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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Dec 17. 2019

이 시대의 공감과 공존을 위한 <82년생 김지영>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입니다. 오늘 다룰 영화는 장안의 화제작이죠. 김도영 감독의 <82년생 김지영>입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


<82년생 김지영>은 시대의 아픔을 다루는 영화입니다. 항상 시대마다 살아가면서 그 시대의 아픔들이 있겠죠. 그리고 당시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혹은 너무나 큰 아픔이었다는 이유로 묻어두었던 아픔들도 결국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드러나게 되죠. 영화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표상적인 인물의 온 몸을 통해 우리 시대의 여러 아픔들을 보여줍니다.

 광주민주화 운동 직후 태어난 ‘82년생들’은 민주화라는 큰 회오리가 한국 사회에 서서히 일어나는 엄청난 시기에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죠. 그렇게 자라 고등학교 1학년 때는 IMF를 맞습니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야 할 때 사회의 큰 위기를 보게 되는 것이죠. 영화 속 김지영의 아버지도 이때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나오게 되고, 언니 김은영 역시 다른 꿈이 있었지만 교대에 진학할 수 밖에 없었죠. 2000년대 초에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새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그런데 김지영은 이러한 상황에서 경력이 단절된 여성으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죠. 물론 2000년대 후반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과 노동문제에 대한 고민을 통해 나름의 해결책들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육아휴직제도가 그 예시 중 하나겠죠. 그러나 영화는 그 제도의 정착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지닌 부작용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이러한 시대의 혼란은 영화 속 김지영이 앓고 있는 병을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사실 우리 사회처럼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이전과 달리 어느 정도 성장해 온 사회에서 문화적 성숙도가 그것에 미치지 못할 때 개인의 정체성은 위기를 맞게 되죠. 김지영 역시 본격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 세대의 한 인물입니다. 우리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죠. 마치 그것이 사회의 정의인 양 희생이 강요된 엄마의 삶을 계속해서 되돌아보는 것 역시 ‘만들어진 정체성’의 혼란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김지영이 이 세대의 모든 고민들과 시대의 모든 아픔을 반영하지는 않습니다. 김지영은 ‘김지영’ 자기 자신의 문제를 대표할 뿐입니다. 정체성의 문제 역시 개개인의 차원에서 절대 평균화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다만 우리는 김지영을 통해 김지영의 정체성 고민을 살펴보고, 김지영의 엄마 미숙(김미경 분)을 통해 미숙의 정체성 고민을 보며 각자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말그대로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죽이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혹은 더욱 살리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로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 멤버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 잠도 많은 '꿈꾸미'는 낫투비(NOT TO BE)를 골랐습니다. 바로 고등학생 시절 김지영이 버스에서 만난 남고생입니다. 영화를 보면 이 남학생은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김지영 뒤에 바짝 붙어 서있다가 따라 내리기도 하죠. 대화도 없는 걸 보니 서로 모르는 상태인 것 같은데 그냥 무작정 따라오는 분명한 폭력을 보여준 인물이죠. 그런데 이런 행동은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를 반추해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 시대의 남학생들 전반의 인식 체계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는 것이죠. 남자는 이런 방식(?)으로 여성에게 접근해도 된다는 관습이 어느 정도 만연했던 사회상을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갑은 텅 비었지만 지식은 충만한 '신여성'은 바로 이 위기 상황에서 고등학생 김지영을 도와준 버스에 있던 여성(염혜란 분)을 투비(TO BE)로 뽑았습니다. 버스에서부터 이상한 낌새를 보이던 남학생이 지영을 따라 내리자 지영이 스카프를 놓고 내렸고 둘러대며 지영을 따라오죠. 여성들이 느낄 수 있는 공포감을 통해 센스 있는 연대감을 보여준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장면에서 또 하나의 NOT TO BE가 뽑혔는데요, 책을 사랑하는 여자, 책사가 고른 지영의 아버지(이얼 분)입니다. 놀란 지영의 문자를 받고 도착한 아버지는 ‘괜찮냐’, ‘어디 다친 데는 없냐’라는 위로가 아닌 ‘네가 조심해야지’라는 말과 함께 치마가 짧다는 것과 학원을 왜 멀리 다니냐는 지적을 하죠. 이 장면 역시 지난 우리 사회에서 공유된 잘못된 인식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된 김지영이 병을 앓는데 있어 이런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겠죠. 아들에게만 한약을 챙겨준다던가 혹은 아들이 좋아하는 단팥빵을 지영도 좋아했다고 착각해 온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는 아들에 대한 편애가 지영에게는 정체성 고민으로 이어졌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영의 문제 원인이 아버지 개인에게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피해자는 김지영 개인으로 명확하지만, 가해자는 영화 속 개별 등장인물들이 아닙니다. 개개인의 잘못을 넘어선 사회 구조와 사회 저변에 퍼진 관념들이 결국 수많은 개개의 피해자들을 만든 원인인 것이죠. 결국 아버지의 잘못된 실수들 역시 그런 사회 관념들이 만들어 낸 것이겠죠.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자막 달린 중국 영화는 필요없는 자영업도 이 영화에서는 NOT TO BE를 골랐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아이와 함께 카페에 간 김지영에게 ‘맘충’이라고 손가락질 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이 사람들 중에는 같은 여성도 있었죠. 사실 이 장면 말고도 영화 구석구석에는 여성에 대해 비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김지영의 남편인 대현(공유 분)이 회사 동료들에게 에둘러 고민을 이야기할 때, 김지영이 공원 벤치에 잠시 앉아 있을 때 여기저기서 여성을 향한 비하적인 발언들이 영화를 채우고 있죠. 이런 장면들은 지난 시대의 잘못된 관념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인문학 드레싱’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두번째 코너. 영화 바깥에서 역사, 문학, 음악, 철학 등 인문학적 영감을 더하는 시간, ‘인문학 드레싱’입니다. <82년생 김지영>에는 어떤 드레싱을 곁들이면 좋을까요?


 책을 사랑하는 책사가 가져온 드레싱을 먼저 볼까요? 일본 페미니즘과 관련된 드레싱, <분게이(文藝, 문예)>라는 일본 문학 잡지입니다. 지난해 12월 영화의 원작인 동명의 소설이 일본에 소개되고 계속해서 관심을 받으면서, 이 잡지는 올 가을호에 아주 특별한 기획을 준비하였습니다. 이 기획에는 원작 작가 조남주와 한강 작가의 단편들과 <82년생 김지영>을 번역한 일본 번역자의 대담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국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키워드를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서울, 짜장면, 유교 등이 포함된 이 키워드에는 페미니즘 역시 들어있습니다. 잡지는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소개했다고 합니다. 이번 가을호는 1933년 창간 이래 처음으로 3쇄까지 찍으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이런 관심은 일본 여성들이 벌이는 여성 하이힐 해방 운동인 Ku-Too와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Ku-too운동은 구두를 뜻하는 일본어 '쿠츠(靴)'와 고통을 의미하는 '쿠츠-(苦痛)'를 '미투(#MeToo)' 운동과 합쳐 만든 신조어입니다. 배우 이시가와유미가 트위터에 쓴 하이힐 착용 강요에 대한 폭로가 “직장에서 하이힐 신지 않는 운동”의 청원으로 이어진 것이죠.


쿠투 운동 (사진 출처 : Unseen Japan)

                                                                          
 꿈꾸미도 책을 인문학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예전부터 꾸준히 인기를 끈 책이죠, 존 그레이라는 심리학자가 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입니다. 이 책을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주목하는 책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에 관한 책으로 읽어볼 수도 있습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역시 남성 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가지 사회적인 구조가 뒤엉켜있는 문제들을 보여주었죠.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중에서도 ‘관계’에 초점을 맞춘 책이죠.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3


사실 영화에서도 수많은 관계들이 나옵니다. 대현(공유 분)과 지영(정유미 분)의 관계, 각자의 부모님들과의 관계, 친척들과의 관계, 일을 하면서 만나는 관계처럼요. 우리도 살면서 결국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 사이에는 거리와 왜곡이 어쩔 수 없이 있을 수 밖에 없죠. 영화 속 대현이가 지영이에게 노력했음에도 결국 소통에 실패했던 것처럼요. 이런 맥락에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화성과 금성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별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상대를 온전히 알 수는 없더라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게 해주는 책입니다. 


 신여성도 오늘은 책 한권을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입니다. 이 책은 엄마가 사라진 일주일 째 되던 날부터 시작합니다. 책 속에서는 자신의 과거를 정리해 가는 엄마의 시선과 없어진 엄마를 그리워하며 집과 형제들을 이야기하는 딸의 시선이 교차되죠. 영화 속 김지영이 앓은 병을 생각해보며 인상 깊은 한 구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함께한 일들은 어찌 되는 건지 당신은 알고 있소이? 당신한테 묻고 싶은 말을 내 딸애한테 물었더니 내 딸은 엄마가 그런 말을 하니 너무 이상해, 하면서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거 아닐까, 엄마! 합디다. 무슨 말이 그리 어려운지. 당신은 알아 듣겠소? 이젠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모두 여기에 스며들어 있다는데, 느끼지 못할 뿐 옛날 일은 지금 일과 지금 일은 앞의 일과 또 거꾸로 앞의 일은 옛날 일과 다 섞여 있다는데 이제 이어갈 수 없네.”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中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4


영화 속 김지영 안에 들어있는 엄마의 과거와 본인의 과거, 우리 시대의 과거 그리고 지금 세대의 문제들, 자신의 딸에게도 투사되는 김지영 본인의 현재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구절이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는 수많은 경험과 축적이 동시에 지금 발생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영업이 가져온 드레싱은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요, 중국 내 젠더 의식의 변화 과정을 드레싱으로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영화의 원작 소설은 책사가 소개해준 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역시 소개되며 최근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어떤 맥락에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있는지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사실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매개로 해서 뭉치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경계되기 때문에 페미니즘 역시 ‘운동(Movement)’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다만 젠더 의식의 변화는 함께 이야기 해볼 수 있겠죠. 한국에서 젠더 이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지적되는 유교적 가부장제의 문제는 중국에서 역시 존재했습니다. 전근대 시기에 중국도 마찬가지로 남존여비 사상이 사회에 퍼져있던 것이죠. 그런데 중국에서 1920년을 전후로 신문화운동이 일어나면서 여성 해방의 목소리가 퍼지는데, 그 중 하나가 중국 공산당이었습니다. 공산당은 사회주의 국가 수립 이후에도 남녀평등을 계속 이야기하였죠. 그런데 이 역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점은 여기서 평등이 젠더적 측면에서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해 여성을 노동자, 생산자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 사람들을 호명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여성의 인간적 측면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여성 노동력 확보를 위해, 각각의 정체성이 아닌 사회적 필요를 강조한 것이죠.

 그러던 중 70-80년대에 들어 개혁개방이 시작되고 시장경제체제가 도입되면서 여성들은 온 몸으로 경제적인 압력에 노출되었습니다. 가사노동과 육아의 부담이 여전히 여성에게 지워진 가운데, 중국 여성은 이제 노동시장에서도 우선 퇴출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불평등은 90년대 페미니즘 이론의 수용과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담론들이 확산되면서 문제점으로 크게 지적되고 있습니다. 중국 웨이보에서 ‘여성의 목소리(女生之声)’라는 채널이 인기를 끌기도 하였죠. 그러나 진정한 여성 주체를 세우려는 노력은 강렬한 시장의 유혹과 여전한 가부장적 질서에 가로막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82년생 김지영>이 중국에 소개되고 중국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죠. 

  동아시아 내에서 이 책과 영화가 연결고리가 되어 공감과 공존을 위한 페미니즘 담론을 계속해서 이끌어 주기를 바라며 오늘은 인사 드리고 다음에 다시 좋은 영화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ㅣ유튜브ㅣ

(18) 차이나는무비플러스 - 82년생 김지영(2019) - YouTube


ㅣ팟캐스트ㅣ
 더 자세한 내용을 들으시려면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podbbang.com/ch/13254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ㅣ네이버 오디오 클립ㅣ

오디오클립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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