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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연하게 Nov 26. 2022

컵라면과 알사탕 - 3



세상이 원망스럽고 화가 날쯤, 대로변에 누군가가 전단지를 열심히 나눠주는 모습을 포착했다.     


나이가 지긋한 연세의 여성이었다.

하얀 머리가 섞인 검은 머리는 회색으로 보였다. 풍성하게 말린 짧은 머리칼이 잘 관리 받은 태가 났다. 그가 무엇을 나눠주는지 궁금해 잠시 관찰한 결과 교회 전도용 홍보물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냈다.


나는 신이 났다. ‘신’의 존재 탓이 아니라 내 굶주림을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섣부른 판단 탓이었다.

나이가 어려 내게는 전단을 건네주지 않을까 걱정하며 그의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나이가 지긋한 여성은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망설이더니 전단을 내밀었다. 무어라 좋은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은데 그것까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노인에게서 건네받은 전단 사이에는 뭉텅한 무언가가 끼워져 있었다.

손끝으로 그것을 느끼며 신이나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몇 번인가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전도를 위해 사탕을 끼워 나눠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 집으로 향하는 길에 기대로 가득 차 팸플릿을 열었다.


종이 사이 호치키스로 약하게 고정된 것은 기대하던 싸구려 사탕이 아니었다. 종이로 작게 만들어진 장미꽃. 조잡하지만 정성들여 만들어진 태가 났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입술을 내밀며 실망을 감추지 못하며 눈가를 손등으로 눌러 닦았다.



“도대체 왜 이런 걸 주는 거야? 사탕이 훨씬 좋은데.”



그 말에 금세 모든 사람이 굶주리고 있지는 않다고, 차라리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장미꽃과 전단을 들고 귀가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집에 우두커니 앉아, 종이로 만든 장미꽃을 바닥에 놔뒀다. 관리되지 않은 집과는 조화롭지 못한 모양새다. 놀거리가 없어 몇 번이나 거듭 읽었던 다섯 권의 너덜너덜한 동화책을 대신해 교회의 전단을 펼쳐 읽어 내려간다.

 

신은 우리를 모두 사랑한다는 말씀이 내 마음을 찌른다. 정말 그럴까.


정말 나를 사랑하는데 시험하시는 것뿐이실까. 내 존재를 언젠가 누구든 구해준다면 좋을 테지만 그런 일은 결코 손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을 이젠 안다. 만약 나를 구한다면 그건 스스로 밖에 없으리라.


그 뒤로 깊은 잠을 잤다. 실망과 원망을 안고 잤으니 눈을 뜨고도 기분이 좋을 턱은 없었다.


하지만 내 코를 맴도는 정체불명의 쌀밥 향이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의문의 향을 쫓아 주방으로 나가자, 내게는 낯선 할머니가 주방에서 밥을 지어 상을 차리고 있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과 간소한 반찬이 올려진 검붉은 상을 보며 그가 누군지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모른 척 숟가락을 뻔뻔하게 들어 올린다. 혹여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모처럼 생긴 밥 한 끼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 탓이었다.


나는 그 뒤로도 아버지 대신 집에 거주하는 할머니의 존재를 꽤나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분이 나의 ‘친할머니’라는 존재이며 ‘아버지’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의 나는 어릴 때의 결심과 달리 라면을 곧잘 끓여 먹는다. 바로 어제만 해도 라면을 먹었다.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끊인 게 아니라, 나의 선택으로 즐겁게 조리한 라면은 어릴 적 맛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덜 익은 면발이 약간 거슬리긴 해도 간편한 야식으로는 제격이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라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어 이로 끊어 목구멍으로 넘기며 맛을 음미한다. 역시 맛있긴 하지만 어릴 때처럼 감격스럽지도, 신물이 나지도 않는다.



그제야 나는 아, 그날의 컵라면은 이제야 모두 소화가 되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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