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영문 캘리그라피 ㅣ 캘리일상기록
전통 영문 필기체인 카퍼플레이트 다음으로 [고딕 영문 필기체]를 배우기 시작했다. 고딕 영문 캘리그라피는 블랙레터라고도 한다. 획이 굵고 흰 공간이 좁아 검은 글자체가 많이 보여서 생긴 이름이다. 블랙레터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그중에서 텍스투라 소문자를 먼저 배우게 되었다.
한 번 영문 고딕체를 보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카퍼플레이트는 가볍고 우아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고딕체는 단단 깔끔하면서 유럽 중세시대의 묘한 매력도 느껴졌다. 고딕체를 보고 있으면 중세시대 유럽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타투에도 많이 쓰이는 것이 바로 이 고딕체이다.
영문 고딕체 첫 수업 때, 고딕체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양피지의 생산이 적어 한 페이지 안에 많은 글자를 넣어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중세 시대 때 쓴 고딕 글씨체를 보면 검은 글씨체가 빽빽하게 쓰여 있다고 한다. 박물관 웹 사이트에서 스캔된 파일이 있다고 하니 잊지 말고 찾아봐야겠다.
고딕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다 보니,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배워서 묘하게 멋진 고딕 글씨를 써보고 싶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단어를 쓰기 위해서 꼭 넘어야 하는 허들이 있다. 바로 기초 선 연습이다. 정말 너무 단순한 허들이다.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다. 아니, 사실 지루하다. 하지만 이 선 연습이라는 허들을 잘 넘기기 못하면 앞으로 한 발자국도 갈 수 없다. 재미있다, 재미있어. 미친척하고 자기 암시를 해야 한다.
영문 고딕체는 반듯하고 절도 있게 꺾어서 써야 한다. 또 선을 쓸 때 각도도 중요하다. 카퍼플레이트가 55도 기울기였다면 고딕은 45도와 30도의 기울기가 필요하다. 45도는 다이아몬드 모양이 나와야 한다. 30도는 세로로 긋는 선의 펜 각도이다. 이 두 가지의 각도를 기본으로 쓰는 것이 바로 영문 고딕체이다. 쓰는 방법을 배우고 바로 연습을 시작했다. 다이아몬드 모양만 만들면 되니 쉬워 보였다. 일자로 선을 내리는 것뿐이니. 별거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카퍼플레이트를 배웠으니 선 긋는 거야 조금만 연습하면 잘할 수 있겠네. 뭐, 이렇게 가볍게 여겼다. 항상 그렇다. 뭐든 가볍게 여기는 순간 뒤통수를 맞는다.
그래, 역시 다이아몬드는 어려운 것이다. 다이아몬드를 사서 손가락에 끼는 것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다이아몬드 반지 사탕은 빼고요.) 하얀 종이에 검은색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 것이었다. 자꾸 찌그러진다. 다이아몬드의 매력은 딱딱 떨어지는 일직선인데. 이건 뭐 물결이 친다. 삐뚤빼뚤거린다. 폭도 재각각이다. 좁아졌다가 넓어졌다가 왔다 갔다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30도 세로선을 연습해 보았다. 음, 넓적한 페럴럴펜의 닙이 안정적으로 지나가야 하는데. 여지없이 흔들렸다. 그래도 정신 차리고 다시 45도 다이아몬드와 30도 세로선 연습을 해보았다. 다행이다 조금씩 괜찮아졌다. 쌤의 칭찬을 끝으로 첫 수업이 끝났다. 2주 동안 기본선 숙제를 하면 된다. 이번 숙제는 어떻게든 잘해보겠어. 다이아몬드 모양을 완벽할 정도로 그려내겠어. 세로선 까짓것 흔들림 없이 써보겠어. 뭐 이렇게 다짐을 해보았다. 뒤통수를 맞고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이다.
집으로 가면서 고딕 영문 첫 수업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뒤통수를 맞아 당황스러운 시간이 있었지만 몇 개월 뒤에 고딕체를 잘 쓰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문 고딕체를 쓰는 모습은 묘하게 멋져 보인다. 당분간 중세시대의 매력에 빠져 지낼 듯싶다. 영화라도 봐야겠다. 그 느낌을 계속 느끼면서 지내려면 말이다.