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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Jun 10. 2023

멸망이라니, 솔깃한 제안이잖아

끌리면 안 되는데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숫자를 보고 6년 전 이맘때 읽은 글이 문득 떠올랐다. 한 온라인 매거진에서 본 칼럼으로, 제목은 ‘우리는 차분히 멸망을 준비하고 있다’였다.


오랜만에 글을 다시 찾아 읽었다. 칼럼이 올라온 2017년은 ‘N포세대’, ‘흙수저’, ‘헬조선’ 같은 말이 한창 퍼지던 시절이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N포’의 뒷면에 ‘욜로’가 붙어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기성세대는 이렇게 개탄하곤 했다. ‘요즘 젊은것들은 단군 이래 가장 풍족한데, 스마트폰과 커피를 들고선 힘들다며 결혼도 안 한다.’


Gettyimage


칼럼을 쓴 백승호 에디터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사치하고 있지 않다. 대신 차분하게 멸망을 준비하고 있다. 꽤 예전에 결심한 일인데 당신들은 이제야 그 위기감을 느끼시는 것 같다.” 과거의 빈곤이 밥을 굶는 형태로 나타났다면, 지금의 빈곤은 “내일을 포기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점점 심각해지는 양극화 시대에 “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우리는 지금을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내 집 마련과 결혼을 포기하니 “감히 스타벅스 커피도 마실 수 있더라”는 글쓴이는 “인구출산을 빌미로 교섭을 하고 싶으면 요구조건에 맞는 걸 가져오라”고 일갈도 한다.


6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칼럼이 나온 2017년 합계출산율은 1.052였다. 6년 동안 ‘개선’은 전혀 없었던 듯하다. 돌아보니 ‘헬조선’이라는 말도 이미 낡았다. 이제 우리는 ‘포기한 것들’보다 ‘남은 것들’을 세는 쪽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인구절벽의 원인이야 이미 질리도록 이야기됐다. 지면이 아까울 정도지만 최근 나오는 이야기들만 빠르게 훑어본다. 지난해 사교육비는 전년 대비 10.8% 올랐다. 부모의 소득에 따라 고등교육 기회가 나뉘고, 이는 일자리 양극화로 이어진다. 선택받은 극소수의 ‘괜찮은 일자리’를 빼면, 대다수 청년의 눈앞에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고용불안이 기다린다. 그래서일까. 구직활동 없이 ‘그냥 쉬었다’는 청년은 지난 2월 약 50만명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K’ 모양으로 벌어지는 ‘K양극화’ 그래프에서 아랫변에 떨어지는 순간, 삶은 반전 불가능한 몰락으로 미끄러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생득적으로 안다.


내 집 마련은 이제 동굴벽화에나 나올 전설이 됐다. 아이를 낳는다면 시간이 필요한데 정부는 어떻게든 야근을 더 시키겠다며 시동을 건다. 여전히 처참한 육아휴직 사용률과 여성 경력단절, 성별 임금 격차는 말할 것도 없다. 곳곳에 번득이는 온갖 차별의 칼끝, 산재·자살처럼 반복되는 구조적 죽음들을 보노라면 불경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 시대에 ‘사람’이란 도대체 뭘까. 아직 오지 않은 어린 가족을 여기 데려와도 될까. 지속이란,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나도 차분히 멸망을 준비하는 사람이 된 걸까.


물론 인구감소의 피해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작은 도시부터, 어려운 삶부터 무너질 것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뉴스를 보니, 20대에 자녀를 3명 낳은 ‘남성’에게 군 면제를 해주는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됐다고 한다. ‘가임기 지도’의 악몽이 떠올라 서둘러 뉴스를 끈다. 다시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숫자를 본다. 요즘 이 숫자가 자꾸 동료 시민들이 보내는 ‘멸망 제안’으로 읽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제법 솔깃해지고 만다.


이 글은 <주간경향> 1524호(2023.04.24)에도 실렸습니다.


▼ 본문에 나온 백승호 에디터의 칼럼 보러가기

우리는 차분히 멸망을 준비하고 있다(트웬티스타임라인, 2017.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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