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인문학하기>
‘길’은 어디서 생겨나 어디로 이어지든 인류 문화를 실어 나르는 통로이면서 공간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길 위에서 ‘더 발달된’ 문화와 제도, 문물을 세계 곳곳으로 퍼뜨렸다. 그렇게 중국의 비단이 멀리 지중해까지 팔려갔고, 그리스·로마의 문화는 인도를 거쳐 중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북방의 기마유목문화와 남방의 농경문화도 그래서 만날 수 있었다.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길 위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했고, 세계적 영웅호걸들이 역사의 지휘봉을 높이 들고 길을 누비고 다녔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도 길을 따라 동서남북으로 전파되어 세계적 종교가 되었다. 동서고금의 중요한 문명은 하나같이 길 위에서 생겨나 길을 따라 서로 엇갈리고 마주치며 변화·발전하였다.*(* 정수일 <실크로드 문명기행> 에서)
이처럼 길은 문명의 ‘공간적 이동’이자 이동의 가시적 흔적 또한 일컫는다. 하지만 최근 문명 교류의 길은 이동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현상 공간’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이 폭발적으로 보급된 이후, 개인은 디지털 공간에서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세상과 교류하며 개별적이고도 연쇄적인 상호작용을 한다. 또한 개인은 자신이 창작한 콘텐츠를 디지털 공간에 공유하여 자기만의 고유함을 표현함으로써 타인과 관계 맺으며 공동체(팬덤 문화)를 형성한다. 이렇듯 현대는 개인이 ‘혼자’ 디지털 기기 앞에서 콘텐츠의 창작과 순환, 유통에 참여하지만, 그것은 사회적 관계를 맺기 위한 능동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망치의 진짜 한국 요리> 책
현대의 미디어 문화에서 가장 앞서 길을 가는 나라로 평가받는 곳이 IT 강국,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2000년 즈음 초고속 통신망이 빠르게 보급되었다. 전기통신연합(ITU)의 보고에 따르면 한국 가정 내 인터넷 보급률은 2000년 49.8%로 시작해 2001년 63.2%, 2002년 70.2%, 2005년 74.8%, 2006년 78.4%, 2009년 80.6%, 2010년 95%로 해마다 증가해 2011년에는 급기야 100.6%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브로드밴드 통계 보고서에서는 같은 해 한국의 휴대전화 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다고 했다. 유·무선 컴퓨터에다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인터넷 사용을 모두 합하면, 사회 전반이 인터넷 관계망에 엮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광범위하게 디지털화를 이룬 사회인 것이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한국 대중문화를 더욱 새롭고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성장시켰다. 덕분에 한국은 드라마를 시작으로 음악, 영화, 방송 등을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전역으로 퍼뜨렸고, 한국의 배우와 가수들은 아시아 스타로 떠올랐다. 한류의 인기가 아시아를 강타하면서, 한류는 점차 음식, 패션, 뷰티, 문학 등 거의 모든 문화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아쉽게도 더 확산되지는 못했다. 한국의 대형 연예기획사들이나 정부가 나서서 ‘한류의 세계화’를 적극 지원했지만 서양의 벽은 높고 견고했다.
그런데 최근 한류 열풍이 남미의 벽을 허물고 미국의 담장을 넘어 유럽, 아프리카까지 거세게 불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바깥 세계와 광범위하게 연결되도록 ‘디지털화를 이룬 한국의 문화(K콘텐츠)’가 바탕에 깔려 있어 가능한 일이었지만, 거기에 K콘텐츠를 함께 공유하면서 다양하게 재창조·연대할 수 있는 ‘강력한 디지털미디어 공간(인터넷 플랫폼)’의 성장이 없었다면 바라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떠돌던 K콘텐츠는 접근성이 높은 인터넷 플랫폼 - 유튜브를 비롯해 페이스북, 넷플릭스, 블로그 같은 - 을 만나면서 공간을 초월해 세상과 신속하게 교류할 수 있었다.
K콘텐츠가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서만 세계를 휩쓴 것은 아니다. 이와 함께 전 지구적 이주도 한류의 인기를 확산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세계화의 흐름에서 전자매체와 더불어 대량 이주는 국가의 경계를 허물면서 문화적 역동성을 불러일으킨다. 미디어에서 정보로 주고받은 세계화가 인구 이동으로 구체화되어 공명효과가 발생한다고 본 셈이다.*(* 아르준 아파두라이 <고삐 풀린 현대성> 참고)
한국인 해외 이주도 2017년 기준 194개국에 달하고, 한국(계) 교민 수도 700만 명을 넘어섰다.*(* 외교부 발표 <2017년 해외동포현황>)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도 몇 년 새 급격히 늘어 2018년에는 210만 명이 넘었다. 바야흐로 전 세계적으로 ‘이주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세계화 속에서 가장 주변적 존재로 부각되는 이주자들은 모국과 이주국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으며 문화적 경계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소외의 삶을 살면서도 고유한 민족적 속성을 담지하고자 노력한다. 한류의 열풍은 현지 사정을 가장 잘 헤아리고 있는 한국(계) 교민들의 삶을 통해 더욱 거세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요즘 그 기세가 대단한 ‘한식의 세계화’만 봐도 그렇다. 한식의 세계화는 한국 정부에서 수백 억의 예산을 들이고도 실패한 프로젝트였다. 그것을 유튜브의 요리 스타 ‘재미교포 망치’가 해냈다.
경쾌한 칼질 소리와 함께 발랄한 목소리로 “헬로우 에브리바디!” 하고 인사하는 ‘망치’(한국명 김광숙, 미국명 에밀리 김)는 유튜브에서 한국요리 채널을 운영하는 미국의 스타 유튜버다. 2007년 4월 개설한 자신의 유튜브에 불고기, 소고기무국, 순두부찌개, 빈대떡 같은 한국의 음식을 소개하면서 ‘엄마 손맛’으로 세계를 사로잡았다. 그동안 선보인 메뉴수만 350여 개에 달한다.
망치는 모든 요리 강좌를 영어로 설명하고 있어 미국을 넘어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구독층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어 학습을 위해 망치의 채널을 구독하는 한국인도 늘어서, 한국인을 위한 한글 자막을 함께 올린다고 한다.
망치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2018년 11월 현재 3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미국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와 미국 유명 요리사 올턴 브라운, 리 드러먼드, 아이나 가르텐의 구독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것이라고 한다. 망치의 요리 채널은 2015년에 뉴욕타임스가 망치를 미국 가정식의 여왕이자 전설인 줄리아 차일드(1929~2004)에 비유하면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전남 여수 출신으로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음식을 배웠다는 망치는 된장과 간장, 고추장 등 기본 장류 담그는 법부터 밥 짓기, 국물 내기 등 한식의 기초까지 차근차근 소개한다. 단순 한식 레시피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음식 문화까지 소개하는 것이다.
망치가 유튜브에 요리 영상을 올린 건 컴퓨터를 전공하는 아들의 권유에서였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망치는 2002년 캐나다로 이민했다. 캐나다에서 이민자를 대상으로 통역과 번역을 하다가 2008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현재까지 뉴욕에서 살고 있다.
타지에서의 삶이 외로웠던 것일까. 망치는 온라인 게임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그때 만들어진 게임 캐릭터 이름이 ‘망치’였다고 한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차에 취미 삼아 유튜브를 통해 조리법을 공유한 것이 반응이 좋아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망치의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는 레시피를 따라 만든 음식 인증사진이 올라오곤 한다. 생일 미역국으로 여자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영국인 남성, 한국식 치킨으로 회사 파티의 최고 스타가 되었다는 미국의 신입사원,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 한국인에게 되레 팔았다는 남미 여성……. 세계 각국에서 감사 댓글이 끊이지 않는다.
망치의 레시피는 전통에 충실하다. 고추장과 된장, 파와 마늘까지 팍팍 써가며 한국 냄새 물씬 풍기는 요리법을 보여준다. 한국음식 조리법이 미국에서 현지화되는 것을 막고 “한국의 고유한 맛을 집밥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서”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dfET5tfvnxw
<한국의 감자탕>
유튜브의 인기에 힘입어, 2015년에는 《망치의 진짜 한국요리》라는 책도 펴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고, 얼마 전에는 독일에도 수출·출간되었다. 망치의 요리채널은 그만큼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K드라마나 K팝 못지않은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사람들이 망치의 요리채널과 책을 보면서 한국의 문화를 접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보다 많은 외국인이 한국의 맛에 눈뜰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한류의 인기를 보면 세계 시장에서 K콘텐츠의 수준에 대한 보편적 신뢰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콘텐츠 시장의 약진과 달리 콘텐츠를 담아내는 K플랫폼이 없다. 이러한 아쉬움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국은 콘텐츠는 강한데 플랫폼이 약하다. 어느 순간 콘텐츠가 플랫폼에 종속될 수도 있다.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