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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Dec 26. 2020

이상 시인의 <건축무한육면각체의비밀>

팟캐스트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무비 플러스>입니다! <차이나는무비 플러스>는 '길 위의 인문학' 시리즈로 한중일 영화 속 우리의 근현대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지난 편 윤동주 시인에 이어 이상 시인을 통해 한국의 근대를 살펴보고자 하는데요. 오늘 다룰 영화는 이상과 그의 시를 소재로 한 영화 유상욱 감독의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1999)입니다.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포스터 (출처 : 다음 영화)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

사각이 난 원동장의 사각이 난 원동장의 사각이 난 원.

비누가 통과하는 혈관의 비눗내를 투시하는 사람

지구를 모형으로 만들어진 지구의를 모형으로 만들어진 지구.

거세된 양말.(그 여인의 이름은 워어즈였다)

빈혈면포, 당신의 얼굴빛깔도 참새다리 같습네다.

평행사변형 대각선 방향을 추진하는 막대한 중량

마르세이유의 봄을 해람한 코티의 향수의 마지한 동야의 가을

쾌청의 공원에 부유하는 Z백호. 회충양약이라고 씌어져있다.

옥상정원. 원후를 흉내내이고 있는 마드모아젤. "


- 이상, <건축무한육면각체>(1932) 中 -


 우선 이상을 다룬 영화는 최인현 감독이 제작하고 신성일 배우가 주연을 맡은 <이상의 날개>(1968), 김유진 감독이 연출을 맡고 신성일 배우가 열연한 <금홍아금홍아>(1995), MBC에서 제작한 드라마 <이상 그 이상>(2013)이 있습니다. 오늘 다룰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1999)은 이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영화로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사실 이상의 시는 대중화되기에는 조금 어려운 느낌이 있습니다. 영화 <동주>에서 보여진 윤동주 시인과 비교해본다면 같은 시대의 시인이라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두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이 상당히 다릅니다. 윤동주 시인이 따뜻하고 포근한 정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면 이상 시인은 마치 독자들에게 풀 수 있으면 풀어보라는 이야기를 하듯 시 속에 무수히 많은 상징과 추상을 담아내었죠. 이상의 시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유희’라는 점도 이상의 시를 일종의 게임처럼 받아들이게 만듭니다.영화 이야기에 앞서 이상의 시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시는 한 편의 시가 아닌 총 일곱 편의 시리즈 연작 시입니다. 위에 소개한 시는 1932년 7월에 ⟪조선과 건축⟫이라는 잡지에 “AU MAGASIN DE NOUVEAUTES”라는 프랑스어 부제를 가지고 발표된 시입니다. MAGASIN은 ‘상점(혹은 백화점)’이라는 뜻이고, NOUVEAUTES ‘새로운 것’이란 뜻으로 ‘새로운 것들의 백화점에서’ 정도의 뜻을 파악해볼 수 있습니다. 이 외 <열하약도 No.2>, <진단 0:1>, <22년>, <출판법>, <且(차)8씨의출발>, <대낮 ─어떤ESQUISSE─>을 포함한 총 7편이 <건축무한육면각체> 전체입니다. 이 중 <열하약도 No.2>는 미완성 원고로 ‘미중고’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있고 <진단 0:1>은 이상의 또다른 시 <오감도> 제 4호 혹은 제 5호와 유사하거나 같다고 합니다.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스틸컷 (출처 : 다음영화)


 영화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영화는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원작은 1996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당선작으로 장용민 작가의 소설입니다. 감독이 되고 싶었던 작가는 이 기회를 통해 영화화 뿐만 아니라 소설로도 출판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한편 장용민 작가는『궁극의 아이』(2013, 엘릭시스) 시나리오를 통해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귀신 나방』(2018, 엘릭시스)를 출판하기도 하였죠. 계속해서 장르물 특히 스릴러와 추리극에서 뛰어난 필력을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1998년 출판된 『건축무한육면각체』는 2007년과 2016년에 개정판이 나오기도 했으니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쳬>는 이상에 관한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있던 용민(김태우 분)이 PC통신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MAD 이상 동호회’ 모임에 나가면서 시작합니다. 모임에 참석한 카피 캣(박호산 분), 캔버스(권병준 분), 태경(신은경 분), 덕희(이민우)는 PC통신에 이상에 대한 글을 릴레이 연재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연재한 회원이 차례로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상함을 감지한 덕희와 용민 그리고 태경은 그 사건들을 파헤치기 시작하죠. 이 과정에서 그들은 역사 속에 감춰진 일제의 엄청난 음모를 밝혀내게 되는 것이 영화의 이야기입니다. 영화가 소설에 담긴 이상의 시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담아내지 못한 점 등은 영화의 아쉬움으로 남겨두고 이제 다음 코너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차이나는무비 플러스>의 킬러 콘텐츠!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말그대로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영화 속에서 살리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장면들(TO BE)은 살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NOT TO BE)은 다시 자신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영화에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더해 색다르게 상상해보는 ‘리(Re)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시를 소재로 해 일제의 음모를 밝혀낸다는 역사 스릴러물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에는 어떤 TO BE와 NOT TO BE가 있을까요?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 잠도 많은 '꿈꾸미'는 NOT TO BE로 하야시 나츠오(김주섭 분)를 뽑았습니다. 하야시 나츠오는 살인 사건에 관련된 인물이자 결국 영화 속 모든 사건들이 일어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또한 그는 일본 제국을 상징하는 기호로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에 남아 없어지지 않은 잔재(殘滓)로 남아있죠. 따라서 감독은 일제의 잔재가 우리의 생활 속 곳곳에 남아있고 심지어는 우리가 가장 역사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기호인 국립중앙박물관 지하에도 남아있다는 비판점을 가지고 하야시 나츠오의 캐릭터 설정을 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감독의 이러한 의도를 반영해 그를 NOT TO BE로 선정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책사는 인상 깊은 대사와 장면을 TO BE를 골랐습니다. 바로 영화 마지막에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이상의 마지막 유언을 묻는 악당 김정범(신성호 분)에게 덕희가 대답하는 장면에서 바로 그 대사입니다. “레몬 향기가 맡고 싶다” 레몬 향기는 영화의 분위기와도 또 이상 시인과도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대사였죠. 감독은 저 대사를 왜 넣었을까 또 이상은 진짜 그런 이야기를 자신의 마지막 말로 했을까하여 책사가 알아보니 조금 수정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어 말씀드리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상의 아내로 그의 마지막을 함께한 김향안 선생님이 쓴 『월하의 마음』(2005, 환기미술관)에서 이야기 한 그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멜론이 먹고싶다.” 김향안 선생님은 이상 시인이 위중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도쿄로 향했습니다. 누워있는 이상에게 “무엇이 먹고 싶어?”라고 묻자 그는 “센비키야의 멜론”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시인의 가느다란 목소리에 멜론을 사왔지만 결국 받아넘기지 못했다고 그의 마지막을 회상하셨죠.


소설가이자 시인 이상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로 시인이 이야기 한 센비키야 멜론은 지금까지도 매우 고급 멜론이라고 합니다. 센비키야(일본어: 千疋屋)는 1834년에 창업하여 아주 신선한 과일을 제공하는 일본의 과일 전문점입니다. 멜론 한 통에 30만원 정도하는 것도 있다고 하니 당시 두 사람의 각별함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자막달린 중국 영화는 필요 없는 자영업은 인상 깊은 대사들을 TO BE로 선정했습니다. “세상에서 막을 수 없는 것이 두가지가 있지. 젊은이의 호기심과 늙은이의 주책.” 이 대사는 하야시 나츠오 암살 부대인 Z백호의 예전 일원 장항준(김재권 분)이 처음 말한 대사입니다. 그와 동료들은 하야시 나츠오를 추적하다가 금괴 공장까지 진입했지만 알 수 없는 공포로 팀이 붕괴하고 결국 동료들은 차례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결국 혼자 도망나온 그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미쳐버려 혼자 숨어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사는 영화 후반부에 다시 말해집니다. 이번에는 장항준의 동료였던 또다른 생존자 김정범이었습니다. 그는 금괴에 눈이 멀어 계속해서 공장을 서성이다 결국 하야시 나츠오의 영혼에 빙의된 채 살아가고 있었죠. 사실 이 대사는 무엇인가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영화 속에서는 조금 따로 노는 것 같아 원작이 궁금해지게 만듭니다. 영화보다 소설 원작에 대해 더 좋은 평이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께 다시 한번 추천드립니다.


지갑은 텅 비었지만 지식은 충만한 신여성은 MAD 이상 동호회가 활동했던 PC 통신을 영화 속 살리고 싶은 부분, TO BE로 선정했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1999년에 너무도 소중한 소통 매개체였죠. 2020년 지금은 스마트폰 앱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죠. PC 통신을 TO BE로 선정한 것은 PC통신에 몰두하는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소통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1999년, 파편화된 세기말적 분위기 속에서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립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익명의 누군가를 찾아나설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이 PC 통신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PC통신을 통해 친구가 되기도 하고, 가족이 되기도 하였죠. 그 시대를 기억하고 또 언제나 소통을 바라는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준 PC 통신이 신여성의 TO BE입니다.


길 위의 ‘인문학 드레싱’

이번에는 <차이나는무비 플러스>의 두번째 코너. 영화를 보고 떠오른 역사, 문학, 음악, 철학 등 인문학적 감성을 더하여 조선의 근대를 들여다보는 시간, 길 위의 ‘인문학 드레싱’입니다. 한국의 천재적 문학가 이상과 그의 시를 소재로 한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에는 어떤 드레싱을 얹어볼까요?

 우선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길 위의’ 인문학 드레싱답게 문학가 이상의 삶을 따라 ‘이상 로드(Road)’를 먼저 그려볼까합니다. 이상은 1910년 경성부 북부 순화방 반정동 4통 6호(지금의 통인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직동이라는 설도 있지만 최근 확인된 그의 제적등본에서 위 주소로 확인되었기 때문이죠. 실은 사직동은 태어난 곳이 맞습니다. 본가 그의 아버지는 활판소에서 일을 하셨는데 사고로 손가락을 잃고 동네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며 어렵게 가정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큰집에 마침 후손이 없어서 큰집의 양아들로 들어가면서 주소가 사직동이 아닌 통인동이 된 것이지요. 한편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입니다. 이상이라는 필명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보성고등보통학교서부터 친구였던 구본웅이 선물한 화구상자가 오얏나무로 만들어져 있어 각각의 한자 李(오얏나무 리)와 箱(상자 상)을 이용해 이상이라는 필명을 썼다는 것이 지금까지 나온 가장 유력한 설 중 하나입니다.


구본웅, <친구의 초상>(1935, 62x5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 후 조선총독부 소속 건축기사로 일하며 지금까지도 잘 알려진 여러 문학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던 중 1933년 폐결핵 진단을 받으며 건축기사 일을 관두게 되죠. 이후 요양차 갔던 황해도 백천(白川) 온천에서 금홍이를 만나게 됩니다. 금홍이를 서울로 데려와 종로 1가에 ‘제비다방’을 열죠. 그러나 1935년에 제비다방을 폐업하면서 금홍이와는 이별하게 됩니다. 그 뒤로는 인사동에서 카페 ‘쓰루[鶴]’, 명동에서 다방 ‘무기[麥]’ 등을 개업하였으나 경영에 실패합니다.

 1936년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김향안(당시 이름 변동림)과 결혼한 뒤 그는 새출발과 문학에 집중하기 위해 도쿄로 향합니다. 그러나 이듬해에 사상 불온 혐의로 체포되고 수감 중 결핵이 악화되어 동경제국대학 부속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결국 1937년 4월 17일 새벽 4시에 27세의 나이로 삶을 끝맺게 됩니다.

 이렇게 이상의 삶을 따라서 (사직동) - 통인동 ~ 종로 1가 ~ 인사동 ~ 명동 ~ 도쿄에 이르는 이상 로드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언젠가 꼭 이상의 문학을 들고 걸어보고 싶은 길이네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인문학 드레싱 살펴보겠습니다.


 신여성은 인문학 드레싱으로 이상 시인의 아내 김향안 선생님을 소개하였습니다. 김향안의 본명은 변동림(卞東琳)입니다. 이상의 친구였던 서양화가 구본웅(具本雄)의 계모인 변동숙(卞東淑)의 이복동생이기도 합니다. 김향안은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다니며 1930년대 중반부터는 직접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고 1936년에 이상과 결혼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결혼 3개월 만에 이상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폐결핵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이상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고 그의 유품들을 직접 수습한 뒤 김향안은 김환기 화백과 서신을 통해 새롭게 인연을 만들어갑니다. 1944년 김환기 화백과 재혼하는 과정에서 집안의 반대가 심해 이름을 김향안(金鄕岸)으로 바꾸고 김환기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성은 김환기의 성을 따른 것이고 이름은 김환기 화백이 직접 지어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환기 화백은 지금은 한국의 현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운 상황이었기에 김향안의 각별했던 애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향안과 김환기 (사진 출처 : 보그 코리아, http://www.vogue.co.kr/2017/12/21/이상과-김환기-두-천재의-아내-김향안/)


1955년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김향안은 파리 소르본느와 에콜 드 루브르에서 미술사와 미술평론을 공부하는데 이때 김환기 역시 이대 교수직을 마다하고 김향안을 따라 나섰다고 합니다. 후에 두 사람은 미국으로 건너가 줄곧 뉴욕에서 살았습니다. 2004년 2월 29일, 김환기 화백이 세상을 떠난지 꼭 30년만에 김향안도 뉴욕에서 별세합니다. 이제는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웨스트체스터 공동묘지에 김환기와 함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김향안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녀가 당시 대단한 신여성이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김환기와 결혼 할 당시 집안에 반대에 맞서 ‘사랑은 믿음이고, 내가 낳아야만 자식인가’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는데 당시의 사고방식과 제도에서는 참 생각하기 어려운 표현이라고 보여집니다. 

 뿐만 아니라 김향안은 생전에는 1974년 김환기 화백의 죽음 이후 김향안은 고인의 작품을 다루는데 모든 노력을 다하며 1978년에는 환기 재단, 1994년에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개인 미술관인 환기 미술관을 부암동에 열었습니다. 특히 김환기가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점유한 위치, 특히 글로벌적인 활동 무대에서 어떤 인정을 받았는지를 정리하면서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더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다른 미술 평론가가 아닌, 동반자로서 그 사람과 삶을 함께 하며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너무도 잘 이해한 사람이 직접 작품을 해석해주고 또 의미 부여를 해줄 수 있던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죠. 본인 스스로가 문학 소녀였으며 이상과 김환기의 뮤즈로서 또 동반자로서 삶을 함께했던 김향인 선생님을 생각하며 이상과 김환기의 작품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자영업은 이상의 문학 활동을 인문학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이상을 다루는데 그의 문학 활동을 빼놓을 수 없죠. 우선 이상의 문학 활동 중에서도 그가 참여한 문학 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구인회(九人會)입니다. 당시의 유명한 문학가들이 모여 만든 문학 친목 단체이죠. 어떤 인물들이 있었을지 감이 오시나요? 우선 구인회는  1933년 8월 이종명, 김유영의 발기로 이효석(李孝石)·이무영, 유치진, 이태준, 조용만, 김기림, 정지용 등 9인이 결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발족한 지 얼마 안되어 발기인인 이종명, 김유영, 이효석이 탈퇴하고 박태원, 이상, 박팔양이 충원됩니다. 그 뒤 또 유치진, 조양만이 탈퇴하고 김유정, 김환태가 보충됩니다. 탈퇴와 가입을 반복하면서도 늘 9명으로 유지되었기에 구인회라는 이름으로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순수예술추구’를 취지로 하여 약 3∼4년 동안 월 2∼3회의 모임과 서너 번의 문학강연회, 그리고 『시와 소설』이라는 기관지를 한 번 발행하였습니다.

 구인회의 멤버들을 보면 작품 세계가 서로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밀(메밀)꽃 필 무렵』을 쓴 이효석, 『땡볕』을 쓴 김유정, 일제강점기 『정지용시집』, 『백록담』, 『산문』 등을 쓴 시인 정지용은 전원 생활을 이야기하는 목가(牧歌)로 볼 수 있고 그에 비해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으로 유명한 박태원은 굉장히 모던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이들의 작품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만나 친숙한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이들 사이에서 이상의 작품도 함께 무르익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들의 작품들을 통해서도 조선의 근대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꿈꾸미는 인문학 드레싱으로 '이상 문학상에' 관한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문학인들을 기리기 위한 여러 문학상들이 있죠. 김유정 문학상, 동인 문학상, 신동엽 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등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이상 문학상입니다. 이상 문학상은 이상이라는 천재 문학가를 기리기 위해 1977년부터 문학사상사라는 출판사가 운영을 해온 문학상입니다. 역대 대상 수상자들을 보면 그들 자체가 ‘한국 문학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쟁쟁한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회 대상 수상자인 김승옥부터 이청준, 박완서, 최인호, 서영은, 이문열, 양귀자, 신경숙, 김훈, 한강, 공지영, 김영하, 윤이형 등 누구나 이들의 책 한권 쯤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죠. 문학사상사는 대상 수상작과 우수상 수상작을 묶어 해마다 소설집으로 출판해왔습니다. 그런데 2020년 문제가 터졌습니다. 올해 44회 우수상 수상자로 뽑힌 김금희 작가가 수상을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죠. 수상에 있어서 불합리한 계약 조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은 수상작 저작권을 3년간 출판사에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작에도 표제작으로도 쓸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상 문학상이 너무도 큰 문학상이다보니 이제까지 문제시되지 못했던 내용이 이번 김금희 작가의 수상 거부로 드러나게 된 것이죠. 김금희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출판사에 수정을 요구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자신의 트위터에 이러한 사건들과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죠. 이것이 문제가 되면서 최은영 작가 역시 수상을 거부하고 이상 문학상만 유독 이러한 조건을 내세운다는 내용의 트윗을 게재합니다. 그러자 이기호 작가 역시 자신도 그러한 경험이 있음을 SNS를 통해 밝혔죠. 이렇게 일파만파 작가들에 대한 출판사의 억압이자 착취라는 비판의 여론이 형성되자 출판사는 뒤늦게 출판권 및 표제작 금지 기간 1년 설정으로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2019년 43회 수상자인 윤희영 작가는 절필을 선언하기는 논란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2020년 이제 우리는 저작권이라는 문제에 충분히 민감해졌고, 개인의 권리와 예술가의 권리에도 역시 충분히 민감해졌음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또한 이상이라는 작가의 이름에 걸맞은, 즉 이상이 가졌던 순수했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를 보여줄 수 있는 문학상으로 다시 한번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이런 바램을 담아 이상의 시 한 편 들려드리며 오늘의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 마무리 하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한국의 근대를 볼 수 있는 영화로 돌아오겠습니다.


출판법 이상 (건축무한육면각체 연작 中)


허위고발이라는 죄목이 나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자태를 감춘 증기 속에서 몸을 가누고 나는 아스팔트 가마를 비예하였다.


─직(直)에관한전고(典古)한구절

1. 기부양양 기자직지

나는 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던 까닭에 알 수 없었던 나에 대한 집행이 한창일 때 나는 다시금 새로운 것을 알아야만 했다.

나는 새하얗게 드러난 골편을 주워모으기 시작했다.

'거죽과 살은 나중에라도 붙을 것이다'

말라 떨어진고 혈에 대해 나는 단념하지 아니하면 아니되었다.


2. 어느 경찰 탐정의 비밀 신문실에서

혐의자로 검거된 남자가 지도의 인쇄된 분뇨를 배설하고 다시금 그걸 삼킨 것에 대해 경찰탐정은아는 바가 하나도 있지 않다. 발각 될리 없는 급수성 소화작용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요술이라고 말할 것이다.

'너는 광부에 다름이 없다'

참고로 부언하면 남자의 근육의 단면은 흑요석처럼 빛나고 있었다고한다.


3. 호외

자석 수축하기 시작하다

원인 극히 불문명하나 대외 경제파탄으로 인한 탈옥사건에 관련되는 바가 크다고 보임. 사계의 요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비밀리에 연구조사 중.

개방된 시험관의 열쇠는 내 손바닥에 전등형의 운하를 굴착하고 있다. 곧이어 여과된 고혈같은 강물이 왕양하게 흘러들어왔다.


4.

낙엽이 창호를 삼투하여 내 정장의 자개 단추를 엄호한다.

암살

지형명세작업이 아직도 완료되지 않은 이 궁벽한 땅에 불가사의한 우체교통이 벌써 시행되었다. 나는 불안을 절망했다.

일력의 반역적으로 나는 방향을 잃었다. 내 눈동자는 냉각된 액체를 잘게 잘라내며 낙엽의 분망을 열심히 방조하는 수 밖에 없었다.(나의 원후류에의 진화)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무비 플러스>는 다음에 또 좋은 영화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ㅣ팟캐스트ㅣ
 더 자세한 내용을 들으시려면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podbbang.com/ch/13254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ㅣ네이버 오디오 클립ㅣ

오디오클립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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