을 하는 미취학아동인 탓에 꽤나 유명한 인사였다. 먹지 못하고 비쩍 골은 꼴이 안쓰러웠는지 힐끔거리며 딱하다는 소리가 드물지 않게 들려온다. 하지만 모두 다 말뿐, 실질적인 도움이나 신고는 하지 않는다.     



‘왜 이 많고 많은 사람 중 나를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걸까?’  


   

알 수 없다. 어른들의 생각을 이해하기란 참 어려웠다.     


극한의 상황에 놓이니 고성방가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찰이 떠오른다.     


아버지께서는 경찰의 방문에 우리를 우악스러운 손으로 내리치다 말고 등 떠밀어 현관문을 열게 했다. 집안의 어른을 찾는 말에 잘 교육된 것처럼 없다는 말만 반복하였지만 금세 경찰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탄로 났다.     


아버지는 폭력적인 행동은 어디로 갔는지, 점잖은 양반처럼 얼굴에 멋쩍은 미소를 띠고 경찰에게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벌겋게 술독이 오른 사내의 입에서 별것 아니라는 소리가 술술 나온다. 모두 간파하기 쉬운 거짓말들이지만 경찰은 멍투성이의 아이보다는 어른의 말은 신뢰하는 태도로 금세 돌아가 버린다.     


한동안 경찰이 참 많은 원망스러웠다. 그뿐 아니라 빤히 어른의 손길 없이 방치된 어린아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어른들이 모두 미웠다. 그냥 이 세상이 갑자기 무너지면 좋을 텐데. 화를 표현할 길이 없는 아이는 애먼 세상에 돌을 던지고 싶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컵라면과 알사탕 -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