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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Jun 11. 2018

열 세살 소녀선생의 <책상 서랍 속의 동화>

팟캐스트 <차이나는 무비> 의 한중일 횡단토크쇼!


안녕하세요. 중국영화와 더불어 중국의 숨겨진 매력을 전해드리는 팟캐스트 <차이나는 무비>입니다. 오늘 소개드릴 영화는요 중국영화계의 거장 장예모 감독의 <책상서랍 속의 동화>입니다. 영화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학원물 영화인데요. 중국 산각지역의 소학교(초등학교)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사실 영화의 원제를 보면 중국어로는 일개도불능소, 영어로는 <Not One Less> 이렇게 되어 있죠. 한 개(사람)도 빠지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국어로 번역된 제목은 완전히 뜻이 달라졌죠. 여기서 중국영화 제목이 번역돼 왔던 역사를 한번 살펴보면서 그 이유를 찾아볼까 합니다.



8, 90년대에 중국영화 많이 보셨던 분들은 아실 텐데요.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영화는 무조건 네 글자였습니다. <지존무상>, <영웅본색>, <첩혈쌍웅>, <첩혈가두>, <중경삼림> 등등. 사실 이거는 번역이라 할 수가 없어요. 한자독음으로 읽은 거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다가 90년대에 새로운 중국영화들이 소개되는데 그냥 한자독음으로 읽기에는 어색하고 애매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슬슬 중국영화 제목에 대한 번역을 시도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 영화도 일개도불능소라고 직역하느니 차라리 새롭게 이름을 지어주는 게 나을 거라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는 수천소학교를 둘러싸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학교의 유일한 선생님이셨던 고우 선생님이 집안 사정으로 한 달간 자리를 비운 사이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여학생이 대리선생으로 오셔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했습니다. 고우 선생님이 떠나시기 전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한 사람도 적어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합니다. 그리고 대리선생 웨이민즈는 조금은 미련하고 고지식하게 그 약속을 지켜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보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그런 영화지만 한편 비판도 있는데요. 이 영화가 장예모 감독의 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분수령이 된다는 것입니다. 장예모 감독의 초창기 작품들을 기억하시나요? 여성 삼부작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그리고 <귀주 이야기>, <인생>.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들이죠. 하지만 그런 장예모가 중국 대륙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하니 앞을 가로막은 장벽이 있었어요. 그게 바로 공산당의 검열이었습니다. 당의 허락과 승인 없이는 영화 제작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장예모 감독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겁니다. 해외로 망명할 것인가, 국내에서 독립영화 비슷하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공산당과 타협할 것인가. 그의 선택은 후자였어요. 


<책상서랍 속의 동화>를 기점으로 장예모 감독이 타협의 길을 걸었다고 하는데 그럼 이 영화도 친정부적인 작품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지요. 그냥 무심코 볼 때는 잘 모르겠지만 중국적 맥락을 염두해 두고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두 가지 정도만 소개드리겠습니다. 방송국 사장이 방송국 문 앞에서 노숙하는 웨이선생님을 만나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서민 친화적인 관료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건 아닐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수천소학교가 정부와 사회의 지원을 받아 수천희망소학교로 탈바꿈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여기서는 공산당이 주도했던 <희망공정>을 띄워주고 선전한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방금 언급됐던 <희망공정>에 대해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1988년에 공산당이 추진했던 거대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중국의 산간지역, 빈곤지역의 학교를 세워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추가로 교사와 교육기자재에 대한 지원도 진행됐습니다. 2008년의 통계를 보면 290만 명의 어린이들이 <희망공정>을 통해 학교로 다시 돌아갔다고 하는데 그만큼 그전까지만 해도 엄청 많은 아이들이 기본적인 교육권을 누리지 못했다는 반증입니다.     


덧붙여 중국에는 문맹이 참 많았습니다. 한자가 어렵기 때문에 문맹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지요. 그리고 문화대혁명 10년 동안 교육 자체가 없어졌으니 그에 따른 영향도 작지 않았을 거예요. 2007년을 봤을 때 중국의 성인문맹률이 전체인구의 22.23프로였다고 합니다. 굉장히 높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2017년도에는 문맹률이 8.7프로로 떨어집니다. 여기에는 <희망공정>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으리라 판단됩니다. 사실 중국에서 문맹 퇴치를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는 <희망공정> 이전에도 한번 있었습니다. 바로 마오쩌둥이 중국어 번체를 간체로 바꾼 일입니다. 표현 그대로 번체는 복잡하죠. 그걸 간단히 변형시킨 게 지금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간체입니다.     


영화 얘기로 다시 돌아오면 흥미로운 점 하나가 있습니다. 영화에 배우가 없다는 것. 엥? 무슨 말이냐고요. 남녀주인공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배우가 등장하지 않다니. 사실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이고도 하죠. 기성배우 대신 실제로 농촌에서 나고 자란 일반인을 섭외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웨이민즈와 장휘거도 그들의 실제이름입니다.    


그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웨이민즈가 나중에 어떤 인터뷰에서 ‘장감독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아직도 돼지를 키우고 있었을 겁니다.’라고 고백하는데요. 장예모 감독 덕분에 인생역전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웨이민즈 같은 경우 중국 서안외국어대학교와 미국 브리검영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현지에서 만난 화교와 결혼해 아들도 하나 봤습니다. 독립영화 비슷하게 작품도 한 편 제작했지만 대체적으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나이는 서른셋. 장휘거도 배우의 길을 걷지 않고 나중에 하북전매대학교에서 촬영을 전공하고 하북성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합니다.    

 


웨이민즈가 연예인의 길을 걷지 않았던 데에도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당시 영화를 통해 일약 스타배우가 된 웨이민즈에게 러브콜이 계속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예모가 그걸 알고 사랑하는(?) 마음에 조언을 줬다 합니다. ‘너는 몸매도 안 되고, 얼굴도 예쁜 편이 아니니까 그냥 열심히 공부나 해라.’ 굉장히 직설화법이죠? (그러나 오늘 우리는 장예모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세요.)     


오늘 소개드린 영화는 장예모 감독의 1999년 작품, <책상 서랍 속의 동화>였습니다. 근 20년이 되어가지만 오늘날 다시 본다면 또 다른 감동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영화지요. 모든 게 낯선 도회지에서 한 명의 학생을 찾기 위해 풍찬노숙하는 웨이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ㅣ팟캐스트ㅣ
 더 자세한 내용을 들으시려면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podbbang.com/ch/13254        


'소중한라디오'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모바일 전용)

https://www.soradio.co.kr/pod7_player.php?chid=zurGiUQJ23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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