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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섭 Aug 03. 2019

칠선계곡 가는 길

인문학으로 걷는 지리산(005)

칠선계곡 가는 길    

인문학으로 걷는 지리산(005)    


[두지교. 두지터에서 칠선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에 있다]


태풍 ‘다나스’가 큰 비를 남기고 간 다음 날,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칠선계곡 들머리로 들어섰다. 지리산 북부 산자락의 달궁, 뱀사골, 백무동의 물길이 모여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임천강 물줄기는 가슴 서늘하게 할 정도로 사뭇 위압적이다. 추성리는 1400년도 훌쩍 뛰어넘는 옛 이름과 흔적들이 전해지는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곳이다. 하지만 이곳의 역사는 아직 ‘이야기’에 머문 채,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라가 있었던 곳이라고 하여 나라 국(國)자를 쓰는 ‘국골’, 왕이 머물렀다는 ‘대궐터’, ‘추성(楸城)’이라는 산성과 ‘성안마을’, 그리고 식량을 보관하였다는 ‘두지터’ 등의 지명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이름들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과 관련되어 전해진다. 인근 산청군의 구형왕릉, 왕산, 왕등재 등이 추성리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지리산의 산줄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추성리는 역사로 드러나지 않은 오래된 비밀의 시간들이 서려있는 ‘역설적 역사 공간’이라 하겠다.       


그런데 칠선계곡을 비롯하여 지리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이곳의 산길은 생태보호나, 지정탐방로가 아닌 ‘비법정탐방로’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길이 막혀있으며, 다닐 수 있는 길이 매우 제한적이다. 생태보호가 필요해 입산을 금지해야할 곳은 엄격하게 출입제한을 해야 하겠지만, 현재의 삶터 주변 곳곳에 있는  옛사람들의 흔적을 잇는 역사탐방 루트나, 전문가가 동반하는 산행의 경우에는 ‘입산허가제’라는 대안을 마련하여 활발한 답사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리산 칠선계곡]


칠선휴게소 옆 칠선교 아래로 흐르는 계곡의 물빛은 조금 전 만났던 임천강의 물길과는 달리 어느새 옥빛을 머금고 있다. 오전 내내 오락가락 하던 비가 잠시 잦아들 즈음, 스틱 대신 우산을 챙겨들고 두지터로 향했다. 산길이 개방되는 마지막 지점인 ‘비선담’에 이르는 약 4km 남짓한 칠선계곡을 다녀오기 위해서이다. 두지터 가는 길은 칠선휴게소 약 200m 위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며 장구목을 오르게 된다. 고개를 넘으면 오른쪽으로 산허리를 가르며 두지터 가는 길이 이어지고, 정면 아래로는 용소로 이어지는 칠선계곡 하류가 아득히 내려다보인다. 길을 잠시 진행하면 오른쪽 산자락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작은 물길을 만나는데, 역광에 비친 모습이 아름다우면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내 각종 먹거리를 팔고 민박을 치는 두지터를 지난다. 담배창고 등 오랜 기억 속의 풍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없다. 글머리에서 언급하였듯 두지터는 군량미를 보관하던 식량창고가 있던 ‘뒤주’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모처럼 원추리가 피어 배경을 이루는 두지교를 내려서면 길이 휘어지면서 칠선계곡 본류를 만난다. 엄청난 수량으로 용틀임하며 포효하는 물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며, 걸음 내내 따라왔던 갖가지 상념들이 산산조각 나며 날려가는 듯하다.


곧 이어 칠선교 출렁다리를 걸어 계곡을 건너면 산자락을 에돌며 길이 이어진다. 오래전 지리산에 ‘하지마라(禁)’라는 알림이 거의 없던 시절, 천왕봉에서 칠선계곡으로 하산하며 이 길에서 겪었던 힘든 산행이 떠오른다. 하산을 종일 산행으로 잡았으니 운행거리와 시간 면에서 느긋한 산행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가파르고 험한 상단부를 잘 내려와서 정작 선녀탕을 지나 이 산허리로 이어지는 약 2km 정도 길에서 식수 때문에 큰 어려움을 당한 것이다. 산자락 아래로 칠선계곡은 허연 속살을 보이며 흐르고 있었지만, 산비탈을 내려가기가  쉽지 않아 그대로 진행하였는데, 산허리를 이어지는 이 길이 엄청 길게 느껴졌던 것이다.      


[칠선계곡 옥녀탕 인근]


선녀탕 이정표가 있는 다리를 건너면 이내 옥녀탕이 나온다. 온 산자락을 삼킬 듯 포말 지으며 부서지는 물길 사이사이에는 눈 시린 옥색 물빛이 선연하다.  물을 가득 머금은 바위로 이어지는 길이 몹시 미끄럽다. 옥녀탕을 지나니 지난 밤 비바람에 쓰러졌는지 큰 나무가 길을 가로 막고 있어 겨우 헤쳐 나간다. 비선교 출렁다리에 이르니 이제까지 참고 있었든 듯 빗방울이 툭 떨어진다. 주저 없이 산행을 접고 귀로에 오른다. 엄청난 물소리로 가득 찬 산자락에 강렬한 이명처럼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에, 칠선에서 올 여름 첫 매미소리를 듣게 되다니. 느린 걸음으로 3시간 30여분이 소요되었다.      

○칠선휴게소 010-4580-5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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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칠선계곡 탐방은?(지리산국립공원 홈페이지 발췌)    

비선담~천왕봉 구간의 한시적 제한적 탐방이 가능한 '칠선계곡 탐방예약 가이드제'가 5월, 6월, 9월, 10월 시행됨에 따라 인터넷 사전예약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칠선계곡의 하부구간인 추성 주차장~비선담(4.3㎞)까지는 상시 개방 하며, 비선담~천왕봉 구간(5.4㎞)은 특별보호구로 지정되어 있어 일반 탐방객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칠선계곡은 매우 험하고 미끄럽습니다. 미끄럼방지 등산화를 비롯한 안전장비를 반드시 챙겨오시기 바랍니다.    

-칠선계곡은 매우 어렵고 긴 코스입니다. 어린아이를 비롯한 노약자는 반드시 개인의 체력을 고려하여 예약하시기 바랍니다.    


탐방가이드제 운영

-‘올라가기’와 ‘되돌아오기’로 구분해서 시행되는데 추성주차장에서 ‘올라가기’는 월요일 오전 7시, ‘되돌아오기’는 토요일 오전 8시에 출발    


-예약은 국립공원 예약통합시스템 (https://reservation.knps.or.kr)에서 오전 10시에 예약시작, 1인당 4명까지 가능


-운영시기 : 5월~6월, 9월~10월(4개월간)    


주의사항

-‘올라가기’ 참여자는 체력 등을 고려하여 백무동이나 중산리까지 당일 내려오기가 불가능하다면 장터목대피소나 로타리대피소를 예약해야 함.


- 여행자 보험 개별 가입 후 확인서 지참    

-출발당일 06:30분까지(되돌아오기는 07:30까지) 출발지에 도착하여 예약, 보험가입여부 확인과 안전교육 등을 받아야 함.    


이런 경우에는 자동취소됩니다 (SMS 문자 발송 자동 발송)

- 기상특보(호우, 태풍, 예비특보 포함) 발효 시

- 천재지변 등으로 해당지역 입산 통제 시

- 운영 당일 비가 오거나 지속될 것으로 기상예보 시

- 전일 강우량 30㎜ 이상 시    


올라가기 예약안내(월요일 운영)

코스 : 추성주차장~비선담~천왕봉(9.7km)

소요시간 : 8시간    


되돌아오기 예약안내(토요일 운영)

코스 : 추성주차장~비선담~삼층폭포~추성주차장(13km 왕복)

소요시간 : 7시간


○문의 : 지리산국립공원경남사무소 055-970-1000     


#지리산 #칠선계곡 #두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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