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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Jan 08. 2025

2025, 다시 만날 우리

부지런히 따뜻해질 수 있길

토요일 여의도는 진입부터 어려웠습니다. 그 큰 섬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한두 개가 아닌데, 길마다 꽉 들어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황당한 내란이 불러낸 거대한 분노였습니다. 넘실대는 인파 속에서 걷다 서기를 백 번쯤 반복한 끝에 겨우 광장 끄트머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힘 있는 이들이 그 단어를 휘두르는 방식이 싫었습니다. 대패의 칼날처럼 차이를 없애고 존재를 숨죽이게 하는 그 단어는 이 사회에서 자주 폭력이었기에, 웬만해서는 자주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광장에서 저는 우리가 ‘우리’라는 단어를 다시 찾아와도 되겠다고 느꼈습니다. 배제가 아닌 공존의 의미로 ‘우리’가 돌아온다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너와 나를 서로 연결하고, 나를 닮은 너와 나와 다른 너를 한 곳에 담는 끝없는 그릇으로서의 ‘우리’가 말입니다.


ⓒ경향신문


우리는 반짝였습니다. 다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모인 응원봉의 빛깔은 레인보우 구슬아이스크림보다 더 다양했고, 그보다 더 다양한 서로의 얼굴을 그날 우리는 보았습니다. ‘다시 만난 세계’에 맞춰 다이소 응원봉을 어색하게 흔들던 중장년층과 휴대전화 화면에 가사를 띄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부르는 청년들. 핫팩을 들고 모인 이들과 멀리서나마 응원한 이들. 성별을 비롯한 다양한 정체성, 저마다 겪은 차별과 고통, 어렴풋한 소망과 꿈. 그날 광장은 성운이었습니다.


애써 모인 이 빛이 흩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이미 대통령을 바꾼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대통령‘만’ 바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권교체 같은 거대한 것‘만’ 중요하다고, 다른 건 나중이라고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가 너무 컸습니다. 추운 날씨를 뚫고 힘들게 모였던 빛들은 흩어져 저마다의 추위를 다시 견뎌야 했습니다. 그렇게 7년, 우리는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새로 펼쳐질 우리의 날들이 그날의 광장을 닮는다면 좋겠습니다. 일상을 혁명하지 못하는 모든 혁명은 반쪽짜리일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여의도를 넘어 우리의 안방과 학교와 회사까지 뿌리내리기를, 국회를 지켜보되 국회만 바라보지는 않기를, 민주주의는 투표일 하루만 반짝 치르는 축제가 아니라는 걸 우리가 잊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광장에서 우리가 서로를 응원하고 귀하게 여겼듯 나와 다른 이를 사랑하기를, 남태령에서처럼 가로막힌 이들을 위해 기꺼이 곁을 내어주던 그 마음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기를, 제멋대로 총칼을 동원한 윤석열처럼 취약한 이들을 힘으로 짓누르려는 ‘내 안의 윤석열’을 우리가 계속 경계할 줄 알기를 희망합니다.


사랑에 품이 들고 내 삶이 좁다 해서 너무 쉽게 냉소에 투항해버리지 않기를, 가까운 이들을 사랑하고 먼 이들이라고 그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사람은 뜨거워질 수 있는 만큼 언제든 서늘해질 수도 있음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그러므로 부지런히 따뜻해질 수 있기를, 함께 소망하고 싶습니다.


다시 만날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며.


이 글은 <주간경향> 1610호(2025.01.06)에도 실렸습니다.

(메인 이미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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