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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Mar 15. 2021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의찬미>

현해탄에 목숨을 던진 청춘남녀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입니다! <차이나는무비 플러스>는 <길 위의 인문학> 시리즈로 한중일 영화 속 우리의 근현대사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 장소, 흔적들’ 이라는 부제를 달고 윤동주, 이상, 이중섭에 이어 식민 조선을 살다간 예술인들을 다룬 영화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조선 최초의 여성 성악가인 윤심덕의 삶을 영화화한 김호선 감독의 <사의찬미>(1991)를 통해 만나보시죠.


영화 <사의찬미>(1991) 포스터 (출처: 네이버 )


우리가 잃어버린 아름다운 사랑을 찾아서...

<사의찬미>(1991)는 춘사영화상 최우수 작품상, 각본상, 기술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촬영상, 조명상, 미술상, 편집상, 의상상을 받을 정도로 당시에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연출을 맡은 김호산 감독은 <환녀>(1974), <영자의 전성시대>(1975),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1981) 등 한국 영화계에 굵직한 영화들을 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영화들은 일찍부터 가부장제와 여성 이슈들을 다루었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사의찬미>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읽어볼 수도 있죠. 또한 전개 속도가 빠른 요즘 영화와 다르게 아주 천천히 감정을 쌓아가는 것 역시 특징이기도 합니다.


영화 <사의찬미>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의 주인공인 윤심덕(장미희 분)은 1897년 평양에서 태어나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뒤 노래에 소질을 보여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 도쿄음악학교 성악과로 처음 유학을 떠났습니다.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공부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 것이죠. 이 유학 당시 도쿄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창작 활동을 펼쳤던 동우회(同友會)의 순회극단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김우진(임성민 분)을 만나 서로 감정이 싹트게 되죠. 김우진은 집안 사정으로 일찍 결혼해 자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문명에 눈을 뜨면서 와세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공연 창작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그러면서 노래를 하는 윤심덕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죠. 결국 그는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집안과 시대상, 그리고 예술과 사랑에 대한 자유의지 사이에서 계속해서 갈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윤심덕과의 관계에 대한 세간의 질타 역시 그를 힘들게 하였죠.

 당시 윤심덕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는 존재였습니다. <신여성>이라는 잡지에는 그녀가 무슨 옷을 입고 전차를 탔는지가 보도될 정도였죠. 그러나 그에 비해 그녀의 삶은 그리 화려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공연에 참여했지만 실제로 그녀에게 돌아가는 수입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동생들의 유학을 위해 그녀는 대중 가요를 부르기도 하고 토월회에서 배우로 공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알려지자 그녀 주변에 부유한 남자들이 후원해주겠다며 그녀에게 접근했죠. 이때 이용문(김성수 분)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집을 들어가는 모습이 기자들에게 포착되어 돈 때문에 이용문의 처가 되려한다며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김우진과의 관계로 이미 안 좋은 시선을 받았던 그녀였기에 이러한 힐난은 그녀를 더욱 괴롭게 하였습니다. 언론과 대중, 상업적인 문화예술계가 촉망받는 한 예술가를 궁지로 모는 상황에서 결국 그녀는 현해탄에서 김우진과 함께 바다에 뛰어드는 선택을 합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비운의 말로를 맺은 것이죠. <사의찬미>는 이러한 윤심덕과 김우진의 비극적인 사랑에 대한 영화입니다.



영화   <사의찬미>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차이나는무비 플러스>의 킬러 콘텐츠!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말 그대로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영화 속에서 살리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장면들(TO BE)은 살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NOT TO BE)은 다시 자신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영화에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더해 색다르게 상상해보는 ‘리(Re)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죠! 조선 최초의 여성 소프라노 윤심덕과 천재 극작가 김우진의 비극적인 사랑에 대한 영화 <사의찬미>에서는 어떤 인물과 장면에 주목해볼 수 있을까요?


지갑은 텅 비었지만 지식은 충만한 '신여성'은 이용문(김성수 분)을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선정했습니다. 이용문은 앞서 잠시 이야기 한 것처럼 윤심덕을 도와주려 했던 인물이죠. 영화에서 많은 비중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분명 윤심덕에게 좋은 마음을 가지고 윤심덕이 힘들 때마다 그녀를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윤심덕을 지원해준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안좋은 소문으로 오히려 윤심덕이 힘들어진 것이죠. 한편 그가 이렇게 도와줄 수 있던 것은 그의 재력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복례는 대한제국 내장원경을 역임하며 대한 청일은행 은행장으로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을지로 일대 3만 여평의 토지를 가진 엄청난 재력가였죠. 이런 집안 환경 덕에 이용문은 윤심덕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혹은 보디가드처럼 윤심덕을 지켜주려 했던 이용문을 TO BE로 선정했습니다.


자막달린 중국 영화는 필요 없는 자영업은 영화의 화자인 홍난파(이경영 분)를 ‘NOT TO BE’로 선정했습니다. <고향의 봄>, <봉선화> 등 유명한 곡들을 작곡한 홍난파는 후에 친일행적이 밝혀져 비판받기도 하는 인물이죠.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1898년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현 남양읍) 활초리에서 태어나 조선정악전습소라는 최초의 음악기관을 졸업하고 열일곱의 나이로 음악 교사가 되었습니다. 1918년에는 스무살의 나이로 도쿄음악대학 유학해서 1년 뒤에 수료하고 음악활동을 이어가다 이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고등학교학원에서 유학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활동을 하였습니다. 미국 유학 당시에는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독립운동단체 흥사단에 가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37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1937년 흥사단에 가입한 것을 빌미로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제에 의해 구속됩니다. 이때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전향을 협박 받았고 결국 전향을 약속하고 풀려납니다. 이후 조선문예회와 같은 친일단체에 가입하기도 하고 일제의 만주침략과 같은 대동아공영을 칭송하는 노래를 만들기도 합니다. 한 개인으로서는 고문과 협박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이해를 해 볼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같은 시련을 이겨낸 이들이 있는 만큼 역사적인 평가는 별개의 문제로서 또다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책사는 TO BE로 영화 속 짧은 한마디를 남긴 인물 김우진의 아내 정씨부인(김진화 분)을 뽑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정점효로 김우진의 아들 김방한 교수의 회고록을 보면 일찍 떠난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홀로 남은 자녀들을 열심히 키워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고와 함께 남편을 보낸 뒤 남게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텐데 말이죠. 영화 속에서는 양장을 입고 당당히 자신의 집에 다른 동료들과 찾아온 윤심덕에게 “머무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으시길 바랍니다”라는 짧은 대사 뿐이지만 그 눈빛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가령 집안끼리의 정략 결혼으로 일찍 혼인해 가부장적인 시댁살이를 하는데 비해 양장을 입고 다른 남자들과 어울리며 클래식 음악을 하는 윤심덕을 보는 마음이 너무 다른 삶을 사는 여성으로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을 수 있겠구나 생각해 보는 것이죠. 조금 더 조명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사의찬미> 속 TO BE로 선정했습니다.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 잠도 많은 '꿈꾸미'도 TO BE를 선정했습니다. 바로 김우진과 윤심덕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용문의 애첩이 되었다는 소문과 연극배우로서의 활동의 한계로 윤심덕은 1926년 일본 오사카의 닛토레코드회사에서 음반취입을 의뢰받고 일본으로 향합니다. 비슷한 시기 김우진은 자신이 이끌던 연극단체 토월회가 운영상의 어려움과 예술을 반대했던 집안에서 벗어나고자 일본으로 떠납니다. 윤심덕은 이때 ‘사의찬미’를 포함한 노래들을 녹음하고 김우진과 만납니다. 오사카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1926년 8월 1일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에 올라탑니다. 그리고 그 배에서 함께 바다로 뛰어들죠. 당대 유명인이었던 두 사람의 동반자살은 곧바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3일 밤 11시에 하관(下關: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항해하던 관부(關釜)연락선 덕수환(德壽丸:도쿠쥬마루)이 4일 오전 4시경 대마도 옆을 지날 즈음 양장을 한 여자 한 명과 중년 신사 한 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에서 돌연히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했는데, 즉시 배를 멈추고 부근을 수색했으나 종적을 찾지 못했다. 승객명부에 남자는 전남 목포부 북교동 김수산(30세), 여자는 경성부 서대문정 2정목 273번지 윤수선(30세)이라고 ㅆ여 있지만 본명이 아니고, 남자는 김우진, 여자는 윤심덕으로 밝혀졌다. 관부연락선에서 조선 사람이 정사(情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현해탄(대한해협) 격랑(激浪)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情死)’, 1926년 8월 5일 자 동아일보 사회면 기사 중 -

  꿈꾸미는 이 둘의 죽음을 근대의 좌절로 읽어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와 근대문학 비평가이자 극 작가였던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은 일제라는 식민 상황을 만나게 되었고 또 전통과 싸워야 했으며 언론과 대중이라는 요인들을 만나며 괴로워했습니다. 근대가 품어내며 자라나게 했던 다양한 요소들, 식민, 피식민, 압재, 언론, 대중, 여론, 음악, 공연, 예술 등의 요소들이 뒤얽힌 가운데 살았던 이들이죠. 그리고 그들을 결국 괴로움 끝에 대한해협에 스스로 몸을 던졌고 이는 근대의 요소들이 바다에 빠진 것과 다름없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과거에서 현대로 변화하고 이전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과거에 빠져 그런 이들을 핍박하고 비난했던 당시 분위기가 결국 근대를 좌절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사의찬미>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한편 이들의 죽음은 이후로도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살을 믿을 수 없었던 가족들은 총독부에 수사를 요청해 시신을 수습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수사에도 시신을 찾지 못하자 이들의 자살이 거짓이며 이들은 나가사키를 거쳐 중국인으로 신분을 위장해 이탈리아로 건너갔다는 설이 퍼졌습니다. 한 한국인 사업가가 이탈리아에서 김우진과 윤심덕을 닮은 사람을 보았다는 소문도 돌았죠. 이러한 소문이 급격히 퍼지자 1931년에는 이탈리아 주재 영사관에서 김우진의 유족에게 ‘로마에는 김우진과 윤심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선인이 살지 않으며, 동양인이 경영하는 악기점도 없다’는 결과를 통보합니다. 이렇듯 그들의 미스테리한 죽음에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현재 김우진의 가묘는 무안 월선리 말뫼산에 있습니다. 시신은 찾지만 못했지 혼을 기리며 뫌뫼산 정상에 가묘를 만든 것이죠. 그리고 무안과 목포에서는 김우진을 기념하는 문학관과 각종 행사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목포에는 ‘김우진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혹한 시대 속에서 비극적인 사랑을 나눈 김우진과 윤심덕을 <사의찬미> 마지막 TO BE로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인문학 드레싱’ 코너

 이번에는 <차이나는무비 플러스>의 두번째 코너. 영화를 보고 떠오른 역사, 문학, 음악, 철학 등 인문학적 감성을 더하여 조선의 근대를 들여다보는 시간, 길 위의 ‘인문학 드레싱’입니다. <사의찬미>에서는 어떤 인문학 드레싱을 얹어 이야기 해볼까요? 

 가장 먼저 윤심덕을 기억하며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윤심덕, 김우진 로드’를 만들어보려합니다. ‘윤심덕 로드’는 “평양 ~ 경성 ~ 도쿄 ~ 경성 ~ 오사카 ~ 시모노세키 ~ 대한해협 (~ 중국 상하이 ~ 이탈리아) ~ 무안”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겠네요. 윤심덕이 살았던 곳은 현재는 도로가 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들을 기억하며 상상의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자영업이 가져온 인문학 드레싱은 김우진이 쓴 시, <사와 생의 이론>입니다. 김우진은 극작가이면서 시도 여러 편을 썼습니다. 특징이라면 철저한 현실 부정과 개혁에 대한 의지가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염세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시가 많다는 것이죠. <사와 생의 이론>은 김우진과 윤심덕이 동반자살한 해인 1926년에 쓰여진 시입니다. 혹시 죽음을 예견하며 쓴 시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죠. 그럼 시를 들려드리겠습니다.


 死[사]와 生[생]의 理論[이론]


- 왜 살고 잇소.

- 죽을녀고.

- 그러면 남이 죽이거나 當身[당신]이 스스로 죽이기를 願[원]하오?

- 아니요.

- 왜?

- 사는 것이 죽음이 되는 일도 잇지만, 쥭음이 사는 수가 잇는 理致[이치]가 잇는 것을 아오?

- 그럴 道˙ 理˙[도리]도 잇겟지.- 道理[도리]로 生覺[생각]해서는 안되오.

- 그러면?

- 삶이나 쥭음이나 道理[도리]가 아니요. 둘이 다 實狀[실상]은 生[생]의兩面[양면]에 不過[불과]하오. 그러닛가 道理[도리]를 넘어서 生[생]의核心[핵심]을 잡으러는 이에게는, 삶이나 쥭음이나 問題[문제]가 되지 안소.

- 當身[당신]은 只今[지금] 살고 잇소?

- 아니요. 그러나 死[사]를 바래고 잇소. 참으로 살녀고


 굉장히 철학적인 시이죠. 실제로 김우진은 니체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회의론자들이 많았고 한국에서 최초로 투신자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의 죽음은 단순한 치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좌절과 비극에 비롯한 것이라고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여성도 ‘죽음’과 관련된 인문학 드레싱을 가져왔습니다. 바로 영화 <글루미 선데이>(1999)입니다. 2000년에 국내 개봉한 이 영화 역시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출처:네이버 영화)


 영화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자보(조아킴 크롤 분)와 그의 연인 일로나(에리카 마로잔 분)에게 다가온 한 연주자 안드라스(스테파노 디오니시)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안드라스는 너무도 아름다운 일로나에게 감정을 느끼고 ‘글루미 선데이’라는 음악을 그녀의 생일에 선물합니다. 일로나 또한 안드라스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자보는 두 사람 모두를 사랑한다는 일로나를 받아들이기로 하죠. 그렇게 지내던 중 일로나에게 빠진 한스(벤 벡커 분)라는 독일인이 그녀의 거절에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자보가 그를 구해 돌려보냈죠. 그런데 한스는 후에 독일군 장교가 되어 레스토랑에 돌아옵니다. 배경인 1930년대 부다페스트는 나치에 의해 점령당할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죠. 한스는 이번에는 교활한 방법으로 자보와 안드라스를 괴롭혔고 안드라스는 그가 주는 수치심에 자살을 택합니다. 일로나는 위험에 처한 자보를 구해준다는 한스의 말에 그에게 몸을 내어주지만 한스는 자보를 구해주지 않았죠. 결국 두 사람을 보낸 일로나는 혼자서 레스토랑을 운영합니다. 시간이 흘러 1999년 전쟁 영웅으로 탈바꿈한 한스는 레스토랑을 다시 찾아오고 이때 일로나가 독을 탄 비프롤을 먹고 숨을 거둡니다.

 비극적인 시대 속에서 인간의 희망과 좌절, 그리고 그 분위기를 담아낸 음악까지 느낄 수 있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입니다. <사의찬미>와 함께 보시면 시대와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수 있는 영화로 추천드립니다.


책사는 영화 속에서 잠시 이야기된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를 인문학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영화에서 김우진이 홍해성(조민기 분)의 소개로 자신이 쓴 각본을 들고 극단 책임자에게 찾아갔을 때 그는 요즘에는 일본 신파극을 번역한 것이 잘팔린다며 <이수일과 심순애>를 언급하죠. <이수일과 심순애>는 오자키 코요(尾崎紅葉(おざき こうよう) 1868-1903)의 <금색야차(金色夜叉, こんじきやしゃ)(1897년~ 1902년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를 번안한 <장한몽(長恨夢)>을 원작으로 한 신파극입니다. 이수일과 심순애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사이였지만 심순애는 장안 최고의 부자 김중배와 결혼을 합니다. 이수일은 이에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하고 고리대금업자가 되죠. 여담으로 우리나라 번안판에서는 이 둘이 서로를 그리워하다 후에 다시 만나게 되는데 사실 일본 원작에서는 연재 중 작가가 사망하여 끝을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번안 소설과 노래가 인기였던 당시였기에 이 작품은 한국 연극사와 문학사에서 큰 위치를 점하는 작품이기에 인문학 드레싱으로 소개해드립니다.


꿈꾸미는 다시 영화 <사의찬미>로 돌아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과 관련된 인문학 드레싱을 가져왔습니다. 한국 대중음악사를 다룬 책, 가수 주현미의 『추억으로 가는 당신』(쌤앤파커스, 2020)입니다.



주현미 글, 이반석 정리, 『추억으로 가는 당신』, 쌤앤파커스, 2020 (출처: 쌤앤파커스 홈페이지)


 ‘사의찬미’는 1926년 윤심덕이 오사카에서 음반 녹음을 마치고 음반사 사장에게 부탁해 특별히 추가 녹음한 곡입니다. 요시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을 번안한 곡이었죠. 이때 가사는 윤심덕이 썼다고 알려져 있지만 김우진이 썼다는 또다른 설도 있습니다. 이렇게 특별 녹음으로 완성된 이 곡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음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곡의 의미가 더해지죠. 

 가수 주현미가 쓰고 이반석이 정리한 『추억으로 가는 당신』은 ‘사의찬미’를 포함해 우리나라 대중음악 100년사 동안 중요한 획을 그은 노래들을 주제별로 묶어 이야기를 더한 책입니다. ‘사의찬미’ 와 그 외 다양한 한국 대중음악을 가수 주현미의 시선에서 느껴볼 수 있는 책이죠. 참고로 주현미는 유튜브 채널 ‘주현미TV’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트로트곡과 가요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럼 가수 주현미가 부르는 ‘사의찬미’ 를 들려드리며 오늘의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도 한국의 근대 속 ‘사람, 장소, 흔적들’을 만날 수 있는 영화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sxwHLGG_v4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ㅣ팟캐스트ㅣ
 더 자세한 내용을 들으시려면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podbbang.com/ch/13254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ㅣ네이버 오디오 클립ㅣ

오디오클립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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