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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섭 Aug 03. 2019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걷다-전북권(4)신리~임실읍

완주군 상관면 신리~임실군 임실읍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걷다-전북권(04)완주 상관면 신리 ~ 임실군 임실읍 

[조용섭/전북일보 기고 2019.06.25.]     


남관진(南關鎭) 창건비. 남관진은 상관의 남쪽에 있는 군진(軍鎭)이라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남관초교가 있는 교차로 서쪽에 있다. 1873년(고종10)에 세워졌으며, 남관진의 창건 경위와 위치, 규모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4월 23일(癸未계미) 맑다. 일찍 출발하여 오원역(烏原驛)에 이르러 역관에서 말을 쉬게 하고 아침밥을 먹었다. 얼마 후 도사(都事)가 왔다. 저물녘 임실현으로 가니 현감이 예를 갖추어 대접했다. 현감은 홍순각(洪純慤)이다.[난중일기]  

  

4월 22일 전주 남문(풍남문) 근처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순신 장군은 다음날 완주군(상관면)과 임실군(관촌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인 ‘슬치(瑟峙)’를 넘어 오원역에 도착하였다. 오전에 20여km에 이르는 짧지 않은 거리를 이동하여,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초여름(양력 6월 7일)에 오원역에서 불과 12km 거리에 있는 임실현 치소에 ‘저물녘’에 도착하였다고 하니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듯하다.    


오원역은 삼례도 소속의 역으로,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역마 10필, 역리·역노 등 180여 명의 인원이 배속되었다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교통과 숙박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역원(驛院)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역이 있던 곳은 본래 ‘상북면’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인 1914년 오천면 선천리로 되었다가, 1935년 지금의 이름인 ‘관촌면 관촌리’로 바뀌었다. 그리고 일기 끝부분에 ‘현감이 예를 갖추어 대접했다’라는 내용은 ‘규례대로 쌀쌀맞게 대하였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번 답사구간은 완주군 상관면 신리를 출발하여 임실군 임실읍 임실보건의료원에 이르는 약 25km 거리로, 대체적으로 17번국도(춘향로)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6월 15일 오전 10시 경, 신리에 있는 ‘상관면행정복지센터’를 출발하였다. 지난 답사 후 약 한 달이 지나는 사이, 여름으로 들어선 산자락은 온통 밤꽃 세상으로 바뀌었다. 약 10여분 진행하여 춘향로를 만나면, 전라북도 도로관리사업소(북부지소) 맞은편에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백의종군로는 도로관리사업소 정문 앞을 지나 상관천(전주천) 왼쪽으로 나있는 좁은 포장도로로 이어지고, 편백나무 숲길로 이어지는 ‘공덕교’에 닿으면 다리를 건너 상관천의 오른쪽 길(죽림반월길)로 진행한다. 상관교 아래를 지나 죽림온천 단지 뒤편 상관천과 철길 옆으로 이어지던 한적한 길은 북치교 앞에서 17번국도 쪽으로 이동하여 통로를 지난다. 이제 다소 위험한 국도 갓길을 걷게 된다.    

                

만마관 안내판. 국도17호선(춘향로) 원용암 마을 바로 위에 서있다. 이곳 주변으로는 축성에 사용되었음직한 돌무더기가 군데군데 보인다. 질주하는 차량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상관면(上關面)의 관關은 빗장을 의미한다. 군사장 중요한 지역으로 진(鎭)을 두어 방어하거나 검문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상관면은 신리 약 9km 남쪽에 협곡을 이루며 옛 전주부의 관문 역할을 하던 만마관(萬馬關)의 위(북쪽)에 있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남관진은 상관의 남쪽에 있는 군진을 뜻한다. 남관초등학교 교차로 서쪽에는 1873년(고종10)에 세워진 남관진 창건비가 있다.    


남관진 창건비 있는 곳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도로 왼쪽으로 진행 방향을 잡는다. 만마관의 역사를 짤막하게 기록해둔 안내판을 만나기 위함이다. 남관 아울렛 매장을 지나 원용암마을에 닿으면 만마관 안내판이 지척에 있다. 18세기 실학자 성호 이익이 쓴 절영마가(絶影馬歌) 중에 ‘지리산 앞 대방(남원)의 북쪽 마을에는 아직도 만마의 이름이 전해지네’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만마동이 존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근을 둘러보면 협곡을 이루는 도로 건너편 군데군데 만마관의 축성에 쓰였을지도 모를 돌무더기가 보인다. 이내 길은 왼쪽으로 휘어지며 ‘산정마을’ 앞으로 이어진다.       

         

섬진강. 제2오원교 앞 창인로로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섬진강의 본류로,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오원강을 이루고 흘러온 물길이다. 운암을 거쳐 옥정호로 흘러들어간다.    

        

슬치(瑟峙)에 이르러 이제 임실군으로 들어선다. 고개이름에는 대체로 비파 슬瑟을 시용하고 있으나, 조선후기 김정호가 지은 청구도 등에는 소치(掃峙)로도 표기하고 있다. 슬치는 만경강과 섬진강의 물길을 가르는 호남정맥 산줄기 상의 고개이다. 이제 드디어 섬진강 수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백의종군로는 모텔 건너편 슬치마을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마을 안쪽으로 들어와, 석장승과 솟대가 서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내려선다. 국도와 나란히 이어지는 길이다. 관촌시장이 마주 보이는 곳에서 국도로 내려서며 관촌면 소재지로 들어서니 신리에서 약 14km 걸었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관촌리 시가지를 벗어나면 섬진강의 상류인 오원강을 건너야한다. 제법 큰 물길을 이루는 이곳에는 인도가 있는 오원교가 놓여있다. 다리를 건너 사선문에서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저만치 관촌역이 보인다.    


백의종군로는 관촌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제2오원교 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창인로’로 이어진다. 섬진강의 강폭이 꽤 너르게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대체로 약 11시 방향에 있는 예원예술대학교를 이정표 삼아 진행한다. ‘창인교’를 건너면 시골마을 답지 않게 깔끔하게 정돈된 창인리로 들어서고, 예원예술대학교 정문 앞을 통과한다. 이어서 철길이 있는 군사시설의 담을 따라 잠시 진행하다가, 초소 앞에서 왼쪽 언덕으로 올라 용은마을과 두실교를 차례로 지난다. 다시 17번 국도와 만나는데, 임실읍으로 들어서는 ‘용은교’에는 갓길도 거의 없어 매우 위험하였다.      

 

         

임실문화원. 호반로를 거쳐 임실읍 시가지로 들어서면 이내 만나게 된다. 현수막에 있는 ‘雲水 좋~다’의 雲水는 임실의 옛이름을 의미한다.  

          

백의종군로는 임실휴게소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호반로로 이어진다. 두곡저수지 옆을 지나 고갯마루를 내려서면 임실읍 시가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삼거리를 만나면 원불교 교당이 보이는 왼쪽 길로 진행하고, 임실문화원을 만나면 다시 오른쪽으로 잠시 이동하여 왼쪽에 보이는 코아루아파트 방향으로 나아간다. 아파트 앞의 천변길을 거쳐 임실등기소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정면 큰 교차로에 있는 임실보건의료원이 지척이다. 구간거리 약 25km, 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약 8시간 소요되었다.

/조용섭 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대표    


#백의종군로 #임진왜란 #정유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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