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이 오지 않던 날
아무리 기다려도 배달이 오지 않았다.
‘사정이 있겠지’라는 생각은 ‘이상하다’는 의문으로 바뀌었고, 금세 ‘불안하다’가 됐다. 끊이지 않는 배달 라이더의 교통사고 기사가 떠올랐다. 눈이나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그런 날에도 사고는 일어나니까.
‘큰 사고를 당하셨으면 어쩌지, 나 때문에….’ 불안이 죄책감으로 바뀔 때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배달 플랫폼 콜센터였다.
접촉사고였다. 다행히 라이더가 다치지는 않았다고 했다. 다만 오토바이에 작은 문제가 생겨서 배달은 어려울 것 같다고 콜센터 직원은 말했다.
팽팽한 고무줄처럼 긴장했던 마음이 탁 소리를 내며 풀렸다. “휴 괜찮습니다, 안 다치셨다면 다행이죠.” 글이라고 착한 척 하는 게 아니라 아마 보통 나처럼 말할 것이다(진상도 적지 않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오토바이 수리비가 얼마나 나올지는 몰랐지만, 끔찍한 사고 소식을 많이 듣던 때라 일단은 안도했다.
풀린 마음을 다시 삐걱삐걱하게 조인 건 콜센터 직원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죄송하다며 통화를 시작했고, 모든 말끝에 주눅든 목소리로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를 붙였다. 한사코 괜찮다고 했는데도 그는 내내 죄송했다.
수화기로 쏟아져내리는 ‘죄송’들을 듣다 보니 이내 눈앞에 한 사람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빌면서 내 눈치를 살피는 작은 누군가의 이미지가. 분명 누군가에게 강요당했을 그 비굴함에 부담스러움과 괜한 미안함, 그리고 일종의 섬뜩함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그의 잘못은 아닐 테다. ‘괜찮다’를 연발하며 힘들게 끊은 전화기가 무거웠다.
날짜도 메뉴도 기억나지 않는 그때의 일을 아직도 종종 생각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1년 배달음식 시장 규모를 23조원으로 추산했다. 23조라는 엄청난 금액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고와 얼마나 많은 ‘죄송’이 오갔을지 생각하면 어지럽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상반기 배달 라이더가 23만7188명이라고 봤다. 그런데 10명 중 4.3명이 6개월 이내 교통사고를 경험했다. 가장 큰 원인은 ‘촉박한 배달시간에 따른 무리한 운전’(42.8%)이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상담사 47.6%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경험이 있었다. 원인은 저임금과 업무 스트레스가 반반이었고, 스트레스의 7할은 감정노동에서 왔다.
2021년 수습기자로 들어와 배달 플랫폼 콜센터 위장 취업한 후배의 기사가 떠오른다. 후배는 콜센터의 상담사 모두가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담고 살았다고 했다. 전산 오류로 주문이 취소돼도 ‘오류’라는 말을 써선 안 됐다고 했다.
나는 배달을 시켰을 뿐인데 누군가는 접촉사고가 났고, 누군가는 감정노동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저 배가 고파서 한 일에 누군가의 몸과 마음이 다친다. 범인은 명백한데, 해결은 막막하다. 세밀하고도 거대한 이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가해자일 수밖에 없는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나는 끝없는 미로 한가운데에 홀로 놓인 듯 아득해진다. 어디로 가도 막다른 벽이다.
배달을 많이 시킬수록, 더 많은 타인을 위험의 가능성에 내몰수록, 배달 앱 안에서는 ‘귀한 분’ ‘더 귀한 분’ 훈장을 달아주는 세상.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 글은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노보 <공공노동자> 10호(2023.02)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