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준란 Jan 18. 2020

꿈같은 사랑 이야기 <아사코>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 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연출한 <아사코>입니다. 2019년 3월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때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제목으로 소개되었죠. 그런데 사실 영화의 원제는 <아사코>가 아닙니다. 2018년 9월 일본에서 개봉할 당시에는 원작 소설의 제목과 같은 <꿈속에서도, 그리고 깨어서도>(寝ても覚めても, 네테모 사마테모)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습니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아직 개봉은 안했지만 한 영화제에서 소개될 때에는 <밤낮없이>(夜以继之 yèyǐjì zhī)라는 제목이 쓰였습니다!)

꿈같은 현실 속 첫사랑에 관한 영화 <아사코>에 대해 이야기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영화 <아사코> 포스터


<아사코>를 연출한 류스케 감독은 국내에서 많이 알려진 감독은 아니지만 2019년 11월 열린 ‘제2회 짧고 굵은 아시아 영화제’에서 류스케 감독이 연출한 중단편 영화 5편이 소개되었죠. 감독은 옛사랑과 지금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제에서 소개된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라는 영화에서도 결혼하게 될 남자와 갑자기 찾아온 옛 애인을 보고 갈등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오늘 이야기하는 <아사코> 역시 마찬가지의 이야기가 담겨있죠.


영화 <아사코> 스틸컷


첫사랑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 분)가 갑작스럽게 떠나버리고, 그와 똑같이 생긴 료헤이가 아사코(가라타 에리카 분) 앞에 나타납니다. 첫사랑을 잊고 일상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아사코에게 바쿠는 다시 한번 아무런 설명 없이 나타납니다. 영화는 옛사랑과 새로운 사랑 사이에서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찾아가는 아사코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죠.

 그 과정 속에 가슴 아픈 사연이 있거나 혹은 반대로 웃음 꽃을 피울 수 있는 사연이 보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영화 특유의 느리고 소박한 사랑 이야기에 더 가깝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폭죽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영화의 첫 장면처럼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결국 흩어지게 되는 사랑의 속성을 아사코를 보며 느껴볼 수도 있죠.


 또 영화는 지진이 난 곳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료헤이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실 지진이라는 큰 재난을 겪은 이들은 자신의 곁에서 사라진 인연들에게 희망과 절망의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죠. 생사조차 확인할 길 없이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갑자기 나타나고 또 사라지는 우리의 일상적인 인연들 역시 다시 고민해볼 수가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의 양가적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인 것이 결국 사랑의 또다른 모습이 아닐까 하고요.


영화 <아사코> 스틸컷


감정이 분명히 있었는데 끝이 제대로 맺어지지 않은 경험이 있으신 분들 그리고 일본 영화 특유의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스토리 진행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킬러 콘텐츠!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시간입니다. 말그대로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영화 속에서 죽이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혹은 더욱 살리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 잠도 많은 '꿈꾸미'는 NOT TO BE로 아사코를 뽑았습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여주인공을 NOT TO BE로 뽑은 것이죠. 사실 영화를 보면 아사코의 행동이 이해가 안될 때가 있습니다. 아사코는 어느 날 말도 없이 떠난 첫사랑을 뒤로 한 채 료헤이라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3년간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갑작스레 등장한 바쿠를 본 아사코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바쿠의 손을 잡고 떠나게 되죠. 3년간 자신의 곁을 지켜준 료헤이를 두고 떠난 것입니다.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함께 지내는 고양이에게도 항상 따뜻하게 대해준 아사코의 황당한(?) 행동에 NOT TO BE로 아사코를 뽑았습니다.


 사실 이런 황당함은 연출의 문제일 수도 있죠. 아사코의 마음을 조금 더 섬세하게 표현해주었다면 갑자기 떠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바쿠를 그리워했고 또 료헤이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한 것이죠. 이런 이유로 지갑은 텅 비었지만 지식은 충만한 '신여성'은 NOT TO BE로 이번에는 감독을 선정했습니다.


영화 <아사코> 스틸컷


영화라는 장르에서는 반드시 갖추어져야 할 여러 소통의 방법들이 있죠. 그 중 장면과 장면 사이에 놓인 뜬금없는 요소들은 관객의 입장에서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에 감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유지되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아사코의 갑작스런 선택은 아사코의 서툰 사랑에 대한 표현이면서 동시에 감독의 아쉬운 연출력에 대한 반증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물론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장면들에 주목해볼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앞서 말한 절망과 희망을 포함해서 계속해서 이항대립적인 성격의 감정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더럽지만 아름답다는 료헤이의 대사, 영화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한 사진전의 사진 속 두 여자의 모습 등 영화 구석구석에서 감독이 상반되는 두 모습을 대비시켜 놓은 연출을 찾아볼 수 있죠. 결국 옛사랑의 추억과 과 새로운 사랑의 설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아사코의 감정 역시 우리가 늘 만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지의 문제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책을 사랑하는 책사는 TO BE,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아사코의 이웃으로 나온 에이코(다나카 미사코 분)을 골랐습니다. 자신을 찾아온 아사코에게 에이코는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는 자신의 연애 상대를 은근히 숨기지만 마당 터에서 빨래를 걷으며 사실은 남편이 아니었다는 반전을 알려주죠. 고민하고 갈등하는 아사코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해준 에이코의 대화 방식이 흥미롭기도 하고, 에이코의 사랑 이야기도 궁금해졌기에 더욱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선정하였습니다. 또 영화에서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도 하는데요, 영화 속 바쿠가 아줌마가 아닌 에이코의 이름을 불러주는 장면도 다시 한번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막달린 중국 영화는 필요 없는 자영업도 TO BE를 선정했습니다. 영화 중반부에 지진이 일어나서 지하철도 멈추고 심지어 인명피해도 발생하는 사건이 생겼죠. 이때 료헤이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만난 병원 앞에서 흐느껴 울던 중년 여성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 이유는 지진이라는 재해에 주목해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앞서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다고 말씀드렸죠. 사실 이 원작 소설에는 지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감독이 허락을 받고 추가해 넣은 부분이죠. 그리고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관계에 집중해 본다면 이 지진을 계기로 각각의 관계가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감독이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 보여준 이 지진에 대해서는 <인문학 드레싱> 시간에 더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인문학 드레싱’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두번째 코너. 영화를 보고 떠오른 역사, 문학, 음악, 철학 등 인문학적 영감을 더하는 시간, ‘인문학 드레싱’입니다. 과연 영화에 어떤 드레싱을 곁들이면 좋을까요?


첫번째 드레싱은 신여성이 가져온 시 한편입니다. 이장욱 시인의 <피사체> 잠시 감상해볼까요?


 <피사체>, 이장욱

우리는 고정되었다 

우리는 분별없이 떠들다가 김치,

라고 외치는 순간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었다


우리는 책임감이 점점 강해졌다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하기로 했다

우리의 배경에서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웃고 있는 남자는 웃지 않은 여자를 사랑했지, 갈색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이 곧 죽었어. 둘째 줄의 콧수염이 문상을 갔네. 또각또각,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동안, 그녀의 선언에서 깨어나지 못한 긴 모자를 쓴 남자,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돌이키는 중, 당신이 이쪽 세계를 바라보는 순간,


아, 거기! 뒤에 가려진 사람!

얼굴이 안보여,

당신의 이야기도


터지는 기침을 막으려고 당신은 얼굴을 찌푸렸다

김치!

라고 외치며 우리는 일제히

정면을 바라보는 순간,


불현듯 우리는 또다른 세계를 이해하였다

그 긴 시간 동안 우리의 머리 위에

바늘처럼

쏟아지는 것이 있다.


 시 구절 중 ‘웃고 있는 남자는 웃지 않은 여자를 사랑했지’라는 구절이 료헤이와 아사코의 첫만남을 떠올리게 합니다. 옛사랑 바쿠와 너무나도 닮은 료헤이를 보고 얼어붙은 아사코를 호기심으로 바라본 료헤이는 점차 아사코 주변을 서성거리며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죠.  또 ‘긴 시간 동안 우리의 머리 위에 바늘처럼 쏟아지는’ 또다른 세계라는 시의 표현은 처음에는 따끔따끔하고 쓰라린 바늘 같이 느껴져도 시간의 비를 맞으며 결국 그조차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또다른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준다는 뜻이겠죠. 소중한 사람이 있으면 소중하게 대해주어야 한다는 에이코의 말처럼 쏟아지는 따끔한 바늘 속에서도 서로의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사랑 역시 이러한 시간의 비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꿈꾸미도 시처럼 감상할 수 있는 노래 한 곡을 가져왔습니다. 한국대중가요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배호(1942~1971) 선생님의 <돌아가는 삼각지>입니다. 잠시 가사를 먼저 볼까요.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비는 오는데

잃어버린그 사랑을

아쉬워 하며

비에 젖어 한숨 짖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가는 삼각지


(…)


외로운 사나이가

남 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삼각지라는 말 자체가 바쿠, 료헤이 그리고 아사코의 삼각 관계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노래 가사를 보면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랑의 감정을 더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 곡을 묵묵히 아사코 곁을 지켜준 료헤이를 생각해보며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돌아가는 삼각지> 앨범 앞면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가요앨범 리뷰)


 노래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드리자면, 배성태 작곡, 이인선 작사, 배호 노래의 이 곡은 당시 20주간 차트 1위라는 엄청하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한 노래라 할 수 있죠. 지금도 삼각지 역에 가면 배호 가수의 동상을 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대중 가요사를 돌아볼 수 있는 <돌아가는 삼각지>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제 드레싱을 바꾸어서 영화와 더욱 밀접한 드레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사가 준비한 영화의 원작 소설, 시바사키 도모카 작가가 2010년에 발표한 <てもめても(네테모 사마테모)>입니다. 이 소설의 경우에는 아쉽게 우리말로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다른 소설들은 번역되었다고 하니 영화를 재밌게 보신분이라면 한번 찾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시바사키 도모카 작가가 조금 낯설 수도 있지만, 일본 내에서는 굉장히 인기 있는 작가입니다. 2014년에는 우리말로도 번역된 <봄의 정원>이라는 소설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상은 신예 작가들에게 주는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순수문학상입니다. 일본 문학계에 대해 조금 더 설명드리면, 일본 내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방금 말씀드린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이 있습니다. 나오키상은 조금 더 대중적인 소설에 집중하는 문학상으로 그 해 나오키상 수상작은 일본 출판계에 큰 이슈를 불러일으킨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와 히가시노 게이고 <용의자 X의 헌신> 모두 나오키상 수상작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본 문학계 이야기와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인문학 드레싱으로 올려봤습니다.


 자영업은 영화 속 지진 이야기를 <아사코> 편 마지막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영화 속 지진은 실제 지진과 관련되기도 하는데요 이 실제 지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죠.


일본의 한 마을을 덮치는 지진해일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살아있는 지리 교과서)


2011년 3월 일본의 동북부 지역에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인 9.0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가 몰려들기 시작하였죠. 그 이후 더 큰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에 전기 공급이 되지 않자 원자로의 수소 폭발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일본대지진에 의해 발생한 사망자 및 행방불명인 사람의 수만 지금까지 2만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삶의 터전을 잃고 다른 곳으로 이주한 피난민들처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이 34만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일본 역사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재난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언론은 원전에 관련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보도했습니다. 2015년에 이르러야 후쿠시마 원전의 멜트다운(원자로의 노심부가 녹아버리는 일)를 보도하였죠.

 우리 역시 이러한 언론 보도의 아픔을 겪은 적이 있었죠. 이러한 아픔을 겪고 난 후에는 어떤 작품을 만드는 일이든 그 사건이 아무렇지 않게 간과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재난 이후 우리의 시간은 완전히 변해버렸기 때문이죠. <아사코>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역시 이러한 생각에서 동일본 대지진 이야기를 영화 속에 넣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재난 이후 우리의 대응과 또 그 이후의 기념에 대해서 더 고민해보기로 하면서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 <아사코> 편 마치겠습니다.


다음에 또 좋은 영화로 찾아오겠습니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였습니다. 



ㅣ팟캐스트ㅣ
 더 자세한 내용을 들으시려면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podbbang.com/ch/13254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ㅣ네이버 오디오 클립ㅣ

오디오클립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886

매거진의 이전글 이 시대의 공감과 공존을 위한 <82년생 김지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